이런 아침일수록

[이수호의 잠행詩간](3)

오늘은 흐리고 바람도 없다
나무도 흔들림 없이 서서 침묵하고
꽃들도 색깔을 죽이고
피기를 멈추었다
풀들의 그림자조차 어디에도 없다

이런 날은
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어느 창 앞에 앉아 있는
너를 기억해서는 안 된다
따뜻한 차 한 잔
같이 마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따위의 한가한 생각은 접어야 한다

이런 아침일수록
쫒는 자의 발걸음은 가볍다
문자로 날아오는 계약 해지 통지
우편으로 이미 출발했다는 정리해고 명단
국가보안법 조작사건은 집행을 기다리고
용산 철거용역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한다

* 좀도둑들은 주로 이른 아침에 설친다고 한다. 그 시간은 쥐새끼들이 눈을 반짝이며 가장 활발하게 구멍을 들락거릴 때이기도 하다.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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