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구로구 독산동에 있는 한 어린이집에 취재를 갔다. 태어나 이모라는 말을 이날처럼 많은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취재를 마치고 어린이집을 나왔건만 이모라는 소리가 귀에서 떨어지지 않고 웅웅 울린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이모라고 부른다. 이모들은 잠시도 쉴 참이 없다.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이모를 찾기 때문이다. 이모들은 한 번에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식사 시간에는 자신의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의 밥 먹는 것을 동시에 챙겨주어야 하고, 밥을 먹는 중간에도 이모, 하며 질문을 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답변을 해줘야 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입으로는 질문에 답하기 바쁘다. 점심을 먹고 청소할 때도 마찬가지다. 청소기를 들고 움직이는 내내 이모, 하며 아이들은 질문을 하고 이모는 대답을 한다. 눈도 한 곳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놀이를 할 때도 한 곳에 집중해 있으면 좋으련만 한두 명은 꼭 친구들과 떨어져 딴 놀이를 한다. 이모의 눈이 한 곳에만 집중되면 밖에서는 꼭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눈 깜짝 할 사이 병뚜껑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주먹질을 하며 방바닥을 뒹군다.
어린이집 이모는 이모 중심으로 수업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놀이를 진행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은 뒤 시작한다. 꼬리잡기 놀이가 재미있는지 몇몇 아이가 한 번 더 하자고 한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밥 먹으러 가자는 이모의 설명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모는 다른 아이의 의견을 묻는다. 하자는 아이도 있고, 그만 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 분쟁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았다.
이모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는 의견이 많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르면 소수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놀이를 중단하고 밥을 먹으러 가는 거다. 이모는 놀이를 하자는 아이에게 다시 묻는다. 그만 하자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하지?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는지 다수의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복종할 수 없다고 버틴다. 그럼 어떻게 할까? 이모는 소수와 다수로 나뉜 아이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 순간 양쪽 모두 같은 목소리로 외친다. “가위 바위 보!”
더 놀자는 쪽이 가위 바위 보에서 이겼다. 민주주의의 원칙인 다수결을 무시하고 원시(?)적으로 가위 바위 보로 소수가 다수의 의견을 이긴 거다. 하지만 다수의 반발은 없었다. 누구 하나 불만이 없다. 아이들은 다시 소수의 의견에 따라 꼬리잡기 놀이를 한 번 더하고 밥을 먹으러 간다. 어느 누구도 불만이 없고, 이모도 아이들의 결정에 따라 신나게 놀이를 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민주주의라는 게,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게 너무도 우습게 여겨졌다. 이 아이들의 결정 방법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엇일까, 고민을 한다.
가위 바위 보가 민주주의 투표 방식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다. 다만 소수의 의견도 존중한다고 꼬리가 붙지만 소수는 소수일 뿐 다수의 결정에 늘 소외를 당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 놀이에 흠뻑 취해 있다.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고 길들인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세금인 국가예산을 가지고 이 고을 저 고을 삽질을 위한 돈다발을 흔들며 끊임없이 국민들을 사분오열 분열시키고 있다. 학자의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학자 출신의 총리를 정치판의 총알받이로 앞세우고 대통령 자신은 원전 수주나 서민 경제를 챙기는 살림꾼처럼 인기 관리만 하고 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도록 분열만을 조장해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 혼돈의 분열과 환멸은 이명박의 인기도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이 분열되고 국가의 위신이 추락하는 일은 안중에도 없다. 단지 숫자만 많이 끌어 모으면 된다. 나를 지지하는 숫자가 높으니 나는 군주나 제왕처럼 권력을 휘둘러도 무방하다는 게 이명박식 민주주의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이다.
이명박 정권의 이 전근대적 군주‧제왕적 민주주의에 맞선 제1야당은 어떤가? 국민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이명박식 민주주의를 깨야 하는데, 국민들을 단지 자신을 찍어주는 숫자로만 여기고 있다. 희망과 대안의 모습보다는 어떡하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내 지지 투표 숫자를 늘릴까만 고민하고 있다. 반MB연대라는 것도 민주주의의 실현보다는 내 표의 득실 계산에 몰두하다 나온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연대란 나란히 어깨를 마주할 때 이루어진다. 어깨가 높은 사람은 낮춰야 하는 거다. 양보 없는 연대란 있을 수 없다. 양보는 가진 것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거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지난 25일 ‘뉴민주당 플랜’을 발표하며 진보가 아닌 ‘진보성’을 말했다. 진보란 ‘진보성’보다 ‘진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 진보를 민주당의 새로운 전망으로 잡았다면, 지금껏 진보를 위해 노력한 정당과 단체에게 자신의 기득권을 내놓을 줄 아는 ‘진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민주당 중심의 결집은 이명박 정권이 인기도 숫자를 높이려고 하는 온갖 쇼와 다름없다. 민주당의 기득권을 버릴 의지가 없는 연대와 통합의 제안은 지금껏 진흙탕과 가시밭길을 헤쳐 온 진보세력의 발목을 잡는 일일뿐이다. 양보가 자신이 없다면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게 낫다. 어린이집 아이들처럼. 소수가 이기더라도 흥겹게 다수가 함께 하는 아이들 놀이판처럼 말이다.
진정 민주주의와 연대와 통합을 원한다면 숫자의 많고 적음을 내세우지 말지어다. 그것은 진정성 없는 진보성이다. 민주주의의 허물을 쓴 숫자 노름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와 통합이 아닌 권력욕이다. 진보의 길을 가로막고 분열시키는 정치 술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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