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홍세화 선생님께!
유감입니다, 라는 말로 선생님께 첫 편지를 쓰지만 진심으로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홍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한 번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아니 딱 한 번 얼굴을 뵌 적이 있습니다. 송년회 때문에 어떤 잡지의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그곳에서 회의를 하고 계시더군요. 인사를 올려야 마땅한데 워낙 주변머리가 없는 놈이라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습니다. 이리 편지를 쓸 줄 알았으면 그때 인사를 드리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홍 선생님의 한겨레신문 칼럼을 아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지난 번 ‘민주 대 반민주’ 이야기와 오늘 아침(6일) ‘흔들어라, 한나라당 독주 구도를’ 읽고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를 눈앞에 두고, 더는 이 암울한 정권 앞에 침묵할 수 없어 쓰신 글이라 생각이 됩니다. 백 번 그 마음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어쩌지요. 급한 나머지 신발에 발을 넣지 않고 운동화 줄만을 매고 계시니 말입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풀뿌리 민주주의에 애정이 깊은 분인 줄 알고 있습니다. 당장 ‘한나라당 독주 구도’를 흔들고자 하는 마음에 스스로 풀뿌리를 보지 못하고 꽃봉오리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저 꽃이 보기 싫다고 묻지 마, 식으로 전선구도를 만들어 꼴 보기 싫은 한 놈만 없앤다고, 그 줄기에서 보고 싶은 꽃이 필까요? 어떤 씨앗에서 어떤 뿌리를 뻗느냐가 앞으로 피어날 꽃을 결정하는 건 아닌가요?
민주 대 반민주. 저도 이거 아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뭔가 대안이 없어 보일 때, 이처럼 실현 가능할 것 같은 편한 ‘희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선생이 말했듯이 예전에 해봤으니 얼마나 몸에 익숙한 말입니까?
하지만 어쩌지요. 선생님이 오늘 쓰신 칼럼에서 말하는 ‘노동자 민중’들은 당신이 되씹어보자고 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를, 선생이 당장 급한 불 끄자는 심정으로 내세운 ‘희망’으로 여기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민주대연합. 이는 배지를 달려고 하는 정치 지망생의 희망일 수는 있어도 시민들의 희망이지는 않습니다. 선생의 말처럼 ‘반한나라당 후보가 오세훈, 김문수에게 이길 수 있다면’ 시민들은 살 맛 나는 세상이라고 생각할까요?
저보다 더 많이 분석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신문에 보도한 ‘엠비정부 2년 평가’ 설문조사 결과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인권과 민주주의, 서민들의 삶, 이런 항목에 엠비정부가 잘했다는 10%를 겨우 넘거나 그 아래였습니다. 하지만 이전 정부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에는 대부분 50%를 오르내리지 않았습니까. 시민들은 이미 집권당이나 야당이나 ‘희망’이 아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민주대연합이 단순 수치의 합을 키울지는 모르나 시민들에게 희망을 전달하지는 못할 거라는 말입니다.
그럼 진보대연합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불행히도 아닙니다. ‘진보 대 보수’ 전선이나 대결구도는 그래도 힘이 엇비슷할 때 나오는 것 아닙니까?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이 단일 후보를 내었다고, 함께 선거에 임한다고 어찌 ‘진보 대 보수’가 될 수 있습니까? 진보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이 이곳을 향하지를 않고 있는데 말입니다.
저도 한나라당이 죽도록 미워, 정말 많은 사람의 힘을 모아 때려주고 싶습니다. 야당을 꼬셔 만든 민주대연합 정도로도 부족합니다. 저 한나라당에 있는 사람도 전향시켜 진짜 크고 넓은 대연합을 만들어 ‘흔들어라, 한나라 독주구도를’ 정도가 아닌 ‘몰아내라, 한나라 독주구도’연합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정당만을 기계적 조립을 해서는 민주대연합은커녕 할 건지 말건지 논쟁만 하다가 말 것인데.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홍세화 선생님.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나라당 독주구도를 흔드는 게 정말 절대 절명의 시민의 꿈입니까? 시민들은 깊은 침묵으로 더 크고 밝은 희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 나물의 그 밥’ 조합이 아닌.
홍 선생님의 민주 대 반민주도 당장 지방선거만을 위한 작은 꿈이 아님은 압니다. 하지만 그 일차적 전술이 민주대연합일수는 있을지언정, 야당에다가 플러스 정치권 비슷한 시민단체는 아니다는 말입니다. 정말 풀뿌리 연대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민주대연합을 말하는 순간, 선생을 존경하는 독자들은 홍 선생의 깊은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장의 지방선거의 배지 숫자에 현혹되거나 논쟁에 밤새우며 쌈하는 판국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이건 희망의 연대가 아니라 절망의 분산만을 낳을 것입니다.
