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중국의 노동자 투쟁

[투쟁하는 세계노동자](2)

2011년 6월 20일 중국 광저우시 판위구에 소재한 한국기업 (주)시몬느의 화룽공장에서 4,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투쟁을 벌였다. 6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시몬느의 화룽공장은 부지의 절반가량이 녹지로 꾸며진 공원 같은 분위기로 광둥성의 우수 모범공장으로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중국 내 한국기업의 노동조건과 현실

  중국 광저우시 판위구에 소재한 (주)시몬느의 화룽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출처: 중국 웨이보]

경기도 의왕시에 본사를 둔 시몬느는 1987년에 설립된 중견기업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명품 브랜드의 핸드백을 생산하여 연간 3억 달러가 넘는 수출고를 기록, 미국 고급 핸드백시장의 65%, 전 세계 고급 핸드백시장의 30%를 차지하며 세계 1위 명품 핸드백제조업체로 이름난 곳이다. 1992년에 중국 광저우시에 첫 해외공장을 설립했고 1997년에는 인도네시아, 2009년에는 베트남으로 해외공장을 확장했다.

시몬느가 OEM 생산하는 명품 브랜드로는 코치, 버버리, DKNY, 지방시, 마크 제이콥스, 스텔라 맥카트니 등이 있으며, 루이비통과 샤넬 등에서도 비밀리에 제작을 의뢰받아 납품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 왔다.

시몬느의 생산공장 중 가장 규모가 큰 화룽공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중국 내륙지역에서 온 여성 농민공들로, 광저우시의 2011년 최저임금인 1,300위안에도 미치지 못하는 1,100위안(약 18만 원)을 월 기본급으로 받았다. 그나마 사측이 임금에서 사회보장보험료 200위안과 식비 100위안을 제하고 있어 실제로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나날이 치솟는 대도시의 주거비와 생활물가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월 기본급을 최저임금인 1300위안으로 인상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동 환경도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에 12시간씩 서서 일하면서 4시간 마다 한 번씩 쉬는 시간 외에는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고, 남자 관리자들이 여자 화장실에 수시로 드나들며 감시하거나 휴대폰을 압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파업이 일어나기 전인 2011년 5월 13일, 시몬느의 주 고객인 뉴욕의 명품 브랜드 코치(Coach)는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이윤이 감소할 것이라며 2014년까지 중국 생산을 40~50% 줄이는 대신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 노동력이 싼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을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반면에 2011년 11월 19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코치는 2011년 중국 내 매출이 2010년의 1억8천5백만 달러에서 3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며 2014년까지 중국 매출 5억 달러를 달성하며 최대시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치 제품은 명품 브랜드 중에서는 저가로 중국에서 코치 가방은 600위안(약 10만원)에서 19,950위안(약 350만원) 사이에 판매된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하루 12시간 일하면서 두 번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를 가진 중국 여성 농민공들과,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때문에 공장을 옮기겠다고 하면서도 중국을 최대 시장으로 공략하겠다는 미국의 명품 브랜드, 형편없는 식사에 노동자 월 기본급의 10%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는 한국 기업인의 모습은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체제의 그로테스크한 한 단면을 보여준다.

중국 진출 한국기업 내 중국노동자 투쟁

중국의 빈부격차 확대와 물가인상,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서 중국 내 노동자투쟁이 격화되고 있다. 2010년 5월 중국 광둥성 포샨시에 있는 혼다의 난하이 공장에서 중국 노동운동의 전환점이라 일컬어지는 노동자 파업이 일어난 이후 중국의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2010년 5월 31일 혼다 난하이공장의 파업 현장에 상위 지역공회 간부들이 들이닥쳐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출처: caradvice.com.au]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혼다 난하이 공장의 파업으로 자극을 받은 일련의 노동자파업이 주변 지역으로 들불처럼 퍼졌던 2010년에는 광둥성에 소재한 한국기업 10군데에서도 파업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 중에서 베이징현대자동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성우하이텍과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아성전자의 사례가 알려져 있다.

