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의 요란한 팡파르가 울린 지 10년이 지났다. 새천년은 ‘희망’이라는 말처럼 개개인의 삶에 뭔가 모를 꿈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10년이 되었다. 새천년의 십년, 겨우 10대 소년이 된 것인데, 2010년은 주름살이 가득 패인 고통의 나이처럼 여겨진다.
십년 전 진보정당의 깃발을 들고 민주노동당이 태어났다. 그리고 십년, 열 돌을 맞이한 민주노동당은 성장을 멈춘 채 꾸부정하게 늙고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16%에 달하던 지지율은 어느덧 한 자릿수에 정체되어 요지부동이다.
민주노동당 10주년을 맞이하여 숱한 진단과 반성 그리고 발전전망이 나오고 있다. 2017년 정권 창출의 비전을 보여주려고 한다. 허나 어쩌랴. 희망이 아니라 허망처럼 들리는 이 공허함을?
지방의회에 단 1명의 민주노동당 의원이 들어가 보여준 성과와 힘을, 국회에서 때론 다섯 명의 국회의원이 보여준 업적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왜 계속 소수여야 하고, 소수일 수밖에 없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소수조차 지키는 일이 이리도 버거워졌는지, 진지하게 따져볼 노릇이다.
요즘 들어 진보정치가 무엇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국회의원 숫자 늘이고, 자치단체장에 당선되고 지방의회에 진입하는 것이 진보정당을 처음 만들었던 10년 전의 마음이었던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진보정당 10년, 선거만이 남았다. 진보정치에도 선거만이 남았다. 진보의 가치나 힘의 뿌리는 사라진 채 선거를 통한 당선이라는 꽃만 피우려고 한다. 땅 밑에 튼튼히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려 하지 않고 화려한 조화만 만들려고 한다. 넥타이 매고 얼굴에 화장을 한 채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악수만 많이 하는 정치꾼을 닮아가려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넘어 의심이 든다.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최규엽 소장은 한 토론에서 “△2012년 총선 정당지지율 20%, 원내교섭단체 구성 △2012년 대선 지지율 10% △2016년 총선 1야당으로 도약 △2017년 집권의 로드맵”을 밝혔다고 한다.
이 내용을 듣는 순간 희망차다는 생각보다는 허망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믿음직한 서울시장 후보 하나 내세우지 못해 허덕이면서 연구소에서 숫자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게 한심할 뿐이다. 오로지 선거에만 맞춰진 선거를 통한 집권 로드맵 앞에 십년 전 진보정당을 만들었던 꿈이 이것이었나,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을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 지독하다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민주주의의 무시, 아니다. 민주주의를 철저히 이용한 친재벌 친자본의 성격에 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력과 힘, 다수당의 숫자의 우위라는 민주주의를 이용해 자신의 출신 성분(친재벌 친자본)의 이익에만 충실히 일하고 있다. 민주 대 반민주라며 이명박을 몰아쳐봤자 국민들에게 먹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들은 저 1980년대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지 않다. 이명박 정권이 자신의 출신 성분에 철저히 복무하듯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요구에 충실하게 일할 정당과 정치인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는 계급간의 충돌이다. 계급이 사라질 때 정치는 야합이고 눈속임일 뿐이다. 권력과 돈을 지닌 계급은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늘 품을 움츠리고 뒷걸음질을 친다. 그래서 보수고 수구다. 반면에 늘 빼앗기고 살아야만 하는 계급은 역동적이어야 한다. 한 발 내딛어야 빼앗긴 작은 권리를 찾을 수 있다. 진보세력에게는 저항이 바로 정치다.
저항 가운데 가장 수동적인 행위가 투표행위다. 진보정당이 선거에만 목을 빼고 있는 것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일이 아니다. 경제위기가 깊어질수록 계급의 대립은 치열해지고, 기득권자의 폭력은 기승을 부린다. 저항의 정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한국 진보정당의 당면 과제다. 때로는 금배지를 떼고, 감옥에 갇히고,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저항을 조직하는 정치지도자와 정당이, 그리고 노동자 농민 시민들의 조직이 필요할 때이다.
지난 10년 잃어버린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저항의 기억, 저항의 방법을 빼앗겼다. 이명박 정권이 빼앗은 것이 아니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했다는 세력이,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세력이 스스로 가장 수동적인 저항인 선거에 끌려 다니면서 저항의 뿌리를 죽여 갔던 것이다.
진보정치 십년, 저항의 법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할 때이다. 2017년 집권 로드맵보다 더 빠른 길을 허망이 아닌 희망으로 보여주는 길은 저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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