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지사 선거를 돌아본다

[일본사회운동의 편지](3) 정치공학에 몰두한 선거전

도쿄에 폭설이 내린 지난 2월 9일, 도쿄도지사 선거가 치러졌다. 눈의 영향도 있었고, 투표율은 불과 46.14%로 사상 3번째로 낮았다. 개표 결과, 보수계의 마스조에 요이치가 약 211만 표를 얻어 당선됐다. 결국 또 도쿄는 보수파 지사를 택했다.

선거 결과만을 보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도지사 선거는, 일본의 운동진영, 특히 원전반대운동에 심각한 문제를 던졌다. 간단하게 말하면, "탈 원자력 발전"을 내걸고 입후보한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와 역시 "탈 원자력 발전"을 강하게 주장하는 호소카와 모리히로 후보 간의 단일화에 실패하고 이에 따라 아베 정권과 가까운 보수의 마스조에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것이다.

[출처: 아사히신문 캡처]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는 특히 원전 문제와 아베 정권에 대해 찬반을 묻는 중요한 선거라 여겨졌다. 그런데 원전 반대 운동에 몰두해 온 많은 풀뿌리 활동가, 그리고 사민당과 공산당 등 좌파 정당은 우쓰노미야 후보를 지지한 반면, 원전반대운동의 중심에 있는 운동진영의 원로들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호소카와 후보를 지지하는 등, 운동진영이 두 갈래로 갈라져 버렸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우쓰노미야 겐지와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이름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간단히 설명하면 우쓰노미야 후보는 변호사로, 빈곤문제에 매진했던 시민운동가이다. 시민운동의 일선에서 빈곤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정부나 기업과의 투쟁을 이어가, 운동진영 내에서는 강한 신뢰를 받는 인물이다. 한국이면 박원순 서울시장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후보는 1993년에 총리대신을 역임한 인물이다. 정치가로써는 자민당과 사회당에 의한 "55년 체제" 라고 하는 정치 상황을 타파한 보수계 자유주의 개혁파라고 불린다.

1993년 총리 취임 당시 일본에는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일본 정치를 개혁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고, 총리, 호소카와 정부의 지지율은 70%를 기록할 정도였다. 보수계의 정치가이지만 리버럴한 측면도 있어 예를 들어, 역대 일본 총리로서는 최초로 "아시아 국가들의 전쟁 책임"을 공언하기도 했다.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던 보수계 리버럴 개혁파였다는 점에서는 호소카와 후보가 76세라는 고령에, 이미 은퇴한 정치가라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의 안철수 의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박원순과 안철수 간에 단일화가 성공한 것을 생각하면, 도쿄도 지사 선거의 결과는 정말 유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일화의 실패는 언제나 "분열" 이라고 하는 좌파의 고약한 입버릇으로 정리하기에는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원자력발전 반대운동을 둘러싼 논의

이번 패배는 일본의 원자력발전 반대운동 조직화가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그 후 일어난 후쿠시마 제일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에 따른 심각한 방사능 피해는 일본의 많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원자력 발전소는 필요 없어" 라는 생각을 안겼다. 매주 10만 시민이 자발적으로 총리 관저 앞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하는 등 원자력발전 반대운동은 지금까지 없었던 고조를 보였다. 정부는 원전을 재가동시키려고 시도했지만, 대규모 시위의 힘은 정부에게 재가동을 포기하게 했다.

그러나, 시위에 나온 많은 시민들은, 이전부터 원자력 발전 반대를 주장해온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방사능오염에는 좌익과 우익의 구별은 없다.

