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과 자본의 대응

[기후변화와 노동자(5)] 자본의 이윤추구에만 지원과 관심을 보이는 녹색성장 정책

기후변화에 따른 산업 재편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은 산업별로 다르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한 자본의 대응은 산업부문별, 기업별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시작해야한다. 일례로 혹서기가 늘어나는 것은 음료와 먹는 물을 취급하는 식음료산업에게 유리하겠지만 보험, 에너지, 농업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변화는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으므로 유불리를 일반화하기보다는 총체적인 충격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유불리 문제를 떠나서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기후변화가 산업재편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단적으로 태양광, 풍력, 그린카, LED, 연료전지, 전력IT 등은 온실가스감축정책의 수혜대상이 되는 반면에 실질적인 감축이 어려운 시멘트 산업 등에겐 위협으로 다가갈 것이다. 같은 업종 내에서도 사업 분야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 LG 화학이 자동차용 전지사업에 집중하거나 삼성SDI가 자동차용 2차 전지 사업에 집중투자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매경Economy, 2009.9.9).

나아가 온실가스감축 압력이 가중된다면 개별기업들은 온실가스감축을 위해 생산공정을 개선하거나 배출권 거래 사업에 뛰어드는 등 기후변화에 따른 산업 재편의 영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산업계 전체, 나아가 개별기업이 기후변화와 온실가스감축 압력에 대응하는 것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자본의 대응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

자본의 대응과 기술투자

온실가스감축압력이 산업별 기업별로 차별적으로 작용하지만 기본적으로 산업계는 의무감축비율을 최소화하기 위한 회피전략을 구사한다. 정부의 4% 감축안에 대한 자본측의 반발은 자본이 온실가스감축을 비용부과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며, 정부의 감축안을 실효성이 없는 수준으로 격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미 508개 기업의 의견을 모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안에 대해 2020년 BAU대비 21% 감축(2005년 기준 8% 증가) 입장을 밝힌 바 있다(에너지경제신문, 2009.9.9). 설문에 응답한 508개 기업 중 65.6%가 BAU 대비 21% 감축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온실가스 감축방안으로 총량할당에 의한 강제적 감축에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자발적 협약에 근거한 감축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특히 온실가스감축의 압력이 강한 산업, 기업일수록 총량 제한 배출권 거래에 반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결과는 산업계의 자발적 감축(37.6%), 자발적 협약 체결에 의한 자율규제(29.1%)가 산업계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최근 정부는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 도입 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산업계의 강한 반발을 감안해봤을 때 시행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업계가 회피전략만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90% 이상의 기업들이 기후변화 대응 업무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주요 경쟁기업이 유럽 기업인 경우에는 모든 기업이 필요성을 수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에너지경제신문, 2009.9.9). 실제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와 의무감축에 대비한 사업을 도입 시행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온실가스감축압력이 높아지고, 수출시장으로부터의 압력이 강화되며, 탄소시장 등 환경시장이 팽창하는 현상과 맞물려있다. 이른바 탄소경영, 환경경영이 부각되고 있는 것과 대규모의 기술투자를 통해 추격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리고 정부의 녹색기술투자는 전적으로 이에 부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475개 금융투자기관의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Carbon Disclousure Project) 결과는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수준을 잘 보여준다. CDP 2009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한 기업은 응답기업 50개사 중 27개였다. 2008년 응답기업 16개 중 10개에 비하면 대폭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CDP 응답기업 중 31곳(65%)이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있다고 말했고, 이중 28개 기업은 감축수치까지 제시하고 있다(매경 Economy, 09.11.21).

또한 표면적인 환경경영의 이면을 들춰보면 대규모의 기술투자와 이를 통한 선진국 추격과 환경시장진출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SDI의 경우, 지난 2008년 7월 미래성장전략을 발표하며 에너지 사업을 성장동력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삼성SDI는 에너지사업을 집중육성하여 2013년 매출을 10조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중앙일보, 2008.7.29).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 삼성SDI가 들고 있는 사업은 태양전지와 연료전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2차전지 및 UPS 에너지 저장사업 등이다(조선일보, 2009.5.13).

