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채 위기를 부풀려 국가개조의 먹잇감으로 삼다

[주례토론회] 박근혜 공공부채 위기론의 진실

‘정상화’를 향한 대통령의 열정(?)

‘비정상의 정상화’, 대통령이 외친 이 선정적인 구호가 2014년을 달구고 있다. 작년부터 등장했던 이 말이 올해부턴 아예 박근혜 정부의 상징적인 구호가 되었다. 그리고 연일 방만 경영과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공공기관들과 공무원들이 표적이 되었다. 대통령이 직접 ‘진돗개 정신’으로 모든 걸 뿌리 뽑아야 한다고 호통을 쳤으니, 사뭇 ‘정상화’를 향한 대통령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그 ‘비정상’의 정점에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서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 ‘비정상’의 대상이 아닌 양 뒤로 빠져, 다른 ‘비정상’들을 엄벌할 것이라 호통 치고 있다. 참으로 어리둥절하면서도, 심각한 현 사태를 분간 못하는 상황인식에 애잔함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역시, 이 와중에도 박근혜 정부는 다시 ‘진돗개 정신’으로 돌아가 뽑았던 칼을 다시 들었다. 세월호 참사의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던 지난 4월 29일, <공공기관 정상화대책 이행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5월 1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무위원 및 민간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14년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이 두 가지 모두 기존의 대책들을 밀어붙이기 위한 자리였다. 안전 분야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말은 세월호 참사를 의식한 ‘립서비스’였을 뿐, 향후 추진과제를 적시한 ‘별첨자료’ 어디를 찾아봐도 구체적 사업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부분 예산절감과 민간위탁을 암시하는 민관 협업체계 구축뿐이다. 재정긴축 및 민영화의 기조가 계속 관철되고 있는 셈이다.

만약 현 정부가 세월호 참사로부터 얻은 교훈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이미 작성된 공공기관 구조조정 및 규제완화, 재정운용에 대한 발표를 보류하고 다른 방향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참사를 나태한 ‘관피아’들의 직무태만 수준으로만 바라보는 박근혜 대통령에겐, 본인이 그토록 외치고 있는 공공기관 정상화와 규제완화 등이 왜 세월호 참사와 연관이 있는지 파악하지 못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머릿속엔 오직 ‘진돗개 정신’만이 맴돌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노리는 과녁은?

박근혜 정부 초기 ‘창조경제’가 커다란 화두였다. 그러던 와중에 ‘경제민주화’보다 ‘경제정상화’가 우선이라는 말장난이 이어졌고, 이젠 빈 수레만 요란했던 그 ‘창조경제’는 쏙 들어갔다.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정기국회 무렵, 공공부채 총액이 1300조 원을 넘는다는 뉴스가 터지면서부터 담론의 중심은 공공기관들의 비정상적인 방만 경영에 초점이 모아졌다. 이러한 공공부채의 산출은 2014년부터 세계은행 등이 주도하는 PSD(Public Sector Debt database) 작성지침에 따라 공공부채 산출방식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이미 2012년 MB정권 시절부터 변경된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산출방식이 달라졌었기 때문에 새삼 놀랄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 인양, 각종 언론에는 국가부채의 위험성을 알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또한 박근혜 정부를 공격할 호기를 찾았던 야당의 입장에서도 국가재정의 실패를 상징하는 국가부채의 폭증은 정치적 공세의 좋은 재료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응은 놀랄 만큼이나 차분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정상적인 국가재정운영을 바로잡겠다는 대답으로 응수하며, 모든 복지공약 파기에 대한 변명을 그것으로 대신했다. ‘경제민주화’는 물론이거니와 ‘창조경제’라는 말조차 언론에 오르는 빈도수가 줄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온갖 ‘정상화’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무엇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인지 우리는 보다 정확히 꿰뚫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과녁, 공무원 연금

