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휴전합의” 깨고 양적완화 돌입...G20은 어디로?

양적완화와 2차 환율전쟁 그리고 G20

미 연준, 2차 양적완화 개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3일(현지시간), 6천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의 추가 구매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2차 양적완화 조치가 시작되었다.

FRB는 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하고, 앞으로 8개월 동안 6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구매 하겠다고 밝혔다. FOMC는 또한 미국 경제의 약세가 이어져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높은 수준으로 계속될 경우 미 국채 매입 규모를 더 확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FRB가 시행한 2008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실시한 첫 1조 7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채 구매 프로그램과 사실상 제로금리 정책을 이어 가면서 미국은 심각한 경기후퇴(리세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스스로 평가한다.

그러나 연준은 경기회복 속도가 “실망스러울 정도로 느리고” 실업률은 26년만의 최고수준까지 올라가 줄어들지 않고 있어 올 8월부터 2차 양적완화에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휴전합의” 위반

양적완화 조치를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져 투자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양적완화는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한편 국외적으로 보면, 미국 연방금리가 ‘0%’ 수준까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양적완화는 미국의 달러가치 하락을 유도하게 된다. 실제로 올해 6월 이후 6%이상 미국 달러가치가 하락했고, 양적완화를 시사한 8월 이후 달러가치는 더 급격하게 추락했다. 약한 달러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는데 양적완화 조치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불가피하다는 이 같은 2차 양적완화 조치는 바로 약한 달러를 유도한다는 것 때문에 사실상 임시 “휴전합의”를 보았던 지난달 경주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회의의 합의를 깨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미국은 위안화 절상을 촉구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으나, 이번 환율분쟁의 원인은 달러 약세의 지속에 있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에 따른 달러 공급 확대와 제로금리 정책으로 달러 약세가 지속되면서 신흥국에 달러가 넘쳐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브라질과 한국 등 신흥국에 과도한 핫머니가 유입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각국이 환율방어를 나설 수 있는 명분이 제공되어 환율전쟁은 확대되었다.

이 상태에서 경주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환율분쟁을 임시로 봉합했다.

경주 재무장관 회의는 “경제 펀더멘털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다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함. 선진국(기축통화국 포함)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을 경계함”이라고 밝혀, 신흥국의 통화가치 절하 움직임을 자제하고 동시에 신흥국으로의 과도한 달러 유입에 대해 배려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특히, “기축 통화국을 포함한 선진국”을 언급한 것은 미국의 화폐 완화 정책으로 달러 하락을 초래한 것에 대한 G20의 다른 회원국의 비판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때문에 환율전쟁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후속조치가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미국에 이어 양적완화 도미노...둘로 쪼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에 대한 우려는 벌써부터 있었다.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해 위안화 절상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은 당연히 반발했다.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은 “미국의 무차별적인 양적완화 조치가 중국에 수입 인플레이션 부담을 가져온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도 미국 비난에 동참해왔다. 독일 브류데레 기술경제장관은 경주 G20 재무장관회의 직후 “화폐 공급의 장기적이고 과도한 증가는 간접적으로 환율 조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미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강한 달러가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으며, 쿠드린 러시아 재무장관도 “세계 외환시장 불안이 미국 탓”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런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부양과 약한 달러 유지를 위해 양적완화에 나서 환율전쟁의 재발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로 핫머니 유입이 더 확대된 신흥국은 당연히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환율방어에 나서게 된다. 2차 환율전쟁의 불이 당겨진 것이다.

나아가 이 문제는 양적완화의 도미노 현상을 이끌어 세계를 둘로 쪼개 놓게 될 것이다.

우선, 미국이 통화공급을 확대하는데 다른 통화발행국이라고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3일 미 연준의 금융정책 결정에 이어, 4일과 5일 연속으로 유럽과 일본이 금융정책을 결정한다. 미국의 대응을 보고 결정한다는 것인데, 일본은행(BOJ)은 심지어 열흘가량 앞당겨 11월4~5일에 맞춰 개최하기로 했다.

일본으로서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고를 용인한 결과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20년”을 넘어서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약한 달러가 유지된다면 엔고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싫든좋든 똑 같이 양적완화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일본은 환율시장에까지 개입해야 하는 무리수를 두어야 한다.

영국은 이미 양적완화를 발표했고 유럽 차원에서도 각국별로 이해관계 차이가 나지만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응해 통화량을 증가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돈이 넘쳐나 무분별하게 투자되면서 발생한 금융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돈을 풀고 풀어도 위기가 해소되지 않자, 이제는 각국이 더 많은 돈을 경쟁적으로 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지경에까지 다달았다.

이제, 상황을 좀 정리해 보자. 공교롭게도 중국, 인도, 호주 등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서 최근 금리인상을 하고 나섰다. 미국, 일본, 영국, 유럽 등 통화발행국은 금리 올릴 생각은 안하고 거꾸로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다. 이 결과 신흥시장국을 중심으로 돈은 더 넘쳐나게 생겼고 이들 나라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결국 금리를 올리거나 또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세계는 이미 둘로 갈라지고 있다. 국제결제통화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달러, 엔화, 유로화 등 화폐발행국들은 저마다 경쟁적으로 통화 공급을 늘리고 있다.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물가폭등을 우려해 금리인상을 필두로 어떻게든 통화량을 흡수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금리가 올라가니 선진국 핫머니들은 또 신흥국으로 몰려간다. 선진제국은 돈을 또 푼다... 위기는 그렇게 전가되고 있다.

G20,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찌되었든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로, 경주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임시휴전에 합의한 합의문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이제 각국은 달러가치 하락은 물론 자국내로 달러 공급이 확대되면서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판이다.

또한,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제국들의 양적완화는 환율전쟁은 물론 자원전쟁까지 유발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응해 중국은 이미 매입한 미국 국채를 매도할 수도 있다. 이것은 FRB의 미 국채 매입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또한, 중국은 환율에서는 손을 떼고 원자재 등 자원매입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일본도 현재로서는 검토중이지만 국부펀드를 활용해 자원매입 경쟁에 나선다면, G20이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각국간 출혈경쟁을 막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닫게 될 것이다.

3일 이명박 대통령은 G20 서울정상회의에서 환율 문제 등을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등으로 합의를 보겠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것도 지난 경주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미국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GDP의 4%로 하자는 제안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당시 재무장관 회의에서 중국은 물론 독일과 일본, 석유 수출국 등이 모두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며 다수가 반대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서울정상회의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합의의 전제는 다름 아니라 신흥국이 시장환율을 준수하는 것과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 해소하는 것이다.

미국은 ‘휴전합의’를 깨고 전쟁선포와 같은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G20 서울정상회의가 1주일 남았는데 G20 의장국은 이 문제를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G20 의장국인 한국 대통령이 미국 재무장관과 똑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판에 누가, 어떻게 조율한다는 것인가? G20이 심히 걱정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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