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론 비판

[주례토론회] 맑스 엥겔스 국가론과 사회적 경제론

발제를 절반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 화폐 운동 논의 속에서 사라진 국가”를 나머지 절반을 맑스 엥겔스의 저작 중에서 현재 사회적 경제라 불리는 부문과 관련된 부분을 같이 점검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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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 화폐 운동 논의 속에서 사라진 국가
1-1. 사회적 경제에서 국가는 어디 있는가?
1-2. 사회적 기업을 내세운 그라민 은행 유누스의 추악한 얼굴
1-3. 개인과 국가

2. 맑스 엥겔스의 국가론과 사회적 경제론 발췌와 간략한 언급
2-1. 맑스의 마이크로파이낸스 비판
2-2. 맑스 엥겔스의 협동조합론
2-3. “사회적 기업”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2-3-1. 오웬에 대한 왜곡
2-3-2. 매뉴팩처 시기로 돌아가려는 낭만적인 프루동
2-3-3. 오웬과 프루동의 차이
2-4. 맑스의 꼼뮨에 대한 정의

Memo) 사회적 경제 논의에서 사용되는 용어 몇 개 딴지 걸기
neoliberal subject 신자유주의적 신민
Privatization 사유화
Deregulation 탈규제

[자료] 자본론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언급
[자료] 맑스 엥겔스 협동조합론
『독일 농민전쟁』(제2판, 1870년)의 서문
임시중앙평의회 대의원에게 보내는 개별적 문제에 관한 지침 (1866년)
프랑스 내전
엥겔스 - 베벨에게 보낸 편지(1884년 12월)
엥겔스 -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1894년)
국제 노동자협회 브뤄셀 대회의토지소유 문제에 대한 결의(1868년 9월 13일의 회의에서 채택)
프랑스 내전
베.이.자술리치의 편지에 대한 회답
자본론의 협동조합 언급

[자료] 꼬뮨론
프랑스 내전
Engels to August Bebel In Zwickau (1875)


1.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 화폐 운동 논의 속에서 사라진 국가

1-1. 사회적 경제에서 국가는 어디 있는가?


사회적 경제론에 대한 논의를 하기 전 질문을 하나 하고 시작하자.
밀양에서는 송전탑을 세우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르신들이 관을 두고 경찰들과 대치 중이다. 일본 핵 사고가 발생했지만 한국 정부는 핵이 안전하다면서 핵 발전소를 증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본 바다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일본 수산물 수입에 대한 규제는 실제로는 없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1) 이 모든 사건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 답은 이 모든 일들은 시장에서 강자인 자들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는 국가가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 화폐 운동 등이 지금 우리가 사는 국가에서의 대안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이런 대안으로 제시된 것들의 공통점을 1)의 질문과 답과 연관시켜서 다른 질문을 해보자.

2)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 화폐 운동 등의 근래 논의되고 있는 대안들은 - ‘나눔과 베품’ 등의 따뜻한 말은 죄송하지만 잠시 뒤로 두고 -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 답은 국가에 대해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는 국가와 개인에 대한 생각에서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 자유주의는 합리적 개인을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들은 시장을 더 많이 안다고 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내에서 워싱턴 컨센서스와 네오 워싱턴 컨센서스는 차이가 없다. 기본적으로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국가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고 우리는 풀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2. 사회적 기업을 내세운 그라민 은행 유누스의 추악한 얼굴

그라민 은행의 유누스의 주장에 의하면 사회적 기업이란 말은 그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인 다농과 합작하여 조인트 벤처로 요쿠르트 회사로 ‘그라민 다농(Grameen Danon)’을 만들면서 사용하게 되었다. 세계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다.

방글라데시의 빈민의 80%가 마이크로파이낸스에 가입되어 있다. 그라민 은행이 시작된지 20년이 지났는데 방글라데시의 기아율은 한번도 이북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 98년보다 나았던 적이 없다.


표1을 보면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세계 언론에서 위기 상황이라고 자주 보도되는 짐바브웨와 이북의 기아 상황보다 나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위험한 상황'으로 약간 호전되었을 뿐이고 이북이나 짐바브웨보다 기아 상황이 심하기에 빈곤이 일소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무리가 있다. 이에 대해서 다른 국가와의 비교가 아닌 자체 내 시간상 변화를 보면 상대적으로 발전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도 무리가 따른다. 1990년과 2012년의 기아지수 향상 수치를 비교해보자. 앙골라는 41.9 - 24.1 = 17.8, 방글라데시는 37.9 - 24 = 13.9, 캄보디아는 31.8 - 19.6 = 12,2이다. 방글라데시와 비슷하게 향상된 캄보디아나 방글라데시보다 나은 성장률을 보인 앙골라의 경우에는 빈곤 일소의 사례국가로 논의되지 않는다. 이들 국가의 빈곤으로 인한 기아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위험한 상황'에 있는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게 방글라데시만이 빈곤 일소의 사례 국가로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기아에 시달리는 이북이나 짐바브웨가 기본 식량의 해결방법이 아닌 요구르트 사업을 하겠다면 '밥도 못 먹는 주제에 무슨 요구르트를 빈민에게 팔겠다고 하느냐'라고 바로 비판이 이어지겠지만 그라민 다농의 요구르트 사업은 사회적 기업의 모범 사례로 전 세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성공신화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부채의 높은 상환율으로 그라민 은행이 성공했다고 여겨졌다. 그러면 기아가 거의 개선이 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으로 보아야 하는가? 높은 상환율을 빈민들이 마이크로파이낸스로 사업을 시작해서 갚았다고 전제했는데 삶은 더 나아지지 않고 그나마 가진 것들조차 다 털려서 부채를 상환한다는 것을 왜 생각해보지 않을까?

돈을 빌려줄 때 집에 닭 몇 마리가 있는지 숟가락이 몇 개인지, 부채를 못 갚았을 때 집을 뜯어서 자재를 팔면 얼마가 현금화 가능한지 점검해보고 빌려준다. 방글라데시 마이크로파이낸스의 두 축으로 NGO, 여성을 강조하는데 NGO인 그라민 은행은 여성들에게만 돈을 빌려준다. 이유는 여성들은 돈을 갚지 못하면 마을의 수치가 되지만 남성들과 달리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서 ‘야반도주’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70년대 사우디 아라비아의 오일머니가 방글라데시에서 사원인 모스크를 짓고 교육기관인 마드리드를 세우면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슬람.폭압적인 와하비즘이 들어와서 문화가 바뀌었다. 리트윅 가탁의 영화에서 보이는 억척스러운 벵갈 여자들이 남자의 빰을 철썩 때리는 벵갈 문화는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헌법도 없고 개종을 하게 되면 사형을 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비즘이 타고르의 시가 나온 아름다운 벵갈 문화를 파괴시켜 버렸다. 여성들의 지위가 바닥 중에 바닥에 있게 되었기에 사회적 최약자인 빈민 여성들은 그라민 은행이라는 식인상어의 아가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은 국가는 믿을게 못 되니 알아서 개인들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마이크로파이낸스로 모든 빈민들이 다 성공을 한다고 하더라도 전기, 수도, 교육 문제 등은 해결할 수 없다. 개인들이 어떻게 기반시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 국가 정책의 강력한 주창자이자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인 유누스는 여러 차례 그의 청중들에게 한 말을 들어보자.

“세계는 자영업의 인류 전통을 잊어왔다...사람들이 동굴에 살 때에 그들은 스스로를 도우러 나갔다. 도움을 요청할 국가는 없었다” - Lewis, Flora, For European Jobless, Self Employment Might Work, in Grameen Dialogue 34, April 1998.

이렇게 말한 후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라고 하였다. 비판을 해보자.

첫 번째, 동굴에 살 때 인류는 자영업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루카치의 미학 1권에서 읽은 것인데) 선사시대의 유적을 보면 날 때부터 장애가 있어 움직일 수 없었던 사람도 성인으로 성장을 한 후에 죽은 흔적이 있다. 사회가 돌보아준 것이다. 선사시대의 사회가 장애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그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동굴에 사람이 살던 시기에 동굴 밖 사냥을 할 때 자영업자로 하는게 가능했을까? 당연히 무리를 지어 협업으로 했다. 인류의 농업도 자영업자가 아니라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같이 땅을 일구면서 시작되었다. 자영업은 인류 역사 전체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동굴에 살 때도 사냥은 개인이 하는 것은 아니라 공동으로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그리고 유누스의 말과는 반대로 그라민 은행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성장했다. 1994-1995년에는 은행간 대출율은 5.5 %였다. 이 기간 동안 그라민 은행은 자나따 은행과의 FDR(fixed deposits receipt 고정예탁증권)의 계좌를 유지했는데 이 계좌는 10.5%의 금리를 지급했다. 그라민 은행은 빈민을 위한 정부 보조금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을 위해서는 정부 보조를 받았다. (Beatriz Armendariz and Jonathan Morduch, 2010, The Economics of Microfinance, MIT press.)

