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그리 쉽게 동네북처럼 두들겨야 할 조직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주노총만큼 자랑스러운 조직이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에 소속된 조합원이 많아서도, 노동자 조직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민주노총은 자기 정화 능력을 가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워야 할 조직의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자랑할 일보다는 부끄러운 일이 더 많이 알려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끄러운 일로 자랑해야 할 일마저도 먹칠이 되곤 했다.
희망이 되어야 할 민주노총이 또 삐걱거린다. 희망을 되어야 할 민주노총 6기 임원 선거가 절룩거린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남긴 채 사퇴를 해야 했다. 위원장 후보를 시작으로 부위원장 후보들이 사퇴를 하고 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자 6기 위원장 후보의 사퇴의 변으로 도저히 풀 수 없는 고차원의 방정식이 던져졌다.
임성규 위원장의 출마 소식을 듣는 순간, 선거 ‘무산’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에 번뜩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다. 사흘 뒤 우연찮게 민주노총 사무실을 갔더니 임성규 후보가 사퇴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든 생각도 ‘당연’보다는 ‘무산’이었다.
안정된 일자리는 사라지고 불안정한 일자리마저도 위태로운 시절이다. 어느 때보다 노동자의 삶이 고단함을 넘어 절망의 밑바닥을 기고 있다. 희망의 동아줄이 필요할 때이고, 그 아슬아슬한 동아줄에 손을 내밀고 있는 숱한 노동자가 있다. 그 동아줄이 민주노총이라는 걸 명심해야 할 때이다.
이번 사퇴의 책임이 산별 대표자에게 있었는지 정파의 욕심에 있었는지 복잡해진 방정식만 보고는 알 수는 없다. ‘10분’이라는 일순간의 해프닝이 만든 일인지 고질적인 일이었는지 따져봐야 지금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조합원들과 민주노총을 희망으로 여기는 많은 이들에게 답을 주어야 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답 없음’이라는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이후의 문제가 지금보다 단순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마 더욱 더 풀리지 않을 방정식이 될 수밖에 없다.
방정식을 푸는 방법은 쉽다. 끊임없이 식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울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지우고, 더해야 할 것은 더하고, 곱해야 할 것은 곱해서 숫자를 줄이고 미지수를 줄여 가는 게 해결방법이다. 고차원이 아니라 고고차원의 방정식이라도 푸는 방법은 여기서 시작된다.
어느 순간 언론에서도 대의원 대회 무산을 점치고 있다. 때론 무산이 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꼬여있는 방정식에 더 고차원의 엑스 와이만을 추가할 뿐이다. ‘위기’를 이야기 하며 위기의 ‘극복’으로 이번 선거를 기다려온 숱한 이들에게 극복은커녕 더 큰 위기를 던져주어서는 안 된다. 지금껏 위기보다 더 큰 위기가 민주노총 앞에 놓일 수가 있다.
아직도 희망은 민주노총이지 않는가. 산산조각 나게 깨야 할 조직이 아니라 깨진 틈을 노동자의 지혜와 힘을 모아 메워야 할 조직이 아닌가. 강 건너 불구경해야 할 조직이 아니라 헤엄쳐 달려가 건져야 할 조직이 아닌가.
이번 선거에서 경선은 ‘차선’일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이미 ‘악’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믿는다. 아직도 희망은 민주노총이기에. ‘악’으로 되어버린 이번 선거가 ‘차선’이 될 수 없다할지라도, ‘차차차 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악’만은 막을 힘이 아직 민주노총과 노동자의 지혜와 힘에 있다고 믿기에. 숱한 위기에서 삐걱거리고 절룩거리면서도 지켜온 민주노총의 힘, 그 능력이 간절하다.
지금 보이지 않는 눈이, 말하지 않는 입이,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품고 지키고 있다는 것을 민주노총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