먼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경제의 화두를 짚어보자. 유럽재정위기였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유럽재정위기는 해당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국가재정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줬다. 심지어 미국도 수년간 걸친 극심한 논란 끝에 연방정부의 자동예산삭감 제도(시퀘스터)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선 2012년 MB정부 말, 재정부와 KDI가 공동주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전후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국가부채 항목에 그동안 고려하지 않았던 것들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공무원 연금충당부채 375조원이 추가됐고, 공기업부채까지 고려했을 때 1200조원을 넘게 됐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핵심은 엄청나게 늘어난 숫자가 아니다. 당연히 숫자를 더하면 커지게 마련이다. 만약 이 숫자들이 문제라면 회계기준을 다시 바꿔 빼주면 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회계기준변경이 의도하는 본질은 공무원 연금충당부채와 공기업 부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리를 하겠다는 정책신호라 할 수 있다. 아니다 다를까, 2012년 5월 새롭게 정정된 국가부채 발표 이후, 각종 언론을 통해 공무원 연금개혁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었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3년 전 한차례 바꾼 뒤라 반발이 심해 논의가 더 확산되진 못했다. 그러다 2014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에서 다시 특수직역 연금(공무원, 군인, 사학)을 개혁하겠다고 강하게 밝힌 것이다. 일 년 동안의 휴지기를 거치면서 새롭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 단지 ‘비정상’의 지위를 얻었을 뿐이다. 그리고 곧이어 각종 언론에서 공무원 연금으로 인한 국가재정의 고갈과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집중 거론되었다.

그리고 현재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관피아’라는 말까지 직접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관료들의 부정부패 척결을 염두 했던 이 말은 어느 순간 공무원 연금개혁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논의되지도 않은 ‘공무원연금 20% 삭감’을 언론에 슬쩍 흘렸고, 보수언론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관피아’ 척결의 바로미터라고 외치고 있다. 안행부에서조차 논의된 바 없는 이 개악안이 익명의 정부관계자의 말을 빌어서 여론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주적을 설정하고 모든 형식과 제도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박근혜 통치방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이해당사자들은 조건 반사적으로 반발할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14일 공무원, 교사를 비롯한 공무원단체들이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내걸고 공동행보에 나섰다. 이날 공노총, 전국공무원노조, 한국교총, 전교조, 우정노조, 사학연금 제도개선을 위한 공대위는 ‘공적연금 개악 저지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했고, 소방, 경찰공무원단체도 이날 회의에 참여했다.

그러나 ‘비정상’과 ‘관피아’라는 상징이 갖는 파괴력은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도 남을 만큼 크다. 현재 이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어볼 수가 없다. 국민연금과 공무원 연금의 제도적 차이를 따져보고, 연금제도의 불신을 해소할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은 ‘철밥통’들의 변명으로 왜곡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 과녁, 공기업 구조조정

‘비정상의 정상화’가 노리는 대상은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공기업이다. 이 문제도 공기업부채를 공공부문 부채로 편입하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난 2월 14일 기획재정부에서 공공부문 부채 포괄범위를 새롭게 발표하였다. 여기에 비금융공기업이 포함되는데, 확정된 공공부문 부채규모는 821조 원이다. 대신 금융공기업과 공무원 연금충당부채는 별도로 배치했다.

그런데 공기업 부채문제는 이미 2010년부터 논란이 되었다. 당시 LH(한국토지주택공사) 부채가 큰 사회문제가 되어 국정감사에서 호된 질타를 받았다. 현재 LH의 부채규모는 142조 원인데, 이는 비금융공기업 부채 317조 원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규모이다. 여기에 한국전력 95조 원을 고려하면 이 두 공기업의 부채규모는 전체 70%를 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업 부채문제를 언급할 때, 공기업 일반을 지칭하는 건 무리가 있다. LH와 한전을 비롯한 7개 공기업만으로 좁혀 다뤄져야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실제 계산된 결과를 보면, 공기업 부채 일반을 두고 ‘비정상’을 운운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LH 등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일부 공기업이 있다손 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딱지를 붙이기 전에, 공기업 부채증가의 주범인 MB정권의 실책에 대해 집권당의 리더로서 먼저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공공부채는 공익적 목적의 사업 수행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이로부터 취득된 공공자산을 부채와 함께 비교하는 것이 필수적인 상식이다. 가령 LH 부채가 급증하게 된 데 여러 가지 요인을 지목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신도시개발, 국민임대주택 건설, 세종시 및 혁신도시개발,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 실물자산 형태의 사회간접자본시설들이다. 물론 지난 2004년부터 수년 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부동산 거품시기, LH 역시 이에 동조하여 아파트 개발과 택지사업에 과도한 투자를 하였다가 거품붕괴 이후 막대한 자산손실을 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공공부채를 따져볼 때 중요한 점은 취득된 공공자산이 공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이다. 그러므로 현재 LH가 부채감축 문제로 국민임대주택 건설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공기업은 없는 것만도 못 한 계륵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부채증가 과정을 보다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국책사업을 도맡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가 대부분인데, 아래 그림에서 보듯 LH 뿐만 아니라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수자원공사 역시 그런 과정에서 부채가 주되게 증가했다. 에너지 공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출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 부채 문제의 현황과 해결방안>, 2013.12]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의 부채의 대부분은 KTX 건설부채가 이전 된 것이고, 수자원공사의 부채는 알려진 바처럼 4대강 사업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공기업의 경우 MB 정권 5년 동안 자원외교의 치적 쌓기에 동원되면서 부채가 급증했다. 한국전력의 부채 역시 설비투자와 전기요금 억제정책에 따른 적자가 부채증가의 가장 큰 요인이다. 이러한 부채증가의 요인들을 볼 때, 이들 공기업의 부채문제가 방만 경영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실 공공기관들의 인건비와 각종 경비는 부채 규모의 1.2%에 불과하다. 부채가 많은 12개 주요 공기업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이자는 200억 원, 한 달에 6천 억 원 정도다. 이 액수는 현재 12개 주요 공기업 노동자 9만 명의 인건비보다도 훨씬 많다. 결국 공기업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한다고 해도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셈이다. 그러나 각종 언론을 통해 공기업 노동자들의 복리후생비와 임금을 깎으면 마치 공공부채가 해결될 것인 양 잘못 묘사되고 있다.

