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에이즈 감염인, 장애인 청년 노동자의 분투기

[새책] 하늘을 듣는다 (윤가브리엘 저, 사람생각, 2010.11)

먼저, 독자들께서 아래 질문들에 예, 아니요로 솔직하게 답해 주시면 좋겠다.

• 가족 중에 에이즈 감염인이 있을 때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가?
• 같은 직장에 에이즈 감염인이 있을 때 사표를 내도록 해야 하는가?
• 자녀가 에이즈 감염인과 같은 학교에 다니도록 허용하겠는가?
• 에이즈 감염인을 다른 사람과 격리하여 수용 시설에 보내야 하는가?

* * * * *

지난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다. 올해 에이즈의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한국에서 에이즈 감염 사례가 처음 보고된 지 25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세상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세월이다. 그동안 한국의 에이즈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등록 감염인 수가 칠천 명을 넘어섰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도 열 번이나 개정되었다. 여러 종류의 치료제가 소개되었고 에이즈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도 늘었다. 한국에이즈연맹이나 대한에이즈예방협회 같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정부에도 에이즈 정책을 다루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에이즈 캠페인도 질병 예방뿐 아니라 감염인의 인권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또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다. 에이즈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관심의 크기만큼 에이즈 문제는, 감염인의 인권은 주변화 되기 마련이다. 에이즈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배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도 에이즈에 대한 공포만큼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동성애 혐오로 이어지는 것도 여전하다.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는 엽기적인 신문 광고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희망적 변화 조짐과 변치 않는 무관심과 공포, 혐오. 이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에이즈는 이런 현실 속에서 25년이란 시간을 흘러 보냈다.

한국의 에이즈, 25년

그 25년을 온몸으로 살아 낸 청년이 있다. 에이즈 인권 활동가, 윤 가브리엘. 불행했던 어린 시절, 중학교 중퇴와 가출, 보조 시다로 시작한 노동자 생활, 동성애자로서의 자각, 에이즈 감염, 사경을 헤매던 투병 생활, 실명과 청력 상실, 동성애자 인권 운동과 에이즈 감염인 인권 운동, 그리고 노래, 노래. 최근에 나온 책, <하늘을 듣는다(도서출판 사람생각, 2010)>에서 더듬을 수 있는 그의 이력이다. 가브리엘은 2008년부터 격월간 인권 잡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글을 썼다. 그 글들을 한데 묶고 다듬어 낸 것이 이 책이다.

가브리엘은 한 마리의 어린 양, 이 땅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다. 그와 몇 년째 알고 지냈으면서도 나는 그가 그렇게 약한 존재였는지 몰랐다. 친어머니도 모른 채 배다른 형들의 구타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 중학교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력, 봉제 기술자를 꿈꾸며 보조 시다로 출발한 노동자 생활, 그러나 너무도 열악하기만 했던 노동 현실, 혐오의 대상일 뿐인 동성애자로서의 자각, 에이즈 감염, 그에 따른 실명과 청력 사실. 어쩌면 이렇게 세상의 온갖 고난과 역경을 남김없이 제 것으로 삼았는지! 그러나 이렇듯 불행하고 약한 존재일 뿐인 가브리엘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마침내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로서, 에이즈 감염인 인권 활동가로서 자신이 할 일, 해야 할 일을 자각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가브리엘은 우리에게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우리의 인권 의식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말이다. 학력이라곤 중학 중퇴가 전부인 못 배운 사람, 영세 사업장을 전전하는 봉제 공장 노동자, 여전히 혐오와 기피의 대상일 뿐인 동성애자, 에이즈 감염인. 나는 한국의 보통 사람들이 이런 가브리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날을 기다린다. 만약 보통 사람들이 가브리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의 의견을 경청하며 그의 문제의식에 발 벗고 나선다면 그때 한국 사회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가장 약한 존재의 목소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사회,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 이 책은 그런 세상을 앞당기려는 가브리엘의 분투기(奮鬪記)이기도 하다.

“하늘을 듣는다”

이 책에서 가브리엘은 이미 어엿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가브리엘의 초고를 교열하는 행운을 누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책 한 권을 만들 분량이니 바로잡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겠거니 했다. 저명한 지식인이나 교수들의 책이나 논문에서 숱한 문제들을 보아 온 터였다. 그때는 아직 가브리엘의 이력을 모르는 상태였다. 책은 쉽게 읽혔다. 교정은 어느 정도 필요했지만 처음에 예상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학력과 배경 등 가브리엘의 이력을 알게 되었다. 놀라움은 커졌다.

가브리엘의 글은 간결하고도 정확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글이 드러내는 삶의 진실성 때문이었을까? 어느 정도는 그랬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의 내용 대부분과, ‘모두에게 접근권을(164쪽)’이나 ‘푸제온, 말도 안 돼!(189쪽)’처럼 논리를 세워 강하게 주장을 펴는 대목은 그 질감이 조금 달랐다. 그렇더라도 가브리엘의 글은 이미 일급 작가의 작품이었다. 내가 읽은 어느 학자도, 어느 지식인도, 어느 작가도 가브리엘만큼 잘 쓰지 못한다. 이야기의 진실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빼어난 글 솜씨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가브리엘의 책을 사서 읽었으면 좋겠다. 그는 한국 에이즈 감염인 인권 운동의 상징 같은 존재다. 그는 이 땅의 가장 약한 존재, 하느님의 어린 양, 핍박받는 자의 대변인이다. 그가 살아 낸 수십 년의 세월이 곧 한국 에이즈 25년을 말해 주며, 그가 겪어 온 세상살이는 가난한 사람이 몸으로 겪은 한국 현대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늘을 듣는다>를 읽음으로써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감염인이자 장애인인 한 청년 노동자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 * * * *

독자들께서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던진 질문을 기억할 것이다. 그 질문들은 에이즈에 대한 보통 사람들, 즉 대중의 태도를 가늠하는 데 널리 쓰이는 설문 문항들이다. 몇몇 나라의 조사 결과를 살펴본다.

한국(2007) 영국(2006) 미국(1999) 프랑스(1992)

가족에서 추방 반대 68.2% - - -
직장에서 추방 반대 68.1% 92.0% 81.4% -
자녀와 같은 학교 허용 50.4% - 85.1% 79.3%
사회적 격리 불필요 60.9% - - 94.4%

과반수의 응답자들이 에이즈 감염인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격차는 크다. 어쩌면 이 차이에서 수많은 가브리엘들의 고통이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 그 어느 쪽이라도 <하늘을 듣는다>를 꼭 읽을 것을 권한다. 당신이 관용적이지 않다면 책을 통해 변화하는 자신을 확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당신이 이미 관용적인 사람이더라도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판단에 더 큰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 기억 속의 나, 노래 속의 나
추천사 진솔한 다큐멘터리 같은 위로와 격려 - 김조광수

1_ 떠도는 아이
방랑자
붉은 노을 속으로
집을 떠나다
재단판 밑‘섬집 아기’

2_ 미싱이 돌고 나의 노래도 돈다
열다섯 시간의 노동, 사람 그리고 노래
아버지의 죽음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3_ 게이, 장밋빛 인생을 노래하고 싶었다
가리워진 길
낙원상가 데뷔
아 하늘이 밉다 목이 타온다
슬금슬금 다가가는 눈빛들
장밋빛 인생
덧붙이는 말

이 글은 건강세상네트워크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필지의 동의를 구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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