1-3. 개인과 국가

상환율 98%. 이율은 50%, 국가의 든든한 지원, 세계은행의 투자. 이것이 그라민 은행의 성공이다. 그라민 은행은 마이크로파이낸스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사회적 기업에서 박애자본주의로 나아갔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우리 게이츠 재단이 ‘어떻게 사업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고마진 소량생산’이라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저마진 대량생산’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에 사는 200만명 이상의 아동과 성인들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전달한다 ...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여 미소금융제도를 개척했고, 그 결과 전 세계 1억명 이상의 극빈자들이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합중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추천사., [매튜 비숍, 마이클 그린 지음, 안진환 번역(2010) - 박애 자본주의 : 승자만을 위한 자본주의에서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로], 사월의책. p.6

사회적 기업이 시행하는 의료 사업을 생각해보자. 문맹에 가까운 여성들이 3일간 교육을 받고 마이크로파이낸스로 빌린 돈으로 구매한 약을 빈민들에게 팔러 다니는 것과 보건소를 운영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과연 효과가 있겠는가. 사회적 기업이 추진하는 정수기 사업도 생각해보자. 정수기를 빈민들에게 파는 것과 수도시설을 국가가 만드는 것 중 어느 것이 전체 비용면에서 효율적인가?

‘박애자본주의’는 국가는 무능하니까 유능한 자본가들이 직접 세상의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직접 세계를 지배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노골적인 자신감이다. 삼성에서 보고서가 나오면 정책으로 반영이 되고 있는 한국 현실을 생각해보자.
신자유주의, 사회적 기업, 박애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간단하게 도표로 만들어 보았다.

  신자유주의

  사회적 기업, 예: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

  박애자본가 –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사회적 경제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되는 것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하면서 국가에 대해 고민했지만 우선 나부터 모범 사례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시거나 우리 지역의 공동체가 먼저 성공한다면 국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서 실천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밀양처럼 송전탑이 우리 아름다운 공동체의 밭과 논 위에 들어선다면? 당신 마을 옆의 원자력 발전소가 사고가 난다면? 우리는 국가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사회적 경제를 하더라도 국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국가는 거대담론이 아니다. 내 밭 위에 국가가 송전탑을 꽂을 수 있는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일상이다. 거대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담론을 거부하는 것도 거대담론이다. 내 핸드폰 비용도 지하철비도 국가가 통제한다. 국가는 일상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같다’라고 열광적으로 말씀을 하시면 나는 인도에서 INTUC가 ‘노동조합과 서비스 기반 조합은 같다’ 라고 열광했던 것이 떠오른다. 용역회사를 노동자들이 만든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참 우리는 외롭게 살고 있다. 국가가 우리를 돌보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를 만들어서 이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회적 경제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를 피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기존의 사회적 경제를 통한 노력들을 국가와 결합시켜서 사고해본다면 아래와 같은 과정도 가능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 심의 민주주의

2. 맑스 엥겔스의 국가론과 사회적 경제론 발췌와 간략한 언급

맑스 엥겔스의 국가론의 핵심은 꼬뮨론이다.

“우리는 국가를 게마인베센(발제자 주. [독]Gemeinwesen [영]commonalty. 사회구성원, 귀족등과 대비되는 평민)으로 보편적인 대체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훌륭한 오래된 독일어로 불어인 "꼬뮌"으로 쓸 수 있다.” Engels to August Bebel In Zwickau (1875)

맑스 엥겔스의 꼬뮨 즉 사회구성원은 개개인을 고려한다. 투표 유권자의 머리숫자가 아니다. 편집한 자료들을 짚어가면서 같이 보자. 자본론에서의 마이크로 파이낸스 언급 부분을 먼저 보고 맑스 엥겔스 저작선 중에서 협동조합을 거론한 부분들을 짚어가면서 맑스 엥겔스의 국가론에서의 사회적 경제론을 고민해보자.

2-1. 맑스의 마이크로파이낸스 비판

여기서 언급되는 쪽번호는 김수행 번역본이다.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맑스 당시에도 있었고 맑스 그 이전에도 있었다. 사회적 경제는 맑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도 있었다. 맑스는 낡았고 사회적 경제는 새로운 이론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과거의 성과와 오류에서 배우기 보다는 과거 자체를 부정하여서 자신의 사회적 경제론이 새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식적/무의식적 오류일 뿐이다.

자본론에서는 빈민을 위한다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역사상 빈민을 구제한 적이 없음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리대에 대한 반발, 즉 빈민을 고리대로부터 보호하려고 한 것 - 예컨대 몽 드 피에테와 같은 자선전당포[1350년 프랑쉬-콩테(Franche-Comté)의 사랑(Sarlins)에 설치되었고, 1400년과 1479년에는 이탈리아의 페루지에(Perugia)와 사보나(Savona)에 설치되었다.] - 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러한 것이 주목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기관들이 경건한 소망을 그 정반대의 것으로 전환시킨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빈민을 고리대로부터 보호한다는 기관들이 오히려 빈민에게 고리대금업을 하게 된 것〕를 보여주기 때문일 뿐이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은 적게 잡아도 100% 를 이자로 전당포〔자선전당포의 후손〕 에 지불하고 있다. 21)

주21) “전당포의 이자가 그렇게 높은 것은 작은 금액을 얻기 위해 같은 한달 동안 지주 잡혔다 찾아냈다 하기 때문이며 또 어떤 물건을 찾아 내려고 다른 물건을 잡히기 때문이다. 런던에는 공인(licensed)전당포가 240ro 있으며 지방에는 거의 1,450개가 있다. 투하자본은 약 £1백만으로 추산되며 연간 3 회전하고 1 회전마다 평균 약 33과 1/2%의 수익을 올린다. 그러므로 영국의 하층계급은 〔잡힌 물건을 못찾는 것에서 생기는 손실은 제외하더라도] 매년 일시적인 차입에 대해 약 £1백만 을 지불하는 셈이다. [터케트(J. D.Tuckett), 『노동인구의 과거·현재 상태의 역사』, 런던, 1846, 제 1 권, p.114.” - 자본론 3권 제 5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 제 36장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 p. 740


맑스 엥겔스 당시 가장 유명했던 인민은행의 주창자인 헤르만 슐체 딜리치와 DZ 은행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맑스는 자본론에서 그를 언급한다.

“슐체- 딜리치 (Schulze-Delitzsch,Hertmarul Franz. 1808-1883) 독일의 정치가‘ 경제학자.협동조합의 조직화를 통해 노동자를 혁명투쟁으로부터 떼어내려 했다.” - 1권 인명해설 p.1080

헤르만 슐체 딜리치는 독일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인 인민은행(Vorschussvereine)의 설립자이다. 이 사업은 독일 최대 은행 중 하나인 DZ 은행이 되었고 베를린 시내에 그의 동상이 있다. 그는 그의 인민은행이 “노동운동”의 대안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업은 노동자들을 노동운동에서 분리시키려는 노골적인 것과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만든 인민은행은 150년이 흐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보자. 인민은행은 ‘그라민 은행’으로 출발하여 DZ 은행이 되었다. 2008년 세계 공황시 AIG가 위기에 있을 때 DZ 은행도 여기에 맞물려 있어서 같이 파산 위기에 있었다. 미정부가 AIG를 구제할 때 같이 구제를 받았다. 2008년 세계 공황시 국가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규모의 은행이라는 것은 더 이상 빈민을 위한 은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빈민을 위한 그라민 은행은 새로운 것도 아닐 뿐더라 빈민 구제사업으로도 실패한 모델이라고 앞에서 이야기했었다. 인도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은 조지 소로스 등이 그라민 은행을 모델로 시작했지만 농민 자살율 증가로 문을 닫아야 했다. 상환 자체가 너무나 폭력적이었다. 사람을 납치하는 등의 상환금 폭력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고 이율을 50%에서 15%로 제한하라는 법적 제안이 가해지자 사업 자체가 문을 닫아야 했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비즈니스 모델로서도 실패했다. 투자의 귀재인 조지 소르스조차도 적자를 보고 퇴장했으니까.

