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파산은 어떻게 올까?

금리인상에 대한 소묘

11일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자리다. 기획재정부 허경욱 1차관도 참석해 정부의 열석발언권을 행사한다. 3월말 퇴임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자신의 임기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한다. 오전 9시 시작된 회의를 마친 금융통화위원회는 오전 10시경 기준금리를 2%로 동결한다고 발표한다. 13개월째 연속 금리동결이다... 내일모레 예상되는 금통위 모습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인상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95%가량이 이달에 금리인상은 안될거라고 전망했다하니, 이번 달 금통위에서도 금리는 동결될 걸로 보인다.


금리,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른바 출구전략의 핵심수단은 다른 무엇보다 금리인상이다. 재정정책이나 금융규제와 은행감독을 강화하는 등 여러 가지 정책수단을 동원해서 통화량을 흡수할 수 있으나, 금리인상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상징적인 통화정책이기 때문이다.

호주, 네덜란드 등은 지난해 말부터 일찌감치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 중국, 인도, 미국 등도 재할인율이나 지급준비율을 인상하면서 통화량 회수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들에서 조만간 금리인상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통화량 증가 곡선(2005~2009.12) [출처: 한국은행 국내경제통계에서 추출]

우리나라도 형편은 다르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은 2008년 GDP 대비 6.1%에 달하는 재정을 경기부양에 투입했다. 미국(5.6%), 일본(4.7%)를 물리치고 당당히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또, 시중의 유동성도 많이 풀렸다. 통화량이 꾸준히 증가하지만 2007년 하반기부터 상승폭이 더 늘어나고 있다. 2009년말 현재 광의유동성(L) 기준으로 2526조원, 광의통화(M2)로는 1566조원이 풀려 있다.

때문에 우리도 시중 통화량을 흡수해야 한다. 재할인율이나 지준율 인상같은 정책도 고려할 수는 있느나 실효성이 의심된다. 이미 시중 금리는 기준 금리인상을 예상해 지속적으로 조금씩 올랐다.(지난달에는 은행이 예대율 압박에서 벗어나면서 소폭 하락했다)

만약 중국이나 미국이 먼저 금리를 올리게 될 경우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우리나라 금리도 따라서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달러캐리트레이드가 청산되거나 국내에 들어 온 외국자본이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일거에 빠져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금리는 인상된다. 문제는 시기가 언제냐는 거다.


금리가 1% 오르면

정책당국 내부에서도 금리인상 시기와 관련한 찬반이 뜨겁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일찍 맞는 게 낫다는 것이 한국은행 쪽의 시각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 당장 금리인상 하자는데 반대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도때도없이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해 왔다. 윤 장관은 8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도 여전히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혹시라도 금통위에서 금리를 올릴까봐 정부는 지난 1월부터 이례적으로 금통위의 열석발언권까지 행사하고 있다.

그러면 정부는 왜 금리인상을 주저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6월2일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반기 중 인상은 불가하다는 얘기다.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지방선거가 지나서 해야 하고 그 때까지는 좀 버텨 볼만하지 않냐는 것이다. 왜? 금리인상이 그만큼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17일 이성태 한은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에 출석해 "최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부채, 특히 가계 부채의 문제"라고 말했다. "국가 부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지만, 가계 부채가 더 문제"라며 "부채 문제는 앞으로 장기간 우리에게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자들이 가계 부채 수준이 매우 높다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2009년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733조나 되고 가계대출금은 692조에 달한다. 가계대출의 경우 변동금리가 90%에 달하기 때문에 금리가 1% 오르면 대략 7조원에 가까운 이자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주택담보 대출은 328조로 금리가 1% 오르면 3조원의 추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수입도 생긴다. 지난달 삼성경제연구소는 ‘신(新)3고와 한국경제’ 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가계는 연간 이자부담이 6조5천억원 늘어나고, 이자수입이 5조2천억원 늘어나 순 이자부담이 1조3천억원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것도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감당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자수입이 모든 가계에서 다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저축이나 투자할 여력이 있어야 이자수입이 생긴다. 전체가구를 소득기준으로 5등급으로 나눈 소득분위별 기준으로 하위 1분위(연소득 1,180만원 이하)는 자산은 거의 없고 부채는 매우 높다. 가처분소득대비 부채배율이 320%에 달한다. 반면, 상위 4분위(연소득 5,220만원 이상)와 5분위(1억1천40만원 이상)은 120% 정도다.

가난한자들은 돈도 없는데 부자들보다 세배나 많은 이자부담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돈 있는 사람들이야 금리가 올라도 이자수입으로 다시 메울 수 있지만, 돈 없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이자 폭탄을 맞게 된다.

그럼, 기업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은행이 2월 발표한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부채는 2009년 9월 말 현재 1,506조원이다. 이중 금융부채 잔액은 1,229조원이다. 2010년 1월말 현재 변동금리형 기업대출 규모는 67%를 넘는다. 따라서 금리가 1%가 오르면 산술적으로 7조원 정도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기업도 금리가 오르면 이자수입이 생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금리가 1% 오르면 기업은 이자부담이 6조6천억원 늘어나고 이자수입은 1조원 늘어나, 순이자부담이 5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양극화가 심각하다. LG경제연구원은 1월에 ‘신용위험 높은 기업 여전히 많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차입금 중에서 이자보상배율 1 이하인 기업들의 차입금은 28.5%에 이르고, 국내 상장기업 1596곳 중 34.9%인 557곳이 이자보상배율이 1을 넘지 못한다. 즉, 상장기업의 1/3이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못 갚고 있다는 뜻이다. 상장기업들 수준이 이러니 나머지 기업들은 말해 무엇할까 싶다.

