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을 간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이틀 앞 둔 날. 오늘 가면 조용하겠지. 조용히 다녀와야지.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지하 계단을 올라오는 순간, 여기가 출구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계속 맞나?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왜 일까? 지난 한 해 동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거리인데. 3000쪽을 공개하라는 만장이 찻길과 인도의 경계에 우뚝 서 있는 걸 보고, 맞구나! 했건만, 그래도 왠지 낯설다.
그때 깨달았다. 인도를 가로막고 있던 경찰과 찻길을 점거하고 있던 경찰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아, 이거였구나.
용산 남일당 앞을 외로운 섬으로 만들었던 장벽이 사라졌다. 앞으로도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겠지. 천막도 현수막도 불탄 건물도 깨진 유리조각도 그리고 1년 전 한겨울 그 뜨거움에 숨을 헐떡이며 여기 사람이 있다, 를 외친 희생자들도.
잊고 사는 것, 그것도 빨리 내 기억과 내 삶에서 지우는 일에 익숙해졌다. 언제부턴가. 끊임없이 지우고 잊어야 살 수가 있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시커먼 어둠에서 불쑥 나타나 내 목 뒷덜미를 잡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무논의 거머리 떼듯 뿌리쳐야 단 한 순간이라도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이 시절. 정말 기억하기 싫은 사건들만 지독시리 쫓아다니는 이 암흑의 시절에는.
오늘 용산을 간다. 정말 잊고 싶어 간다. 영정 앞에 처음으로 분향을 하려고 간다.
지난 일 년 어느 곳보다 자주 용산을 찾았지만 분향소에서 향 한 번 피우지 않았다. 국화꽃 한 송이 올릴 수 없었다. 이대로 고이 가시라, 인사를 할 수가 없어서다. 단체로 찾아가 분향을 할 때도 슬그머니 홀로 빠져 나왔다. 용산참사 관련 추모시를 써서 낭송해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낭송은 하였지만 한 번도 추모시를 쓰지는 않았다. 아직 추모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노만을 적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분향을 해도 되겠지.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지만. 너무도 가슴 쓰린 과제들을 떠안은 채 장례를 치루지만, 그래도 이젠, 분향을 하고 추모를 하고 고이 가시라 술을 올리고 흙에 묻어야 예의가 아닐까 싶어, 용산에 왔다.
분향을 하기 전, 차근차근 남일당 주변과 문화의 공간이 된 ‘레아’와 용산 4구역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현수막에 걸린 구호와 벽에 남은 글귀들과 예술 작품들과 찢어진 천막과 눈 덮인 쓰레기들과 남일당 입구를 막고 있는 닭장차와 아직도 그곳을 맴돌고 있는 영혼들과 한의 목소리를 보았다, 들었다.
다시 분향소 앞. 몇 번을 들어갔다 나왔다, 를 되풀이 하다, 결국 신발을 벗지 못했다.
분향을 할 수 없다. 대한통운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아까시 나무에 목을 맨 박종태 앞에서 노제 때 시를 낭송할지언정 분향을 하지 않았듯이, 용산 남일당 분향소 앞에서 세상을 돌을 던질지언정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칠 수는 없었다.
흙에 묻혀야 할 사람은 용산 희생자가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 시절 살아남아 밥을 먹고 숨을 쉬고 밤이면 사랑을 하는 바로 나이기 때문에.
용산 남일당을 뒤로 하고, 지난 해 열매를 맺지 못한 은행나무를 지나 터덜터덜 내가 출발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역으로 들어가 지하철을 타고 다시 일 년 전 1월 20일, 여기 사람이 있다, 가 메아리쳤던 그날로 온다. 그날의 분노를 다시 가슴에 담는다. 그날의 다짐을 다시 내 심장에 새긴다. 나의 비겁을 내 몸 대신 흙에 묻고, 내 가슴에 용산 희생자들의 외침을 담는다.
보내야 하는데 보낼 수 없어, 흙에 묻을 수 없어 내 가슴에 품고, 지난 한 해처럼 죄인이 되어 아무 것도 밝힐 수 없고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괴로움에 아파하며 살련다.
한 해 전 그날의 다짐, 어금니로 악물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여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될 때까지. 분향을 뒤로 미룬다.
내일도 여전히 이천구년 일월 이십일,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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