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직업병 피해자, 2차 행정소송 제기

근로복지공단의 잇단 불승인 판정...“치료라도 받게 해 달라”

삼성전자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근무하다 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 다발성경화증 등의 희귀병을 얻은 삼성 직업병 피해자 4인이 2차 집단 행정소송에 나섰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과 피해자들은 7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불승인 결정에 불복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백혈병 등 희귀병 피해자 줄줄이 산재 불승인...“산업재해의 취지가 뭐냐”

현재까지 삼성전자, 전기 SDI 등의 공장에서 120여 명의 직업병 피해가 발생했으며 46명이 사망했다. 그 중 17명의 피해자와 유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16명에 대해 산재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1명은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불복한 5명의 피해자들은 작년 1월 11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접수했다. 현재 이들은 삼성전자주식회사 대리인단과 1년여 간의 법정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 2차 행정소송에 돌입한 4명의 피해자 역시 산재불승인 처분을 받은 이들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지금까지 산재를 신청한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해 ‘질병과 업무연관성이 적다’는 이유로 줄줄이 산재 불승인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산업재해와 관련한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따르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 변호사는 “근로복지공단은 인과관계 증명을 요구하지만, 미리 병에 걸릴 것을 예견하고 증거를 보존하며 작업하는 노동자는 없을뿐더러,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 노동자들이 의학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며 “특히 회사는 공정 과정에서 사용하는 위험 물질에 대해 영업상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인과관계 입증을 더욱 어렵게 하기 때문에 공단이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부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산재보험이라는 것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병을 얻은 노동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치료를 하자는 취지인데, 지금의 산재보험제도는 너무도 인색하며, 공단은 불승인을 남발하며 취지로부터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치료만 마음 놓고 받고 싶다”...피해자들의 울분

2차 행정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는 한혜경(33), 이윤정(31), 유명화(29), 이희진(27) 씨 등 4명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다.

한혜경 씨의 경우 고3 재학 중에 삼성전자 기흥공장 생산직으로 입사하여 6년간 LCD 모듈과에서 인쇄회로기판 납땜업무를 수행했다. 입사 3년 만에 생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등의 이상 증상이 생겨났으며, 2001년 8월, 건강악화로 퇴사했다. 하지만 2005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뇌종양 진단을 받았으며 수술 후 시력, 보행, 언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한혜경 씨의 모친은 “혜경이의 소원은 단 하루라도 자기 손으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거리를 걸어보는 것”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산업재해를 인정 받아서 치료나 마음껏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 모녀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윤정 씨 역시 고3 재학 중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1997년부터 2003년까지 6년간 반도체칩을 고온으로 테스트하는 MTB Burn-In공정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퇴직 후 7년 만에 그는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윤정 씨는 현재 병원으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 중에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유명화 씨는 이윤정 씨와 같은 공정에서 근무했던 동료였다. 이윤정 씨에 이어 유명화 씨까지 20세의 나이로 재생불량성빈혈(무형성 빈혈)이라는 판정을 받은 뒤 10년째 투병중이다. 이희진 씨의 경우 2002년 고3 때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 입사 한 후 6년 만에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을 얻었다. 이는 매우 희귀한 신경계 질환으로, 이 씨는 현재 뚜렷한 치료제 없이 진행억제제만을 투약하며 투병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명화 씨의 부친은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기증자 2명을 포함해 미국, 독일, 일본, 대만, 중국 등 아무리 찾아봐도 딸과 맞는 사람이 없다”며 “공장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병에 걸려 나오는데 기업 총수인 이건희 회장은 이를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고 있으며, 나 같이 자식을 공장에 보낸 부모들만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김칠준 변호사는 “아무리 산재인정을 받는다 해도 피해자들의 상태를 병을 앓기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며 “단지 치료와 요양 정도를 받겠다는 것인데 이마저도 불가하다는 근로복지공단은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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