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 의한 아프간 민간인 학살과 폭력 사례

[국제통신] 더러운 전쟁, 무고한 죽음

위키리크스로부터 아프간전쟁에 관한 9만여건의 미군사기록을 입수 공동 보도했던 가디언지는 특별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자행된 민간인에 대한 폭력과 살해 기록을 상세히 다뤘다. 25일 밤 가디언의 데이빗 리(David Leigh) 기자는 아프간의 한 청년인 숨 칸(Shum Khan)의 비극적 사연을 시작으로, 민간인들이 미국 CIA , 유격부대373, 점령군들에 의해 어떻게 희생돼 왔는지 밝혀진 것들을 비밀군사기록에 기초해 보도했다. 주요 현장을 살펴본다.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숨 칸은 7천피트 산속 말레크샤이 국경지대의 외딴 마을에 살고 있었다. CIA의 중무장한 분대가 2007년 3월 그의 마을에 몰려들었을 때, 문서는 그가 “연합군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공포와 혼란으로 인해 달아났다”고 기록한다.

CIA는 그에게 멈추라고 외쳤다. 칸은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계속 달아났다. 그래서 그들은 계약에 관한 미국법 조항에 의해 신중하게 분류된 “물리력의 증대”에 따라 이와 같이 행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에게 총을 쏘았다.

칸은 부상당했지만 살아남았다. 미국인의 잘못이라고 마을의 장로는 설명했고 그들이 “배상금” 또는 보상이라고 말한 것을 이끌어냈다. 비밀정보보고서는 “배상금은 지원 형태로 만들어졌고 임무는 진척됐다”고 기세좋게 마무리 짓는다.

군사용어 뒤에는 민간인의 비극에 관한 기록이 깔려있었다. 소위 "흰색 위에 파란색” 사건에 관한 기록 144호 기입사항은 수백명의 사상자와 함께 아프간에 대한 매일의 공격에 관한 폭넓은 스펙트럼을 포함한다.

문서의 기록들은 무고한 개인에 대한 총격 사건에서부터, 결국 대통령이 하미드 카르자이가 공개적으로 미국이 아프간의 생명을 "싸게" 취급하고 있다고 항의하게 한 반복된 공습로 인한 대규모 파괴까지 다양하다. 민간인 가족이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살해됐을 때 그들은 이에 상응하여, 공정하게, 깡통캔과 허쉬바 보다 많은 배상금을 지불했다. 총액은 시체당 1십만 아프가니(1,500파운드, 약 280만원)에 해당했다.

미국과 동맹국 지휘자들은 자주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에 관한 진술에 대해 사망한 이들이 탈레반 동조자이거나 군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조작된 책략이라고 주장하며 부정해왔다.

하지만 문서 기록들은 공습에 관한 얼마나 많은 미국 내부보고가 단순히 거짓이었는지를 드러낸다.

아프간 북부 쿤두즈에서의 한 육군 소령에 관한 추문이 있었던 지난 9월, 독일 지휘관은 2개의 연료 탱크를 약탈하던 군중을 향해 폭격을 명령했다. 나토 동맹군에 배포된 같은 시각의 기록은 "근처에 민간인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한 후" 그는 미국 F-15 제트기 공습을 승인했다고 기록한다. "전투 피해 평가"에서는 “반란군” 56명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언론보도는 이런 공식조사에 따랐다. 그러나 실제 사상자는 30명에서 70명 가량의 민간인이 포함됐다.

또 다른 경우에 대해 문서 기록은 2008년 8월 30일밤 소위 ‘전갈 26’이라고 불리는 미특공대가 헬만드에 다수의 로케트를 발사했고, 5백파운드에 달하는 폭탄 공습을 명령했다고 전한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은 탈레반 24명이 살해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프간 서남쪽 산진의 영국 낙하산부대 근처 계곡에 있었던 작가 패트릭 비숍(Patrick Bishop)의 기록은 다르다. 그는 독립적으로 “하루밤 동안, 민간인 사상자의 문제가 특별히 절박하게 남아있다. 미군은 검은산에 투입돼 왔다… 그곳에서부터 미군은 일련의 공격 작전을 착수했다. 8월 30일, 몇몇은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심각하게 부상당했다. 부상당한 민간인들은 산진으로 향했고 그들이 외국 군대에게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그러한 사고는 그들 자신이 지역 주민들에게 안전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ISAF에 공허하게 울렸다”고 기록했다.

