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씨는 출판 편집자로 일해오다 지금은 퀴어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20대 후반 대학원생 노동자다. '초'라는 이름으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액션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민지 씨는 크고 작은 투쟁 현장에 개인으로서 연대를 이어오다, 12.3 내란 사태 직후부터 성소수자 인운동에 본격적으로 합류해 광장 안과 밖의 여러 현장들을 함께 지켜왔다.
스스로를 "느슨하게 퀴어라고 정체화하고, '유사 레즈비언' 정도로 '농담삼아' 이야기"한다는 민지 씨는 무지개 띠와 트랜스젠더 플래그,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연대하는 의미를 담은 쿠피예를 착용한 채로 광장에 함께했다. 그렇게 "연대의 일원으로서, 끊임없이 존재를 드러내면서" 윤석열 퇴진과 여러 사회적 의제들이, 민주주의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이, "우리의 삶과 해방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나누기 위해 노력해왔다.
민지 씨는 광장 이후의 대선에서 어떤 고민들을 마주하고 있을까.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 아래는 민지 씨와 참세상이 나눈 일문일답이다.
행성인 동료들과 함께,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 행진에 참여한 민지 씨. (제공: 김민지)
지난 겨울, 어떤 마음으로 광장에 함께했나.
비상계엄 이후 계속 광장에 나가게 되었던 동력은 내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러셨듯이 처음엔 일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다 반납하고 광장의 거리에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실은 늘 거리에 나와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얘기를 마주하면서,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일상이라는 게 모두에게 다 같은 형태로 당연하게 주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절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우리가 단지 이 사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저 역시도 성소수자로서, 또 불안정한 노동자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 일상이 그렇게 안전하고 안온했던 적이 없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광장에서는 '윤석열 퇴진'과 여러 사회운동 의제를 연결하려는 노력에 대해 의문을 품는 목소리들도 존재했다.
지금 대선 후보자 토론이 진행되면서도 계속 비슷한 의문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 사실 성소수자 의제라고 할 때 성소수자로서의 삶이 아주 별개로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은 규범적인 이 체제와 미묘하게 어긋나고 불화하게 된다는 점에서 퀴어한 것이고, 그런 면모들을 전유하기도 하고. 저 역시도 성소수자고 그런 소수자성을 퀴어로서 받아들이고 이게 삶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긴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그 정체성으로만 환원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단지, 이를테면 내가 성소수자이기도 하고 불안정한 노동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러 개의 정체성을 그냥 갖고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이런 영역들이 서로 계속 영향을 주고받고 극대화하기도 하고 이미 너무 젠더화된 나의 이 노동자성을 다시 또 젠더화하는 그런 환경들이 있다. 한 사람의 삶에서 그런 일들이 무수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광장에서 우리의 삶 또는 우리의 해방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성소수자 의제라는 게, 또 성소수자의 삶에 적용되는 차별이나 혐오에 대항하자는 게, 모두의 삶을 평등하게 재구성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내란 이후의 사회를 우리가 같이 살아가야 할 텐데, 그 사회를 구성할 때 평등에 대해 좀 더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하면서 더 나은 삶을 같이 질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광장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성소수자 의제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게 어떤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대선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광장에서 터져 나왔던 그 수많은 목소리들을 이어가야 한다고 또다시 목소리 내야 하는 상황이다. 우려했던 대로 관성처럼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거대 양당 구도를 보면서 드는 환멸이 너무나 크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의식을 나누는 동료들 그리고 시민들이 어느 때보다 힘을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좌절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이 에너지를 어떤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거나, 광장에 대한 이 기억들을 더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늘 하지만, 이런 운동 현장에서의 시민사회의 열망이 대선 정국에서 얼마나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는지 그걸 체감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지지하는 후보가 있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권영국 후보를 지지한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 삶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속 말해온 유일한 후보이기 때문이다. 권영국 후보가 항상 가슴에 배지로 달고 있는 '무지개 동지'라는 말이 있지 않나. 앨라이라고도 일컫는, 광장에서 많이 가시화된 개념인 것 같은데, 그것도 제가 생각하기에 단순히 성소수자 지지해, 같이 살아도 괜찮아, 이런 메시지만은 아니다. 당사자로 정체화하지 않은 그 누구라도 이런 이성애 중심적이고 이분법적인, 체제에 의한 억압을 말끔하게 비껴갈 수는 없다는 것에 기반해, 우리가 좀 더 나은 삶을 같이 고민하고 기꺼이 연결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리고 더 적극적인 존재 방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그런 호명이기를 바란다.
권영국 후보가 광장이 만든 앨라이 후보를 자처하면서 또 앨라이 대통령이 될 것을 선언하면서 보여주는 행보들과 구체적인 공약들이 바로 그런 점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지지하고 있다.
성소수자 의제 외에 권영국 후보의 공약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면.
사실 10대 공약 중 어느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주요 공약으로 가져오는 후보가 권영국 후보를 제외하고는 없다는 것이 참 이상할 정도다. 10대 공약 외에도 후보자 토론 등에서 차별하지 말라는 발언, 헌법에 명시된 것이라면서 차등 임금 문제를 다룬다거나, 평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거나, 이런 의제들을 직접적인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도 인상 깊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도, 산재로 목숨을 잃고 다친 노동자들의 이름을 대선 토론에서 하나하나 호명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한 모습이 가장 눈에 띄었다.