삼성전자는 최근 향후 5년간 5조 4천억원을 투자하는 “녹색경영 로드맵”을 선포했다. “녹색경영 로드맵”에 따르면, 2013년까지 LED TV나 태양광 충전 휴대폰과 같은 친환경 제품 연구개발에 3조1000억 원,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고효율 설비 도입 등에 2조3000억 원이 투자된다(동아일보, 2009.7.21).

삼성은 또한 그룹차원에서 태양광사업에 대한 수직계열화를 시도하고 있다. 삼성석유화학이 실리콘을 생산하고, 삼성코닝정밀유리가 웨이퍼를 만들면, 삼성전자가 태양전지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삼성물산이 태양광 발전소 운영과 전력 판매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삼성에버랜드도 경북 김천에서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며 사업진출을 모색하고 있다(한겨레, 2009.12.22). 태양광사업의 수직계열화 현상은 삼성 이외에 LG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한편 한국전력은 최근 “KEPCO 저탄소 녹색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2020년 환경분야 매출을 2009년 현재 200억원 수준에서 2020년 14조원으로 700배 높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전력은 목표달성을 위해 석탄가스화 복합발전(IGCC),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 스마트 그리드, 전기차 충전 인프라, 수출형 원전, 전기 에너지 주택, 초고압 직류송전(HVDC), 초전도 기술 등 8대 주요기술에 총 2조 8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중앙일보, 2009.11.25).

포스코는 2009년 7월 “범포스코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포스코의 녹색성장위원회는 (1) 저탄소 철강기술분과, (2) 기후변화대응분과, (3) 신재생에너지분과, (4) 녹색신성장사업분과로 구성되어있다. 각 분과는 CO2 배출저감과 수소환원제철법, 포스트 교토체제 대응전략, 글로벌 경쟁력 확보방안, 신성장산업육성방안, 해외진출전략 등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세계일보, 2009.7.8).

포스코는 12월 17일 “녹색성장 마스터플랜”을 확정했는데,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포스코는 2018년까지 합성천연가스, ‘스마트’원자로, 풍력발전, 발전용 연료전지, 스마트 그리드 등 친환경·녹색산업에 7조원을 투자한다. 이를 통해 포스코는 기업내 녹색성장 부문 매출을 총 매출의 10% 수준인 10조원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문화일보, 2009.12.23).

SK도 예외는 아니다. SK는 2008년 8월 2010년까지 총 1조원을 투자하여 무공해 석탄에너지, 해양 바이오연료, 태양전지, 이산화탄소 자원화, 그린카, 수소연료전지, 첨단 그린 도시(u-Eco city) 등을 신성장동력사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한국일보, 2009.8.13).

이처럼 녹색성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제조업체들만은 아니다. 금융산업의 녹색성장 지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2-3년전부터 대량으로 출시되기 시작한 탄소펀드 등 관련 펀드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보다 체계적으로 녹색성장정책에 부응하는 계획들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이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 소요되는 자금을 지원하는 “신한솔라파워론”을 출시한 것은 작은 예에 불과하다. 국민은행은 2009년 2월 녹색성장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녹색금융 경영추진단”을 발족시켜 체계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탄소 구조조정의 위협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일부 대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새로운 모색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에 대한 대응은커녕 그 인식조차 희미한 것으로 보인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비전으로 선언한 177개 기업 중 실제 실행하고 있는 기업이 9개에 불과한 것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산업계의 인식이 낮은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재편이 가시화된다면 현실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환경시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력과 대응을 위한 자본력 및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소수 대기업에 의해 독식될 것이고, 이들과 대다수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또한 산업환경의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기업들의 퇴출과 이에 동반한 대규모 고용조정은 녹색성장을 위한 탄소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정당화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구도 하에서라면, 소수 대기업이 전지구적 환경시장에서 유럽과 일본, 미국이라는 선발 시장개척자들의 하위 파트너로 이윤 확보의 활로를 만들어가는 동안, 산업재편과 탄소 구조조정의 비용은 여느 때처럼 보다 취약한 기업으로, 보다 취약한 노동자들에게로, 보다 취약한 계층에게로 재전가되는 것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녹색성장정책의 문제점

