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의 늪’, ‘진보의 덫’인 박정희체제 벗어나기

[새책]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메이데이, 2011)

지금 진보세력조차도 반독재민주대야합을 외치는 배경엔 정치와 경제, 체제와 민중의 삶을 통일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유주의적 이분법이 있다!

이광일이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메이데이, 2008)라는 저작을 통해 아직까지도 우리 정치를 규율하고 있는 뿌리인 80년대의 운동을 역사적, 체계적으로 분석하더니, 이번엔 그 ‘전사’라고도 할 수 있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근본적 분석서, 즉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메이데이, 2011)를 써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시절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 속에서 반독재 투쟁의 한 축이었던 김대중, 노무현으로 표상되는 ‘비판적(개혁) 자유주의정치 세력’이, 집권이후 자칭 ‘좌파 신자유주의’ 운운하며 내외 독점자본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노동과 민중의 삶을 유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몰두한 뒤, 이명박 정권이 그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민중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자, 시민단체는 물론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들까지도 또 다시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깃발 아래 모일 것을 호소하는 황당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반한나라당 민주대연합을 통한 정권교체가 시대의 정신이자 대중의 열망이라는 미명 하에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듯 이명박 정권은 독선과 불통의 독재자이기에 이 땅의 민중은 보다 관대한 통치를 수행할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뭉쳐야 하는가? 그런데 여기엔 전체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의 아픔과 100만 명이 넘는 청년실업자의 고통이 설 땅은 없다. 왜 우리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아픔과 고통을 전면에 내세우고 싸우지 못하는가? 왜 이런 초라한 모습이 되었는가? 이 책은 이러한 현실이 아직도 우리 역사와 민중이 박정희체제를 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왜 낡은 ‘민주 대 반민주’가 되풀이 되는가?

저자는 묻는다. 왜 우리는 박정희 체제를 넘지 못 하는가? 저자는 그 뿌리를 정치와 경제 혹은 통치체제와 민중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자유주의의 발상에서 찾고 있다. 그렇기에 민중의 삶을 담아내는 민주주의가 고민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분리된 정치형태 상의 민주주의만이 포착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박정희가 독재한 것은 나쁘지만 경제성장의 공적은 인정해야 한다는 희한한 담론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 시대 박정희 체제를 평가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경제 신화, 즉 한강의 기적에 관한 논의들, 평가들을 접할 때이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논의는 물론 일부 좌파를 비롯한 대체적 시각은 ‘경제적 성장을 이룬 업적은 부인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성장 위에서만 분배, 복지 등 ‘삶의 질’을 둘러 싼 논의가 가능하다는 담론을 수용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 나눌 수 있는 빵이 없는데 어떻게 분배와 복지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논의구도로 끌려 들어가 결국 ‘성장과 발전’을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부가 핵심적인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구도로의 이끌림은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서만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배적 발상의 수용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1990년, 1997년 ‘산업화세력(수구세력)’과 ‘민주화세력(자유주의세력)의 연합’이라는 언술로 포장된 3당합당, DJP연합이 가능할 수 있었던 기저의 논리”(285쪽)이기도 하고, 대연정을 제안했던 노무현이 극복할 수 없었던 논리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처럼 민중의 삶과 정치 혹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변증법적인 통일성을 외면함으로써 마치 경제성장이 억압적인 유신체제와 별개였던 양, 그리고 지금 목도하고 있듯이 자본의 천국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마치 민중의 복지와 양립할 수 있는 양,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과의 연합이 마치 민중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양 주장하는 자유주의적인 이분법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하여 박정희와 박정희체제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이러한 두 대척점과 논쟁구도 자체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박정희체제에 대한 그 흔한 비판서가 아니다. 그것은 ‘박정희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에 대한 비판서’이다. 즉 비판의 초점이 ‘박정희’가 아니라 ‘박정희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이분법’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통념화 된 ‘자유주의적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을 때에만 박정희체제를 분명하게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신화는 자유주의적 비판을 매개로 환생

