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선호도 1위였던 대기업에 당당히 취업
1991년 <매일경제>의 설문조사 응답자 중 26%는 대기업에 취업하겠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대학생 취업 선호 1위 업체는 ‘한국통신’이었다.(<매일경제>, 1991.9.10)
이랬던 최고 직장 한국통신은 구조조정, 정리해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1997년 1,900여 명, 1998년 3천여 명, 1999년 9천여 명, 2000년 1,400여 명이 계속 잘려 나갔다. 1997년 한국통신 노동자 수는 5만 9천 명가량이었지만, 20%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통신 노동자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민영화를 통해 자본의 이익을 보장한 데 있다. 1993년 12월 김영삼 정부는 제1이동통신 사업자(한국이동통신) 민영화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동시 추진했고 매년 10%씩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의 큰 그림 아래 외자 유치, 경영혁신을 하겠다며 한국통신 지분 팔기를 지속했다. 외국인 투자 지분 한도 33%는 지속적 공격의 대상이 됐다. 결국 KT는 2002년 완전히 민영화됐다. 한국통신에서 KT로 이름도 바꿨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투자자들과 자본에 그야말로 ‘알짜배기’였다.
2025년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한 장면. 김 부장은 대형 통신회사에서 25년 근속한 노동자다. 그가 다닌 회사 ACT는 KT를 떠올리게 한다. 출처: 드라마 화면 갈무리
지속된 구조조정을 피하며 25년 근속한 김 부장, 결국
‘김 부장’은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1999년 이후 대기업 KT에 취업했다. 신입사원이었을 김 부장은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6천 명 가까이 구조조정 되는 와중에 살아남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취임한 이석채 사장도 구조조정 칼날을 휘둘렀는데 2009년 6천 명이 또 잘려 나갔다. KT 노동자 수는 3만1천 명으로 줄었다. 2014년에도 8천 명이 특별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나갔다. 김 부장은 살아남아 중견간부가 됐다.
2024년 다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회사는 ‘인공지능과 정보통신기술의 결합(AICT)을 중심에 두는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조조정’이라고 말했다. 대상은 희망퇴직 2,800명, 자회사 전출 1,700명 등이었다. 희망퇴직을 신청해 알아서 나가거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사무직·영업직으로 일하다 생산직으로 전출되곤 했다. 자살하는 사람, 스트레스에 심장을 움켜쥐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었지만,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본은 변화하는 시장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혁신’이라는 말로 구조조정을 포장했다. KT 정규직 노동자는 202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16,927명이 됐다. 25년 근속한 김 부장도 이번 구조조정에서는 비껴갈 수 없었다.
김 부장 곁에 없었던 노동조합
1994년 한국통신노조에 조합원 70%의 지지를 받으며 민주 집행부가 들어섰다. 대규모 조직인 한국통신노조 민주화에 자본도 노동계도 주목했다. 1995년 5월 한국통신노조는 민영화 저지 투쟁을 시작했다. 김영삼은 노조를 “국가전복 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노조는 대의원대회를 열어 쟁의발생 결의를 유보하고 쟁의 돌입 여부를 위원장에게 위임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조합원들의 투쟁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2만여 조합원이 지역별 투쟁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노동운동 진영의 연대투쟁도 확산했다. 김영삼 정권은 초강수를 뒀다. 조계사와 명동성당에 경찰병력을 투입해 노조 집행부를 연행한 것이다.
한국통신노조는 집행부 구속으로 타격을 받았음에도 전열을 정비해 7월 22일 조합원 82.2%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김영삼 정권은 직권중재 결정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그러자 한국통신노조 집행부는 파업 유보를 발표했다. 최종 33명이 구속되고 29명이 해고됐다.
이후 들어선 한국통신노조 집행부는 더는 조합원의 보호막 역할을 하지 못했다. 조합원들도 노조 아닌 각자도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구조조정, 정리해고 행렬이 시작됐다. 김 부장 뒤에 노동조합은 없었다.
성과 중심 자본이 선택한 백 상무와 도 부장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아래 인력감축은 어떤 시기든 누구에게든 행해질 수 있다. 자본이 비용 절감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쥐고 있는 칼이다. 그렇지만 자본은 필요한 노동은 끝까지 남겨놓을 것이다. 김 부장은 퇴사했지만 백 상무는 1년 더 다닐 수 있게 됐고, 상무 진급을 확신하다 쓴잔을 마신 도 부장도 회사에 남았다. 도 부장은 “내가 왜?”라며 다음날 출근한다.
백 상무와 도 부장의 조합은 성과 중심의 자본 입맛에 딱 맞는다. 도진우는 직원을 쪼고 자신을 불사르며 19년 동안 밤낮없이 실적을 위해서만 달려왔다. 회사는 그런 그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변함없이 회사에 충성을 다할 것이고 꾸준히 실적을 잘 쌓아갈 사람이며 회사에 유용한 인물이기에 그의 존치를 인정했다. 백 상무는 회사의 인정을 계속해서 받으며 자신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 마땅치 않지만, 도 부장의 능력과 기질을 잘 활용할 사람이다. 서로의 필요가 맞닿아 있음을 잘 파악한 자본은 이윤 창출에 둘의 관계를 활용할 요량으로 존치를 결정했을 것이다.
자본은 정글에서 살아남는 노동자를 선호하고 그들이 모래알로 흩어지도록 만들 것이다. 그 속에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많은 노동자는 다 내려놓고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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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원은 『전노협백서』 발간을 계기로 노동운동 자료를 모으고 노동자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08년 이후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역사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가스공사노동조합 30년사』, 『서울지하철노동조합 30년사』 등이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