보다 악명높은 민간인 참사 중의 일부도 당시에 공개됐다. 그러나 비밀군사기록은 “유도폭탄”의 유도체계 실패에 대한 유감표명이었다는 것만을 확인시킨다. 2008년 9월 9일 본의 아닌 유도폭탄 투하로 26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낳았다.

미국은 또한 폴란드군이 전쟁범죄의 가능성을 가지는 사건을 감행한 것을 매우 신속히 인식했다. 2007년 8월 16일 폴란드인들은 IED에서의 폭발 직후, 이에 대한 명백한 보복공격으로 난가르 케일 마을 결혼식을 구포로 사격했다.

그것은 “부정적 여론을 야기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제목 아래 기록돼 있었다. 보고서는 3명의 여성 희생자가 “수많은 파편 부상을 가졌고 … 한명은 임신중이서 긴급 제왕절개 수술을 했지만 아이는 죽었다”고 기록했다. 이곳에서 모두 6명이 살해됐다. 폴라드군은 귀향조치됐고 몇몇은 결국 잔학 행위에 대한 재판에 회부됐다. 그러나 폴란드 육군으로부터의 지원 후, 재판은 결론에 도달하는데 실패한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 기록된 민간인 사망자의 대부분은 조사된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군은 2008년 10월 2일 카불 외곽 탄기 칼라이 마을 인근에서 '군용차량에 너무 가까이 온 버스'에 불을 질렀다. 이것으로 버스에 있던 8명의 어린이들이 부상당했다.

2달후 미군은 심지어 보다 위협적으로 버스승객을 사격해 숨지게 했다.

도보 순찰중, 506보병연대는 접근중인 버스를 정지시키고자 했고 순찰중인 대원은 길을 가로지렀다. 일출 전 한 병사는 아프간 주요 고속도로로 걸어 들어갔고 두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버스가 속력을 늦추지 못하자 총으로 사격했다. 그들은 4명의 승객을 살해했고 11명을 부상당하게 했다.

민간인 사망중의 일부는 탈레반 지도자와 알카에다 조직원 암살을 위해 설치된 미국 기동부대에 의해 저질러졌다. 전형적인 사례로, 지난 11월, 군용차 유리창을 깬 80명의 성난 마을주민의 시위를 문서 기록에서 보고됐다. 마을의 한 여성은 그림자같은 기동부대 373의 공격 중 살해됐다.

새로운 사령관 스탠리 매크리스털의 영향은 잘 나타나 있다. 지난해 민간인 사상자의 수 감소 시도 임무가 제기되자 그는 분명히 이 사건에 관한 자세한 보고를 요구했다.

민간인 사상자 감소를 위한 노력이 다시 느슨해지던 중 매크리스털은 데이비드 페트 레이어스 장군에 의해 지난 달 교체됐다.

대규모의 "청백" 파일은 검문소 근처 기지 혹은 군용차량대에 의한 거의 100건의 민간인 총격에 대한 잔인한 기록으로 구성돼 있다. 공동작업과 무관했던 운전자와 오토바이 운전자가 자주 표적이 됐다.

개별 사건들은 예외없이 위협적인 차량에 대해, 규칙에 의해 엄격히 감행된 주의깊은 "물리력의 증대"로서 설명됐다.

미국과 영국의 규칙은 치명적 무기 사용 전에 외침, 신호, 조명탄, 경고 사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때마다 이러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경고 사격”은 사망 또는 부상을 야기했고, 일반적으로 사살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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