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로 사라지는 '물만골'

[최인기의 사진세상](16) 부산 연산동 지역공동체 '물만골'


‘물만골’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물이 마를 줄 몰라 ‘물만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 이곳을 알게 된 것은 2000년 초반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 노점상 문제로 부산을 방문한 후입니다.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차라 시간을 내 둘러보기로 작정하고, 시청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중 한 중년 남자 분에게 ‘물만골’을 어떻게 가냐고 물으니 마침 “그곳에 산다. 누굴 찾아가느냐”고 되레 질문하셨습니다.


생활한복이 잘 어울리고 초면인데도 상냥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분이셨습니다. ‘물만골’ 공동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방문 중이라고 말씀드리고 이끄는 대로 마을버스에 올랐습니다.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달렸을까요? 시청 앞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작은 골짜기를 지나 허름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곳이 펼쳐졌는데, 참으로 푸근하고 소박한 정경이었습니다. 함께 동승한 남자 분은 마을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그때 처음으로 ‘물만골’ 공식 명칭이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 공동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을 뒷산에 오르니 푸른 나무들 사이사이 저마다의 집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고, 멀리 부산시청 부근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아쉽게도 그날은 열차시간 때문에 지체할 수 없어 서둘러 서울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방문하기로 다짐을 했지요. ‘물만골’에 대한 아쉬운 첫 기억이었습니다. 그 후 서울을 비롯해 전국이 개발문제로 몸살을 앓자 마을공동체와 마을 만들기가 화두가 되면서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물만골’도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곳을 방문한 것은 2005년 12월경 부산에서 개최된 아펙정상회담이 시작되던 때입니다. 당시 부산은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노숙인과 철거민 그리고 노점상들이 심각하게 내몰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국제적인 행사에 이들의 모습이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아펙 반대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부산대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회의장소인 동백섬 근처 광안리에서 빈민단체들이 모여 집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위해 방한한 일본의 빈민운동 단체와 국제노점상단체 코디네이터 그리고 한국의 단체들이 ‘물만골’을 견학하게 됩니다. 이날 우리를 맞이해 주신 분은 초대 운영위원장을 지낸 이희찬(당시 나이 43세) 씨였습니다. 처음 ‘물만골’을 방문했을 때 살갑게 맞아주셨던 생활한복의 남자 분이십니다.


마을 이곳저곳 견학을 마친 다음 이희찬 씨 댁에 들려 차를 마시며 마을의 사연과 변화를 담은 영상물을 시청했습니다. 다음은 당시의 기록과 메모입니다. ‘물만골’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피난민이 처음 정착하며 만들어지기 시작한 곳이라는군요. 1970년대 부산 지역의 재개발지역 주민과 농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430가구, 1,500여 명이 정착하였답니다. 이곳의 파란만장한 사연은 1991년 부산시청이 ‘물만골’에 대규모 공원 건설을 계획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다음 해 곧 철거가 시작되자 마을 주민은 부산지역학교에서 지원 나온 학생들과 연대해 처절한 철거반대 싸움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끝내 마을을 지켜내지요.

잠시 평화롭던 마을도 1998년경 부산시가 마을을 관통하는 4차선 도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시 위협에 빠집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터전을 지키기 위해 거주하는 땅을 사들이기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곳에 사는 430여 가구 주민은 많게는 100평부터 10여 평까지 한푼 두푼 모아 땅을 매입하기 시작합니다. 비용은 주민들의 연대 보증으로 신용대출을 받거나 한 세대당 월 10만 원의 적립배당액을 새마을금고에 저축해 모은 돈으로 토지매입 잔금을 갚아가며 해결합니다.


‘물만골’은 2002년 황령산 생태복원 및 쓰레기 배출 없는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 부산시가 주는 ‘부산녹색환경상’을 받거나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마을’로 지정받았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물만골’은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민과 경제적 자립기반을 만들고자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등 마을 만들기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는 방과 후 무지개놀이방과 ‘물만골’ 공부방에서 해결을 하였고, 무엇보다 감동스러운 것은 물만골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부산의료원 의사인 김이수(당시 41세) 씨는 아예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부산의료원 진료봉사단’을 구성해 주민 의료를 담당하고 ‘물만골’에서 자란 치과의사 권윤수(당시 41세) 씨도 주민의 치아건강을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제는 ‘물만골’을 마음대로 팔고 살 수 없습니다. 공동지분으로 등기했기 때문이죠. 땅을 팔 때는 공동체에만 팔도록 마을 주민의 동의를 얻어 규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사들인 땅은 개인의 지분만 인정하는 공동소유로 등기돼 있습니다.”


