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을 이어온 막힘현상(가부장제)을 뚫고 나가자!

[신간안내] 『진보평론』여름호(메이데이, 2011)

한국사회의 진보운동과 진보담론의 흐름을 만들어왔던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생태/환경운동, 소수자운동 등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제기되었던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성노동, 4대강, 차별금지법 등의 화두들이 있다. 각 영역운동은 여전히 서로 다른 영역으로 존재하지만 이 화두들은 각각의 운동영역에서 전통적으로 접근해 왔던 방식과는 다른 접근방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어떤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게 된 듯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각 운동의 영역들이 기존의 운동방식에서 각자 그러나 공통되게 어떤 막힘현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진보평론에서는 특집을 통하여 그러한 막힘현상에 대한 돌파구와 새로운 전망을 찾는 흐름 속에서 ‘적녹보라+’적인 인식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그를 위해 ‘적녹보라+’적 인식과 접근방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가부장제’ (혹은 ‘가부장체제’)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특히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주의적’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을 ‘남성중심적’ 혹은 ‘남근이성중심적’으로 운영되어 왔고 그로 인해 비판받아왔던 주류 진보진영이 자기성찰과 새로운 전망찾기의 계기를 마련하는 하나의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취지로 준비된 이번호 특집은 그동안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에 대해 꾸준히 작업해 왔던 연구자들의 진척된 고민을 모아 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독자들도 이 문제의식을 따라가면서 함께 이 논의를 풍부히 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특집을 위해 모인 글들이 하나의 궤로써 무리 없이 통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미리 밝혀야 할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각각의 영역이 그동안 일상적인 소통과 비판을 통해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집의 논문들은 서로 만나는 듯싶다가 미끌어지고 또 만나는 듯싶다가도 다시 미끌어지기를 반복하는 듯 보일 수 있다. 게다가 필자들의 위치와 말걸기를 하는 대상이 동일하지도 않고 말걸기 하는 대상의 층위조차 균질하지 않기 때문에, 저자들의 논지를 서로 엮어가면서 따라가는 것 자체가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특히 다양한 학자들에 대한 인용이나 일상에서는 낯선 용어들 때문에 현장운동에서 필요한 언어와 사유를 낚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좀 마뜩찮은 마음이 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하나만은 절실하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여러 시도들 중 하나로서 필자들의 사유를 정독해 볼 필요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 수천 년을 이어온 막힘현상(가부장제)을 뚫고 나가야만 하기 때문에…….

