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바라보면 모든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이 모든 은하가 한곳에 모여 있었던 것일까? 위 이미지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울트라 딥 필드로, 멀어지는 은하들이 실제보다 더 붉게 나타나고 있다. 출처: NASA, ESA /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
우주의 진화에 대한 문제는 물리학 역사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20세기 초, 과학자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했다. 한쪽은 항상 존재해온 안정적인 우주를 지지했고, 다른 쪽은 현재의 빅뱅 이론의 전신인 '원시 원자' 모형에 동의했다.
20세기 동안, 우주론은 두 가지 상반된 우주 모형에 의해 격변을 겪었다. 한쪽에는 조르주 르메트르가 제안한 '원시 원자' 가설이 있었다. 이는 우주에 시작과 역사가 있다고 보는 빅뱅의 선구적 개념이었다. 다른 한편에는 프레드 호일, 토머스 골드, 헤르만 본디가 1948년에 제안한 '정상우주론'이 있었다. 이는 우주가 팽창하면서도 물질의 지속적인 생성 덕분에 대규모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우주의 절대적인 시작을 회피함으로써 매력을 지녔고, 고대 그리스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철학적 직관, 즉 우주는 영원하고 불변하다는 오래된 사유를 계승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곧 관측 결과의 벽에 부딪혔고, 흥미로운 과학적 논쟁 끝에 르메트르의 '원시 원자' 모형이 점차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정상우주론: 영원하고 불변하는 우주
1948년, 호일, 골드, 본디는 정상우주론이라는 우주론적 모형을 제시했다. 이 모형은 두 가지 근본적인 원리에 기반했다. 첫째는 ‘완전한 우주론 원리’이다. 이는 우주가 공간적으로는 균질하고 등방적일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동일하다는 원리다. 즉, 어떤 시점이든지 간에 우주의 전반적인 성질은 동일하다는 가정이다.
둘째로, 이들은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도 대규모 구조가 변하지 않게 하려고, 물질이 지속적으로 창조된다고 가정했다. 허블에 의해 관측된 우주의 팽창을 고려해, 우주는 매우 느린 속도(수십억 년에 수소 원자 하나 정도의 밀도)로 새로운 물질을 생성한다고 보았다.
이 모형은 우주의 시작이라는 문제를 회피했고, ‘무(無)로부터의 창조’라는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질문을 제쳐둘 수 있게 했다. 대규모에서 정적인 우주를 제시하며,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라는 우아한 틀을 제공했다. 철학적으로는 스토아학파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옹호했던, 영원한 우주에 대한 고대적 시각과도 연결된다.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경계에 대해 의문을 품었으며, 물리적으로 무한한 우주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았다.
정상우주론의 매력은 무엇이었는가?
정상우주론은 철학적 단순성과 수학적 안정성, 그리고 과학적 미학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인해 한동안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 방정식에 대한 간단한 해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조화롭고 예측할 수 있는 우주를 제시했다.
정상우주론은 모든 조건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이론에 강한 확신이 있던 호일은, 경쟁 이론인 '원시 원자' 모형을 조롱하기 위해 1949년 BBC 라디오 방송에서 ‘Big Bang(빅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롱이 오늘날 우주론의 대표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르메트르의 원시 원자 모형: 빅뱅의 선구자
현대적인 빅뱅 이론이 정립되기 이전, 벨기에의 신부이자 물리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는 1931년에 '원시 원자' 모형을 제안했다. 그는 우주가 밀도 높고 뜨거운 '우주 원자(cosmic atom)'의 붕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우주 공간의 팽창을 유발하였다고 보았다. 그는 이미 1927년,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동적인 해를 통해 우주의 팽창을 제안하고, 거리-속도 관계도 추정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허블이 아닌 슬라이퍼의 적색편이 데이터를 이용했다.