원전 반대를 외치다

사람들의 대다수는 보통 시민이었지만, 자민당 지지자도 있었고, 공산당 지지자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종군위안부는 매춘부다" 라고 주장하는 극우와, 1970년대에 "혁명"의 이름 아래에서 유혈테러를 행했던 극좌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주장도 다양하다. 예를 들면, 지금 당장 모든 원자력 발전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시간을 들여 원자력 발전을 중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방사능이 조금 검출되더라도 후쿠시마의 부흥을 지원하기 위해, 오염지역의 농산물을 먹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식품에는 1베크렐의 방사능도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염지역은 가능한 한 오염을 제거하고 주민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오염지역의 완전한 오염 제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타 지역에 이주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어버린 일본에서, 각자가 놓인 조건 속에서 현실의 생활을 이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단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원자력발전 반대운동은, 몇 가지 기존 정치세력과 유력한 시민단체와 그룹 등이 "원전 없는 미래"를 위해 완만한 제휴를 취하면서 운동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목표로 하는 "미래"에는 원자력 발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일 뿐, 그 이외의 통일적인 미래의 구체적인 상은 그릴 수 없었다.

원자력발전 반대, 혹은 탈원전 운동을 굳이 크게 나눠보면, 원자력 발전에서 자연 에너지로 전환했던 독일을 시작으로 하는 유럽의 시민주의적인 방향을 목표로 하는 생각과, 미국처럼 셰일 가스 등 값싼 대체 에너지를 사용해, 자본주의적인 경제적 합리성 안에서 원자력 발전을 중지시켜 나가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

기존의 원자력 발전 반대 운동은, 유럽형의 시민주의적인 생각이 주류였다. 대표적으로는 사민당과 공산당 그리고 정치세력으로는 아직 작지만 녹색당 등의 환경 친화적 사회를 목표로 하는 세력과, 이들의 정치 세력 주변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이 있다. 특히 사민당은 당초부터 핵발전과 핵무기는 같은 종류의 기술로 규정하고, 평화적인 복지사회를 위해 원전에 반대해 온 역사가 있다. 오늘날에는 많은 진보적 정치 세력은 저 에너지, 저 성장임에도 자연의 힘을 활용하는 것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원자력 발전과 같은 집중형 에너지는, 자본이 요구하는 대차대조표 상의 이익을 위한 존재로, 과도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사회적인 부담이 된다. 사회적인 연대, 친환경적인 생산방식을 통한 복지사회에 원자력 발전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이번 도지사선거에서는, 우쓰노미야 후보가 사민주의적인 도쿄 미래를 그리는 가운데, 탈원전을 내걸고 입후보했다. 사민당과 공산당, 녹색당 등의 진보적 정치세력과, 오랫동안 진보적인 시민운동에 참가해 온 상당수의 활동가가 우쓰노미야 후보를 강력히 지지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과 달리 후쿠시마 이후에 주로 보수 진영에서, 원전은 경제적 합리성이 없기 때문에 원전을 멈추자고 하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일본처럼 지진을 필두로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에서는, 원전의 안전확보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 그리고 사용이 끝난 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해서 경제적인 이익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를 경험했던 일본 사회에서는 강하게 설득력이 있다. 원자력 발전을 추진해 온 자민당이라고 할지라도, 내심으로는 원자력 발전이라는 귀찮은 것을 떠맡은 것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다만, 원자력 발전이라는 시스템은 백년 뒤의 미래를 전망한다. 지금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면, 어떤 이득도 받을 수 없는 채 백년 치의 비용을 당장 청산해야만 하고, 장기간 디플레이션으로 취약해진 일본의 경제에 있어서 치명적 타격이 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보수 진영에서 탈원전의 움직임은, 그처럼 비용 지불을 신자유주의적인 개혁과 경쟁, 그리고 회계적인 수법을 구사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제안이다.

호소카와 후보는 은퇴했지만 개혁파의 보수정치가로서 지금도 대중적인 인기의 높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수상의 지원으로, 보수 측에서 탈원전을 걸고 입후보했다. 즉, 같은 "탈원전"을 내걸면서, 미래의 희망이 전혀 다른 두 명의 후보가 탄생한 것이다.

