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by
시타
사람들마다
순서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의 여성 네티즌들은
대체로 몇 가지의 공통적 경험을 하 게 된다고
한다. 온라인 성폭력의 경험, 여성문제와
관련된 게시판 상의 논쟁에서 최종적으로 배제당
하는 경험, 여성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여성네티즌들과 친구가 되고 해방감
을 맛보는 경험 등과 같은 것이 아마 그것일 것이다.
여성 네티즌들이 어떤 공통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이버 공간 안에 뭔가 구조적인
시스템과 문화가 존재함을 증명한다. 그것이 사이버
공 간에서의 '남성지배"이든, 아니면
여성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이든 말 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통신/인터넷
좀 못하면 어때?" 라고 근거 없는 배
짱을 부리던 '넷맹'이었다. 그러던 내가 PC통신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참세상 BBS를 통해서였
다. (선전하는게 아니다. 정말이다. -_-;) 그곳에서 나는 여성주의자들과
만났다. 그건 참 신기하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이디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 '타인'과 무언가를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함 께 싸울 수 있다는 것. 간간히 상업통신망의
플라자 같은 곳에서 마초들을 만나긴 했으나, 꽤나
긴 시 간동안 나는 '사이버 공간 = 생산적이고
얻을 것이 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등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행운아였다. 상대적으로 '좋은 출발'의 경험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출발만 좋았다는
데 있다.
뭐가 문제냐고? 글쎄다. 그건 "당신은
왜 여성주의자가 되었는가?"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한마디 로 말해 사이버
공간도 현실 공간과 별 차이가 없더란 말씀이다. 현실과 똑같이 그곳에도 성폭력이
있 었고, 현실과 똑같이 그곳에서도 남자들의
목소리가 컸으며, 현실과 똑같이 그곳에서도 여자들은
수 적으로 열세였고, 현실과 똑같이 그곳에서도
'여성문제' 얘기만 꺼내면 지랄발광을 하는 마초들로
득 시글댔으며, 현실과 똑같이 그곳에서도
적대적인 싸움의 순간에 점잖게 훈수나 두려는 '오빠들'이
있 었고, 현실과 똑같이 그곳에서도 벌거벗기운
여자들이 광고판에 등장하여 분노와 곤혹스러움을 자아
내곤 했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이게 다
라면 너무 하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싫다.) 현실에서와
똑 같이 그곳에서도 싸우는 여자들이 있었고,
현실에서와 똑같이 그곳에서도 여성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고 용기를 붇돋았으며, 현실에서와 똑같이
그곳에서도 여성들이 만들어 낸 값진 여성전용공간에
서 휴식과 치유, 신뢰와 자아존중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이러하다고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아마 여러분은 내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눈치 채
셨을 것이다. 그건 바로, 현실에서와 똑같이, 사이버공간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지난 글에서도 얼핏 얘기했었지만, 사람들은 자꾸 사이버공간이
평등 한 곳이라고 속이려 든다. 이거 순 뻥이다.
하긴, 내가 굳이 "속지 말자 허위 선전, 다시
보자 사이버 공간!" 하며 강조하지
않아도 사이버 공간에서 조금만 살다보면 그 정도의
진실은 다 알게 되지만 말 이다. 그러나 현실공간에서 자신이 '여성'임을
자각하고 '여성'으로서의 경험에 기반하여 분노하고
싸 우지 않는 한 아무 것도 바뀌지 않듯이,
사이버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여성"
네티즌이다. 이건 (중성화, 혹은 남성화된) "네티즌"과는
질적 으로 다른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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