조르주 르메트르(George Lemaître, 가운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오른쪽), 로버트 앤드루스 밀리컨(Robert Andrews Millikan, 왼쪽)과 함께. 출처: 위키미디어(Wikimedia)
허블은 이후 자신의 관측 결과로 이 이론을 관측상으로 입증했으며, 오늘날 이 관계는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불리고 있다. 르메트르는 우주가 물리적 시간 안에서 시작되었으며, 우주에 기원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원시 원자를 우주의 모든 물질이 압축된 핵으로 상정했으며, 그것의 핵분열이 우주 팽창을 일으켰다고 해석했다. 또한, 우주선(cosmic rays)을 이 초기 붕괴의 잔재로 보았으나, 이는 이후 근지구 천체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르메트르는 우주의 시작이라는 개념을 종교적 의미의 창조와 명확히 구분했다. 그는 창조의 개념은 신학적 문제이며, 우주론적 기원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보았다. 그의 원시 원자 모형은 이후의 관측상 예측과 함께 빅뱅 이론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선구자가 되었다.
관측이 증명한 빅뱅, 반박된 정상우주론
정상우주론은 처음엔 매력적이었지만, 점점 정밀해지는 관측 데이터를 앞에 두고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1964년에 찾아왔다. 아르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전파 잡음을 관측하던 중, 하늘 모든 방향에서 들어오는 일정한 마이크로파 신호를 포착했다.
이 잡음은 바로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CMB)'로, 매우 어린 우주가 남긴 잔광이었다. 빅뱅 이론은 이를 예측했지만, 정상우주론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틀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 CMB는 이후 COBE(1992), WMAP(2003), Planck(2009) 위성들을 통해 정밀하게 분석되었고, 빅뱅의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잇따른 우주 탐사 임무를 통해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는 점점 더 정밀하게 측정되어 왔다. 이 복사의 존재 자체가 빅뱅 모형을 지지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출처: NASA / 위키미디어(Wikimedia)
그 외에도, 먼 거리의 은하들은 오늘날의 은하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젊은 시절의 은하를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퀘이사(quasar)라 불리는 극도로 활동적인 은하핵은 과거에 훨씬 더 많았으며, 이는 우주가 시간에 따라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빅뱅 이론은 초기 몇 분 동안 형성된 헬륨, 중수소, 리튬 등의 가벼운 원소 비율을 정확히 예측했고, 관측값과 일치하였다. 반면, 정상우주론은 초기 고온·고밀도 상태를 포함하지 않아 이러한 원소 비율을 설명할 수 없다.
현대 우주론의 전개
이러한 관측 결과들에 따라, 과학계는 점차 빅뱅 이론을 표준 모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호일은 1990년대까지도 자신의 가설을 포기하지 않고 '준정상우주론(quasi-steady-state theory)'이라는 새로운 모형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오늘날, 우주론의 표준 모형은 ΛCDM(람다-냉암물질 모형)이다. 이는 빅뱅 이론을 기반으로 하면서, 우주 상수(람다)를 포함한다. 우주 상수는 공간 전체에 균일하게 존재하는 극히 미세한 진공 에너지로, 우주의 팽창을 가속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아인슈타인이 1917년에 정적인 우주를 유지하기 위해 처음 도입했으며, 이후 '암흑 에너지'로 재해석되어 현재는 우주 팽창 가속의 원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주의 역사 속에서 그 팽창 속도는 항상 일정하지 않았다. 우주는 처음에 매우 빠르게 팽창한 인플레이션 단계를 겪었고, 오늘날 천체물리학자들은 팽창 속도가 다시 가속되고 있음을 관측하고 있다. 출처: WMAP 과학팀, NASA / 위키미디어(Wikimedia)
정상우주론은 이론적 우아함과 실험적 현실성의 충돌이라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이 논쟁은 과학적 논의에 불을 지폈고, 수학적 발전을 이끌었으며, 좋은 과학 이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을 고양했다. 즉, 이론은 일관되고, 검증할 수 있으며, 반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례는 또한 과학이 교리가 아니라, 실재하는 우주와의 대면을 통해 발전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나 다중우주론과 같은 이론들이 검증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지만, 이들 또한 인류가 예로부터 꾸준히 이어온 우주에 대한 탐구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출처] L’Univers a-t-il un début ? Le Big Bang contre la théorie de l’état stationnaire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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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리드 무할리(Waleed Mouhali)는 ECE 파리–전자공학 중앙학교 (ECE Paris–École Centrale d'Électronique ), 물리학 전공 교수 겸 연구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