[출처: 일본 레이버넷]

또 하나의 쟁점…"아베 반대"

도지사선거에서는, 원자력 발전 반대 이외에도, 현재 아베정권과의 관계가 또 하나의 쟁점이었다.

지방자치체의 수장선거라고 해도, 도쿄도의 연간 예산은, 한국의 국가 예산에 필적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고, 도쿄도가 가진 권한도 넓은 만큼, 도지사의 방침이 국정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하면, 아베정권이 진행하는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의 방침은 크게 피해를 입는다. 원자력 발전 이외에도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한 개발과, 도쿄에 예정되어있는 각종 특구 설치 구상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새로운 도지사는 경우에 따라서 아베정권을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아베정권의 발목을 잡고 앞 길을 방해할 정도는 된다.

때문에 자민당과 공명당의 집권 여당은 꼭 이겨야 하는 선거였고, 아베정권의 우경화에 대항하는 세력으로서도 꼭 이겨야 하는 선거로 평가되어 왔다.

아베정권은 시대착오적인 정치관을 갖는 정권으로써 전쟁책임의 부정, 종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불성실한 대응,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대립을 부추기고,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베정권에 제동을 거는 도지사를 선택하는 것은, 원자력 발전 반대에 필적하는 수준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도지사선거라는 선거의 성격상, 이 쟁점은 그다지 큰 쟁점이 되진 않았지만, 이번에 진보세력의 분열에는 이 숨겨진 쟁점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당, 공산당 등이 지지한 우쓰노미야 후보가 반 아베 색이 강했던 것은 당연하지만, 실은 고이즈미 전 수상이 지지하는 호소카와 후보는, 보수계 정치가이면서 시대착오적인 아베정권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한국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가 야스쿠니에 참배했다는 이유로 수구 보수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지만, 아베처럼 뼛속부터 수구 보수 정치가는 아니다. 오히려 고이즈미, 호소카와는 일본의 낡은 정치체제를 파괴한 정치가라고 하는 측면이 있고, 최근 문제가 된 위안부문제에도 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사죄를 표명한 서한을 보내는 등, 골수 수구 보수의 아베정권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다만 좌파에서는 고이즈미, 호소카와는 단순한 포퓰리스트로, 그들이 해냈다고 하는 개혁도 본질적인 문제를 개혁할 수는 없었다고 평가되어, 전쟁 책임을 둘러싼 태도도 의문시 되고 있다. ) 게다가, 고이즈미와 호소카와는 모두 현역 시대에는 현재의 아베 총리 이상의 지지율을 얻었다. 그런 의미에서, 호소카와 후보는 아베정권에게 성가신 존재였다. 또, 그것 때문에,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진보 세력 가운데 호소카와 후보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혼란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일본 레이버넷]

정치 공학에 몰두한 선거전

이번의 도지사 선거는 전 지사가 비리 의혹으로 사퇴하면서 갑자기 선거를 치르게 된 것이기 때문에, 각 캠프가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우선 진보 계열의 우쓰노미야 후보가 입후보를 표명해 곧바로 공산당과 사민당이 지지를 표명했다. 잠시 후 집권 여당이 지지하는 마스조에 후보가 입후보를 표명하고, 기한 직전이 돼서 보수계의 호소카와 후보가 입후보를 표명했다.