이희찬 씨의 모습에서 마을의 희망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들의 마을공동체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그 후에도 부산을 내려갈 때마다 기회가 되면 마을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그냥 마을을 둘러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을버스 정류장에 앉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열차시간에 맞춰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간혹 마을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드문드문 듣던 차에 부산의 활동가들에게 이희찬 씨가 2008년도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물만골’ 주민이 매입한 땅은 2009년도 11월 제4차 공동부지매입 사업을 끝으로 약 3만2천여 평인데요. 당시 실무를 총괄했던 권병안 씨(50세, 한쿠바교류협회 사무국 직원)를 통해 자세한 소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물만골’ 공동체는 소위 ‘생태 자립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기획해 국토해양부로부터 약 1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생태 자립 마을 만들기’에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마을 주민 일자리 만들기 사업, 골목길 정비, 황령산 생태 산책로 정비, 하천정비, 마을 내 꽃길 조성 사업 등을 시행하였고, 각종 생활쓰레기 약 10여 톤을 수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태 마을 만들기에 대한 롤 모델을 찾기 위해 생태마을 만들기 전문가를 초빙하여 주민강좌를 수차례 시행합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의 반대 목소리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11월 마을 공동 시설 및 생태 체험 자연학습장 만들기에 필요한 공공부지를 확보하는 일환으로 1만8천 평 부지를 매입하는 사업을 실시했으나, 개발을 원하는 주민에 의해 기존 계획을 철회하고, 부지 전부를 구입 원가 그대로 ‘물만골’ 주민에게 양도했습니다. ‘공동체’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 간 끊임없는 마찰과 소용돌이에서 2011년 12월 위원장 임기가 만료되었고, 이후 공동체 위원장을 맡아 운영할 후보가 나서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2년에 부산사상구의 노점상 문제로 여러 차례 부산을 방문했고, 따라서 ‘물만골’도 수차례 들렀습니다. 10년 전 처음 ‘물만골’을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마을은 아름다웠고 한결같은 모습이지만 평상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주민들은 예전과 다르게 고성이 오가고 서먹서먹한 분위기였습니다. 일단 ‘물만골’은 도시계획상 공원지구로 묶여 있습니다. 집을 보강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헐고 새로 짓는 것은 불가능하고 몇 년 전 전국적으로 집값이 뛰자 일부는 재산상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한 듯합니다.


다시 권병안 씨의 말에 따르면 일부 주민이 공동체의 합의 없이 ‘물만골’ 인근 산 176의 12 일대 3,300여 평을 매입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산광역시 및 연제구청은 황령산 순환도로 개설에 관한 도시계획 시행이 종료되는 2010년에 기존 계획 연장을 선언하며 주민설명회를 강행했습니다. 마을 내 일부 여론은 개발이라는 장밋빛 꿈에 빠져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개설에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도로 개설은 예산 부족과 부동산침체로 시행이 미뤄졌고, 현재 철거 예정 가옥들은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거나 정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만골’ 마을의 지형 조건은 계곡과 계단식 구릉지로 형성되어 건축물 신축을 위한 지반 조성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투여됩니다. 또 고도 제한으로 (4층 이하만 건축 가능한 자연취락지구 시행 2015년 1월부터) 재개발을 통한 개발 이익을 예측할 수 없어 재개발 참여를 희망하는 업체도 없는 상황입니다. 끝으로 마을 주민 스스로 정비할 수 있는 재정적 조건도 없는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정부나 지자체에 의존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그 어떤 전망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물만골’ 마을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이곳에서도 개발은 공동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욕심에 불을 댕겨 ‘물만골’ 삶에 분열과 상처를 낳게 하였습니다.


철거에 대응하던 주민이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땅을 사서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이기에 그동안 ‘물만골’은 빈곤층 주거문제 해결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습니다. ‘마을공동체’ 통해 능동적이고 의욕적으로 마을 현안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해 다른 지역에도 귀감을 주었던 ‘물만골’입니다. 이른 봄 골목사이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따라가다 보면 작은 넝쿨들이 새록새록 피어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한여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골목길을 혼자서성이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시원한 물 한잔 청해도 아무렇지 않은 곳입니다. 발갛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감들은 또 얼마나 풍성한지 모르겠습니다. 마을 모습이 산속에 포근히 안겨있어 겨울에도 아늑한 골짜기 사이로 물이 흘러내립니다. 그동안 ‘물만골’은 거추장스럽고 요란한 모습보다 주민 스스로 어떻게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가꾸어 나갈 수 있는지 가능성을 잘 보여주었던 곳입니다. ‘물만골’이 돈독해지고 새롭게 도약해 보기를 기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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