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이 진보적이기 위해서는

[진보논평] 이명박식 특권학교와 특권교육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새삼스러운 일이 많다. 아직 준비가 부족해서 자국의 군대의 지휘권을 갖지 않겠다고 지휘를 맡은 자가 설레발을 치는 것에 비하면, 세종시와 관련해서 기용된 총리가 그 안과 관련하여 사퇴의사를 표명한 것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요즘 대다수의 관심은 지난 지방자치 선거 결과로부터 출발한다. 그중에서도 몇몇 지역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교육감의 출현을 반겨서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렸다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일이야 섣부르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진보가 반신자유주의 교육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로 볼 때 할 일이 많은 교육감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당선된 교육감들의 언론 인터뷰 등을 보면 부패비리척결과 학생의 인권이 지켜지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한다. 나아가 무상급식과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의 계기를 말하는 것을 보면 이전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진보교육감의 출발은 될 수 있지만 아직 대안적인 교육 담론을 제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관심은 혁신학교에 모아진다. 혁신학교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나타날 지에 따라 자율형 고등학교들의 복사판이 될지 아닐지 가름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은 뭐 그것이 대수냐는 반응이 나올만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더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것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사건이며, 지역의 교육감과 이명박 정부 사이의 충돌 장면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지난 6월 22일 소리소문없이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 내용을 보도한 교육과학기술부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고등학교 체제를 단순하게 정비하고, 학교 유형별로 도입취지에 맞는 교육이 실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전기 고등학교에 자기주도 학습전형이 도입되고, 학교운영상 자율성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 한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이제야 하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마전 같은 의도가 숨어 있다. 먼저 복잡한 고등학교 유형을 일반고, 특목고, 특성화고, 자율고의 4개 유형으로 단순화하고 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그동안 폐지를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었던 외고 등이 드러낸 사교육비나 불평등, 설립 목적과 달리 대학 입시만을 위한 특권 입시파행 위주 교육의 문제를 덮어두겠다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를 4개 유형으로 단순화한다고 했으나, 이전의 복잡한 내용들은 그대로 남아있고, 분류하는 체계만 바꿨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책상은 그대로 둔 채 파티션 위치만 변동한 것이다. 따라서 시도교육감의 성향과 무관하게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추진한 학교 다양화 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마이스터교, 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등의 다양한 학교들에 대한 안전한 법적 근거를 부여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음으로 학교장 추천서, 면접, 실기시험 등을 반영한 자기주도 학습 전형을 실시하고, 현행 고교 전후기 선발을 3단계(가․나․다로 입학 시기 조정)로 조정해 학교 선택 기회를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자기 주도 학습 전형은 ‘짝퉁 입학 사정관제’ 수준으로, 이에 대비한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입시의 단계를 늘리는 것은 입시 교육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소위 성적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 학생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적성과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 오며, 입시의 단계를 세분화하면 할수록 고등학교 서열체제가 심화되는 것은 필연이다.

또, 학교 자율성을 확대해 무학년제, 학점제, 학기제 운영을 도입한다. 얼핏 보면 경직된 교육과정 운영을 자유롭게 해 다소 대안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입시경쟁이다. 한국의 교육에서 자율성은 치열한 입시 교육의 현실에서 사고력이나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다양한 교육이 아니라, 입시 교육으로 획일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수 학교의 자율 확대는 학교의 입시 학원화를 부추길 것이다.

그리고 혁신 도시 등에서 기업의 자율형 사립고 재정 지원을 고무하기 위하여 해당 기업 임직원 자녀에게 선발 혜택을 부여한다. 선호하는 학교에 재정을 지원하면 합격시켜주겠다는 말이다. 이는 변형된 기부금입학제로 대학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3불 정책을 고교 입시에 도입하겠다는 매우 반교육적인 발상이다.

마지막으로 평가와 재지정 문제다. 이번 시행령의 부칙에 의하면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5년마다 평가하여 재지정여부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문제는 이번 시행령으로 평가에 통과되어 재지정된 것으로 판단하겠다고 한다. 이제 5년 동안 무슨 문제가 발생해도,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아주 든든한 보호막을 쳐 주었다. 제 아무리 진보적인 성향의 교육감이라 하더라도 학교 정책에 개입할 여지를 사전에 봉쇄한 채 임기를 마칠 수밖에 없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재선되는 것.

시도교육감의 역할은 입시문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져 있어 제한적이다. 하기에 교육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입시경쟁교육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직접 부딪치는 집중점이 특목고 등의 특권학교 정책이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진보적인 성향이 교육감이 당선되고 난 이후 보수 언론이 인터뷰에서 묻는 질문의 대다수도 특목고나 자사고, 고교선택제, 고교선발체제 등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이렇게 예민하고 파괴적인 이명박 정부의 몽니에 특별한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칭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은 물론이고, 당선된 교육감들 쪽에서도 말이다.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이런 예민하고 폭발적인 의제들은 피해가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또한 하나의 정책만으로 섣불리 예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특권학교와 특권교육을 바로잡지 않는 이를 진보교육감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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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 특권학교 , 초중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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