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Only"의 오른쪽과 왼쪽

[일본사회운동의 편지](4) 일본의 풀뿌리 보수와 우경화

"Japanese Only(외국인 사절)"에 대한 비판

3월 23일 일본 프로축구 J리그의 "우라와 레드 vs 시미즈 S펄스" 경기가 열린 일본 사이타마 현의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경기 중에도 이상한 고요에 잠겨 있었다. 응원 소리도 노래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선수나 감독의 목소리와 공을 차는 소리만이 6만 명을 수용하는 큰 스타디움에 울릴 뿐이었다.

이 신기한 광경은 3월 8일 “우라와 레드” 대 “사간 도스”전 때, 골대 뒤의 입구에 내걸려 있었던 "Japanese Only"라는 현수막 때문에 발생했다. J리그 사무국은 이 현수막이 인종 차별적이며, 클럽 측이 현수막 철거를 안 한 것은 문제라고 우라와 레드에 대한 처벌로 무관중 경기를 명령했다. 무관중 축구 경기는 일본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우라와 레드 측은 3억엔 정도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Japanese Only", 즉 "일본인 전용" 또는 "외국인 사절" 이라는 의미의 현수막을 앞세운 인물은 "인종 차별의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현수막이 내걸린 것은, 지난 1월에 재일 한국인 4세(현재는 일본 국적)인 이충성이 입단한 것에 대해서, 일부 서포터 그룹이 "조선인을 입단시키지 마라" 라고 강하게 반발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사태를 심각하게 본 J리그는 우라와 레드에 대해 무관중 경기라는 무거운 벌칙을 적용하고, 또 클럽 측은 해당 서포터 그룹에 대한 입장 금지와 모든 관객에 대해 깃발과 현수막의 반입을 일시적으로 금지한다는 대응을 취했다.

인종 차별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 정도의 상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조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적절한 조치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일본에서는 한국인과 중국인에 대한 더러운 증오 연설이 백주에 버젓이 행해져, 인터넷에는 인종차별적인 문장이 넘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너나없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종 차별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

일본 사회와 축구 계는 인종 차별적인 현수막에 대해 상식을 적용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한쪽 구석에서는 "넷우익(인터넷 우익)"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이번"인종 차별"에 대한 조치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지난해 8월 “야스쿠니도, 아베의 개헌도 필요없다”는 일본 시민사회의 군국주의 반대 시위에 일부 사람들이 야유를 하고 있다. [출처: http://www.labornetjp.org/]

일본의 "넷우익"은 한국의 "일베충" 같은 존재다. 인터넷에서 차별적인 정보를 유포하거나 사실 무근의 헛소문으로 남을 중상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넷우익"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수십 년 전에는 현실 생활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울분을 풀고 있다는 정도로 거론되어왔었지만, 최근 들어 "넷우익"적 사고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시민의 보수화와 우경화는 지구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각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왜곡된 형태로 분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에는 기형적인 "넷우익"이 뿌린 남북한과 중국 등을 보는 차별적, 퇴행적인 시각이 일반 시민에게 침투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1990년대의 "자유주의 사관" 이라고 불리는 역사 수정주의적인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의 움직임에서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한국, 중국과 대립하는 것처럼 일본의 풀뿌리 보수가 탄생한 것은 2002년이었다. 그 해에 한일 월드컵, 뒤이은 고이즈미 정권과 김정일의 조-일국교정상화 움직임 그리고, "겨울 연가" 로 촉발된 한류 열풍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본디 한-일, 조-일 우호를 촉진할 것이라 기대된 이런 행사가 공교롭게도 일본의 우경화 특히, 한국에 대한 감정을 악화시키게 된 것이다.

한일 월드컵은 이전부터 일본의 축구 애호가 사이에서 문제가 되고 있었지만, 이들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일본에서 단독 개최될 것이었던 월드컵의 절반을 한국에 빼앗긴 대다가, 결과적으로 한국은 4강까지 갔는데 일본은 8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 밖에도 좋지 않은 소문도 있어서, 일본의 축구 애호가의 대부분이 한국에 대해서 배신감을 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것에 이어 조-일 국교 정상화는, 애초부터 일본의 기존 우익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지만, 고이즈미 당시 총리는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 선언을 정리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른바 "납치 문제"가 표면화했다. 일본 시민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사건이었지만, 그때까지 북한은 납치를 부정해 왔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 교섭 중에 북한이 납치를 인정하고, 김정일이 사죄함으로써 큰 문제가 되었다.

일본 사회에 있어서 북한의 납치는 한국의 납북자 문제와는 전혀 다른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말 이후, 일본은 항상 동아시아의 "가해자"로 존재해 왔지만, 북한에 의한 납치로 일본은 최초로 "피해자"의 입장이 됐다.

즉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할 때까지, 일본은 항상 비판당하고, 사죄를 거듭하는 입장이었었는데, "납치 문제"에서는 북한군이나 정부 기관에 의한 비인도적, 인권 유린적인 범죄를 강력히 규탄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최소한 북한에 대해서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과거 범죄는 모두 유보되게 된 셈이다.

