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주체형성론’을 말하다

[신간안내] 『문화/과학』, 65호(2011 봄, 문화과학사)

1천만 비정규시대에 운동진영의 가장 커다란 고민이자 과제는 주체형성 전략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는 분열적이고 혼종적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파괴하는 인간의 모습은 맑스의 소외이론의 가장 극단에 있기도 하고, 알튀세르의 주체 호명이론의 최전선에 있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시대 주체는 ‘자본-인종-국가’의 횡포-포섭에 의해 양극화되고, 다수의 주체는 ‘비정규직 노동자’, ‘호모 사케르’로 살아간다. 문제는 이들이 과연 근본적으로 혁명적 주체로 나설 수 있는가이다.

이제 우리에게 신자유주의의 체제 이후의 대안적 주체를 발견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의 호명을 넘어서는 주체, 욕망의 탈주를 윤리적이고 생태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주체, 자율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며, 기계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주체에 대한 이론적 재구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과학』65호 특집은 1950년대 구조주의 이후 주체이론이 발전해 온 이론적, 실천적 궤적들을 쟁점별로 정리해서 신자유주의 체계를 넘어설 수 있는 21세기형 주체형성론을 제안하고 있다.

총론으로 심광현은 <‘통치양식’의 문제설정과 새로운 주체이론의 탐색>을 통해 새로운 주체형성이론을 위한 결절점으로 ‘통치양식’의 문제설정을 제시한다. <푸코-맑스-칸트-벤야민-인지과학>의 성과를 절합하는 그의 문제의식은 다루는 대상의 포괄성만큼이나 발본적이다. 그에 따르면 총체적 혁명은 생산양식 전체, 즉 축적양식만이 아닌 통치양식(권력의 테크놀로지와 자기의 테크놀로지)의 전면적 변화를 동시에 요구한다. 그러나 낡은 휴머니즘적 주체이론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통치양식을 위한 변혁주체의 형성이론은 재구성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현실 진단이다. 그는 통치양식의 발명이라는 문제설정이 자유주의적인 자기배려라는 협소한 차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맑스-알튀세르의 <코뮌국가>라는 개념의 ‘변증법적 절합’이라는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고 예비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정정훈은 <해방적 주체화의 존재론적 토대와 욕망의 인식론적 전화>에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들뢰즈/가타리의 욕망이론이 새로운 가능성을 얻고 서로 맞물리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요청된다고 제안한다. 그는 스피노자에게서 욕망의 인식론을 만나게 되는데, 욕망이 쾌감과 같은 부분적 기쁨에 고착되지 않고 신체 전체의 능력을 증대시키는 활동을 위해 가동되려면 상상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 재평가되는데, 그는 특정한 주체성이 형성되는 데서 이데올로기적 인식의 힘이 관건적임을 보여준 바 있다. 즉 이데올로기론과 욕망이론의 절합은, 주체성의 전화를 위한 존재론적 토대에 대한 규명과 욕망의 인식론에 대한 해명의 절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심세광의 글 <푸코에게 “주체”란 무엇인가>는 우리의 역사적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에서는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 주권을 생산해낸다. 여기서는 정치적 심급의 자율성이 사라지고 경제적인 것에 종속되며, 자유방임이 아니라 경쟁을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 개입이 부상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 내에 경쟁을 구축하려고 하는 적극적, 개입적 자유주의다. 거기서 주체는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는 인적자본으로 환원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통치 혹은 그 결과로서 시장의 명령에 의거하는 자기통제의 양식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에 의거하면서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완전히 새로운 자기통제의 양식을 발명하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분열과 비판의 라캉과 생성과 창조의 들뢰즈를 대조하는 이동연의 글 <주체의 분열과 생성>은 통상적인 양자의 대립구도를 넘어서 이들 간의 상호참조적 관계와 절합 가능성을 탐색한다. 흔히 결핍으로서의 욕망과 생산으로서의 욕망이라는 양자의 문제설정은 타협할 수 없는 대립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는 이 두 이론적 체계가 고유한 약점을 가지며 또 바로 그 때문에 상호보완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들뢰즈의 탈주론은 시니피앙의 욕망에 갇혀있는 주체의 현실적 메커니즘을 너무 쉽게 결별할 수 있다고 간주했다면, 라캉의 욕망이론은 주체의 타자의 욕망 안에 잠재되어 있는 표상될 수 없는 욕망의 감각들이 시니피앙의 권위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고 간주했다. 우리가 혁명적 주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는 두 이론가의 시각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21세기 지성계의 스타가 된 ‘지젝 죽이기’에 나선 이득재의 글 <지젝 죽이기: 헤겔적 주체인가, 칸트적 주체인가>는 지젝의 들뢰즈 오독을 경유하면서 지젝에게 주체생성의 이론이 결여되어 있음을 폭로한다. 헤겔과 라캉에게서 주체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보듯이 획득하는 주체지만 들뢰즈의 주체는 주인 기표의 자리를 획득할 필요가 없는 결여를 모르는 주체다. 반면 존재의 함성을 주장하는 지젝은 정치적 주체의 생성변화의 함성에는 무감하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서는 주체 내부의 다양체가 외부의 다수다양체와 접속하는 ‘되기’의 탈복종화 전략이, 그 전략을 구사하는 주체집단이 상정된다. 이 주체집단을 구성하는 집단적인 배치를 위한 실험, 각 주체의 능력을 키우는 실험이야말로 그가 강조하는 주체화의 지점이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신화를 통해 젠더 이후의 여성주체성을 탐구하는 황주영의 글 <젠더 이후의 여성>은 해러웨이에 대한 일정한 비판적 거리 안에서 사이보그적 주체성을 사유한다. 해러웨이는 젠더 정체성을 부정함과 동시에 주체의 부분성, 미완료성을 포착하면서 그들의 결합 가능성을 사이보그로 이미지화한다. 사이보그는 경계의 침범과 와해, 코드를 통한 네트워크와 접속으로 이루어지는 존재이며, 부모를 모르는 오이디푸스 삼각형을 벗어난 존재다. 사이보그 신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주체성이 유기적인 가족이나 전체론적인 공동체 속에서가 아니라 네트워크 속에서 절합되고 연결된 주체라는 점이 될 것이다.