2-2. 맑스 엥겔스의 협동조합론

협동조합에 대해서 이제는 보자. 맑스는 협동조합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했고 긍정적이었다. 사회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예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정한 것이다. 근래 들어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의 사례로 알려지고 있는 기업회복운동과 노동자통제는 맑스 시대에도 있었다. 엥겔스도 당시의 사례를 언급하였다.

“주 76) {엥겔스 : 내가 알고 있는 하나의 경우에는 1868년의 공황에서 파산한 공장주가 자기 자신의 이전의 노동자들에 의해 고용되였다. 즉 파산한 그 공장은 노동자 협동조합에 의해 인수되고 이전의 공장주가 관리인으로 고용된 것이다.} “ 3권 p. 474

그러나 슐체-딜리치이 같이 노동운동을 파괴하기를 원했던 이들이나 오웬의 이름을 걸고 오웬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어갔던 협동조합주의자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cooperative란 단어는 “공동으로 하는”,“협동조합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를 모두 협동조합으로 읽어버리면 오해가 생긴다. 쉬운 예를 들면 cooperative research는 공동연구로 주로 해석되지 협동조합적 연구로 읽히지 않는다. 맑스가 “협동조합 사회”를 원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너무 과하게 나가게 된다. “우리는 협동조합 운동이 계급 적대에 기초한 현재의 사회를 개조할 힘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현재 사회의 협동조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 이행의 과정에 그리고 이행 이후를 말하는 cooperative는 “공동으로 하는”으로 읽어야 한다. “공동으로 하는” 노동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협동조합적” 형태를 취하는 것은 그 중 일부이다.

Cooperatvie work는 공동노동이라고 읽어야 할 때가 있고, 우리가 외로워서 시작한 협동조합에서의 협동조합 노동으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자본주의 내에서 미래 사회의 맹아적 형태인 협동조합에서의 노동이 있고, 미래 사회로 가는 이행기에서는 협동조합에서의 공동노동과 다른 여타 사회적 소유 기반하의 공동노동이 있고, 미래 사회의 완전한 사회화 기반에서 하는 공동노동이 있는데 이를 혼재하여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노동자협회에서의 맑스의 연설을 통해 맑스의 협동조합 노동에 대한 정의를 보자.

“국제노동자협회의 임무는 노동자계급의 자연발생적인 운동을 통일시키고 보편화하는 것이지, 어떤 공론적인 학설을 그들에게 해설하든지 강제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회는 특수한 협동조합제도을 제창하는 것은 아니라, 약간의 일반 원리를 명확히 하는 것에 그친다.

(1) 우리는 협동조합 운동이 계급 적대에 기초한 현재의 사회를 개조할 힘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 운동의 커다란 공적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에 의해, 궁핍을 만들어 내는 현재의 전제적 제도를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협동사회라는 복지를 동반하는 공화적 제도로 바꿔 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증명한 점에 있다.

(2) 그러나 협동조합 제도가 개개의 임금 노예의 개인적인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 내는 정도의 영세한 형태에 제한되는 한,자본주의 사회를 개조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생산을 자유로운 협동조합 노동의 거대하고 조화로운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 사회의 전반적 조건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변화는 사회의 조직된 힘,즉 국가권력을 자본가와 지주의 손에서 생산자 자신의 손으로 옮기는 이외의 방법으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다.” - 맑스, 제1차 노동자협회에서의 연설


사회적 기업을 하시든지 협동조합을 하시든지 다 좋다. 맑스도 “우리는 협동조합 운동이 계급 적대에 기초한 현재의 사회를 개조할 힘”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다만 잊지는 말자. 국가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매일 매일 우리와 함께 하는 일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일상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음을 잊지 말자.

엥겔스는 국가 정책으로서 농민 협동조합을 제안했다. 그가 이를 제안한 시기인 1884년은 노동자 대표들이 국회에 진출해 있던 시기였다. 엥겔스는 농업노동자들이 날품팔이 노동을 하지 않기 위한 정책으로 협동조합에 의한 공동경작을 제안했다.

“여러분이 국회에 제안을 할 때에 잊어서는 안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국유지는 대개 대차지농에게 임대되고, 그 작은 부분이 농민에게 매각됩니다. 그러나 농민의 분할지는 매우 작기 때문에 신규의 농민은 대농장에서 날품팔이 노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큰 국유지를 분할하지 않고 그대로 농업노동자의 협동조합에 임대하여 공동경작을 하게 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엥겔스가 베벨에게 보낸 편지(1884년 12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엥겔스는 ‘농민의 분할지’라는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으나 공동경작을 요구하였다. 개인 농민이 ‘삽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 경작의 효율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정책 제안을 하고난 10년후에도 엥겔스의 기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분명한 것은 우리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더라도 토지소유자에게는 반드시 그래야겠지만 소농을 강제적으로 수탈(유상 . 무상을 불문하고)하는 따위의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소농에 대한 우리들의 사명은 다음의 점에 있다. 즉 그들의 사적 경영과 사적 소유를 협동조합적 소유로 이행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강제적으로가 아니라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원조의 실례를 보여주고 그러한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물론 우리는 그 점에서 소농에게 그러한 이점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법을 충분하게 준비하고 있으며 이미 지금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음에 틀림 없다.” (강조-발제자) 엥겔스 -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1894년)

“그러한 모든 경우에 중요한 것은, 그리고 먼 훗날에도 계속 마찬가지인데 협동조합적인 소유와 경영으로 전화시키는 것 이외에 농민의 집 농토의 소유를 보전할 길은 없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다. 농민을 몰락에 빠뜨리는 원인은 다름 아닌 ‘개인소유에 기초한 개인경영’이다. 그들이 개인경영에 매달려 있는 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집과 땅에서 내쫓기고 그 낡은 생산양식은 자본주의적 대경영에 밀려나게 된다. 사태는 그러한 것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나아가 자본주의작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공동계산에 의한 대경영을 도입할 가능성을 농민에게 제공한다. 이것이 그들 자신의 이익이고 또 그들의 유일한 구제책이란 것, 그것을 농민에게 이해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강조-발제자)“엥겔스 -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1894년)


엥겔스에 의하면 국가권력은 농민들의 협동조합적 소유를 보장해주고 사회화를 위한 원조를 제공하며 완전한 사회화를 농민들과 같이 준비해나가야 하는 충분한 시간이 요구된다. 맑스 엥겔스에게는 협동조합은 현재의 사회적 경제에서 논의되는 수준인 “개인적인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 내는 정도의 영세한 형태에 제한되는” 규모가 아니다. 국가가 개입하여 사회화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맑스 엥겔스의 협동조합론은 국가에 대해서 논하지 않고서도 협동조합을 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규모가 아니다.

그러면 농민의 분할지로 이루어진 협동조합적 형태가 아니라 대지주의 대토지 소유를 사회화 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엥겔스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런데 대토지소유의 경우에는 일이 매우 단순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명백한 자본주의적 경영이고 여기서는 어떠한 용서도 필요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가 상대할 사람은 농촌 프롤레타리아 대중이고 우리의 사명도 확실하다. 우리 당이 국가권력을 손에 넣은 그날에는 곧장 대토지소유자를 수탈해야 할 것아고 이것은 공업에서 공장주의 장우와 완전히 똑같다. 이 수탈이 유상인가 무상인가의 문제는 대체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권력을 장악할 때의 상황에 좌우되며 특히 대토지소유자들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보상은 허용되지 않는다고는 우리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맑스는 자신의 생각을 - 실로 한두 번이 아니라! - 내게 말했다. 즉 그들에게서 몽땅 돈으로 사들인다면 가장 값이 싸게 먹힐 것이라고.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여기서는 관계없다. 여하튼 이렇게 사회에 반환된 대농장은 이미 그곳을 경작하고 있던 농업노동자를 협동조합에 조직한 다음 그들의 손에 넘겨지고 사회의 관리하에서 이용된다.” (강조, 밑줄-발제자)“엥겔스 -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1894년)

우리나라의 토지개혁도 “대토지 소유자들을 수탈”해서 이룬 것이다. 토지개혁법의 강제 집행을 통해서 유상몰수유상분배로 토지개혁을 완료했다. 그러나 토지개혁의 결과로 협동조합적 소유가 실현된 것이 아니라 공업화로 나아가기 위한 농촌의 희생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대토지 소유자를 수탈하는 것”은 각 나라가 처한 계급적 역관계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다. 맑스 자신이 수십번 반복해서 말했다고 하지 않았나. (사회화는) “돈으로 사는 것이 가장 싸다”고. 돈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지배계급이 강력하게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다.

