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국회에 설치된 ‘공무원연금개혁, 공적연금강화 특위’ 실무기구에서 ‘공무원연금개혁안’과 ‘공적연금강화’에 대한 합의문이 발표된 이후, 공적연금을 대표하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청와대는 실무기구에서 합의한 내용에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고, 보건복지부는 여야합의문에 맹비난을 퍼부으며 ‘세금폭탄론’을 앞장서서 설파했다. 합의당사자의 한 주체였던 공무원노조 내부에서는 의견수렴 없이 ‘직권조인’을 했다며,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런 기류가 반영되어서인지 여야 정당이 합의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국회에서의 합의안 처리는 무산됐다. 비록 국회처리가 일차적으로는 무산됐지만,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관련 주체 간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달린 이유도 있지만, ‘연금’의 문제는 1~2년 단기간에 걸친 사안이 아닌, 향후 몇 십 년에 걸쳐 논의되어야 하는 ‘노후소득보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올해 총파업을 전개하겠다고 밝히면서 주요 요구 중 하나로 ‘공적연금 강화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내걸었다. 그동안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개혁 및 연금제도수립과정에서 보수정치와 자본 헤게모니가 관철되었던 상황에 균열을 내고, ‘연금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연금정치’가 한국사회에서도 ‘노동정치’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매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앞으로 연금개혁의 방향과 효과는 ‘노동정치’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연금문제의 본질은 ‘재정’이 아니라 ‘정치’다. ‘연금고갈 시점’이나 ‘미래세대 부담’ 정도가 얼마냐 하는 문제보다 지금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세력’들 간의 투쟁이다.
당장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인상’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했을때,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연금재정의 고갈 시점과 고갈 이후의 제도설계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다. 사실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명목상으로는 소득대체율이 2028년까지 40%로 줄어든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득대체율은 20%대에 머물고 있어 ‘용돈연금’이라고 비아냥대는 등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높지 않다. 따라서 ‘연금을 연금답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여 공적연금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전 국민이 가입하게 되어 있는 국민연금 가입률은 2014년 4월 기준으로 임금 노동자의 68.9%로, 아직도 30%가 넘는 노동자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임시·일용직 노동자는 가입률이 17.3% 밖에 되지 않는다. 2013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대상자 중 납부예외자 및 보험료 체납자가 27.3%에 달한다. 이를 두고 국민연금제도가 아직 미성숙단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거나, 그러하기에 연금 아닌 다른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바라보는 것은 ‘연금정치’에 내포되어 있는 계급 간 대립의 문제를 희석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소득대체율 50% 인상 시 보험료율을 둘러싸고 현행보다 두 배 이상이 필요하다는 정부와 이에 대해 ‘공포마케팅’이라며 1%p 정도 인상하면 가능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두 주장 모두 국민 부담과 미래세대 부담의 증가만을 언급한다. 하지만 보험료가 인상될 경우 국민연금 가입자의 부담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부담도 동시에 증가한다. 보험료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기업과 노동자가 반반씩 부담하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으로 보험료 수입은 31조 원 가까이 된다. 보험료 수입 중 지역가입자를 제외한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수입은 27조 3천억 원 정도로, 이 중 기업의 부담은 13조 7천억 원 정도다. 보험료 인상시 가입자인 노동자의 부담도 늘어나지만, 기업의 부담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달가워할 이유가 없다. 보험료로 기업의 돈이 나가지만, 기업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연금가입자의 급여액으로 지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금상승이 이루어지면 연동해서 보험료 지출도 늘어난다.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 지출도 늘어나고, 보험료 지출도 늘어난다. 이를 감안하면 보험료 인상을 가장 반대하는 세력은 기업이 될 것이다. 지불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보험료가 인상되면 기업의 납부 회피로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타당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재 ‘두루누리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두루누리는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저소득 노동자에 대해 정부가 보험료 절반을 내주는 사업이다. 위에서 언급한 합의안에서도 공무원연금개혁으로 절감된 재정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보험료 지원 확대에 활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즉, 보험료 인상은 기업의 이윤에서 ‘보험료’로 지출되는 부분이 많아져서 그만큼 기업 이윤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임금인상이 이루어질수록 이 부분은 늘어난다. 임금인상과 더불어 보험료 인상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금보험료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한국 기업의 부담은 높지 않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처럼 노동자:기업=1:1로 보험료를 부담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평균적으로 노동자:기업 비율이 2:3 정도로, 대부분 기업 부담이 높다. 한국의 경우 기업이 부담하는 전체 국민연금 보험료는 국내총생산(GDP)의 0.9%에 불과하다. 핀란드는 6.8%, 스웨덴은 3.6%, 독일은 3.2%, 일본은 3.1%, 미국은 2.1%, 터키는 1.3%에 이른다. 따라서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이를 꼭 노동자가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이 부담하도록 하면 된다. 두루누리 사업에 필요한 재정을 기업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만큼 부담시킬 수도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백조 원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의 축적은 마땅히 지출해야 할 임금 지급과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며 쌓은 이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보장이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게 되면 ‘사적연금시장’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적연금 적립금 규모는 개인연금과 퇴직금을 합하여 2015년 약 386조원, 2020년에는 약 680조원 정도로 예상한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이 강화될수록 그 규모가 얼마가 될 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사적연금 시장이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시켜 ‘연금시장’을 활성화시켰던 기간 정부와 자본의 정책도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공무원연금개혁’이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한 방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국민연금 사각지대의 확대는 비정규직 양산 및 확대와 맞물려 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2014년 기준으로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중 정규직이라 일컫는 상용직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97%에 달하지만, 비정규직인 임시직 노동자의 가입률은 17%에 불과하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원·하청 구조로 수직 계열화되어 있는 한국의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는 소수 대기업에게는 수백 조 원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이 쌓여 있을 정도로 ‘이윤’이 편중되어 있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임금뿐만 아니라 사회보험 등의 복지제도에서도 제외되어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7일 ‘국민연금 재정목표와 기금운용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2013년 말 기준 484조 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의 운용을 지금처럼 노사단체 등 가입자대표가 참여하는 구조가 아니라 민간금융 전문가를 충원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새누리당도 이를 반영한 국민연금 기금운용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연금고갈이란 논리를 펴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상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노동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노동자의 호주머니로 돌려주어야 할 기금을 금융자본의 입맛대로 요리하고 싶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소득대체율 인상’이란 공적연금 강화에 따라 연금고갈 시점과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의 정도를 둘러싼 논란이 전개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노동자의 임금인상, 고용형태 등 노동시장, 기업 이윤의 재분배와 사회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연결된 문제다. 노동자에게 ‘생산의 정치’와 ‘재생산의 정치’의 분리는 불가능하다.
현재는 ‘공무원연금개혁’이란 이름으로 현재와 신규공무원의 임금과 함께 ‘미래 임금’인 ‘연금수령액’을 줄이려는 ‘개악저지’의 정치(생산의 정치)가 ‘공적연금강화’라는 정치(재생산의 정치)를 이끌고 있는 형세다. 공무원연금 개악저지투쟁이 적극 옹호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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