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나뿐인 딸에게 세배를 받지 못했습니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놈의 일제고사 때문입니다. 아니 일제고사와 세배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차분하게 들어보십시오. 딸은 작년에 두 번 치룬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첫 일제고사를 앞두고 담임선생님을 통해 딸이 일제고사를 보지 않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담임선생님이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학생은 손을 들라고 하였습니다. 딸은 손을 들었고,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세워두고 왜 일제고사를 보지 않으려는 지를 묻고, 일제고사는 나쁜 것이 아니니 보라고 한참을 설득(?)하였습니다. 한참 설교를 듣던 딸은 선생님께 “선생님이 (학교에서) 잘릴까봐 일제고사를 보라는 거죠?”하며 울고 말았답니다.
그 뒤로 딸 손등 가운데 손가락마디에 굳은살이 생겼습니다. 담임선생님과 마주하는 수업시간에는 손등을 문지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일제고사를 보지 않은 뒤로 툭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타박을 합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만 머리를 때리는 것 있지.”
지난 가을 6학년을 대상으로 두 번째 일제고사가 있었습니다. 전교에서 내 딸만이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교장선생님까지 4층에 있는 딸의 교실에 찾아와 일제고사를 보라고 설득했습니다. 아이가 뜻을 굽히지 앉자 교장선생님은 “내가 여기 4층까지 힘들게 올라와 이야기를 하는데 이럴 수가 있어?” 하며 성을 냈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온 딸은 “누가 우리 교실을 4층에 만들라고 했나. 나는 날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하며 내일 시험 보러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일제고사를 보지 않아 학교생활하기 힘들다며? 이번엔 그냥 보지 그러니. 답안지를 안 적어도 되잖아.” 딸에게 말하자, 딸이 대뜸 내게 따집니다. “아빠! 성적으로 나를 줄 세우고 평가하면 좋겠어?” 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딸이 중학교에 가서 일제고사를 보지 않으면 학교에서 받을 스트레스가 더 클 텐데, 하는 걱정에 대안학교를 딸에게 권했습니다. 싫다던 아이가 인터넷으로 대안학교를 검색을 했나 봅니다. 그곳은 학교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한 곳이랍니다. 서류를 만들어 입학신청을 했습니다. 면접이 있는 날, 고속버스, 시외버스, 군내버스를 차례로 갈아타며 여섯 시간동안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경쟁률이 4:1이랍니다. 대학도 아닌 중학교부터 경쟁률을 통과하는 부담을 자식에게 짊어지게 한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면접을 하고 나온 딸이 말합니다. “뭐 이래. 여기도 올해부터 일제고사 본데.”
이 이야기를 호주에 사는 처형에게 했더니, “여기 학생들은 집에서 공부도 안 해. 얼마나 재밌게 노는지 몰라.” 하며 호주로 딸을 보내라고 합니다.
설을 일주일 앞두고 딸을 처형에게 보냈습니다. 이돈 저돈 끌어 모아 비행기 값과 용돈을 마련하였습니다. 일제고사 없는 땅에 가서, 행복이 성적순인 나라를 떠나서, 그곳 아이들의 어떻게 놀고 공부하는 지를 그저 느끼고 오라고, 딸을 비행기에 태워 보냈습니다.
딸은 학교를 꼭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생활이 힘들면 그만 두어도 된다고 하였지만 학교를 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며 꼬박꼬박 학교를 갑니다. 선생님은 보기 싫어도 친구들하고 쉬는 시간 놀 수 있어 좋다며 손등에 굳은살이 박이면서도 학교를 갔습니다. 그런 딸에게 학교가 아니어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찾을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내게 익숙한 문화와 습관이 아닌 다른 문화와 생활을 보여주고 싶어 비행기를 태웠습니다.
1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딸이 무엇을 선택할지 모르겠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고, 대안학교를 찾을 수도 있고, 홀로 집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여 떠나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딸의 생각을 존중해줄 생각입니다.
아무튼 새해맞이가 심상치 않습니다. 오르는 것은 장바구니 물가에 실업자 수, 걱정의 주름살과 근심의 흰머리뿐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먹지만 도란도란 희망의 꿈을 이야기하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허락하지 않는 2010년입니다.
형님네 아들이 올해 서울의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한 대기업 음료회사 대리점을 하던 형님은 아이엠에프 시절 이 음료회사가 쓰러지자 함께 가계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이후로 이일 저일을 하다가 지금은 올빼미처럼 밤잠을 자지 못하고 형수님과 대리운전을 합니다. 그 수입은 묻지 않아도 얼마일지 눈에 훤합니다. 그런 형님네가 수백만원의 대학등록금을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을지,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동생은 한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일합니다. 지난 해 연말부터 이 회사의 워크아웃이니 구조조정 이야기가 신문을 크게 도배질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조카와 윷놀이를 하며 웃고 있지만 동생네의 마음도 그리 넉넉한 설은 아닐 겁니다.
경제 대통령임을 자부하는 이명박 정권은 ‘경제’ 대통령은 되지 못하고 기업 대통령, 재벌 대통령, 자본 대통령에 머물고 말 것 같습니다. 경제와 기업의 경영을 혼동하는 대통령 때문에 서민의 삶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희망근로니 청년인턴이니 하는 일자리 대책은 국민을 ‘알바 인생’으로 만들어 갑니다. 소고기 파동에서 대운하, 세종시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책마다 국민들을 분열시킵니다. 어디 경제만인가요? 일제고사. 영어교육.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제 세상의 맑고 밝은 것만을 세상에서 하나둘 배워야 할 초등학생에게까지 고통과 근심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집권 2년, 제발 그냥 대통령 월급 받으며 임기만 채우고 나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책 하나하나가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니 말입니다.
내 딸을 다시 만나는 날을 생각합니다. 그날도 이명박 정부가 있을 것 생각하니 반가움보다는 서러움의 눈물이 먼저 나올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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