공기업 부채감축계획에 드러난 공공부문의 사영화와 사유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마치 ‘대처 흉내내기’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공기업 뿐 만 아니라, 공공기관 일반, 더 나아가 행정부에 대해서도 적대적이다. 이러한 적대감이 실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공기업 부채 감축계획을 보면 공공부문의 사영화 및 사유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정부에서 지난 2월에 밝힌 ‘중점관리대상기관 부채감축계획(안)’을 보면 공기업 부채감축이 가리키는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2017년까지 공기업 부채 규모를 42조 가량 줄이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아래 그림에서 보듯 사업조정과 자산매각의 비중이 70%를 넘는다.

[출처: 관계부처 합동, <경제혁신 3개년계획 실현을 위한 중점관리대상기관 부채감축계획(안)>, 2014.2]

흔히 방만 경영을 바로 잡겠다며 지적했던 경영효율화 측면의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이 중 방만 경영의 상징처럼 부각되었던 복리후생비에 대한 감축 액은 1인당 평균 월 6만원 수준이다. 이는 4년간 부채감축 목표 42조원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이러한 사실들은 정부도 복리후생비나 추가인건비 등을 감축하는 것으론 공공부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 보니 실제 부채해법의 초점은 사업조정과 자산매각에 맞춰져 있다.

현재 과다부채 공기업으로 지목된 철도공사는 부채 감축을 위해 공항철도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5년 전 철도공사가 민간으로부터 공항철도를 인수할 당시 공항철도는 엄청난 적자상태였지만, 현재 연간 1500억 원의 수익을 낳는 주요 자산이 되었다. 그런데 인수 후 지금까지 금융부채 이자를 물면서 알짜배기로 키워 놨는데, 이걸 민간에 매각한다고 하니, 이를 두고 정말 가장 악질적인 공공부문의 사유화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또한 LH의 경우 부채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상생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사업영역을 대폭 민간개발에 떠넘기고 있다. 대표적으로 임대 주택 사업에 민간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파트 건설 적격 기관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강조 하고 있는 규제완화와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서, 공공기관이 독점하고 있는 공익사업을 규제완화를 계기로 민간개발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부채감축 계획들이 공기업 스스로 공공기능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점이다. 5월 18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한국건설관리공사 매각 공고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관리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마당에도,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설립된 유일한 공공건설감리기관을 매각하려 하고 있다. 명분은 민간부문의 감리능력이 향상되어 공공과 민간이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현재 650개에 달하는 민간감리회사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저임금 및 계약직 위주로 인력채용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부패와 부실공사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아직도 건설현장에선 부정부패와 부실시공으로 인해 사고가 빈번하게 터지고 있다. 어느 때 보다 건설관리공사가 건설안전분야의 사각지대 해소에 일조할 수 있도록 혁신을 해도 부족한 마당에, 민간 매각을 추진한다는 것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전혀 깨닫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공기업 부채의 본질