보수의 마스조에 후보의 입후보에 대해서도 정권 내부에서 논의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다루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우쓰노미야, 호소카와 두 후보의 출마 표명의 타이밍이 원자력 발전 반대 후보의 패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 도지사의 사퇴로 도지사 선거가 확실해졌을 때 원자력 발전 반대 운동의 내부에는 여러 가지 후보가 논의되고 있었다. 우쓰노미야 후보는 유력 후보 중 한 사람 이었지만, 지난번 도지사 선거에 입후보했을 때의 득표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우쓰노미야는 이길 수 없어 "라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유력한 후보를 찾아내는 동안에, 공산당 등의 좌파세력이 강하게 지지하는 우쓰노미야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해버린 것 등을 계기로 해서, 원자력 발전 반대 진영에 상당한 혼란이 일었다. 혼란의 책임이 어디에 있든, 우쓰노미야 후보 이상으로 강력한 후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우쓰노미야 지사의 탄생을 위해 일단은 원자력 발전 반대진영은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후, 호소카와가 입후보에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이렇게 되면 이길 수 없다."는 동요가 퍼져나갔다. 게다가 정식 입후보 표명은 마감일까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후보단일화를 위한 교섭도 비공식 적인 것으로 될 수밖에 없고, 일본 선거법으로는 마감 이후는 입후보의 취하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쓰노미야로는 이길 수 없어"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최후까지 단일화 노력을 계속 했으나, 결국, 투표 며칠 전에 단일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쓰노미야 캠프가 단일화를 거부한 최대의 이유는 호소카와 캠프의 신자유주의적인 도시 운영과 "개혁" 등의 폐해가 크다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해 호소카와 후보를 지지하는 원자력 발전 반대 세력은 호소카와 지사 탄생 후에 원자력 발전 반대를 내걸 진보 세력이 여당으로써 도의 행정에 참여하고, 우쓰노미야 후보는 복지사 레벨로 실무를 담당 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도정 장악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캠프 모두 끝까지, 이런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처음에 쓴 대로, 마스조에 후보의 압승이었다. 2위 우쓰노미야 후보와 근소한 차이로 3위였던 호소카와 후보의 득표를 더해도 마스조에 후보의 득표에 미달했다. "만약" 원활하게 단일화가 성공해 강력한 선거 운동이 되어 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당초부터 단일화는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원래 호소카와 캠프의 운영에도 큰 문제가 있었다. 기한이 다 될 때까지 입후보 표명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입후보 표명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호소카와 후보 자신이 이미 은퇴한 고령의 정치가로 입후보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하고, 또 호소카와 캠프 내부에서도 역시 조직적인 혼란을 겪었다고 말했다. 결국 호소카와 후보는 출마한 뒤에도 원자력 발전 반대 이외에는 공식적인 구체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공개토론회도 몇 번이나 취소되었다. 청년층에는 고이즈미, 호소카와라는 이름에 기억이 없을 정도로 소비기한을 초과한 오래된 정치가의 인기로 선거를 치른 것과 같다. 이를 보아 우쓰노미야 캠프가 단일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우쓰노미야 캠프에도 문제가 있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충분한 논의 및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출마 표명을 한 것이 혼란의 계기인데 거기에는 원자력 발전 반대, 반 아베정권이라는 중요한 목적보다 정파적 주장이나 이해를 우선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호소카와 단일화에 나섰던 원자력 발전 반대 운동의 리더 격인 사람들에 의한 노력에는 경의를 보낸다고 해도, 준비가 안 된 호소카와 후보를 "이기는 후보"라고 판단해, 지지를 호소한 것은 치명적인 실패였고, 운동진영에서 강한 지지를 얻고 있던 우쓰노미야 후보에 대해 일방적으로 사퇴를 압박해 불신을 키웠다.

선거가 끝나고 뒤돌아보면, 모든 세력은 정치 공학에 몰두한 반면, 정파의 "보스"에 의한 밀실 거래로 선거를 수행하고, 원전이 없는 미래를 바라는 민중의 절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단일화 실패와 패배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원자력 발전 반대"에서 모든 세력이 하나의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고 여겨졌으나, 선거가 끝나자 결국, 진보진영의 대립과 깊은 감정적인 골만이 남았다. 지금, 일본의 진보 진영이 느끼고 있는 피로감은, 아마도 한국 진보진영 사람들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세 번째 3.11(동일본 대지진 참사)을 맞아, 9일과 15일에는 대규모의 집회도 계획되어 있다. 일본의 진보진영은 다시 한 번, 그 동안의 경험을 반성하고 진영을 세워 고쳐나가야만 한다.

[번역] 벨라(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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