협동조합을 하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맑스가 베이 자술리치의 편지에 대한 회신을 보면 단순한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수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농민을 수탈하기 위해서는 영국이나 기타의 곳에서 일어났듯이 그들을 토지로부터 추방할 필요는 없고, 명령으로 공동소유를 소멸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농민에게서 그 농업노동의 생산물을 일정 한도를 넘게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헌병대나 군대를 동원해도 농민을 토지에 묶어 두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제국 말기에는 농민이 아니라 지주였던 지방 십장(十長)조차 자기 집에서 탈출하고 자신의 토지를 내버리고 자기자신을 노예로 팔기조차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 그들을 가차없이 착취하기 위한 공식적 구실에 불과한 소유부터 자신을 해방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맑스, 베.이.자술리치의 편지에 대한 회답

협동조합적 공동소유라도 제도의 변화가 따라와야 진정한 협동조합적 공동소유로서 운영이 될 것이다. 이를 우리는 생산관계의 변화로 포괄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가 바뀌지 않은 상태의 협동조합은 성과급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위의 자술리치에 대한 회답에서의 “공식적인 구실에 불과한 소유”와 맑스의 자본론에서 성과급 노동자에 대해서 논할 때 언급한 “자기 자신이 주인”을 비교해서 읽어보자.

“성과급제 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긋는다. 그것은 자본가의 자의(恣意: will) 에 의존하는 단순한 일용노동자의 지위와 [멀지 않은 장래에 공예인(I藝人: artisan)과 자본가를 자기 한 몸에 겸할 수 있는 전망을 가진 협동조합적 공예인 사이의 중간에 놓여 었다. 성과급제 노동자는 기업가의 자본에 의해‘ 일할 때에도 사실상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다."- 자본론 1권 제6편 임금 제21장 성과급제 임금 p. 745

맑스는 자술리치에게 보낸 회신에서 러시아의 미르 공동체과 협동조합적 생산의 관계에 대해서 러시아 전체 사회의 이행의 관점에서 논한다. “개인적인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 내는 정도의 영세한 형태에 제한되는”“사회적 경제” 수준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해야 하는 규모이다. 맑스가 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는 러시아에서 국가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협동조합을 국가가 어떻게 사회화 시킬 것에 조심스럽게 논의하고 있는 글이다. 국가 자체를 무시하고 미르 공동체가 협동조합적 소유로 전환할 수 있는 근거로 들어서는 안된다.

이념적인 문제로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모두는 외로운 사람들로 이 지난한 과정을 같이 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이야기해보자. 기존 체제 내에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많은 굴곡진 길을 넘어가야 한다. 노동 또한 단순하지 않다. 자본주의 내에서 미래 사회의 맹아적 형태인 협동조합에서의 노동이 있고, 미래 사회로 가는 이행기에서는 협동조합에서의 공동노동과 다른 여타 사회적 소유 기반하의 공동노동이 있고, 미래 사회의 완전한 사회화 기반에서 하는 공동노동이 있다. 이는 노동의 규모 자체가 다른 것이기도 하다. 이를 혼재하여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Association of free individuals)’을 ‘협동조합적 소유’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미래사회로 나가는 과정은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경로로 갈 수 있다. 연합(association)에서 associate는 공동노동Co-operative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공동노동은 협동조합에서의 노동의 규모가 아니라 사회적 규모의 공동노동이다. 이 공동노동은 현재의 국가가 아니라 [파리꼼뮨]에서 논의되는 국가이다. [파리꼼뮨]은 맑스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패배했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과정에서 등장했던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 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패배한 역사를 모르고서는 다시 패배할 것이다.

2-3. “사회적 기업”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2-3-1. 오웬에 대한 왜곡


오웬은 “사회적 기업”을 시도한 위대한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다. 맑스는 그의 위대함과 그의 이름을 걸고 ‘반동적 사기’ 즉 “사회적 기업”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주157) 1810년 직후, 로버트 오웬(Robert Owen) 은 노동일 제한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주장했고, 10시간 노동일을 뉴 라나크(New Lanark}세에 있는 자가 공장에 실제로 도입했다. 세상 사람들은 후자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라고 비웃었다. 그의 ‘아동의 교육과 생산적 노동의 결합’, 그리고 그가 창설한 노동자의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샀다. 오늘날, 첫 번째 유토피아는 공장법으로 되었고, 두 번째 유토피아 [교육과 노동의 결합]는 모든 공장법에서 공식적인 관용구로 나타나 았고, 세 번째 유토피아는 이미 반동적 사기를 은폐하는 가면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M ” - 1권 제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10장 노동일 p. 403

오웬은 자신의 실험이었던 “사회적 기업”이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공장제도” 자체를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사회적 기업”들이 무정부주의적으로 시장 안에서 할동하는 것은 사회혁명의 출발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공장법의 확대는 생산과정의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결합을 성숙시킴으로써 생산과정의 자본주의적 형태의 모순과 적대틀 성숙시키고,이리하여 새로운 사회를 형성할 요소들과 낡은 사회를 타도할 세력들을 모두 성숙시킨다 244)
주 244) 로버트 오웬은 협동조합(協同組合) 공장과 협동조합 장점의 시조이지만, 그는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변혁의 이러한 개개의 요소들의 의의에 관해 그의 추종자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환상은 결코 가지지 않았다. 그는 사실상 공장제도를 그의 실험의 유일한 토대로 삼았을 뿐 아니라 이론상으로도 공장제도를 사회혁명의 출발점이라고 선언했다.” - 1권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15장 기계와 대공업 p. 675


2-3-2. 매뉴팩처 시기로 돌아가려는 낭만적인 프루동

우선 맑스가 자본론에서 분석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매뉴팩처 시대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대공업 시대의 자본주의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상업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로 포함한 후 맑스의 분석이 틀렸다고 하는 주장들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맑스에 따르면 프루동은 “상품생산을 존속시키면서 화폐를 폐지하기를 원하였던 선동적인 저술가(3권 . p. 748)”이다. 프루동은 원래 매뉴팩처 시기의 장인 출신으로 대공업제 자본주의를 혐오했지만 매뉴팩처 상품들이 판매되던 시장은 마지막까지 그리워하고 이에 대한 믿음을 아래와 같이 모두에게 ‘전도’하고자 했다.

“프루동(Proudhon)은 처음에 정의, 영원한 정의라는 자기의 이상을 상품생산에 대응하는 법적 관계로부터 끌어내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품생산이 정의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형태라는 것을 증명하여 모든 선량한 소시민[소규모 상품생산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그 다음에 그는 거꾸로 현실의 상품생산이나 그에 대응하는 현실의 법을 이 이상( M 想: idedO에 따라 개조하려고 한다. 분자(分子)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진정한 법칙들을 연구하고 이에 의거해 일정한 과제를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고> 그 대신 ‘자연상태’나 ‘친화성’이라는 ‘영원한 이념세 의거해 이러한 상호작용을 개조하려는 화학자가 있다면,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고리대(高利貸)는 ‘영원한 정의’, ‘영원한 공정성’, ‘영원한 상호부조’ 및 기타의 ‘영원한 진리’와 모순된다고 말할 때,우리가 ‘고리대’에 대해 아는 것은,교부들이 고리대가 ‘영원한 은총’,‘영원한 신앙’,‘신의 영원한 의지’와 모순된다고 말했을 때 교부들이 고리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보다 과연 더 많은가?” (강조 – 발제자)- 자본론 1권 제2장 교환과정 주석2) P. 109

"주 10) 그렇기 때문에 상품생산에 기초한 영원한 소유법칙을 강요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소유를 폐기하려고 하는 프루동(Proudhon)의 교활성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 1권 24장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전환 p.798


도구를 사용해서 자신의 상품을 만들던 매뉴팩처 시대의 장인인 프루동은 대공업 시기의 기계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오해할 수 밖에 없었다.