박정희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이분법에 기초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난다. “박정희 정권이 그나마 최소민주주의가 유지되었던 제3공화정을 유신체제라는 공개적 독재체제로 전화시켰기 때문에, 즉 최소민주주의를 부정하였기에 비판받아야 한다.”는 평가와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경제발전을 이룬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유신체제라는 반인권, 억압의 독재정치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한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이분법’에 대해 저자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이해’, 즉 “국가가 과연 민주주의의 담지자, 그 주체일 수 있는가”라는 관점과 ‘경제와 정치의 분리’, 즉 “국가의 반인권, 억압의 주요 대상이었던 노동자, 농민, 빈민의 문제를 경제 문제와 분리시킬 수 있는가”라는 관점 등 두 측면에서 발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저자에게 ‘정치’는 ‘민주주의의 실현’이고, 민주주의란 곧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이자, ‘인민의 자기지배의 실현’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선거민주주의와 동일시하거나 한정시키는 자유주의적 이분법으로는 ‘자기통치의 실현’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재구성은 이루어질 수 없고,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적 이분법의 틀로 한정시킬 때, 박정희체제에 대한 평가 역시 그 이분법의 틀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이 “노동자와 민중들의 삶과 노동의 고통이 곧 경제성장의 열쇠였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경제발전의 업적은 인정하나 독재를 했기에 비판받아야 한다”는 평가는 경제발전과 외재적으로 독재 자체를 분리시켜 결국 ‘경제성장이라는 신화’를 받아들이고, 경제발전 자체에 내재해 있는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에 눈을 감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자유주의의 이분법적 평가’를 매개로 해서 박정희체제의 신화와 정당성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른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유주의 세력은 자신이 집권하는 기간에 바로 그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란 외피를 쓰고 ‘또 다른 독재’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 ‘경제성장’이라는 신화 때문에 박정희의 후예들에게 다시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이 바로 박정희 신화를 유지시키고 박정희체제를 환생시키는 생명수임을 의미한다.

박정희체제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실패를 성찰해야

저자는 이처럼 ‘박정희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평가’가 결국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서만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배적 발상의 수용으로 귀결됨을 비판하면서,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해, 자칫 진보에게도 ‘덫’이 될 수 있는 자유주의적 이분법을 극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하여 문제는 “박정희체제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그 비판세력들의 한계”라는 것이고,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실패’의 역사로서 박정희체제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지난 50여 년간 ‘박정희체제’와 그리고 그 ‘늪’에 갇힌 자유주의적 정권 모두를 경험했다. 이제 이 두 대립항의 시대, 그 이분법의 ‘덫’을 어떻게 벗어던질 것인가가 역사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수지배세력은 이 두 대립항, 즉 산업화와 민주화를 ‘선진화’로 통합하자는 시도를 한다. 자유주의세력은 ‘과거로의 회귀’를 비판하며 여전히 ‘민주 대 반민주’의 틀에 안주한다. 저자는 이런 대립항을 뛰어넘어 이론과 실천에서의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제안하고 있다. 이 책이 과거 ‘박정희체제’에 대한 평가서가 아니라, 미래의 한국사회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역사의 진보를 꿈꾸는 자들이 박정희체제라는 ‘늪’을 벗어나고 자유주의적 이분법이라는 ‘덫’을 벗어던질 수 있는 논의와 성찰의 출발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의 큰 장점은 1961년 5·16 쿠데타부터 1979년 YH투쟁과 부마항쟁을 거쳐 유신체제가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박정희체제를 토대와 상부구조의 변증법적인 통일을 견지하면서, 제3공화국과 유신체제라는 상부구조가 자본의 축적제제,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에 대한 수탈과 억압체제 그리고 그 필연으로서 민중의 투쟁과 지배계급의 대응 등을 매개로 어떻게 재구성되었는가를 분석, 충실하게 복원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오늘 한국의 현실과 투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인 박정희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 책은 단지 정치학도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야만 하고, 갖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양서이다. 다만 ‘대중적 학술서’를 추구하고자 했던 저자의 의욕이 좀 더 대중적인 언어로 그려지지 못한 것은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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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 자유주의 , 박정희 , 박정희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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