최정우의 글은 자크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독해하면서 주체의 미학적 사유가 갖는 정치적 함축을 제시한다. 그에게서 미학은 미에 대한 학이 아니라 감성학/감각학으로서, ‘감각적인 것의 분배’ 방식을 둘러싼 가장 정치적인 투쟁에 관한 사유를 일컫는다. 랑시에르에게 감성학/미학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정치의 효과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의 조건이자 형식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에게서 혁명적 실천의 전략으로 제시되는 개념이 자리바꿈인데, 이때 자리를 바꾼다는 것은 곧 셈하지 않던 것을 셈한다는 것, 몫이 없던 것에 몫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지금 아랍세계의 민중봉기를 전하는 매체들과 서방의 시선은 이미 혁명 이후의 통치체제로 향하고 있다. 쓸 만한 정권-통치체제로의 대체라는 문제설정. 이 문제설정에 포획될 때 혁명적 주체들은 어느 순간 다시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으로 회수되며, 이제 혁명 이후의 시간이, 냉소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 시간은 자신을 낳은 혁명을 부정하며, 다가올 혁명을 미리 냉소한다. 근대의 시민혁명이 동반한 이 사이클은 상식이 되었고, 따라서 이제는 혁명 이후가 미리 사유되지 않는다면 혁명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단계적 이행이 아니라 이행적 실천이, 미래가 아니라 미래의 현재화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호 특집은 기왕의 주체형성이론을 총괄적으로 재검토하고, 그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절합함으로써 새로운 주체형성이론의 출구를 찾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목차

‘통치양식’의 문제설정과 새로운 주체이론의 탐색: 푸코-맑스-칸트-벤야민-인지과학의 ‘변증법적 절합’ /심광현
해방적 주체화의 존재론적 토대와 욕망의 인식론적 전화 -혹은 욕망과 이데올로기의 절합이라는 기획에서 스피노자적 계기에 대하여 /정정훈
푸코에게 “주체”란 무엇인가? 실천이론으로서 푸코의 주체이론의 변모 /심세광
주체의 분열과 생성: 라캉과 들뢰즈를 간파하기 /이동연
지젝 죽이기: 헤겔적 주체인가, 칸트적 주체인가 /이득재
젠더 이후의 여성: 다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신화 /황주영
한밤의 미학이 한낮의 정치가 될 때-왜 우리는 주체를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또한 ‘미학적’으로 사유해야하는가 /최정우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현실지형 /허민호
인디 뮤지션의 실태 /김작가
배제되는 인간, 말소되는 기억_용산참사 2주기의 단상 /이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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