그리고 한류 열풍은 분명히 한일 시민 차원에서의 교류를 촉진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고 무리한 한국 문화의 유입이 한류 드라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게 돼 버렸다.

이런 계기가 겹친 것에 더해 인터넷의 보급이 "넷우익"적인 언설의 유포를 가속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 인종차별, 민족차별적인 언설은 존재했으나, 그러한 언설은 공공 장소에서 공공연히 말해서는 안됐다. 그 동안 일본의 민족차별에 제동을 걸어 온 주요 세력 중의 하나가, 이제 "납치 문제"로 가해자의 입장에 처한 조총련이었던 것이다. 납치 문제로 조총련의 발언력이 급속히 낮아졌기 때문에,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에서 위와 같은 사건을 계기로 불러일으킨 반한-반북조선적인 표현에 제동이 풀린 채, 급속히 확산된 측면도 있다.

이렇게 일반 시민들 사이에 퍼진 차별적인 감정은,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같은 역사 수정 주의와 결합하고 "일본은 나쁘지 않다", "나쁜 것은 그들이다"라고 하는 생각에 일정한 "이론화"가 행해졌다. 과거 제국주의에 의한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은 거품 경제 붕괴 이후 경기가 침체되면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의 지위를 중국에 빼앗기고, 일본이 자랑하던 자동차와 전기 분야에서 한국에게 빠른 속도로 바싹 뒤쫓겨, 자신감을 잃고 있던 일본에 있어서는 달고 매력적인 사고 방식이었다.

이대로는 중국이나 한국에 잠식되어 버린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중국이나 한국에 대해 일본은 더욱 강한 태도로 대응해야 한다", "중국이나 한국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에 힘을 얻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과거 침략의 역사와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고, 단순한 수정주의에 머물지 않고 복고주의적인 양상마저도 띠면서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한국과 중국에 대한 공격적인 언설은, 지금은 "대중적인 오락"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다.

"행동하는 보수"의 대두

풀뿌리 보수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것은 "재특회: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회" 등 이른바 "행동하는 보수"라고 불리는 시민 단체의 대두다. 그들은 재일 한국인(재일 조선인) 등이 "세금을 지불하지 않고 일본의 사회보장으로 살고 있다", "민족 이름 외에 복수의 일본 이름을 사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등의 풍설을 믿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범죄적인 존재인 재일 한국인을 규탄하는 가두 시위 등을 하고, 차별 의식을 부추기는 듯한 증오 연설에 몰두한다.

일본 사회에 널리 퍼지는 남북한과 중국 등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 중에는 마음으로는 느끼고 있어도 좀처럼 앞에서 대놓고 하지 않는 말을 백주에 버젓이 거리에서 외치는 그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들의 "당당한" 행동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들이 행하는 혐오 스피치나 인터넷에서의 인종차별적인 표현은 국제적인 상식으로는 "범죄"수준이며, 건강한 시민적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는 일본 법률 체계 안에서는 "범죄"로 단속하지 못하고 무제한적인 확대를 보이고 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보수 정치인들의 이어지는 "망언"을 허용하는 토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경화는 멈출 수 있는가

국제 사회 속의 일본은 경제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그 경제력에 한계가 나타난 지금, 세력을 넓혀 가는 풀뿌리 우익에게서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의 지도자는 군사력으로 국제 사회에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수사에서 세계 평화 공헌을 강조하지만 결국 군사력으로 일본의 국익 확보가 목적인 이상 결코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 구실이 어떤 것일지라도 국가의 이름으로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건 언제나 노동자이고, 희생하게 되는 것은 저소득 계층과 여성, 아이와 같은 힘이 약한 사람들이다. 일본의 군사화를 용인하는 사회의 우경화가 위험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의 과도한 증오 연설은 보수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시민과 우익들로부터도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증오 연설에 대한 법적 제한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있다. 그리고 처음에 말했듯이 아직 일본 사회는 "Japanese Only"의 현수막에 대해 강한 대응을 할 정도의 정신은 유지되고 있고, 증오 연설에 대항하는 시민 운동도 생겨나고 있다. 언론사 기자들 중에는 편견을 조장하는 듯한 보도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그러나 표출된 증오 연설에 대한 규제는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분위기의 우경화에 제동을 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국가 간 경쟁으로 내밀리는 많은 나라에서 민족주의적인 주장이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일본의 풀뿌리 보수도 그러한 국제적인 조류 속에서 태어난 이상, 일본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에 한정하면, 전통적인 보수 사상 속에 범아시아주의라는 아시아의 평화 공존을 지향하는 사고 방식도 있다. 게다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인 아시아의 수탈에 대항하는 사상도 있었다.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 라는 말이 있지만, 기형적인 현재의 풀뿌리 보수에는 전통적인 보수의 논리로 맞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진보 측에서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민중연대의 가치를 호소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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