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 열여섯 개의 이야기

제목 이마리오 감독님께
번호 25 분류   조회/추천 1965  /  54
글쓴이 들병이    
작성일 2006년 07월 03일 11시 30분 28초
링크 첨부   _기쁨의_시간_속에서_(자평기고).hwp(20.0 KB)
1. 강릉떼끄에서 영화감상 후 말씀여쭈었던 기고글을 다 엮어서 첨부합니다. 혹여 누가 되는^^ 내용이 있으면 (제 메일이나 손전화(016-796-7968)로)말씀 주십시오 . 수정하여 웹진 자율평론( http://jayul.net/index.php ) 다중동향 꼭지에 기고하려고 합니다.

2. 제작비는 물론이고 촬영과정에서 심하게 부상을 입으며, 또 무료 상영까지 감수하시면서 다른 삶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를 만드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3. 파일 첨부가 자꾸 에러가 나서 아래에 기고문을 올립니다

오래된 기쁨의 시간 속에서
( 영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보고난 후 )

들병이



“영화는 미래로 장전된 무기다”

2003년 스페인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의 한 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주목받기도 했던 영화 <노벰버(Noviembre)>. 그 영화에서 감독 아체로 마냐스는 세상을 바꾸려는 주인공 알프레도의 가슴을 고동치게 만드는 목소리를 빌어 “예술은 미래로 장전된 무기”임을 외치고 있다.
프랑코 정권에 대항하여 쓴 가브리엘 셀레야의 이 시구는 곧장, 영화 속의 알프레도와 아체로 마냐스 감독, 그리고 내가 몹시 사랑하는 이 땅의 독립영화감독들로 중첩되는 이미지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얼마 전에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강릉 시네마떼끄(JIFF8을 운영하는 옹골찬 영화 모임)에서 미래로 장전된 또 하나의 무기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보고 이마리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영화 제목은 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의 대표적 시네마테크인 '문화학교 서울'에서 발간한 책 과 이름이 같다. 그리고 1960년대에 남미에서 제3영화를 제창했던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가 아르헨티나의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분석을 담았던 흑백 기록영화 ‘The Hour of Furnaces’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 글은 이마리오 감독과 함께 나누었던 영화와 이야기의 기쁨 속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다녀 온 여행기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을 배워요"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객관과 주관의 경계를 흐리는 작품들.....다큐의 객관성을 믿지 않는 듯, 그 내용도 기성 사회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만드는 자의 평정심을 이미 내 던진다.’(영화비평 <현실> 2002 창간호) 한국 독립영화의 변화하는 흐름을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이마리오 감독은 그 다른 리얼리티를 주도하며, 괄호 친 객관성의 눈으로, 행동하는 뇌와 같이 매우 탁월한 다큐 구성형식을 늘 새롭게 실천해 온 독립영화 감독 중 한 사람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마치 좌파 조직들의 무능과 진보 단체들의 위기가 이 땅의 모든 새로운 투쟁과 구성에 조종을 울리는 것인 양 뇌까려지는 속에서(이건 독립영화계도 마찬가지다) 그가 오래된 기쁨으로 손 내밀어 새로운 영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선물할 때, 나는 그의 그 오래된 기쁨의 시간 속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19살에 대입 원서를 넣고 우연히 보게 된 5.18 영상 속에서 화면 가득 흐르는 핏물과 만난다 해서 모두가 투쟁에 뛰어들고, 미래로 장전된 무기(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는 건 아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신분증에 감춰져 있는 파시즘적 욕망을 고발하는 거창한’ 데뷔작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를 만들고, ‘공영’방송 상영 투쟁을 벌이고, 한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지문 날인된 주민등록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 개최된 <야마가타 영화제>에 초대받아서 3천 명 이상의 관객에게 이 제도의 불합리성을 알리도록 행동하게 했던 것일까.
그는 이라크 파병 반대 삭발 시위 후 두 번째로 제작하는 <미친 시간>작업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작년 <미친 시간>작업을 하면서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선한 존재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반레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인간이지만 그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http://blog.jinbo.net/mario/?cid=1&pid=5) 감독과 인터뷰 참전경험자들을 향해 거세게 항의하고 협박하는 참전전우회 (2005년 2월 18일 오마이뉴스)기사와 “두 번째 방문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폭탄구덩이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학살에 대해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생존자를 인터뷰하면서 순간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분이 웃지만 않았어도 아니 오히려 화를 냈다면 눈물이 나질 않았을 겁니다......