“기계는 노동자 자신을 유년시절부터 특정 기계의 한 부분으로 전환시키는 데 악용된다. 주석 103) 그러므로 기계를 노동수단의 종합(綜合)이 아니 라 노동자 자신을 위한 부분노동의 종합으로 "해석하는’ 프루동(Proudhon)의 기막힌 관념을 정확히 평할 수 있다. “ 자본론 1권 제 15장 기계와 대공업. Pp. 566- 567.

2-3-3. 오웬과 프루동의 차이

프루동은 노동화폐를 통해서 무정부주의적 생산한 상품이 시장에서 유통되기를 바랬지만 오웬은 계획에 의한 생산을 바랬지만 그의 시대의 한계 상 그를 이룰 수는 없었다.

“어째서 화폐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노동시간을 대표하지 못하는가,어째서 예컨대 한 장의 종이쪽지가 X 노동시간을 대표하지 못하는가라는 문제는 어째서 상품생산의 토대 위에서는 노동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라는 문제로 귀착한다. 왜냐하면 상품의 형태를 취하면 노동생산물은 상품과 화폐상품으로 분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째서 사적 노동은 그 대립물인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으로 취급될 수 없는가 라는 문제도 있다. 상품생산사회에서 ‘노동화폐’라는 천박한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에 대해 나는 다른 곳에서 상세하게 검토했다(『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P. 61 이하).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해 두고자 하는 것은,예컨대 오웬의 ‘노동화폐’가 ‘화폐’가 아닌 것은 극장의 입장권이 화폐가 아닌 것과 같다는 점이다. 오웬은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노동[즉 상품생산과는 정반대인 생산형태]을 전제하고 있다. 노동증명서는 개인이 공동노동에 참여한 부분과 [공동생산물 중 소비용으로 예정된 부분에 대한] 그의 청구권을 확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웬은,상품생산을 전제하면서 동시에 상품생산의 필연적 조건들을 [화폐에 관한 속임수에 의해] 제거해 보려는 엉뚱한 생각[프루동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 2온스의 금 = 20미터의 아마포
또는 = 1개의 저고리
또는 = 10그램의 차
또는 = 기타 등등-“ - 1권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2-4. 맑스의 꼼뮨에 대한 정의

마지막으로 꼼뮨에 대한 맑스에 대한 글을 읽고 이 발제를 마칠까 한다.

“꼬뮌은 시의 각 구(區)에서 보통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시의회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선거인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즉시 소환될 수 있었다. 꼬뮌 의원의 대다수는 당연히 노동자이든가 노동자 계급의 공인된 대표자였다. 꼬뮌은 의회 형식의 기관이 아니고, 집행부인 동시에 입법부인 행동적 기관이어야만 했다. 경찰은 지금까지와 같이 중앙정부의 하수인으로 남았던 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속성을 즉각 벗어 던지고 책임감 있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는 꼬뮌의 집행인으로 되었다. 행정부의 다른 모든 부문의 관리도 마찬가지로 되었다. 꼬뮌의 의원 이하 공무원은 노동자와 같은 임금으로 일해야만 했다. 국가의 고관들의 기득권이나 교제비는 고관 그 자체와 함께 사라졌다. 공직은 중앙정부의 앞잡이들의 사유재산이 아니게 되었다. 시의 행정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국가가 행사하고 있었던 모든 발의권이 꼬뮌의 수중에 넘겨졌다.

대의원은 모두 언제든지 소환시키는 것이 가능했고 또한 그 선거인의 명령적 위임에 의하여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중앙정부에는 소수이지만 중요한 기능이 남아 있을 것인데, 이러한 기능은 고의로 왜곡된 것처럼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꼬뮌의 대리인들,엄격하게 책임을 지는 대리인들에 의하여 수행되어야만 하였다. 국가의 통일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꼬뮌제도에 의하여 조직되어야만 하였다. 국민으로부터 독립되어 국민 그 자체보다 우월한 통일성의 구현이라고 주장한 국가권력은 기생적인 파생물에 불과했다. 낡은 통치권력의 억압적인 제기관은 제거되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 정당한 제기능은 사회 그 자체보다 우월한 지위를 찬탈했던 권력으로부터 빼앗아서 사회에 책임을 지는 대리인들에게 반환해 주어야만 하였다.

보통 선거권은 지배계급의 어느 의원이 의회에서 인민을 잘못 대표(misreprsent)할 것인가 145)를 3년 내지 6년에 한 번씩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어떤 고용주가 자신의 사업올 위하여 노동자나 지배인을 구할 때에 개인적 선택권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꼬뮌에 조직된 인민에 의하여 이용되어야만 하였다. 또 회사에서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실무상의 문제에서는 대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올 알고 있고 비록 한 번 실패하더라도 즉각 그것을 고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보통선거권을 폐지하고 계층적인 임명으로 대신하는 것만큼 꼬뮌의 정신과 동떨어진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꼬뮌 제도는(그것과는 달리) 사회에 기생하여 그 자유로운 운동을 방해하고 있는 기생물인 국가에 의하여 지금까지 착취해 왔던 모든 힘을 사회에 되돌려 줄 것이다. 이 행위 단 하나만으로도 그것은 프랑스의 갱생의 발단이 될 것이다.” - 프랑스 내전


Memo) 사회적 경제 논의에서 사용되는 용어 몇 개 딴지 걸기

□ neoliberal subject 신자유주의적 신민
푸코 연구자들의 푸코의 통치성 관련된 번역인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2011), 안전, 영토, 인구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난장]에서 4강을 보면 subject를 “신민”으로 번역하였다. (Michel Foucault, “Governmentality,” in Essential Works of Foucault: 1954-1984, eds. Paul Rabinow and Nikolas Rose (New York: The New Press, 2003)이다.

subject와 agent의 차이를 논할 때에는 agent는 “주체”로 subject를 “신민”으로 번역하여야 그 차이를 드러낼 수 있었다. 학부 1학년 사회학 개론수업시간에 나오는 구조와 행위주체(structure-agent) 부분은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행위주체와 인간의 행위에 관한 구조의 영향의 관계를 논하는 부분이다. 푸코가 통치성 관련되어서 agent가 아닌 subject를 쓴 이유는 구조 안에서 신민으로서 복종을 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국내 푸코 연구자들은 subject를 “신민”으로 일관되게 번역하였다. ‘신자유주의적 주체(neo-liberal subject)’ 라고 번역되어 쓰이고 있는 용어에서의 주체 또한 ‘신민’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아래 글을 참조하라.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사회적인 것과 시민 주체들을 개조하는 기술의 확산을 동반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논리는 주민들이 일상생활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보건, 교육, 관료체, 직업 등-자유롭고, 자기관리적이며, 자기경영적인 개인들이 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은 국가에게 요구하는 시민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기업가’가 되도록 강요받는 자가 경영적인 시민 주체다” .(이득재, <신자유주의 국가의 주체화 양식-교육과 문화를 중심으로>, 문화/과학, 2008년 여름호)
아이와 옹(Aihwa Ong)의 주장을 소개하는 이득재 교수는 신자유주의 국가가 구사하는 주체성의 기술이 “자기경영, 자기관리, 자기책임, 기동적인 기업가 주체를 신자유주의적 가치들로 내면화”함을 지적한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라는 용어는 기업가 정신을 가지는 것을 높이 사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예를 들어 (neo-liberal) subject to agent를 번역한다면 “(신자유주의) 신민이 주체로”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Neo-liberal subject는 신자유주의적 신민로 번역하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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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0일 서강대 사회과학 연구소 초청 강연회에서 밥 제솝은 “20여년전에는 푸코를 다루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다루게 되었다. 푸코는 법이나 정치 문헌들만을 다루고 경제학을 다루지 않기에 한계가 있다.”라고 말하였다. 이 지적은 통치성 이론에 경제학이 부재한 것에 대한 언급이기도 할 것이다. 같이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 Privatization 사유화
“민영화”로 번역하지 않고 "사유화"라고 번역하는 것이 어떨까. privatization에서 private에서 민이란 의미 는 전혀 없다. 개인, 기업의 의미뿐이다. “민영화”과정에서 국유재산의 인수는 대한민국의 민이 하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이 사유화했을 뿐이다.

□ Deregulation 탈규제
“규제완화”로 번역하지 않고 “탈규제”라고 번역하는 것이 어떨까. 탈규제정책을 도입하면서도 “규제완화 정책”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최소한 규제되어야 할 것은 지켜질 것이라는 오해를 주기 위한 의도이다. 접두어 de는 탈(out of)의 의미이고 완화시킨다는 의미가 없다. 규제완화는 relaxiation of regulation이다.

