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세우는 노동자
대형 조선소에서 배 한 척을 만드는 일은 황무지에 도시를 세우는 일과 다름없다. 배 한 척에 호텔이 있는가 하면 공장이 있다. 숱한 날을 망망한 바다에서 사람과 함께 떠있으려면 도시를 옮겨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을 것이다. 배의 설계에서 완성까지 세상의 갖가지 노동이 투입된다.
조선소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눈앞에 까만 머리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식당 앞에 사람이 모인다. 내가 일한 조선소에서는 식사 종이 울리고 식판에 밥을 받아 한 술을 뜨기까지 이십 분이 넘게 걸리곤 했다. 아예 밥을 타려고 줄을 서는 게 싫어 족구 한 판을 하고 느지막이 식당으로 향하는 동료도 있었다.
연초부터 조선소에서 사망사고가 이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어느 조선소인가보다 죽은 이가 원청 직원인지 협력업체 직원인지를 찾는다. 올해도 여전히 협력업체 직원의 숫자가 많다. 사망사고였으니 협력업체 직원이라도 산업재해 처리는 될 것이다.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협력업체에서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큰 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협력업체에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고 공상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해마다 협력업체는 조선소와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때로는 배 한 척 당 공사를 계약하고 입주하는 경우도 있다. 원청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협력업체의 여건 때문에 산업재해가 많다는 것은 계약에 불리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당분간 벌어먹기 힘들겠다
산업재해 소식을 들으며 또 하나 떠오르는 생각은 없는 놈들 당분간 벌어먹기 힘들겠구나, 였다. 같은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하지만 이들 가운데 일급이나 월급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오늘 하루 내가 철판을 용접한 길이에 따라, 내가 오늘 하루 철판을 갈아낸 양에 따라, 내가 오늘 하루 페인트를 칠한 면적에 따라 돈을 받아가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망 사고가 일어나면 조선소는 온갖 호들갑을 떨며 안전교육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규정을 들이대며 현장 노동자에 대한 간섭이 늘어난다. 사망사고에 대한 화풀이를 하듯이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야 하루 일당을 맞추는데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얼마나 빨리 배를 건조하느냐가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게 한국 조선 산업의 현재가 아닐까 싶다. 도크에서 일년에 몇 대를 빼낼 것인가가 조선소의 생산 목표다. 안전과 품질은 말로만 앞세운다. 수십 톤이 넘는 거대한 철구조물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조선소에서 속도 경쟁은 곧 죽음이 언제든지 노동자의 곁에 있다는 뜻이다.
나도 한때 조선소에서 능력 있는 하청 노동자로 칭찬을 받기도 했다. 돈도 좀 만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이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가능하게 만든 공정 단축의 능력 때문이다. 방법은 쉬웠다.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일을 하고, 남이 쉴 때도 일을 했기 때문이다. 폭발 위험이 있는 페인트 작업을 주변에 불꽃이 튀는 용접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때도 했다. 순간 순간 아찔아찔한 경험도 많이 했다. 내가 일하던 탱크 안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유기용제에 질식해 쓰러진 일도 있었다. 한 동료는 작업대에 깔려 영원히 눈을 뜨지 못했다. 한쪽 눈을 실명한 동료를 업고 뛰어갔던 기억도, 그 동료가 한쪽 눈을 감으니 뭔가 아롱아롱하는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도,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
죽은 자와 산 자
안전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 동료는 죽고 안전규칙을 지켜 나는 살았을까? 안전을 몰라 그 동료는 실명을 하고 나는 두 눈이 멀쩡했을까?
조선소에서 아침마다 안전조회를 했다. 말이 안전조회지 오늘 달성하지 않으면 내 목이 날아갈 생산 강요의 시퍼런 칼날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칼춤이 끝난 뒤 동료들과 함께 검지를 원 중앙으로 모으고 ‘안전 안전 안전’ 세 번 외치고 박수를 치는 게 안전의 전부였다. 헛된 메아리가 새벽공기를 가르고 조선소의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올 뿐이었다.
그 시절 돈에 눈이 어두워 목숨을 걸고 일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내 가족의 일용할 양식을 마련할 일터를 빼앗기기 때문이었다. 그 일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했다. 지금도 조선소에는 골리앗 크레인의 무시무시한 경보음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가 숱하리라.
지금 저 남녘 땅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는 용접사였던 여성 노동자가 곡기를 끊고 있다. “죽거나 병신이 돼가며 평생을 일했던 아저씨들이 죄인처럼 쫓겨나는 건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어서. 벌써 스무날이 넘었다. 그 조선소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를 거리에 내몬다는 말에 그 노동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길바닥에 나앉아 굶는 이것밖엔 할 게 없겠다”며 지푸라기처럼 푸석하게 말라가고 있다. “정리해고 방침이 발표되면서 아저씨들의 불안한 눈빛이” 자신의 눈에 보이기에 그는 조선소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곳에서 편지를 쓴다. “열에 여덟은 하청노동자들”이고, 그 하청노동자들 가운데는 “정규직이었다가 하청이 된 아저씨들”도 많다고. “이미 하청노동자들은 천명 가까이 짤려” 식당과 통근버스가 “텅텅비었다는 소문이 괴담처럼 떠”돈다고.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그의 이름은 김진숙이다. 그가 일한 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다. 누군가는 ‘김진숙에게 죄송하다’라는 칼럼을 일간지에 실기도 했다. 나는 그의 이름 앞에 죄송하다는 말조차 할 염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조선소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김진숙은 노동을 하다 자신의 두 다리가 철판에 깔려 죽을 뻔한 그 조선소에서 해고를 당했지만 “아저씨들”의 죽음을 막으려고 목숨을 걸고 그 조선소에 드러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바닥에 나앉아 굶는 이것밖엔 할 게 없겠다고 마음을 굳히며 그래도 거창한 꿈을 품었습니다. 민주노총이 당장 천막을 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단위노조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한진중공업 앞에서 태종대까지 천막이 늘어설 것이고 그럼 이길 것이다. 사람이 안 죽고도 이길 것이다. 김주익도 그런 마음으로 홀로 크레인 위에 올랐겠지요. 엿새를 이러고 있어보니 김주익은 … 우리가 죽였습니다. 내가 … 그럼에도 저는 따뜻한 콩국 한 그릇이 너무 먹고 싶습니다.”
민주노총뿐만이 아니다. 이 땅의 양심은 김진숙 함께 “따뜻한 콩국 한 그릇” 먹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날이 죽음의 조선소가 삶의 일터로 거듭 태어날 날이다.
김진숙의 꿈에 나도 동참을 한다. 그리고 편지를 띄운다.
“진숙이 누님, 저도 함께 콩국 먹을 날 예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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