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가 아니라 ‘달러’가 문제다

환율전쟁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

통화정책을 둘러싸고 각국의 대립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등 신흥국이 자국 통화 약세를 고무시키는 경우 세계경제 회복이 저해되는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스트로스칸 총재는 “자국 통화 정책의 '무기'로 사용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하고 있다”며 “그것이 행동에 옮겨지는 경우, 세계 경제 회복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6일 브루킹스 연구소 강연에서 “자국 통화 환율이 낮게 평가되고 있는 국가들이 환율 상승 억제를 향해 행동하는 경우, 다른 나라도 비슷한 움직임을 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아셈정상회의로 브뤼셀을 방문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5일, 유럽연합(EU)에 대해 위안화 환율 상승을 위해 압력을 가하는 것을 중지하라고 요청했다. “위안화가 급작스럽게 인상되면 수출 기업들은 폐쇄에 몰린다. 이주 노동자는 농촌으로 돌아오게 되고 중국에서 사회 경제적 혼란이 생기면 세계경제에 있어서 타격이 된다”고 주장했다.

환율전쟁(1) ; 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

최근 환율전쟁은 지난달 9월 15일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2조엔을 쏟아 넣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 정부가 환율개입을 시작하자 미국은 일본 정부의 시장개입을 비난하며 곧바로 화살을 중국으로 돌렸다. 마치 중국의 위안화 때문에 일본이 환율개입을 한 것처럼 중국을 비난했고 중국에 대한 위안화 절상압력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그러나 일본 엔화가 급등한 원인은 중국 위안화 가치가 낮은 것에 있지 않다. 엔화가 급등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글로벌 자금이 일본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인데, 미국의 달러 약세가 이어지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달러 유동성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면서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와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로 자금이 몰리면서 해당국의 통화가치가 증가했던 것이다.

현재 일본 엔화는 15년전 엔고 문제로 역(逆)플라자합의를 이룬 1996년 이래로 최고치를 달리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는 지난해 2월 이후 달러대비 40%가 절상되었다.

이렇게 되자 일본과 브라질은 외환시장에 개입을 안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미국 때문에 각국 정부의 환율개입이 무위로 돌아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조엔이라는 어머어마한 자금을 외환시장에 투입하고서도 엔-달러 환율이 급락하지 않았다. 바로 며칠 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 유동성 공급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되자 달러가치가 더 내려갈 것을 우려해 다시 일본 엔화로 글로벌 자금이 몰렸고 엔화는 일본정부의 시장개입 이전과 큰 차이없이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경제위기로 한방씩 얻어맞은 그리스나 아일랜드 그리고 지속적인 협박을 받고 있는 유럽의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주요국가들은 통화의 양적 완화 정책을 지속시키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미국이 돈을 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돈을 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주요국가들의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그런 가운데 신흥국이나 개도국에서는 통화가치가 올라가고 돈이 몰리게 된다.

결국 글로벌 자금의 흐름이 선진제국에서 신흥국으로의 통화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펀드 조사기관인 EPFR에 따르면 올해 신흥국가의 자국통화표시 채권으로의 자금유입은 400억 달러로 09년 1-9월 7억 달러를 크게 웃돌고 있다. 3분기의 신흥국 주식시장은 300억 달러의 유입 초과에서 1-6월 50% 상회, 연초 대비는 500억 달러의 유입 초과 되었다.

또한 이 때문에 통화가치가 급등하고 있는 국가들은 달러을 계속해서 사모으고 있다. 조금이라도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중국은 달러 뿐 아니라 일본 엔화도 대량으로 매집하고 있고 최근에는 한국 원화까지 추가로 매입하고 있다. 한국정부도 달러 보유량이 사상최고치를 매일 갱신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달러공급을 늘리면 신흥국들이 알아서 달러를 사모아야 하는 국제적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있고, 이것 때문에 미국은 계속 유동성 공급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환율전쟁(2) ; 미국의 저금리 정책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이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금리가 낮으면 외환이 들어오지 않고 이자율이 높은 다른 나라로 가기 때문에 그 나라의 통화가치가 그만큼 낮아진다.

미국은 2008년 12월 이후 연방기금(FF) 금리의 유도 목표를 0~0.25%에 묶어 놓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정도로 금리를 묶어 놓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17개월째 1%로 묶었고 영국중앙은행(BOE)도 19개월째 0.5%를 유지했다. 일본은 지난 5일 4년 3개월만에 다시 제로금리로 복귀했다.

이 때문에 개발도상국 국가들은 선진제국들의 저금리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7일(현지시간) 브라질과 멕시코, 나이지리아 등 개발도상국 24개국으로 구성된 G24는 선진국의 저금리가 신흥시장으로의 자본유입을 초래하여 개도국 통화 강세와 경기과열의 위험에 내 맡기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IMF 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앞서 발표한 G24 금융 당국자들의 성명에서 “선진국 저금리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 일부 신흥시장국가로의 자본유입 급증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개발도상국에서 환율상승과 경기과열의 긴장을 낳고, 취약성이 증가하여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저금리를 지속시키는 것은 각국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2년 가까이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도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중에 통화가 많이 풀려 있음에도 금리를 올리며 출구 전략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도 미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전 IMF 수석부총재도 지난 5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의 범람”이 외환 시장을 불안정하게하고, 일본과 브라질 등의 국가들이 수출 방위에 나서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FRB는 미국 경제 회생을 위해 이러한 유동성을 제공하고 있지만 효과는 없고, 다른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아주 이상한 정책”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면, IMF와 세계은행(WB)은 무엇을 했나?

