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에 따르면 수도 트리폴리는 대부분 점령됐다. 카다피 정권에 맞서 구성된 국가과도위원회 또한 자리를 잡았던 벵가지에서 트리폴리로 이전 중이다. 카다피의 행방은 확실치 않다. 트리폴리에서는 부분적으로 전투가 지속되고 있으며, 카다피의 거주지역에서 정부군은 여전히 반군에 맞서고 있다. 이들은 수백 명의 아프리카 용병으로 알려졌으며 수 많은 이들이 여기서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도됐다. 다수의 언론은 내전의 급격한 상황 변화가 나토군의 ‘지원’ 때문이라며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내전의 결과와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리비아 내전과 나토의 공중폭격이 남긴 상처
애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 그리고 수십 년 간 지속된 독재의 억압 아래 확산된 아랍의 봄은 리비아의 국경 또한 훌쩍 넘었다. 그러나 카다피의 살인진압, 반정부 시위대의 무장 그리고 나토군의 개입 아래 민중의 사회적 봉기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와는 다르게 내전으로 확대된다. 수많은 민간인이 나토군의 폭격에 사망했으며, 국가 기간시설은 파괴됐고, 수십만 명이 난민길에 올랐다. 나토군의 폭격 시 방사능을 유출하는 열화우라늄 사용 논란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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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토폭격에 의한 사망자를 둘러싸고 주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 http://www.jungewelt.de/2011/08-18/050.php?sstr=nato] |
특히 나토군의 공습과 폭격에 의한 민간인의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나토군이 애초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리비아 내전에 개입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부조리한 일이다. 이들은 리비아 정부군을 추격하고 폭격했으며, 반군을 훈련시켰고 무장시켰다. 다섯달 동안 나토군은 19,877번 출동했다.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했다. 독일 언론 <융예벨트>에 따르면, 8월 9일 리비아 남부 해안의 소도시 마저에서는 8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에는 33명의 어린이와 32명의 여성 그리고 20명의 남성이 포함됐다. 7월 30일에는 국가 방송사에 대한 공습으로 민간인 3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당했다. 8월 초를 기준으로 나토군이 개입한 이래 1천 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와 4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밖에도 리비아 정부 대변인은 주말 나토군의 대대적인 폭격에 의해 일요일 저녁 적어도 1천3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나토군이 반군의 길을 터주기 위해 군사시설만이 아니라 민간 시설도 폭격하고 있다고 지구화 조사를 위한 캐나다 연구소의 마흐디 나젬로아야(Mahdi Nazemroaya)를 인용해 이 언론은 덧붙였다.
권력투쟁과 석유시장 이권으로 뒤엉켜 있는 리비아
<융예벨트>는 또한 반군과 국가과도위원회 내 분열도 심각하다고 전했다. 7월 28일 군대지휘자 압둘 파타 유네스가 암살된 이후 과도위원회에서의 합의는 어려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사망은 나토군이 군사적 주도권을 쥐게된 계기였기도 했다. 유네스의 사망 이후 계속해서 원인모를 죽음도 발생했다. 과도위원회와 지역에서 전투에 참여한 반군과의 관계도 확실치 않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 출신 저널리스트 페페 에스코바는 반군은 가장 큰 반정부세력은 몇 년 동안 사우드-가(家), CIA, 프랑스 정보기관의 후원을 받은 리비아구세국민전선이며,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는 리비아구세국민전선에다 탈영병을 조금 덧붙인 정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애초 리비아 민중의 저항은 경찰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권변호사 패티 타르벨(Fethi Tarbel)를 체포하며 불거졌다. 그가 체포된 지 이틀 후인 2월 17일에는 분노의 날이 조직됐으며 이때 리비아 전역에서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였다. 튀니지와 이집트 정권의 몰락으로 인하여 위기감을 가졌던 카다피 정부는 시위자들에게 총격을 가했으며 이에 따라 시위 초반부터 수십 명이 사망했다. 돌아보면 무색해진 일이다. 그보다 내전의 현재는 반군 내 권력 투쟁과 석유시장을 둘러싼 이해관계 그리고 나토군 배치를 주도한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의 이해로 엉켜있다.
유엔은 대책회의를 소집했으며, 유럽연합은 22일 브뤼셀에서 리비아특별회의를 갖고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에 국가재건 지원을 약속했다. 첫번째 단계는 동결된 석유회사와 은행의 계좌 해제일 것이라고 독일 언론 <타즈>는 내다 보았다. 반군이 트리폴리에 진입한 후 유럽 리비아 관련 석유 주가는 오르고 원유 값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