2010년 5월 28일 베이징현대자동차에 범퍼와 철제 빔 등을 납품하는 성우하이텍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켜 베이징현대자동차의 완성차 생산라인이 3일간 중단되었다. 사측은 3일 만에 임금 15% 인상에 합의했다. 2010년 6월 7일에는 후이저우에 있는 한국 아성전자 공장에서 노동자 2000여 명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들어갔다.

성우하이텍에 파업이 발생하자 베이징 현대자동차의 사장이 직접 공장을 방문하여 현장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중국 내 노동자통제의 방안으로 각 공장에 중국의 노동조합인 ‘공회’를 설립하라고 중국 내 협력업체들에 주문했다는 점을 눈여겨 볼만하다.

중국 공산당에 의해 통제되는 중화전국총공회는 중국 내 유일한 전국 노동자 조직으로 그동안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당의 정책을 노동자들에게 전달하고 사측 입장에서 노동자들을 통제, 중재하는 역할에 집중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혼다 난하이공장의 파업을 포함하여 최근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노동자투쟁 대부분이 기존의 공회를 배제한 채 벌어지는 와일드캣 파업이며, 혼다 난하이 공장에서 보듯이 ‘공회 민주화’를 요구조건으로 내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 한국계인 중국 내 협력업체 경영자들이 ‘노조’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공회 설립을 요구한 베이징 현대자동차의 사례를 통해 노조를 통한 노동자 관리를 경험해 본 대자본이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얼마나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는지 엿볼 수 있다.

2011년에도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의 노동자 파업은 이어졌다. 2011년 6월 8일에는 지린성 창춘에 위치한 금호타이어 공장에서 노동자 400여 명이 파업을 벌여 나흘 만에 사측과 임금 30.8% 인상에 합의하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12월 16일에는 LG디스플레이가 2009년에 샤먼시에 세운 합작 공장을 가동 중단하고 철수하겠다고 발표하자 노동자들이 갑작스러운 공장 가동 중단에 보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고, 12월 26일에는 난징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8,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해 생산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본의 세계화, 노동운동의 과제는?

노동자들은 매년 월 기본급의 300%씩 지급되던 연말 상여금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중국인 직원들에겐 100%만 지급되었지만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월 기본급의 600%가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파업은 연말 상여금을 200% 지급하는 것에 합의한 후 사흘 만에 종료됐다. LG디스플레이 공장의 파업은 순식간에 중국 내 최대 포털서비스인 바이두의 인기검색어에 오르며 중국 네티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연말 상여금 차등지급에 항의하며 난징 소재 LG디스플레이 공장 노동자들이 성탄절 장식물을 넘어뜨린 채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중국 웨이보]

2010년 5월 혼다 난하이 공장의 파업 이후 중국 정부는 파업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도 통제령을 내렸다. 2011년 6월의 시몬느 화룽공장 파업만 하더라도 규모나 내용 면에서 주목할 만한 사안이었지만 중국 내 어느 매체에는 실리지 않았다.

제조업체 중심으로 노동자투쟁이 계속되고 택시와 버스 등 운수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전국에서 일어났던 지난 2012년 2월의 경우도 중국 언론이 다룬 파업 건수는 총 21건에 불과하다. 중국 언론에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투쟁이 진행되었고 또 현재도 진행 중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의 파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내 보수언론과 경제연구소 등에서도 일찍부터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U턴 또는 P턴 가능성을 얘기해 왔다. 일부는 국내로 U턴하는 중국진출 기업들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각종 세제혜택과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주문하기도 한다.

자본이 더 싼 노동력을 찾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전 세계 노동자들을 출혈경쟁에 내모는 지금, 노동자들도 국경을 넘어 서로를 살피고 보듬는 것만이 이 갑갑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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