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다 괜찮다 토닥여줍니다

[식물성 투쟁의지](22) 김진숙 동지와 이소선 어머니의 만남을 생각하며

솥발산을 떠난 이소선 어머니를 기다리며 김진숙 동지는 고공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걸음은 지는 날빛을 따라 뉘엿뉘엿합니다

낮과 밤의 경계, 경계에 선다는 건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김진숙 동지는 세상의 눈물에 대해 유별나게 민감한 귀를 가졌나봅니다
언제나 조합원들과 함께 있고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느끼는 저 야윈 몸,
세상에 다 퍼주고도 찬물같은 청청한 영혼입니다
마침내 전혀 다른 세계로 펼쳐지는 시간 속으로 번져갑니다

번지는 것은 칼날 같은 경계가 아예 없습니다.
스미고 품어 하나 되는 시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김진숙 동지는 투쟁의 절정에서, 이소선 어머니는 한 시대의 중심에서 서로를 향해 번져갑니다

85크레인은 지난 244일 동안 새로운 삶 쪽으로 차츰 기울었습니다
방울토마토가 붉게 익었고 초록의 치커리가 세상을 향해 잎을 펼쳤습니다
하나 같이 부드러운 곡선을 몸에 지녔습니다
저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이소선 어머니가 85크레인 앞으로 오셨습니다

이소선 어머니는 85크레인에 김진숙을 두고 어찌 하늘 길 가실까요?
당신의 목숨과도 바꾸고 싶은 애틋함입니다
이소선 어머니, 생의 마지막 투쟁은 저 야위고 여린 몸을 꼬옥 안아주는 것입니다
괜찮다 다 괜찮다 토닥여 주는 것입니다
따뜻한 눈물로 지어진 이 포옹은 모서리 하나 없는 둥그런 원입니다
다 품었으나 관대한 것도, 결코 비판을 거두어들인 것도 아닙니다
“단결하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되어 싸워야 한다”
이소선 어머니의 마지막 숨결,
이 둥그런 원은 죽음의 시간에서 웃음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통로입니다

저 사람의 마을에 불이 켜지고 조합원들이 가족들과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고 있습니다
소박한 밥상 같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저토록 독하고 단호합니다
강철이어서가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정성스런 마음은 위계도, 차별도, 지역도, 국적도 없습니다
흐르고 펼쳐지고 번져서
투쟁의 절정이 되고 미래로 열려진 한 시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자기 힘의 한계를 갖지 않습니다
85크레인에 불이 꺼져도 서로의 애틋한 마음의 빛으로 소통하는 법을 압니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이토록 누구의 안부를 간절하게 바란 적이 있습니까?
손 흔들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 시간이 우리 생의 아름다운 절정입니다
고정되어 있고 위계를 갖는 모든 것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바람의 내륙입니다

85크레인은 녹슬어가도 김진숙 동지는 방울토마토와 치커리와 함께 푸르러갑니다
이소선 어머니는 괜찮다 다 괜찮다 토닥여줍니다
244일 동안의 고단한 노동이 마침내 깔깔깔깔 싹이 돋는 놀이가 되고
부드러운 흙을 움켜쥐는 집단적인 율동이 되며
땡땡하고 동글동글한 몸과 몸의 신명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해 펼쳐진 공동체의 노래가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녹슬어가는 강철시대마저 너끈하게 품고 푸르게 푸르게 꼬뮨의 시간으로 자라납니다
오늘 이소선 어머니는 이 푸르름에 깃들어 함께 미래가 되었습니다 (2011년9월9일)

태그

이소선 , 김진숙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조성웅(시인)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