젖먹이였다가 엄마 품에서 다행히 살아남았던 생존자 동생의 금방이라도 쏟아 질 듯 한 눈망울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한 이마리오 감독의 표현이 겹쳐진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인 듯하다... 과거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인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사과도 하기 전에 한국정부는 또다시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했다. 또다시 잘못된 역사를, 그리고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연대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2004년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에서 그는 큰 작업 형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난겨울, 명동성당 농성단을 촬영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한 겨울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명동성당 들머리의 농성단 천막과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서로 보듬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서 ‘독립영화를 하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였습니다. 우리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카메라로 이주 노동자의 삶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기록하는 일...... 이것이 우리들이 연대할 수 있는 방식 중의 하나였습니다.(http://media.jinbo.net/iju/why1.html)
이 변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원승환(한독협 사무국장)은 ‘독립영화를 향한 두 가지 시선’에서 몇 년 사이 가장 적은 관객이 다녀간 인디포럼(96년 독립영화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으며, 올해로 9회 째를 맞은 독립영화 진영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비경쟁 독립영화축제)과, 2회까지 진행했던 공간을 벗어나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 공간으로 행사장을 옮겼음에도 자본과 언론이 주목하고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상영관을 찾았던 미장센단편영화제 (화장품 제작업체 태평양 미장센의 후원을 받아 충무로 주류감독들이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시작된 단편영화제로 출품영화들을 장르로 구분해 상영, 시상하는 경쟁 단편영화제)를 비교하면서 자본과 제도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해 온 독립영화가 처하고 있는 혹독한 변화의 흐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인디포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영화 상영과 함께 메인 포럼(독립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독립영화계의 흐름을 짚어보고 그 방향을 제시)을 비롯해 극영화·실험영화·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영화 등 분과별 포럼(독립영화의 제작 여건과 관련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을 짚어보고, 정보교류 및 주변 환경의 개선을 도모)과 기술 워크숍(기술적인 보완과 국내 독립영화의 경쟁력 모색)을 진행하면서 매년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신작들과 함께 영화의 다른 가치들을 고민하는 새로운 시간을 구성해 온 그 덕성스러움을 어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이토록 척박하고 선정적인 한국문화의 시간 속에서 인디포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느낄 것인가. 오래된 기쁨의 자리.....
독립영화계의 운영 위기들에 직면하여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는, 독립영화 제작 및 배급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방송국, 기업 등이 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다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옴니버스 영화 제작 및 배급을 위한 세미나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그리고 방송의 만남'을 마련하면서 인디스토리는 “디지털 옴니버스 영화는 독립 영화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현실적 대응방책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그 협력적 형식으로 삶과 투쟁을 더욱 강렬하게 구성하여 오래된 기쁨의 시간이 되는 것으로 이 혹독함의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호기어린 탐색을 이마리오 감독의 작업 형식의 변화에서 읽을 수 있었다.