[자료] 자본론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언급

(쪽번호는 김수행 번역본)

자본론 3권 제 5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 제 36장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 p. 740

우리는 여기에서 고리대에 대한 반발, 즉 빈민을 고리대로부터 보호하려고 한 것 - 예컨대 몽 드 피에테와 같은 자선전당포[1350년 프랑쉬-콩테(Franche-Comté)의 사랑(Sarlins)에 설치되었고, 1400년과 1479년에는 이탈리아의 페루지에(Perugia)와 사보나(Savona)에 설치되었다.] - 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러한 것이 주목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기관들이 경건한 소망을 그 정반대의 것으로 전환시킨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빈민을 고리대로부터 보호한다는 기관들이 오히려 빈민에게 고리대금업을 하게 된 것〕를 보여주기 때문일 뿐이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은 적게 잡아도 100% 를 이자로 전당포〔자선전당포의 후손〕 에 지불하고 있다. 21)

주21) “전당포의 이자가 그렇게 높은 것은 작은 금액을 얻기 위해 같은 한달 동안 지주 잡혔다 찾아냈다 하기 때문이며 또 어떤 물건을 찾아 내려고 다른 물건을 잡히기 때문이다. 런던에는 공인(licensed)전당포가 240ro 있으며 지방에는 거의 1,450개가 있다. 투하자본은 약 £1백만으로 추산되며 연간 3 회전하고 1 회전마다 평균 약 33과 1/2%의 수익을 올린다. 그러므로 영국의 하층계급은 〔잡힌 물건을 못찾는 것에서 생기는 손실은 제외하더라도] 매년 일시적인 차입에 대해 약 £1백만 을 지불하는 셈이다. [터케트(J. D.Tuckett), 『노동인구의 과거·현재 상태의 역사』, 런던, 1846, 제1권, p.114.

[자료] 맑스 엥겔스 협동조합론

(페이지 수는 김성한 번역, 맑스 엥겔스의 농업론, 아침)

□ 『독일 농민전쟁』(제2판, 1870년)의 서문
p. 183
프를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정치적 행동은 1848년 이래의 산업의 발전과 보조를 같이하여 나아가고 있다. 독일의 노동자가 오늘날 그들의 노동조합,협동조합, 정치단체, 집회에서 또한 선거의 시기나 소위 제국 의회 내에서 연출하고 있는 역할을 보는 것만으로도 독일이 이 20년 사이에 어떠한 변혁을 이루었는가를 알 수 있다.

□ 임시중앙평의회 대의원에게 보내는 개별적 문제에 관한 지침 (1866년)
pp. 159 -160

5. 협동조합 노동〔Kooperativarbeit, co-operatve labour〕
국제노동자협회의 임무는 노동자계급의 자연발생적인 운동을 통일시키고 보편화하는 것이지, 어떤 공론적인 학설을 그들에게 해설하든지 강제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회는 특수한 협동조합제도을 제창하는 것은 아니라, 약간의 일반 원리를 명확히 하는 것에 그친다.

(1) 우리는 협동조합 운동이 계급 적대에 기초한 현재의 사회를 개조할 힘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 운동의 커다란 공적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에 의해, 궁핍을 만들어 내는 현재의 전제적 제도를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협동사회라는 복지를 동반하는 공화적 제도로 바꿔 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증명한 점에 있다.

(2) 그러나 협동조합 제도가 개개의 임금 노예의 개인적인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 내는 정도의 영세한 형태에 제한되는 한,자본주의 사회를 개조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생산을 자유로운 협동조합 노동의 거대하고 조화로운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 사회의 전반적 조건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변화는 사회의 조직된 힘,즉 국가권력을 자본가와 지주의 손에서 생산자 자신의 손으로 옮기는 이외의 방법으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다.

(3) 우리는 노동자에게 소비 협동조합보다는 오히려 생산 협동조합에 열중할 것을 권한다. 전자는 현재의 경제제도의 표면에 저항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이 제도의 토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4) 우리는 모든 협동조합에 대해 그 총수입의 일부를 기금으로 돌릴 것을 권고한다. 말과 행동의 두 가지 방법으로, 바꾸어 말하면 새로운 협동조합 공장의 설립의 촉진하고,동시에 그 취지를 널리 알리는 두가지 방법에 의하여 협동조합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5) 협동조합이 보통의 흔한 부르주아적 주식회사로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주주든 아니든 평등한 분배를 받아야만 한다. 단 일시적인 편법으로 저율의 이자를 주주에게 지불하는 것에는 우리도 동의한다.

6. 노동조합 그 과거, 현재, 미래

(1) 그 과거
자본은 집적된 사회적 힘인 데 반해 노동자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뿐이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약은 결코 공정한 조건에 입각하여 맺어질 수 없다. 그것은 한편에 물질적 생활 수단과 노동 수단의 소유가 있고,반대편에 살아 있는 생산력이 대립 있는 사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공정할 수는 없다. 노동자가 가진 유일한 사회적인 힘은 그 숫자이다. 그러나 숫자의 힘은 단결하지 않으면 꺾이고 만다. 노동자의 분열은 그들 상호간의 볼가피한 경쟁에 의하여 생기고 유지된다

□ 프랑스 내전
p. 198
만약 협동조합적 생산이 기만이나 올가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도를 대체하려는 것이라면, 만약 협동조합의 연합체가 하나의 공동 계획에 기초하여 전국의 생산을 조정하고 이리하여 그것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숙명인 끝없는 무정부 상태와 주기적인 경련(공황)을 끝장내는 것이라면ㅡㅡ"여러분 이것이야말로 공산주의, ‘가능한’ 공산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엥겔스 - 베벨에게 보낸 편지(1884년 12월)
p. 291
여러분이 국회에 제안을 할 때에 잊어서는 안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국유지는 대개 대차지농에게 임대되고, 그 작은 부분이 농민에게 매각됩니다. 그러나 농민의 분할지는 매우 작기 때문에 신규의 농민은 대농장에서 날품팔이 노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큰 국유지를 분할하지 않고 그대로 농업노동자의 협동조합에 임대하여 공동경작을 하게 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 엥겔스 -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1894년)
p. 336
마찬가지로 분명한 것은 우리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더라도 토지소유자에게는 반드시 그래야겠지만 소농을 강제적으로 수탈(유상 . 무상을 불문하고)하는 따위의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소농에 대한 우리들의 사명은 다음의 점에 있다. 즉 그들의 사적 경영과 사적 소유를 협동조합적 소유로 이행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강제적으로가 아니라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원조의 실례를 보여주고 그러한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물론 우리는 그 점에서 소농에게 그러한 이점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법을 충분하게 준비하고 있으며 이미 지금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p. 337
그러한 모든 경우에 중요한 것은, 그리고 먼 훗날에도 계속 마찬가지인데 협동조합적인 소유와 경영으로 전화시키는 것 이외에 농민의 집 농토의 소유를 보전할 길은 없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일이다. 농민을 몰락에 빠뜨리는 원인은 다름 아닌 ‘개인소유에 기초한 개인경영’이다. 그들이 개인경영에 매달려 있는 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집과 땅에서 내쫓기고 그 낡은 생산양식은 자본주의적 대경영에 밀려나게 된다. 사태는 그러한 것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나아가 자본주의작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공동계산에 의한 대경영을 도입할 가능성을 농민에게 제공한다. 이것이 그들 자신의 이익이고 또 그들의 유일한 구제책이란 것, 그것을 농민에게 이해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대농.중농도 자본주의적 경영과 해외의 값싼 곡물생산의 경쟁 때문에 반드시 굴복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고, 그것은 이러한 농민들도 부채가 중대하고 곳곳에서 눈에 띄게 쇠퇴하고 있는 사실이 중명하고 있다. 이러한 쇠퇴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농장을 통합하여 협동조합경영으로 개조하도록 권유하는 것뿐이다. 그러한 협동조합경영이라면 임금노동의 착취도 서서히 배제되고 대규모적인 국민적생산공동체 안에서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한 부문으로 점차 바뀌어가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p. 341
그런데 대토지소유의 경우에는 일이 매우 단순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명백한 자본주의적 경영이고 여기서는 어떠한 용서도 필요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가 상대할 사람은 농촌 프롤레타리아 대중이고 우리의 사명도 확실하다. 우리 당이 국가권력을 손에 넣은 그날에는 곧장 대토지소유자를 수탈해야 할 것아고 이것은 공업에서 공장주의 장우와 완전히 똑같다. 이 수탈이 유상인가 무상인가의 문제는 대체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권력을 장악할 때의 상황에 좌우되며 특히 대토지소유자들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보상은 허용되지 않는다고는 우리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맑스는 자신의 생각을一실로 한두 번이 아니라 ! ᅳ내게 말했다. 즉 그들에게서 몽땅 돈으로 사들인다면 가장 값이 싸게 먹힐 것이라고.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여기서는 관계없다. 여하튼 이렇게 사회에 반환된 대농장은 이미 그곳을 경작하고 있던 농업노동자를 협동조합에 조직한 다음 그들의 손에 넘겨지고 사회의 관리하에서 이용된다.

