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밀물 들면

[이수호의 잠행詩간](34)

그 섬으로 들어가는 길, 물들면 없어지는 길
길 아닌 길 따라 섬 속으로 파고들면
키 작은 검붉은 바다풀 무더기로 자라
시커먼 개펄 포개진 다리 사이
핏빛 어리는 첫날밤 초승달처럼
바람에 쓸려 흔들리고 있었어요

몹시도 무더웠던 지난여름
그 지독한 열대야를 탐했던 온갖 욕망의 찌꺼기들
그걸 먹고 자라던 배롱나무의 붉은 꽃들, 그 빛나던 작은 잎들
부딪쳐 부서지던 저 먼 파도의 아픔들
그 여름의 뒷모습이었어요

안타까워하지 않겠어요
그냥 그렇게 있을래요
밀물 오면 소리 없이 잠기겠지요
검붉은 작은 풀도, 그 아픈 배롱나무도, 붉은 초승달도
물속에서도 살아
지나는 물결에 조용히 일렁이겠지요
그렇게 맞고 싶어요
새로운 계절
당신을

* 지난여름 우리는, KBS 앞 돌계단에서, YTN 앞 길거리에서, 밀려오며 밀려가며 많이도 싸웠다. 다시 국회 앞 돌바닥에 앉았다. 덮쳐오는 해일 앞에서 오히려 담담하다.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