그렇다면 외환의 조정과 관리 역할을 맡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IMF와 세계은행은 단 한 차례도 미국의 금융완화 정책이나 유동성 공급 등 저금리와 약한 달러 유지에 대해 입을 댄 적이 없다.

오히려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고 미국과 똑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환율분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각국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정부는 빠지라는 주장을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과 거의 같은 시기에 했다. 또한 일본, 한국 등 환율조정에 나선 국가나 중국의 위안화 절상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유독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안했다.

게다가 최근 벌어진 환율전쟁에 대해서도 다른 어떤 기관들보다도 느긋하게 대응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주요국 당사자들이 모두 나서서 환율전쟁이 벌어졌다고 선언하는데도, 스트로스칸 총재는 아직 환율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며, 조정 가능성이 높다고만 했을 뿐이다.

비슷한 시기,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랜차드도 주요 20개국(G20)이 불균형 시정 및 통화 문제에 대한 대처에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며 “G20이 해결책을 찾을 것으로 낙관 하고 있다. 과정은 초기 단계이고, 실패를 선언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그러다 연차 총회를 바로 코앞에 둔 7일 스트로스칸 총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수 국가가 통화가치를 '무기'로 여기는 것 같다”며 환율전쟁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더니 여전히 “현재 중국의 경제정책은 옳은 방향으로는 가고 있지만 중국 위안화의 저평가는 글로벌 경제에 긴장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중국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결국 IMF와 세계은행이 한 일이라고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 재정감축을 하라고 압박한 것과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 것 말고는 한 것이 없다.

IMF가 이러는 이유도 사실 ‘돈’에 있다. IMF의 최대 출자국은 미국이며, 세계은행 총재는 부시 전 미국대통령이 임명한 졸릭이다. 졸릭 총재는 부시정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이 기구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뻔하다.

[로이터 통신]은 금융 전문가의 말을 인용 “IMF는 환율 전쟁을 방지하는 중요한 사명을 다하지 않았다”며 “미국이 최대 출자국인 IMF가 미국의 추가 금융 완화와 달러 약세를 견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G20인가?

환율분쟁의 당사자들은 계속해서 G20에서 환율문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해 왔다. 미국의 가이트너 재무장관, 브라질 만테가 재무장관, 프랑스 경제장관 등이 이런 주장을 했다.

최근에는 은행업계까지 해결 촉구를 하고 나섰다. 서방의 은행업계의 국제 로비기구인 국제금융협회(IIF) 델러라 총재는 4일 “각국의 일방적인 조치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타격을 해결하려면, 주요국의 핵심그룹이 다자간 협력적인 정책 조치에 즉시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플라자협정과 같은 환율조정 협정에 나서라는 촉구였다.

투기자본의 대부 조지 소로스의 연구기관인 INET(The 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도 1) 미국을 비롯한 주요 소비국 2)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수출국 3) 신흥 수출 등 3그룹 간의 통화 움직임의 크기와 영역에 대해 G20합의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G20 의장국인 한국은 지속적으로 환율문제를 피해 왔으나, 8일 이명박 대통령도 결국 G20 서울정상회의에서 환율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어떻게” 이다.

INET 소장인 로버트 존슨은 “경쟁력을 위한 통화의 평가 절하가 진행되고 있는 선진국 통화에 대한 신흥국가들의 환율 재조정, 아마 앞으로 1-2 년 동안 20-25%의 상승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 미국이 아닌 신흥국들이 환율을 조정해야 하고, 왜 이런 상황에 20%나 통화가치를 상승시켜야 하는가?

위안화는 중국 당국이 환율 조정에 들어간 이후 고작 1.5%정도 절상되었을 뿐이다. 그런대도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더 이상의 환율 압박은 중국경제를 붕괴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미 환율이 오를대로 오른 일본, 브라질을 필두로 한국, 대만, 싱가폴, 콜럼비아까지 정부가 환율개입을 하겠다고 공언하거나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대도 통화가치를 더 올리라고 하면 해당 국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최근의 환율전쟁의 책임은 엄연히 미국에 있다. 가령,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단행해 20% 이상 올렸다고 한다면, 미국은 금융완화와 저금리 정책을 중단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전쟁은 결국, 미국이 달러발행을 통한 추가 유동성 공급과 금융완화를 지속하고 저금리를 통해 타국의 환율가치 상승을 끊임없이 도모하는 한 이 전쟁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지금 현재 금리를 올리고 글로벌 통화를 빨아들이며 달러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 안 그래도 무역적자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라고 뾰족한 수단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조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된 미국도 자신이 살고 봐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탓이다.

플라자합의 건, 역(逆)플라자 합의건 볼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시 일본경제와 지금의 일본경제는 천지간 만큼이나 차이가 나고 일본경제의 국제적 위상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일본처럼 고분고분 미국의 말을 들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 15년전, 25년전보다 위기의 폭은 더 커져있고 변수는 더 많아졌다. 이들이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의 해법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도 이제는 고려해야 한다.

이제 시간이 갈수로 각국 정부는 과잉 반응을 보이고 시장이 자율적으로 완만하게 반응하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이렇게 된 마당에, G20 서울정상회의는 “보이지 않는”이 아니라 이제는 “보이는” 환율전쟁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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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 위안화 , 환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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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

    통화가치가 오르면 환율은 내리고 통화가치가 내리면 환율은 오른다...

    환율가치..통화가치..
    에고..헸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