□ 국제 노동자협회 브뤄셀 대회의토지소유 문제에 대한 결의(1868년 9월 13일의 회의에서 채택)
pp. 169 -170

(1) 광산, 탄광,철도에 대하여
기계와 집단의 힘은 현재 오로지 자본가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는데,장래에는 오로지 노동자의 이익에 유용하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그러기 위해서는 이 두 개의 경제력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산업은 모두 임금, 제도로부터 해방된 집단에 의하여 운영되어야만 한다는 것.
이상의 이유로 대회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1) 채석장,탄광, 그 외의 광산 및 철도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국가 단지 그 자체가 정의의 법칙에 따르는 혁신된 국가로 대표되는 전 사회에 귀속되어야만 한다.
2) 사회는 채석장,탄광, 철도를 현재와 같이 자본가에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노동자 협동조합에 맡겨야만 하고, 더욱이 이중의 계약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의 계약은 노동자 협동조합에 점유권을 부여하면서 사회에 대하여 이권의 과학적. 합리적인 이용, 가능한 한 원가에 가까운 가격의 서비스 제공, 회사경리의 감사권을 보장하고 따라서 독점의 부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노동자 협동조합의 각 성원에게 그 동료에 대한 상호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2) 농지소유에 대하여
— 생산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농학 지식올 응용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적인 집단적 경작올 실시하고, 기계와 집단력의 조직올 농업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 더욕이 경제적 발전 그 자체가 대규모 경작올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것.
— 따라서 농업 노동 및 토지 소유는 광산 노동 및 지하자원의 소유와 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것.
- 따라서 그 위에 토지의 생산력은 모든 생산물의 제 1 차 원료, 모든 부의 원초적 원천임과 함께 그것 자체는 누구의 노동 생산물도 아니라는 것. 이 필수적인 제 1 차 원료를 누군가에게 양도하게 되면 전 사회는 그것을 양도받은 사람에게 완전히 종속되게 된다는 것.
이상의 이유로 대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경제적 발전은 경지의 집단적 소유로의 편입을 사회적 필요로 하는 것이다. 토지는 광산이 광부 협동조합에,철도가 (철도)노동자 협동조합에 맡겨지는 것과 같이 농업협동조합에 맡겨진다. 단 광산이나 철도에 대하여 필요한 것과 같은 보장이 사회와 경작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 프랑스 내전
p. 198
만약 협동조합적 생산이 기만이나 올가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도를 대체하려는 것이라면, 만약 협동조합의 연합체가 하나의 공동 계획에 기초하여 전국의 생산을 조정하고 이리하여 그것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숙명인 끝없는 무정부 상태와 주기적인 경련(공황)을 끝장내는 것이라면ㅡㅡ"여러분 이것이야말로 공산주의, ‘가능한’ 공산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베.이.자술리치의 편지에 대한 회답
p. 252
농민을 수탈하기 위해서는 영국이나 기타의 곳에서 일어났듯이 그들을 토지로부터 추방할 필요는 없고,명령으로 공동소유를 소멸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농민에게서 그 농업노동의 생산물을 일정 한도를 넘게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헌병대나 군대를 동원해도 농민을 토지에 묶어 두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제국 말기에는 농민이 아니라 지주였던 지방 십장(十長)조차 자기 집에서 탈출하고 자신의 토지를 내버리고 자기자신을 노예로 팔기조차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 그들을 가차없이 착취하기 위한 공식적 구실에 불과한 소유부터 자신을 해방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 자본론의 협동조합 언급
1권 4판 서문 p.37
그러던 차에 1883년 11월 9일,즉 마르크스가 죽은 뒤 8개월이 지나 『더 타임즈』에 캠브리지 트리니티대학의 세틀리 테일러(Sedly Taylor)에라는 사람의 편지가 실렸다. 매우 온건한 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소인은...

1권 제 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13장 협업 p.448

주15) 영국의 저급신문인 『스펙테이터』(Spectator)지는 1866년 5월 26 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맨체스터 철사제조회사』에 자본가와 노통자 사이의 일종의 공동출자제도(共同出資制度)가 도입된 이후 “첫번째 결과는 재료의 낭비가 갑자기 감소한 사실이다. 그것은 노동자틀이 다른 기업가의 재산이라면 모르지만 자기 자신의 재산을 낭비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료의 낭비는 아마 악성채무 다음가는 사업상 손실의 최대의 원천이다 이 신문은 로치데일 협동조합 성험의 근본적 결함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그 실험은 노동자들의 조합(組合)이 매점이나 공장이나 거의 모든 형태의 산업을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또 노동자들 자신의 상태를 크게 개선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용주들을 위해 빈 자리를 남겨 놓지 않았다 얼마나 잘못한 짓인가!

1권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15장 기계와 대공업 p. 675

공장법의 확대는 생산과정의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결합을 성숙시킴으로써 생산과정의 자본주의적 형태의 모순과 적대틀 성숙시키고, 이리하여 새로운 사회를 형성할 요소들과 낡은 사회를 타도할 세력들을 모두 성숙시킨다 244)
주 244) 로버트 오웬은 협동조합(協同組合) 공장과 협동조합 장점의 시조이지만, 그는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변혁의 이러한 개개의 요소들의 의의에 관해 그의 추종자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환상은 결코 가지지 않았다. 그는 사실상 공장제도를 그의 실험의 유일한 토대로 삼았을 쁜 아니라 이론상으로도 공장제도를 사회혁명의 출발점이라고 선언했다.

1권 제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10장 노동일 p. 403

주157) 1810년 직후, 로버트 오웬(Robert Owen) 은 노동일 제한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주장했고, 10시간 노동일을 뉴 라나크(New Lanark}세에 있는 자가 공장에 실제로 도입했다. 세상 사람들은 후자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라고 비웃었다. 그의 ‘아동의 교육과 생산적 노동의 결합’, 그리고 그가 창설한 노동자의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샀다. 오늘날, 첫번째 유토피아는 공장법으로 되었고,두번째 유토피아 [교육과 노동의 결합]는 모든 공장법에서 공식적인 관용구로 나타나 았고, 세번째 유토피아는 이미 반동적 사기를 은폐하는 가면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1권 제6편 임금 제21장 성과급제 임금 p. 745

성과급제 임금에서는 열핏 보아서는 노동자로부터 구매하는 사용가치는 그의 노동력의 기능인 살아있는 노동이 아니라 이미 생산물에 대상화되어 았는 노동인 듯이 보이며, 또 이 노동의 가격은 시간급제 임금에서와 같이 (노동력의 하루의 자치)/(주어진 시간 수의 노동일)이라는 분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의 작업능력(作業能力)에 의해 결정되는 듯이 보인다)1)
주 1) “성과급제 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긋는다. 그것은 자본가의 자의(恣意: will) 에 의존하는 단순한 일용노동자의 지위와 [멀지 않은 장래에 공예인(I藝人: artisan)과 자본가를 자기 한 몸에 겸할 수 있는 전망을 가진 협동조합적 공예인 사이의 중간에 놓여 었다. 성과급제 노동자는 기업가의 자본에 의해‘ 일할 때에도 사실상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다."(와츠 [John Watts], 『노동조합과 파업. 기계. 협동조합』, 맨체스터, 1865년, pp. 52, 53. 내가 이 소책자를 인용하는 것은 그것이 낡아빠진 온갖 변호론적인 전부한 문구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와츠는 이전에는 오웬주의자로 행세해...

1권 인명해설 p.1080
슐체- 딜리치 (Schulze-Delitzsch,Hertmarul Franz. 1808-1883) 독일의 정치가‘ 경제학자. 협동조합의 조직화를 통해 노동자를 혁명투쟁으로부터 떼어내려 했다.