앞서 지적한 바처럼, 공기업 부채의 핵심대상은 LH를 비롯한 7개 공공기관이다. 부채비율이 200% 이상이거나 이자보상배율(수익/이자) 1미만인 공공기관은 LH, 한전,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이다. 그리고 부채비율이 200% 이상이고, 동시에 이자보상배율도 1미만인 공공기관은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석탄공사다. 여기서 에너지 공기업(한전,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의 경우, 산업용 전기료처럼 낮은 에너지 공급가격과 MB 정부시기 자원외교 때문에 발생한 과도한 해외투자가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기업들의 부채문제는 해외투자 지분을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에너지 공급가격을 조정하거나 보전하는 것으로 부채해결의 첫 단추를 꿰맞춰야 한다. 석탄공사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고 석탄산업이 사양 사업임을 감안하면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결국 남는 문제는 LH,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으로 압축된다.

철도시설공단의 주 수입원이 철도공사의 선로이용료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의 문제는 같이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공기업 모두 탄생한 2004년부터 철도구조개혁, 소위 철도산업 민영화 논리에 따라 철도청 KTX건설부채를 이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선결사항이다. 이들이 당시 이전 받은 부채규모는 대략 11.3조 원 가량인데, 만약 이것을 원래대로 정부가 다시 인수하면 이자비용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개선된 재무구조 상황에서 빚을 지지 않고 운영할 수 있다. 여기서 흔히 지적하는 바처럼 퍼주기 논란은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부부채가 11.3조 원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에 해당하는 선로시설과 KTX 차량을 국가자산으로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 분리되었던 국가회계를 다시 합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 생각해 보자. 정부부채에 있던 것을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으로 옮겼는데, 이를 다시 정부부채로 되돌리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우스꽝스런 짓이다. 그러므로 공기업 부채를 거론하면서 공기업 당사자들을 공격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이들 공기업에 대한 채무보증을 100% 정부가 하고 있는 마당에, 부채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정부가 KTX 건설부채를 회수해 회계 상에 도로 옮겨다 적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공기업 채권금리보다 국채금리가 더 낮으니 이자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공공부채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그 엄청난 숫자에만 집착하여 화들짝 놀라지만, 사실 정말 중요한 건 부채라는 의무를 누가 짊어질 것인지 구획 짓는 것이다. 철도청 부채면 행정수반이 책임지지만 철도공사 부채면 철도공사 종사자들이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명분상 그러할 뿐이다. 실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이들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적시되어 있는데, 만약 이것이 없다면 이들 공기업들은 벌써 파산했을 것이다. 이자비용도 감당 못하는 일반 사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하여 자금 조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기업 부채는 사실상 국가부채인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국제회계기준의 변경의 실체는 그 동안 분식회계 처리했던 공기업들의 부채를 국가부채로 간주하여 적극 관리하라는, 국제적 부채관리 지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관리지침의 목적은 국채시장과 더불어 공공기관 채권시장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을 더욱 높이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부채 관리와 축소를 지렛대로 삼아 공공부문의 사영화와 사유화를 추진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건 공공부채 산출에 관한 기획재정부 보도자료에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총평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의 국가부채에 대한 회계 평가의 목적은 공공기관들의 공공성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신흥국 채권시장의 안정성을 각국 정부가 발 벗고 나서도록 주문하는 것에 있다. 이건 유로존 국채위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실제 이렇게 새롭게 산출된 한국의 공공부채 발표사례는, 여타 다른 신흥국들에게 매우 좋은 귀감으로 적극 소개되고 있다.

