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적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시(詩)적 저항연습

[새책] 봉기 (프랑코 베라르디 저, 유충현 역, 갈무리, 2012)

그리스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이르는 유럽의 경제적 변방의 연쇄적 위기로 인해, 유럽의 경제 통합이라는 기획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 위기와 시차를 두고 발생한 일련의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두 가지 상황이 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요인으로, 신자유주의로 가속된 세계화의 결과로서 더 긴밀하게 통합된 전지구적 경제체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세계경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두 경제주체(미국과 유럽)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재채기는 유럽의 독감을 유발한다.

두 번째로 실물 경제와 동떨어져서 자기증식을 통해 위태롭게 팽창한 금융공학의 확대된 비중이다. 독일처럼 고부가가치 제조업 중심으로 튼튼한 실물경제 기반을 가진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금융 위기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다. 금융산업에 투자된 자본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취약한 기반 위에서 금융조작을 통해 규모를 키우는 경제는 필연적으로 그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찢겨나가며 붕괴한다. 수많은 신용거래를 통해 순환하며 팽창하는 금융의 규모는, 수많은 허황한 거래를 뒷받침하는 보잘것없는 실물이 어느 약한 고리에서 결락되는 순간, 그 초라한 맨얼굴을 드러내며 연쇄적인 붕괴를 야기한다. 이 책의 주제는 바로 이렇게 실물경제와 유리되어 끝없이 팽창하면서 필연적인 파국을 예약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다.


이 책의 가장 개성 있는 특징은 이러한 분석에서, 금융의 대상인 화폐와 그 화폐의 교환대상인 실물을 기표와 기의의 관계로 해석하면서 드러난다. 닉슨이 달러화의 태환을 중지시키면서 화폐는 실물과 유리되고, 그 자체 추동력에 의해 팽창한다. 저자는 이러한 금융의 팽창과정을, 랭보를 포함한 20세기 초 상징주의 시인들의 방법론과 겹쳐놓으며 그 구조적 동형성에 주목한다. 그들은 말과 사물 간 지시-외연 고리를 끊어버리고 언어의 함축적 능력을 과잉 내포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폭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징주의 시운동의 방법론이 이 불길한 경제적 상황의 예술적 선취며 예언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 근거로서 랭보가 시적 방법론으로 제안한 용어인 규제철폐(deregulation)가 신자유주의와 통화주의 신봉자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이렇게 의미와 유리되어 떠돌던 언어는 금융자본의 기획에 의해 그들이 만들어놓은 기술-언어적 자동기제에 의해 재구속된다. 이 시점에서 상징주의의 시적 방법론은 다시금 이 자동기제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효과적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그것이 금융자본에 의해 조작된 지시-외연의 구속을 끊어낼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통해서, 그들이 설정한 프레임을 돌파하는 동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런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노출한다. 첫 번째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야기한 원인에 관한 분석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육체적, 기계적 노동보다 지적노동(저자는 이것을 인지노동이라고 부른다)의 비중이 커지는 정보화시대에 인지노동자의 정서적 정보처리 한계에 의해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수많은 닷컴기업이 몰락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닷컴기업의 몰락은 애초에 아직 이 산업이 충분한 이윤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적 전망이 거품을 형성했고, 시장이 판단을 내리면서 이 거품이 걷혔기 때문이다. 시장이 조정된 다음, 닷컴 기업들은 다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레이 커즈와일, 2006) 조만간 그것이 인지의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 한계에 부닥친 인지노동의 부작용으로서, 암페타민이나 프로작과 같은 향정신성 약물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미국 화이트칼라에 대한 향정신성 약물 처방은 90년대 초 미국 증시불황 직전에 가장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인지-성격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에 대해 정신적 부작용으로 알려진 스트레스와 불안감의 인위적 해소가 결국 커다란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온 한 가지 예로 해석한다.(데니얼 네틀, 2007) 즉 약물의 처방은 정보화사회 진입에 따른 강도 높은 인지노동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몇 년 전의 경제적 상황이 야기한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또한 경제적 성장 한계에 대한 공공연한 분위기 확산이 1972년 로마클럽의 발표를 통해 힘을 얻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최소한 10여 년 전부터 사실이 아니다. 로마클럽의 주장은 이미 발표시점부터 과장 시비가 있었으며, 더욱이 현재는 그 구체적 내용들이 전혀 설득력이 없다. 적어도 이러한 문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어떤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그 근거를 충실하게 조사하고 정리해야 한다.

두 번째는 포스트모던한 집필 성향이 있는 저자들이 공통으로 노출하는 고질적인 문제다. 저자는 “불확정성의 원리”니, “프랙탈”이니, “각인”이니 하는 물리학이나 심리학 등 전문과학분야의 용어들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실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비유적으로도 적절치 않은 사용이다. 이런 용어들이 설득력 있는 비유가 되려면, 비유가 맥락에서 논리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지닐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문제점은 달리 해석할만한 여지가 있다. 저자는 앞에서 20세기에 시도된 상징주의 시적 방법론이, 미래에 이루어질 상황의 선취로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어떤 예술이 현실을 해석하는 강력한 방법으로서 그 현실의 모습을 형식적으로 충실하게 재현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이 혹시 이런 방법을 통해 현시대와 상황을 재현하면서 농담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일화가 있다. 저자가 세기말 Y2K의 상황에서 그것이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자신의 신용을 모두 걸었다가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인데, 그 뒤에 전개되는 9.11에 관한 다소 황당한 해석과 함께 책의 분위기에 유머를 덧대어 준다. 베를린 공항에서 행복해 보이는 독일인들과 자신의 불행을 대비시키는 단상에서, 유럽의 경제 불평등에 대한 논의로 옮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로 이 담론은 작가가 제시한 프레임에서도 벗어나 자유롭게 부유한다. 아마도 이러한 대목들을 읽고 난 이후에는, 이 책의 모든 주장을 문자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님을 누구라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희화화시키는 농담은 아이러니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와 냉소는 둘 다, 자동화-기제에서 언어를 해방시켜 자본권력이 짜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인식의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하지만 냉소가 전망의 실패에 대한 상처로 강고한 체제와 전복의 전망을 모두 공격적으로 비웃으며 자신의 투항을 무기력하게 인정하는 반면, 아이러니는 애초에 그런 독단적 전망에 대한 기대 없이 대화 상대의 지성을 신뢰함으로써 따뜻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자본권력의 프레임을 돌파하는 힘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꼭 인지-금융자본이 덫 놓은 게임뿐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근대적 기획에도 실패해서 전망을 잃은 채, 냉소하며 전근대와 탈근대의 협공에 무기력하게 투항할 위기에 처한 현실에 직면한 우리의 상황을 돌아볼 때, 저자가 제시하는 이러한 아이러니의 시적 방법론과 전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시와 예술은 언제나 자본과 억압의 지배권력을 돌파할 힘을 제공해왔으며, 앞으로도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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