시 공간의 벽을 넘어서기 위한 구성의 하나로 제안하여 먼저 만들어낸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국보법 철폐 프로젝트가 자본과 제도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조직적인’ 연대형식의 영화를 보여주었다면,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프로젝트는 그와는 또 다른 실험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홈페이지 게시판에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는 제목으로 처음 <불필연> 제안 글을 올렸을 때 그는 감독들이 이렇게 많은 호응을 해 올 줄 몰랐었다고 하였다. 그 감독들은 모두 다르다. 성별도, 나이도, 경력도, 소속 단체나 운동 경향도, 스튜디오를 가진 감독도 있고, 자신이 찍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삶을 함께 만들고 있는 감독도 있다. 그런 그들이 자율적으로 함께 하며, 가난한 형편에도 스스로 비용을 대어서 제작하고, 삶이 곧 투쟁인 각자의 터에서 어렵게 모여 서로의 작품들과 엮여진 <불필연> 자체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의 삶과 작품을 진화해 나가고, 완성 후 무료상영을 결정하고, 자발적으로 걷힌 관람료를 KTX 현장에, 대추리에 투쟁기금으로 전하고 영화를 상영해 드리고 돌아오는 그 공통적인 것에 대하여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함께 한 감독들과 서로 모두 친하냐고 물었을 때 자주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다며 웃었다. 그는 좋아하는 독립영화 감독이 누구냐는 질문에도 좋아하는 독립영화가 있다고 고쳐주었다. 또 어느 곳에서든 그 곳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모여서 찍고 함께 보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개인 카메라나 자기 스튜디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만들 때도 (저마다 모든 게 몹시 다르기 때문에) 필름이 붙을까 싶었는데 붙더라고 하면서 웃었다. 각 작품들의 완성도, 시선, 투쟁장소의 차이를 넘어서 그가 프로듀서로서 감독들에게 요구한 건 두 가지였다고 하였다. 하나는 희망을 읽어내고 찍자는 것.(영화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 새만금의 물막이는 둑트기로 호명하여- 언어로 끌어와서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우리는 그 언어-둑트기-를 우리 힘으로 하고 싶다는 새로운 욕망을 안에서 발명해 낸다. 서로 다른 감독들의 서로 다른 색깔과 눈빛, 욕망과 행동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고유명사를 넘어서 대의된 권력 그 자체에 대한 힘 있는 문제제기로 다채롭게 우리를 초대한다.) 또 하나는 현장에 카메라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그는 영화 사이사이에 카메라를 함께 보여 줌으로써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을 훼방한다.)으로서 전통적 좌파에서 호명되어지듯이 도구로서의 필름이 아닌, 투쟁의 새로운 형식으로서의 카메라와 그 다른 협력 형식의 힘을 주목하도록 한다. 그러고 보니 이마리오 감독이 그 간의 작품들을 공통의 공간에서 공통으로 쓰는 카메라를 활용하여 만들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독립영화계의 블록버스터’라 할 <미친 시간>작업을 할 때도 거반 한 달여를 기획안 쓰는데 사용하면서 공통적인 기금들과 단체들의 협력적 힘들을 연결해 냈던 것도 떠올랐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한 진보적인 어른께서 하신 말씀 하나가 떠오른다. 문화연대는 있어도 이념 연대가 없는 이유를 아느냐고. 나는 그때부터 문화, 이념, 연대라는 말들이 엮이어서 드러내는 효과를 곰곰이 생각해 왔었다. 그 길 위에서 삶 문화, 삶 정치, 비 유기체적 협력을 조금씩 꿈꾸기 시작할 때, 새소리처럼, 보리 익는 냄새처럼, 아이의 웃음 가득한 얼굴처럼 내 꿈을 깨고 꿈보다 더 아름답게 안겨온 사건과 같은 영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그처럼 영화를 접하는 것이 그 영화가 펼쳐 낸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는 욕구를 생산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나는 함께 영화를 보자고 그와 같은 이 땅의 모든 어른들께 여쭙고 싶어졌다.

오래된 기쁨의 시간 속에서
나는 이마리오 감독을 모른다.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를 거 같다. 그는 계속 행동하면서 되어가는 존재이니까. (이러한 새로움이 이마리오 감독만의 것이 아님을 나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함께 하였던 태준식 감독의 영화들의 변화흐름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불필연>이야기에서 태 감독이 찍은 것을 가장 좋아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는 현재의 방식이 아닌 구성원 개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러한 목소리들이 모여져서 이 사회가 운영되어야한다.” “일반적인 질서 안에 포섭된 구성원이 아닌 경계에 서 있는 애매한 혹은 자유로운 위치 (그는 자신과 같은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위치를 이와 같이 표현 한 적이 있다.)를 살면서 다른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함께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는 그의 표현들과 만나면서 형성해 온 ‘이마리오 감독’이라는 이미지를 이야기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함께 보았던 나와 내 친구들에게, 오래된 기쁨의 시간을 지금- 여기에서 (그와 함께) 구성해나가고 싶다는 공통적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제 꿈꾸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삶이 미래로 장전된 무기”가 되는 시간을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내 사랑하는 모든 우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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