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우리 호주머니를 털었다”

[국제통신] 유럽 활동가들, 스코틀랜드 로얄은행 본사 점거

“은행의 안녕에 반하여 은행을 침입하는 것은 무엇인가?” 1928년 브레히트 베르톨트는 그의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주인공 매키스의 입으로 말했다. 20세기초 영국사회를 배경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은유한 브레히트의 소위 자본주의 우화 속의 이 말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후 휘청거린 세계 경제위기를 목도한 많은 이들이 되뇌인 말이기도 하다.

근대적 은행제도의 모습이 나타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13세기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플로렌스지방을 거점으로 대륙적 체제 갖추며 착취의 역사를 걸어온 은행. 이러한 은행과 함께 이를 ‘터는’ 역사도 나란히 서왔다. 미국은행사에 기록된 첫번째 은행도난사건인 1798년 8월 31일 밤 필라델피아 펠실베니아에서 훔쳐진 162.821 달러는 2009년 6천4백만 달러로 불어났다. 그러나 2004년 7,556건에 달했던 은행 습격은 2009년에는 5.943로 대폭 감소한다. 그 이유로는 통제의 기술이 지목된다. 그러나 은행의 돈을 노리는 습격이 줄어들은 건 틀림없지만, 이 통제의 메커니즘인 자본주의에 저항한 은행 공격 시도는 오히려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이들은 은행이 우리를 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3차 각료회의를 향한 반세계화 활동가들의 저항을 기점으로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이끄는 국제기구의 회의가 진행된 지역 은행에 대한 활동가들의 시위는 최근 2009, 2010년 G8, G20, 코펜하겐 기후협약회의를 포함하여 지속돼 왔다. 그러나 국제기구 회의를 중심으로 은행을 상징적으로 공격했던 시위 방식은 이제 각국 내부로 깊숙히 퍼지고 있다. 특히 은행점거는 기후변화와 유럽내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고조돼 왔으며 이에 대한 정부와 은행의 책임을 묻고 있다.

  학생들이 독일은행을 봉쇄하고 시위중이다. [출처: www.taz.net]

이들의 저항을 일별하면, 경제위기로의 진입과 함께 즉각적인 시위는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조직인 아딱(attac)으로부터 시작한다. 2008년 10월 독일 아딱은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로 몰아치고 직접행동을 벌였다. 이때 이들은 “금융시장은 무장해제하라”의 현수막을 걸고 “도박은 끝나야 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어 2009년 3월 19일 그린피스는 독일 전체 은행에 상징적인 프랑크푸르트 독일은행 쌍둥이건물을 점거했다. 이때는 “세계가 하나의 은행이라면, 너희들은 틀림없이 세계를 구했을 텐데!”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환경활동가들은 보다 많은 재정을 재생가능한 에너지, 원시림보호와 기후변화에 적합한 조치 등에 필요한 개발도상국가 기후보호사업에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2009년 6월 교육투쟁 주간 중 “은행습격의 날”로 선포된 18일 그리고 19일에는 은행 대신 교육에 지원해야 한다는 학생들에 의해 독일 베를린, 본, 에르푸르트 등의 도시에서 은행들이 봉쇄됐다. 당시 은행들에 대한 구제기금으로 메르켈 정부는 4800 천억 유로 지원을 밝혔으며, 이에 대해 학생들은 “은행대신 교육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하라”라고 요구했다. 학생활동가들의 은행 봉쇄는 올해 “너희가 노름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미래다!”라는 모토와 함께 브레멘 등에서 다시 이어졌다.

유럽경제위기의 첫번째 희생양 그리스에서는 보다 폭발적인 대규모의 시위 속에서 은행들이 공격됐다. 올해 5월 5일 수십만의 그리스노동자들과 좌파활동가들은 일반 노동자를 겨냥한 정부의 긴축조치에 반발하며 많은 도시에서 정부청사와 기업과 함께 수십개의 은행들을 습격하고 불태웠다. 그리스 금융노동조합(OTOE)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최류탄과 차광충격유탄으로 시위를 진압했으며 이로인해 불타는 은행에서 3명의 금융노동자가 질식사로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기후캠프 시위자들이 로얄은행 부지를 점거하고 시위하고 있다. [출처: http://www.guardian.co.uk/]

영국 은행에 대한 공격은 환경활동가들이 조직하고 나섰다. 8월 19일 수백명의 환경활동가들은 캐나다의 타르모래 개발에 포함된 회사와 함께 석유와 광산 산업을 위한 수십억 파운드의 공적기금 융자를 비판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왕립은행(RBS) 본점의 부지를 점거했다. “은행을 파괴하라”는 모토의 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위자들은 18일 밤 주위 방벽을 자르고, 본사 건물로부터 몇백미터 내의 조경된 초원에 텐트 경계선과 대형 천막을 세웠다. 기후캠프 활동가들은 또한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이 후원하는 에딘버러 축제 행사를 혼란시키고자 위협하기도 했다.

이들은 연이어 8월 23일 스코틀랜드의 로얄은행 본사를 공격했다. 이들은 시위에 대해, 금융제도는 공동체가 가지는 미래에 대한 권리를 빼앗아 왔기 때문에 시위를 조직했다고 밝혔다. 전체 50여명의 시위자들 중 한 팀은 로비를 점거했고, 3명은 건물 전면에 쇠사슬로 자신을 묶었으며, 2명은 사무실 내부에 들어가 점거했고 2명의 시위자는 사무실 지붕에 현수막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12명의 활동가가 연행됐다.

은행을 표적으로 한 활동가들의 저항은 하반기 보다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 학생활동가들은 오는 하반기 교육투쟁을 준비하며 9월 29일 노동자들의 유럽저항의 날에 맞춰 오전 11시부터 20여개 도시에서 은행점거를 계획 중이다. 한편 급진좌파, 아딱, 노동조합, 다양한 청년학생 조직들은 “경제와 금융위기의 핵심적인 행위자이자 수익자를 봉쇄하는 것은 마땅하다”라는 모토아래 회의를 갖고 오는 10월 18일 시민들의 불복종 행동을 통해 프랑크푸르트 금융교차점을 봉쇄하기로 결정했다.

“주식에 반하는 곁쇠는 무엇인가? 은행의 안녕에 반하여 은행을 침입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온존에 반하는 살인은 무엇인가?” 침몰하는 자본주의의 심장, 금융제도, 은행을 중심으로 한 모순의 심화 속에서, 20세기초 브레히트가 던진 물음이 지금 보다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태그

신자유주의 , 금융위기 , 은행점거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은희(객원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