지난 대선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했었나.
이번이 세 번째 대선 투표인데,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는 모두 심상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제가 투표한 첫 대선도 박근혜 퇴진 이후에 열린 조기 대선이었고, 당시에도 정권 교체를 이야기하면서 '사표론' 등의 압력이 심했다. 두 번째 대선에서도 왜 사표를 만드냐, 심지어는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선택들 때문에 윤 씨가 당선된 거다, 이런 말씀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얘기고, 선거의 본질을 흐리는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광장의 힘으로 열린 조기 대선이라는 점에서 이번 대선은 지난 2017년 대선과도 겹친다. 당시 정권 교체를 이루었던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특히 성소수자 운동에서는 '나중에'라는 말로 요약된다. 당시의 광장도 정권 교체만을 열망하면서 열렸던 것이 아닌데, 정권이 교체됐다는 것 외에 내 삶에서 직접 체감되는 변화를 찾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대선에서 줄곧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진보정당에 투표해왔나. 이번 선거에서는 어떤 마음인가.
우선은 사표라는 개념 자체를 유의미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책 공약들에 힘을 싣는 것이, 그것들을 다음 정권에서 끌어내기 위한 실천이고 정치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늘 얘기하듯이 거대 양당 정치가 항상 내 삶과 존재를 지우려고 하지만 지울 수 없는 것처럼, 한 표로 내걸고자 하는 그 절박함을 사표로 치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리고 저는 권영국 후보의 인터뷰 발언을 아주 인상 깊게 봤다.
국민의힘을 포함한 이 거대 양당 구도가 내란 공방을 펼칠 시점이 더 이상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광장 연합 정치라는 이름을 내세운 게 무색하게도 중도 보수를 자처하고 있는 민주당과, 정말로 이 광장을 촘촘하게 구성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연대 후보이고 또 유일한 진보 후보인 권영국 후보가, 이제 어떻게 이 광장의 목소리들을 이어받아 사회를 전환해 나갈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그런 장을 만들어 가는 게 우리가 이렇게 어렵고 치열하게 만든 조기 대선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방향이지 않겠나. 그리고 내란 세력을 청산한다는 것은 사실 그들 세력에게 더 이상 마이크를 주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용산 참사를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비평을 쓰고 있다. 그 영상에 용산 참사 변호인단으로서 당시 권영국 변호사의 얼굴이 계속 등장한다.
최근에 한남동 관저로 상징되는 이 내란 정치를 청산하자는 의미에서, 용산 시대를 끝내자라는 구호도 있는데, 그 구호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되게 복잡해진다. 용산이라는 이름에 계속 또 다른 국가 폭력들이 겹겹이 축적되는 이런 상황 속에서 그렇게 삶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위치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생각하면 참담해진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지금도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에게 지지를 표하는 것이, 내란 청산과 그 이후의 사회를 꾸려나가는 데 꼭 필요한 힘이라고도 생각하게 된다.
지지하는 권영국 후보에게 아쉬운 점이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권영국 후보가 보여주는 많은 행보들이 대선 후보들 중 '유일한' 것임을 생각했을 때, 그 이상을 말하는 것이 어렵기도 한 것 같다.
이를테면 차별금지법 같은 것도, 대선 후보자 토론 중 이재명 후보는 또다시 당장은 어렵다, 너무 복잡한 현안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권영국 후보가 지적했듯,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것들이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민주당이 이 사실을 영원히 모른 척할 것 같은 상황에서, 권영국 후보가 차별금지법을 계속 발화하는 것이 너무나 의미가 있지 않나.
사실 차별금지법도 제가 느끼기에, 이 사회에 서로 다른 수많은 존재들이 대화하기 위한 첫 번째 토대이고, 무엇이 차별인지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그리고 피해자가 차별에 대한 원상회복을 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인 것이지, 최후의 목표는 아니다.
제정 이후에 인식의 변화를 토대로 구체적인 시정 명령이나 다른 국정 과제들이 수립되어야 하고, 그렇기에 차별금지법이 하나의 중요한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는데, 도무지 그다음으로 넘어가지를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권영국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너무나 많이 남아 있는 할 일들을 위해 계속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 함께 차별금지법을 하루빨리 제정하고 그다음으로 좀 넘어가고 싶다.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이 사회를 대통령 혹은 어떤 한두 개의 정당만이 이끄는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가 단지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살아갈 만한 삶을 만드는 그런 정책들을 끌어낼 선택 중 하나가 권영국 후보를 지지하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번 광장만이 아니라, 그동안 늘 광장에 거리에 나와 있었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사람이 대선 후보로 나와 있다. 첫 유세 일정으로 고공 농성장을 방문한다거나 대선 토론에서 노동자 시민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데 시간을 쓰는 후보가 유의미한 표를 얻으면서 이 대선을 완주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대선 이후,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광장에 계속 나가면서 우리가 매일 광장에서 함께한다는 것, 이 공동체의 폭발적인 힘을 늘 체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얼마나 일시적이고 또 한정적인 공동체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서로 만났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또는 그 광장에서도 안전하지 못했거나 나올 수 없었던 존재들, 그리고 더 많은 용기를 내야 했던 존재들에 대해서 계속 같이 말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제 그 감각은 전부 다르겠지만, 이 시간들이 우리에게 남긴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고 믿고 싶고, 그래서 같은 믿음으로, 광장은 닫히지 않으니 계속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