지방선거답게, 시민이든 도민이든, 주민들에게 맡겨 둡시다. 진보연합이든 민주연합이든 독자의 길이든 주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지, 홍 선생님이 앞에서 선동할 일은 아닙니다. 지역마다 그 지역 특성에 맞는 그 동안의 연합과 연대의 성과가 있으니, 그냥 그대로 놔두십시오. 알아서 잘 할 것입니다. 그 동안의 성과가 전선의 폭으로 솔직하게 드러날 겁니다. 괜히 권위적으로 중앙당이나 소수 몇몇이 꿍짝하여 결정하고 지시할 때 혼돈과 반발만을 살 겁니다. 홍 선생의 지금의 이 열정을 더 큰 미래의 꿈을 설계하고 준비하는데 쏟아주십시오.
40년 전 전태일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항거하였습니다. 그 죽음 앞에 선생이 말하는 민주대연합보다 더 큰 양심의 연합이 만들어져 실천하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한 노동자의 몸짓이 박정희 정권에 균열을 내었습니다. 인간 취급을 받지도 못하던, 공돌이 공순이로 취급받던,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양심의 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누구도 믿지 않았던 전태일의 꿈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30년 전은 어떻습니까? 광주 시민군의 항쟁을 본 뒤, 그 참담한 5공 시절, 연대하지 않으려고 해도 연대를 하지 않았습니까? 광주의 꿈은 허황되었습니다. 서울의 봄이 침묵할 때 그들은 신기루를 보며 총을 들었습니다. 그 총의 다짐은 전두환을 몰아내자라는 연합을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행동으로 모으지 않았습니까?
굳이 프랑스 혁명까지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그 힘이 뭉쳐졌는지를 더 잘 아실 테니까. 프랑스 시민들이 무슨 꿈을 꾸며 일어났는지를.
홍세화 선생님!
선생님 같은 어른이 지금 이 암울한 시절 하실 말씀은 눈앞의 지방선거, 한나라당 흔들기가 아닙니다. 그 무거운 짐은 내려놓으십시오. 왜 시민들이 침묵을 하는지, 어떤 희망과 대안을 이야기해야 시민들이 환하게 웃으며 행동할지, 그 꿈을 말해주십시오. 이미 한나라당 비슷해진 야당 정치인이나 작은 배지에 눈이 어두워진 진보 정치인과 연합을 고민하기에 앞서 시민들이 연대할 꿈을 말해주십시오.
당신이 짝사랑하는 연합의 대상들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시민들에게 꿈을 주는 민주대연합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못 이루더라도, 다음 총선이나 대선 때라도 이루고 싶다면, 그래서 정말 민주적인 정권을 세우고 싶다면, 당장 자신의 정당에서 뛰쳐나오라고. 자신의 양복 깃에 달린 금배지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라고. 그때 진정한 진보든 민주든 연합이 가능하다고. 시민들의 꿈이 담긴 연대가 가능하다는 걸.
만약 자신의 작은 권력과 배지에 그들이 연연하며 도토리 이합집산이나 키재기를 하고 있다면 시민의 이름으로 홍세화 선생이 직접 그들을 버리고 진정한 드림팀을 꾸리겠다고 협박이라도 하십시오.
기층 민중 조직이나 시민 조직에서 사람 끌어가 참신해진 척 시민들에게 어필하는 정당이나 연합이 지금 필요할 때가 아닙니다. 역으로 낡고 섞은 정치판에서 나와 반성하는 마음으로 풀뿌리 계급조직이든 시민조직을 꾸려야 할 때입니다.
이 길이 멀고 험해 보여도 더 빠른 정권 교체를 이룰 것입니다. ‘한나라당 독주구도를’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몰락을 시키는 지름길입니다.
선거의 혁명은 선거에 목 맬 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선거에 연연하는 현실의 조잡한 꿈을 버릴 때, 선거가 아닌 허황된 혁명을 꿈꿀 때만이, 선거를 통해 아주 자그마한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역사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홍세화 선생님!
진정으로 당신이 쎄느강가에서 노동을 하며 꿈꾸었던 그 꿈을, 이 절망의 시절 간절히 듣고 싶습니다.
이천십년 일월 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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