국가 재정은 또 어떨까?

2009년 국가부채는 정부 공식발표로 366조원이다. GDP 대비 35.6%로 G20국가 평균인 75.1%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분석은 다르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2008년을 기준으로 볼 때, 국가부채는 정부가 발표한 국가부채 308조3000억원에 보증채무 30조3000억원,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부족액 744조6000억원, 한국은행 부채 140조2000억원, 준정부기관과 공기업 부채 212조9000억원,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 부채 2조9000억원을 합하면 모두 1439조2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올해는 공식 국가부채가 407조에 달할 전망이라서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는 1500조를 상회할 전망이다. 2009년 GDP 총액이 979조5000억원인데 국가부채가 150%를 상회한다고 보면된다.

국가부채 규모도 문제지만 금리가 인상하면 당연히 이자부담이 증가한다. 국채이자부담도 올라가겠지만 각종 공기업 부채의 이자부담도 늘어난다. 그리스 등 남부유럽의 경제위기가 재정위기로부터 발생한 사례도 있어서 이렇게 될 경우 정부는 불가피하게 긴축재정(!)을 할 수밖에 없어진다.

여기에 금리인상은 환율을 자극한다. 금리가 높아지기 때문에 외환이 국내로 향하게 되고 원화의 가치가 상승해 원-달러 환율이 내려간다. 외환이 부족한 상황에서라면 환율이 낮아지는 것이 유리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환율하락은 수출을 감소시킨다. 사실 각국이 금리인상을 주저하는 이유는 환율 때문이다. 세계경제 위기상황에서 이른바 ‘근민궁핍화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는 보호주의 정책)’을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에게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빚에 빚으로 연명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정책당국도 파괴적인 금리인상은 늦춰보고자 이런 저런 할 수 있는 조치들은 다 취했다. DTI규제를 강화해 부동산 추가대출도 막아 보았고, 은행 예대율(예금대비 대출비율)을 압박해서 은행이 돈을 빨아들이기 위한 조치도 취했다. 통화스왑으로 풀려나간 돈도 다 회수했다. 이른바 금리인상 없는 ‘유연한 출구전략’에 나섰다.

그럼에도 시중 유동자금은 꾸준히 늘고 있고 그만큼 부채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물가마저 들썩이면 정말 끝장이다. 물가를 3%대로 억제하겠다고 정부가 호언장담을 하고 있지만, 물가가 유가나 곡물 등 해외원자재 가격과 환율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정책당국의 통제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하고 세계경제위기가 확대되자 각국 중앙은행들은 일시에 금리를 낮췄다. 정부는 재정확대를 통해 시중에 자금을 쏟아 붇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동산 가격이 뛰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가계대출을 확대했다. 금융자본들은 여전히 막대한 이익을 취하며 금융시장을 축소시키지 않고 꾸준히 관리하면서 성장해 왔다. 반토막 난 펀드와 주가지수도 위기 이전상태로 돌려놓는데도 성공했다. 그런데, 이제는 불가피하게 금리를 올려야 한다.

금리를 인상하고도 부동산 가격을 더 높게 유지하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금이 가계대출의 절반에 달하기 때문에 주택가격 상승으로 높은 자산가격을 유지한다면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가계가 버틸 수 있다. 사실 이것이 그동안 한국경제를 유지해 왔던 방식이다. 빚에 빚을 얹어 더 큰 빚을 지지만 뒤에 갚는 걸로 유예시켜 논 샘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성장국면이나 저금리 하에서 또는 정부가 재정확장을 통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나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금리를 높여야 하고 정부도 긴축정책을 써야 할 판이다. 때문에 달성가능한 정책목표가 아니다.


가계파산이라는 최종심급은 오지 않는다

결국, 남은 것은 무엇인가? 위에서 말한 금리인상의 여파를 노동자 서민들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다. 대신 충격을 한꺼번에 받는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단계적으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재벌소유 연구소들은 이 방법을 추천하고 있다.

우선 순차적 구조조정이다. 97년 IMF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관행적인 방식이 되고 있다. 벌써부터 조선업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건설업계도 성원건설을 필두로 한계기업 정리작업에 들어가고 있다. 이로써 업종별 순차적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화학, 유통, 자동차 부품업계가 대기번호를 받아 놓고 있다. 어느 때고 메인스트림의 위기는 금융권에도 전가될 수 있다.

또, 주택담보대출금의 만기연장과 상환방식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괜찮은 정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가 이 혜택을 받을지는 뻔하다. 은행이라고 뭔 여유가 있어서 언제 갚을지도 모르는 저소득층에게 대출만기를 연장해주겠는가. 어떤 연구소는 대놓고 프라임모기지(서브프라임이 아니다!) 대출 한해서 연장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프라임’모기지 대출자는 누구란 말인가?

항상 같은 방식이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그러니 죽어줘라.’ 정리해고의 논리가 이와 같다. 금리인상도 마찬가지다. 소득 상위 4분위와 5분위는 가계부채의 72%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은행에서 3/4 가까운 엄청난 돈을 꿔다 썼다. 하지만 이들은 빚 갚는 것도 연장되고 이자수입도 생긴다. 나머진 죽든말든 이다. 결국 가계부채의 위기를 말하지만 가계파산이라는 최종심급은 결코 오지 않는다. 다만, 소리없이 가난한 사람들만 더 죽어나갈 뿐이다.

‘한계기업이 정리되어야, 구조조정이 성공해야, 저소득층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이 청산되어야 한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때문에 금리는 인상된다.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을 또 치루면서 이 위기를 넘어 선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을 상대로 다시 주식과 펀드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고 대출이 확대되고 가계신용은 팽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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