3권 제5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 제23장 이자와 기업가 이득 p.473

‘우리의 산업제도의 혼(soul)’은 산업자본자가 아니라 산업경영자라고 이미 유어(A. Ure)가 말한 바 었다 75) 사업의 상업적 측면에 관한 한,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제4편에서 언급된 바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그것은 감독노통을 자본소유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언제나 이용가능하게끔 만들였다. 따라서 감독노동을 자본가가 수행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음악지휘자는 그의 오케스트라에서 악기의 소유자일 필요가 전혀 없으며, 또한 기타의 악사들의 ‘임금’ 지불에 관계하는 것도 지휘자로서의 그의 기능에 속하지 않는다. 협동조합 공장(cooperative factories)은 자본가가 생산의 기능자(functionary)로서는 불필요하게 된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본가 자신이 자기의 우월한 지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대토지소유자를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 75) 유어 『공장철학」, 프랑스어판, 1836, 제1권. p.67. 여기에서 이 공장주들의 핀다로스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는 또한 대부분의 공장주틀은 자기들아 사용하는 기계를 조금도 이해하지 뭇하고 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3권 제5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 제23장 이자와 기업가 이득 p.474

공황 뒤에는 언제나 영국의 공장지대에서는 이전의 공장주들이 이제는 이전의 자기 자신의 공장들의 관리인으로서 새로운 소유자-때때로 그틀의 채권자를 위해 낮은 임금을 받고 감독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76)

관리임금은 상업관리인의 경우나 산업관리인의 경우나 모두 기업가 이득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나타나는데,이것은 노동자들의 협동조합 공장이나 자본주의적 주식회사(joint stock company)에서도 마찬가지다. 관리임금이 기업가이득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다른 경우에서는 우
연적인 현상이지만 여기에서는 항상적인 성격을 띤다. 협동조합 공장에서는 감독노동의 대립적 성격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관리인은 노동자들에 의해 지불되며, 노동자들에 대립해 자본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일반[신용제도와 함께 발달한다]은 기능으로서의 관리 노동을 점점 더 자본소유 [자기자본이든 차입자본이든]로부터 분리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이것은 부르주아사회의 발달과 함께 사법기능과 행정기능이 토지소유-위의 기능들은 봉건시대에는 토지소유의 부속물이었다-로부터 분리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 76) {엥겔스 : 내가 알고 있는 하나의 경우에는 1868년의 공황에서 파산한 공장주가 자기 자신의 이전의 노동자들에 의해 고용되였다. 즉 파산한 그 공장은 노동자 협동조합에 의해 인수되고 이전의 공장주가 관리인으로 고용된 것이다.}

3권 제5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 제23장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 p. 477

왜냐하면 한편에서는 다수의 산업경영자와 상업경영자층이 형성됨에 따라 감독임금도 모든 기타의 임금과 마찬가지로 점점 더 일정한 수준과 일정한 시장가격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며,다른 한편에서는 특수훈련을 받는 노동력의 생산비를 저하시키는 일반적인 발달에 따라 감독임금도 숙련노동 일반의 임금과 마찬가지로 점점 더 저하하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측에서 협동조합의 발달, 그리고 자본가 측에서 주식회사의 발달에 따라, 기업가이득과 관리엄금을 혼동시키는 최후의 구실마저 유지될 수 없게 되었으며, 이윤은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었던 것, 즉 단순한 잉여가치-아무런 등가로 지불되지 않은 가치, 실현된 불불노동-로 실제로도 나타나게 되었다.

3권 제5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 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p. 546 - 547

노동자들 자신에 의해 운영되는 협동조합 공장들은 비록 모든 경우 그들의 현재의 조직에서는 기존제도의 모든 결함을 재생산하며 또 재생산하지 않을 수 없지만,낡은 형태 내부에서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는 최초의 실례이다. 여기에서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이 철폐되고 있다. 비록 처음에는 다만 조합의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의 자본가라는 형태 - 즉 그들이 자기 자신의 노동을 가치증식 시키기 위해 생산수단을 사용한다는 형태 - 로서 이긴 하지만 이러한 공장들은 물질적 생산력과 그것에 대응하는 사회적 생산형태의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산양식이 낡은 생산양식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전하고 형성되는가를 보여준다. 협동조합 공장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발생하는 공장제도 없이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신용제도 없이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신용제도는 자본주의적 개인기업을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로 점차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주요한 기초를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기업을 다소간 국민적 규모로 점차로 확장시키기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는 협동조합 공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연합한(associated)생산양식으로 가는 이행형태(transition form)로 간주되어야 하는데, 다만 전자에서는 그 대립〔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이 소극적으로 철폐되고 후자에서는 적극적으로 철폐되고 있다.

[자료]꼬뮨론

□ 프랑스 내전
p. 194 - 196
꼬뮌은 시의 각 구(區)에서 보통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시의회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선거인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즉시 소환될 수 있었다. 꼬뮌 의원의 대다수는 당연히 노동자이든가 노동자 계급의 공인된 대표자였다. 꼬뮌은 의회 형식의 기관이 아니고, 집행부인 동시에 입법부인 행동적 기관이어야만 했다. 경찰은 지금까지와 같이 중앙정부의 하수인으로 남았던 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속성을 즉각 벗어 던지고 책임감 있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는 꼬뮌의 집행인으로 되었다. 행정부의 다른 모든 부문의 관리도 마찬가지로 되었다. 꼬뮌의 의원 이하 공무원은 노동자와 같은 임금으로 일해야만 했다. 국가의 고관들의 기득권이나 교제비는 고관 그 자체와 함께 사라졌다. 공직은 중앙정부의 앞잡이들의 사유재산이 아니게 되었다. 시의 행정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국가가 행사하고 있었던 모든 발의권이 꼬뮌의 수중에 넘겨졌다.

대의원은 모두 언제든지 소환시키는 것이 가능했고 또한 그 선거인의 명령적 위임 에 의하여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중앙정부에는 소수이지만 중요한 기능이 남아 있을 것인데, 이러한 기능은 고의로 왜곡된 것처럼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꼬뮌의 대리인들,엄격하게 책임을 지는 대리인들에 의하여 수행되어야만 하였다. 국가의 통일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꼬뮌제도에 의하여 조직되어야만 하였다. 국민으로부터 독립되어 국민 그 자체보다 우월한 통일성의 구현이라고 주장한 국가권력은 기생적인 파생물에 불과했다. 낡은 통치권력의 억압적인 제기관은 제거되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 정당한 제기능은 사회 그 자체보다 우월한 지위를 찬탈했던 권력으로부터 빼앗아서 사회에 책임을 지는 대리인들에게 반환해 주어야만 하였다.

보통 선거권은 지배계급의 어느 의원이 의회에서 인민을 잘못 대표(misreprsent) 할 것인가145)를 3년 내지 6년에 한 번씩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어떤 고용주가 자신의 사업올 위하여 노동자나 지배인을 구할 때에 개인적 선택권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꼬뮌에 조직된 인민에 의하여 이용되어야만 하였다. 또 회사에서도 개 인과 마찬가지로 실무상의 문제에서는 대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올 알고 있고 비록 한 번 실패하더라도 즉각 그것을 고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보통선거권을 폐지하고 계층적인 임명으로 대신하는 것만큼 꼬뮌의 정신과 동떨어진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꼬뮌 제도는(그것과는 달리) 사회에 기생하여 그 자유로운 운동을 방해하고 있는 기생물인 국가에 의하여 지금까지 착취해 왔던 모든 힘을 사회에 되돌려 줄 것이다. 이 행위 단 하나만으로도 그것은 프랑스의 갱생의 발단이 될 것이다.

Memo) 파리 꼬뮌은 맑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만든 역사적 실제였다.

꼬뮌은 계급투쟁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꼬뮌은 이 계급 투쟁이 그 서로 다른 국면들을 가장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경과할 수 있는 합리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맑스 왈 “즉 그들에게서 몽땅 돈으로 사들인다면 가장 값이 싸게 먹힐 것이라고”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라는 것.

□ Engels to August Bebel In Zwickau (1875) –

우리는 국가를 게마인베센(“commoanalty” 사회구성원, 귀족등과 대비되는 평민)으로 보편적인 대체를 제안한다. 이것은 훌륭한 오래된 독일어로 불어인 "꼬뮌"으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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