우선, “가부장적 통치체제와 노동자 운동의 조직문화”에서 신병현은 우리 사회 노동자 조직들의 가부장적 조직문화는 과거 운동의 자원이자 유산이었기에 마치 인식론적 장애가 되어버린 것처럼 극복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런데 가부장제는 지식-육체노동 차별, 인종차별주의와 동일한 근원을 가진다고 보고, 자본주의의 가부장제적 통치체제에 반대하는 해방의 정치와 노동자 정치가 절합되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것을 통해 구체적이고 대중적인 반자본주의 투쟁과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진보운동 조직들이 가부장제적 통치체제 반대를 용기 있게 선언하는 것만이 운동의 시작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박진희는 “생태여성주의의 가부장적 패러다임을 넘어서”에서 자연을 여성과 동일시하고 생태계에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환경과 여성의 불평등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재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생물학적 토대와 사회 경제 활동에서도 자연과 근접해 있는 조건으로 인해 생태나 환경 파괴의 문제들에 여성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생물학 결정론적 주장은 다른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반박되고 있다. 특히 페미니스트 과학학 연구자들은 생태여성주의자들이 서구 이원론을 비판하면서도 이원론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과학 지식에 대한 비판을 하지 못하고, 과학 지식에 의해 구성되는 여성에 대한 질문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자연 친화적인 여성 중심의 사회 질서 구축을 넘어, 다른 자연관과 과학 실천을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생태환경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과정에는 또한 과학의 민주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영진은 “여성주의 연구에 국가 연구가 필요한 이유”에서 가부장제를 해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젠더문제로 국한해 문제를 바라보기보다는 여성 정체성을 구성하는 계급과 인종, 나이, 신체적 능력 등 다양한 측면들의 상호적인 구조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복합적으로 구성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계급과 성적 억압이 상호 공모하고 있음을 밝히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가부장제는 여성/남성의 역할 분리, 공적/사적 영역의 분리라는 이분법적 인식론에 기초해 있으며,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정점에 공적인 정치제도가 국가이며 국가는 사회 세력들 간의 주요한 투쟁을 내부화한다고 본다. 그동안 여성주의 연구가 행한 근대 이분법을 해체하는 이론적 성과들을 국가에 대한 연구에 적극적으로 접목할 필요를 주장한다. 이미 현실의 복지국가와 관련된 쟁점들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질문하며, 역사적으로 공/사의 경계는 투쟁 속에서 확정되고 변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주의는 여성의 일 혹은 사적 영역의 일로 무시되고 억압되었던 문제를 공적인 문제로 정치화하는데 주요한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퀴어가족? 가족, 사회, 국가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서 서동진은 최근 동성애자로 대표되어 온 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과 같은 결혼할 권리, 가족을 이룰 권리를 주장하면서 가족형태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성정치학을 진행시키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서동진은 성소수자의 결혼과 가족구성이라는 쟁점이 다시 한 번 이성애자의 위치를 당연시하고 강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주권과 권리의 논의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와 ‘시민’에 대한 논의가 핵심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시평은 시인 송경동이 써주었다. 기존에 웹진에 기고했던 글인데, 장기투쟁사업장인 콜트-콜텍의 문제를 다룬다. 이 글에서 그는 해고노동자 당사자들의 문제도 담고 있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잔혹한 정리해고를 단행한 기업주가 설립한 콜텍 문화재단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음악인들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국제란의 문이얼은 “리비아 민주항쟁의 배경과 전망”에서 카다피군과 이에 대항하는 반카다피군 간의 교전이 계속되고 있고, 시민들의 항쟁이 속출하고 있는 리비아에 대해 그 속내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발언대에서는 올 초 혹한기 내내 주목을 받았던 홍대 청소용역노동자 투쟁에 대해 이상선이 다루고 있다. 홍대에서 시작된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은 고대, 연대, 이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의 공동 임금단체교섭 투쟁으로 나아갔고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모습을 보여 왔다. 보이지 않던 늙은 여성 노동자들이 이제 노동자의 모습을 드러내며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정세에 쓴 “핵발전의 두 가지 대안: 에너지 전환과 새로운 적록 연대”에서 김현우는 핵발전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체계와 친화성을 가지며, 반대로 지역분산형 에너지 생산-공급 시스템은 민주주의와 친화적이라고 한다. 그는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주체적 연대, 즉 적록연대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장한다.

김명록은 “금융위기와 금융중심의 성장체제, 그리고 한국”에서 금융위기 이후 규제강화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으나 규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투자와 고용, 인간의 삶의 안정성이고, 이것이 금융주도적 성장을 막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현재 금융위기 이후 국가가 오히려 금융자본의 눈치를 보는 현상이 강해졌고, 금융 중심의 성장은 더욱 강화될 조짐에 우려를 보낸다.

그 외 일반논문으로 김성윤은 “사회적인 것의 재-구성: 사회자본론, CSR, 자원봉사활동 담론들의 접합”에서 최근 들어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이라는 형용사가 담론적으로 어떻게 접합되는지에 대해 탐색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이재성은 “그가 지켜낸 것, 그를 지켜낸 것: 비전향 장기수 김석형 구술생애사의 재구성”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생애사 자료집을 통해서 구술자의 ‘서사’(narrative)를 재구성한다.

목 차

□ 특집 : 가족·사회·국가의 가부장제를 넘어서
* 가부장적 통치체제와 노동자 운동의 조직문화/ 신병현
* 생태여성주의의 가부장적 패러다임을 넘어서/ 박진희
* 여성주의 연구에 국가 연구가 필요한 이유/ 최영진
* 퀴어가족? 가족, 사회, 국가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서동진

□ 시평 :한국 음악인들에게 ‘콜텍 문화재단’을 묻다/ 송경동
□ 국제 : 리비아 민주항쟁의 배경과 전망/ 문이얼
□ 발언대 : 홍대 청소용역노동자 투쟁을 돌아보며/ 이상선

□ 정세
* 핵발전의 두 가지 대안: 에너지 전환과 새로운 적록 연대/ 김현우
* 금융위기와 금융중심의 성장체제, 그리고 한국/ 김명록

□ 일반논문
* 사회적인 것의 재-구성: 사회자본론, CSR, 자원봉사활동 담론들의 접합/ 김성윤
* 그가 지켜낸 것, 그를 지켜낸 것: 비전향 장기수 김석형 구술생애사의 재구성/ 이재성

□ 기획번역
노동이 핵심문제인가?: 노동과 성의 변화에 관한 차단된 관점들/ 잉그리트 쿠르츠-셰르프
태그

생태여성주의 , 가부장주의 , 퀴어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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