그렇다면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녹색성장정책은 기존의 에너지 정책이 가지고 있었던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녹색성장정책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① 에너지 전환의 의지 결여

우선 녹색성장정책에는 에너지 전환의 문제의식이 사실상 결여되어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는 기존의 에너지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지속불가능성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 생태적 위기는 어디까지나 성장을 위한 기회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기술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 맞춰져있다. 기존의 공급위주, 중앙집중적, 원자력중심, 해외의존적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패러다임적 전환은 없고, 기술적인 조정만 있을 뿐이다.

원자력 발전이 확대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비율이 낮다 것은 녹색성장정책이 에너지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녹색성장정책에서 재생에너지는 항상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도 대규모 집중화된 시설을 지원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태양광발전시설이 산림을 훼손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명목으로 강화, 인천, 가로림만 등에 조력발전소가 건설되어 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RPS 사업이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의도에서 벗어나 환경의 이름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또한 온실가스감축 목표가 낮은 것은 녹색성장정책이 환경적으로는 수사적인 효과만을 낼 뿐 기본적으로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임을 시사한다. 온실가스감축의 수단으로는 원자력과 CCS(CO2 포집 및 저장기술) 등 논쟁적이고 상용화가 덜된 기술들도 여럿 포함되어있다. 성공을 확실히 보장하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들이 주요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기술낙관주의에 경도되어있다.

나아가 현재의 상황을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한 효율성 향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 소비의 사회적 구조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결국 “제본스의 역설”에 빠질 수 있다(제본스의 역설이란 효율성이 증가하면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늘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자원 사용량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온실가스감축을 공언하고 있지만 생산 소비 구조의 근본적 전환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에 감축목표는 기술혁신을 통한 낙관적 기대의 수준으로 축소된다. 에너지 생산 소비 시스템의 전환없는 온실가스감축으로 경제 환경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는 대단히 불투명하다.

② 사회적 형평성 구현을 위한 정책의 부재

기술낙관주의로 포장된 녹색성장은 특히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 누가 환경비용을 부담하는지, 환경보호에서 발생하는 편익을 누가 향유하는지 등의 문제를 도외시한다. 에너지 복지를 추구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에너지 기본권을 저소득층도 동등하게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대비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실제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들이 필요하지만, 녹색성장전략은 이에 대해 추상적인 언급을 할 뿐이다.

반면 대기업의 환경기술개발과 환경시장개척을 후방 지원하는 제도적 기능은 차츰 완비되어가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의 기술투자부문과 정부의 지원분야는 거의 일치하고 있고, 정부는 명시적으로 녹색성장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밝히고 있다. 선진국의 앞선 기술을 집중적인 투자를 통한 압축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추격하고, 이를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환경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녹색성장정책에는 기본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다. 환경적 공공성의 부재는 에너지 전환의 문제의식을 탈각시키고, 사회적 공공성의 부재는 탄소 구조조정이 수반하는 사회적 문제들-탄소 구조조정의 피해자 지원, 에너지 빈곤층의 보호 등-에 눈감게 만든다.

이와 같은 현상은 궁극적으로 녹색성장정책이 환경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인 오염자 부담원칙에 입각해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염자 부담원칙에 따를 경우 산업계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녹색성장정책 하에서 기업은 온실가스감축에 적극 기여하는 행위자로 의미를 부여받으며 그 책임이 희석되고 있다. 대신 기후변화에 의한 직접 피해와 탄소 구조조정에 따른 간접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구적인 차원에 비춰볼 경우에도, 한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라 주장하기 어렵고, 역사적 책임이 적지 않은데, 녹색성장정책은 지구적 책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오직 성장하고 있는 환경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이윤을 확보하기 위한 기회로만 현 시점을 파악하고 국내 산업들의 시장경쟁력이 떨어질까에 대해서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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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 녹색성장 , 온실가스 , 탄소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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