공기업 부채 해결의 첫 단추

공공기관 부채의 해결의 첫 단추는 소유, 경영, 책임이 기형적으로 분리된 구조를 바로 잡는 것이다. 흔히 낙하산과 관치경영으로 상징되는 부조리가 항상 지적되는데, 그 이유는 공공기관의 소유와 부채에 대한 최종책임이 정부에 있는 상태에서 경영에 대한 개입의 통로가 그런 식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간섭을 비판하면서 공공기관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시각이다. 지금처럼 부채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선 오히려 정부의 책임성을 더욱 강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채감축 논리에 따라 공공기관들을 사영화와 사유화에 내몰리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또한 독립성만을 강조하다보면 자립경영의 실패를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책임주체가 실종되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앞서 부채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 사례처럼 정부가 이들에게 전가했던 부채를 다시 회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수자금은 중앙은행이 국채를 인수하고 정부는 이 돈으로 공기업 채권을 매입하면 된다. 중앙은행이 획득한 국채이자의 70%는 국고로 환수되기 때문에 이자비용이 30%로 줄어든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이 매년 지불하는 1조 원 대의 이자비용을 0.3조원으로 낮출 수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불필요한 자산 매각과 사업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구조상 이자지급조차 불가능한 여타 다른 공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을 통한 자금조달을 고민해야 한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바처럼 엄청난 자금이 일시에 풀려 시중 유동성이 폭증할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채권만기 일자가 다르기 때문에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면서 적절히 매입 시기를 선택하면 된다. 만약 이 정도 수준의 자금조달이 문제라고 한다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사내유보금 500조가 시중에 돌고 있는 현실에서 이미 우리는 유동성 홍역을 치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경제 현실은 돈이 줄어드는 디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설령 한국은행으로부터 조달한 자금 때문에 통화량 증가하여 문제가 된다고 하면, 통화안정채권 발행으로 유동성을 흡수하면 된다. 만약 누군가 이 정도 수준의 통화안정채권 발행이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면, 현재 한국은행이 이보다 훨씬 많은 160조 원에 이르는 통화안정채권을 유지 관리하는 건 도저히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통화안정채권은 시중의 원화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인데, 주로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원화유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공개시장 조작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환보유고에 비례해서 통화안정채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은행의 핵심적인 주요기능들을 외환시장 관리에만 종속시킬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흔히들 이런 방식의 중앙은행 개입을 잘못된 것이라 여기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행이 굴리고 있는 주식, 채권, 파생금융상품 등등의 해외자산이 총 450조 원 임을 감안해 보면, 철도 공공성과 공공임대주택 확보를 위해, 국가기간사업에 적극 투자하는 건 별 문제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들의 ‘달러보관소’ 역할로 전락한 한국은행을 국가기간산업의 투자 주체로 끄집어내야 한다. 97년 IMF 외환위기 사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환보유고 쌓기’에만 열중해왔던 정부와 한국은행은 현재 공공부채의 상황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할 시점에 놓여 있다.

이처럼 부채의 형식적 관리에 대한 여러 공적 기능들을 우리는 이미 갖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이런 공적 기능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융공기업들에게 자산 매입과 보증 확대, 자금지원 형태로 170조 원이 넘는 원화 자금이 공급됐었다. 만약 박근혜 정부의 말대로 공공부문 부채가 ‘비정상’적인 암 덩어리이라면, 더 이상 퍼지지 않게 지금 당장이라도 2008년처럼 엄청난 긴급자금을 수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되려 공공부문 민영화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공공부채의 형식적 처리는 회계 상에서 숫자를 다른 곳으로 옮겨 적는 것에 불과하다. 실질적 문제는 부채의 책임을 누구한테 지울 것인가라는 구획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는 공기업이 공익적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한다면 파산시키면 될 터이고, 만약 공익적 기능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책임을 적극 정부가 도맡아 가져가면 될 일이다. 늘어난 정부의 부채만큼 정부의 공공자산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대차대조표 상 문제될 건 전혀 없다. 당연히 분식회계 처리되었던 두 개의 회계장부를 하나로 통합했으니 전체 숫자 변동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국가의 민주화’를 새롭게 요구하자

정부가 공기업 채권을 매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이들 공기업을 다시 정부조직으로 편입시킨다는 의미한다. 이것은 DJ 정부시절부터 추진했던 십 수 년 동안의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을 완전히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문제 핵심은 공기업 지배구조를 어떻게 새롭게 민주적으로 만들 것인가로 모아진다. 대중이 공기업 부채문제를 두고 언론들의 공기업 때리기에 심적으로 동조하는 건, 바로 자신들이 공기업 지배구조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과 비교할 때 높은 연봉과 안정적 일자리, 낙후된 공공서비스 등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므로 공기업 지배구조를 재조직하는 것은 단순히 몇몇 민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를 경영자문으로 끼워 넣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민관 거버넌스를 빙자하여 국가기관의 ‘부분 민영화’를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개조론’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줄 뿐이다.

정부조직이 선출된 권력으로서 민의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올바른 이치라 한다면, 공기업 역시 민의에 통제되는 형태로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채문제의 해법을 ‘국가의 민주화’를 다시 새롭게 추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부문의 부채해결의 초점은 문제를 종료시키는 것이 아닌,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문제 틀을 새롭게 작동시키는 데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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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완화 , 공기업 , 국가부채 , 박근혜 , 관피아 , 국가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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