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나는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심각한 지정학적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푸틴 대통령이 이 전쟁을 어떻게 시작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 수행했는지에서 비롯할 것이다.
출처: Unsplash. CrowN
첫 번째 결과로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점은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정치적·경제적 관계가 장기적으로 단절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큰 손실이다. 두 지역은 서로 다른 경제 구조와 자원 보유 조건 덕분에 본래 자연스러운 경제적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양쪽은 경제 협력을 통해 실제로 상호 이익을 얻고 있었다. 이 관계는 단순한 리카도의 비교우위 논리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오히려 애덤 스미스가 말한 절대우위의 사례에 더 가까웠다. 일부 1차 상품 생산에서는 러시아가 유럽연합보다 절대적으로 더 효율적이었고, 반대로 산업 분야와 항공전자, 고속철도, 제약 등 일부 첨단 기술에서는 유럽이 절대우위를 갖고 있었다. 한쪽은 가스와 석유를, 다른 한쪽은 산업 제품을 교환하는 교역은 분명 상호 이익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작동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교역 관계는 가까운 미래에 되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전쟁 이전과 같은 규모로 회복되는 것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최소 300년 동안 존재해 온 문화적 근접성 역시 크게 약화할 것이다. 이로 인한 비용은 주로 러시아가 떠안게 된다. 유럽의 지적 발전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거대한 나라이고 고유한 지적 전통도 갖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자기 주변만 바라보며 지적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러시아는 적어도 표트르 대제 이래로 유럽의 지적 사조와 관습에 영향을 받아왔고, 배우는 데 열려 있었으며,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용해왔다. 그 결과 세계적 수준의 작가, 작곡가, 철학자, 화가, 과학자들이 탄생했다. 이 손실은 유럽에게도 손실이다. 체호프, 도스토옙스키, 프로코피예프, 멘델레예프 없는 유럽은 이전과 같은 유럽이 아니다. 정치·학문·문화·스포츠 관계의 단절로 인해 새로운 ‘도스토옙스키들’이 유럽에 알려지고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이 점에서도 양측 모두가 패자다.
다만 나는 지적 손실과 달리 경제적·정치적 손실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고르바초프와 옐친 시기 러시아는 유럽의 일부가 되거나, 고르바초프가 말한 ‘단일한 유럽의 집’, 즉 대서양에서 우랄산맥을 넘어 이어지는 유럽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구상은 항상 유럽인들보다 러시아인들에게 더 매력적이었다. 고르바초프 시절 유럽은 마치 열광하는 척했지만, 이는 소련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내고 고르바초프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결국 그 구상은 거부되었다. 지금 유럽이 트럼프에게 아첨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경제적 손실 역시 유럽의 상대적 쇠퇴를 고려하면 생각만큼 크지 않다. 러시아가 동쪽과 남쪽으로 강제적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이,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치명적이지 않을 수 있다. 러시아는 중국뿐 아니라 인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도 긴밀한 경제 협력을 맺을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중국–인도–러시아 삼각 관계에서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 각각과의 관계가, 양국 상호 간 관계보다 더 낫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점을 가진다. 따라서 동·남방으로의 재편은 일부 비판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손실은 명백하다. 나토가 러시아 국경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 주변 국가들과 북극의 노르웨이와의 아주 짧은 접경을 제외하면 국경에 나토 국가를 두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그 국경 근처에 무장 병력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그리고 유럽 전반과 스위스까지 포함한 훨씬 더 노골적인 반러시아·호전적 태도로 상황은 급변했다. 특히 스위스는 나치 지배하의 유럽에서도 중립을 지켰던 전통을 깨고, 러시아의 공적·사적 자산을 압류했다. 이렇게 동결된 자산은 약 6천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미 국방부 1년 예산에 맞먹는다. 이 손실은 결코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이 돈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식 배상금으로 쓰이거나, 더 현실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투자하는 서방 기업이나 자문회사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상당 부분이 런던의 컨설팅 회사들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에 독립적인 검찰이 있었다면, 이런 국가 자산의 무모한 손실은 푸틴을 직무유기로 기소하기에 충분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해외에 묶여 있는 자산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전쟁을 시작했고, 그 결과 국가 복지에 심각한 손실을 입혔기 때문이다. 적의 손에 자산을 모두 맡긴 채 전쟁을 시작하는 국가는 없다. 보다 신중한 지도자라면 이런 상황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 손실은 전쟁이 우크라이나–러시아 관계에 남길 장기적 영향이다. 우리는 지금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국가 형성을 둘러싼 전쟁을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가 존재하는 한 기념될 것이다. 노래, 기념비, 교과서, 회고록 속에서 찬양될 것이다. 마을과 도시 곳곳에 기념비가 세워질 것이다. 소련 시절 대조국전쟁 기념비의 수를 떠올려보면, 우크라이나에 비슷한 기념물이 세워질 것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거리, 학교, 유치원, 국경일은 이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기릴 것이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의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수년간의 공습과 파괴로 민간인들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 이는 세대 간에 전해질 가족의 기억이 될 것이다. 겨울 한가운데서 물과 난방 없이 버텼던 이야기, 폭격을 피해 도망친 이야기들이 계속 전해질 것이다. 이는 푸틴이 레닌그라드 봉쇄 당시 부모와 형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기억은 침략자에 대한 증오와 함께 세대를 넘어 전파될 것이다. 세르비아는 나토의 불과 3개월 폭격만으로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수년간 이어진 우크라이나 폭격이 러시아에 대한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다. 결국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반러시아가 되는 것을 막겠다고 주장했지만, 이 전쟁은 그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우크라이나는 반러시아 국가가 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증오가 영구적이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약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여러 세대에 걸쳐 동일한 강도의 증오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를 보면(중국과 일본, 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처럼) 이러한 증오가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적대감이 완화된 사례로는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들 수 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은 희생자 수만 놓고 보면 현재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보다 프랑스와 독일 양측 모두에 훨씬 더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점은 프랑스와 독일의 엘리트들 사이에는 매우 강한 지적 유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학생들과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은 독일 철학과 현대 미술, 문학을 공부하고 존경했으며, 독일 역시 프랑스의 지적·정치적 재능에 대해 오랫동안 존경심을 가져왔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엘리트들 사이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러시아 엘리트들은 우크라이나의 지적 성취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어와 그 언어로 창작된 예술 작품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전쟁 이전에는 대체로 러시아어 사용자가 많았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체계적으로 러시아어의 영향력을 줄이려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는 러시아어 서적을 불태우는 행위도 포함된다. 그리고 현재 젤렌스키 정부가 추진하고 있듯이, 행정 영역에서는 러시아어를 영어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식인 엘리트들 역시 러시아보다 지적으로 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서구로 기꺼이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또 다른 화해의 사례로는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베트남 전쟁은 수많은 측면에서 현재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하노이와 하이퐁 같은 도시들에 대한 네이팜 폭격이나 의도적인 민간인 표적 공격만 떠올려도 충분하다. 이 경우 화해가 가능했던 이유는 베트남이 매우 높은 인구 증가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50년 동안 세 개의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고, 빠른 인구 증가로 인해 세대 간 경험의 차이가 커지면서,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에 뿌리를 둔 증오가 점차 약화될 수 있었다.
또한 최근의 베트남–미국 관계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협력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이론적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도, 양국 모두를 위협하는 어떤 강대국이 등장할 경우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상호 불신과 복잡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는 적어도 암묵적으로는 협력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더라도, 현재로서는 그런 세력이 지평선 위에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화해는 베트남과 미국의 경우보다 훨씬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푸틴은 러시아에 세 가지 중대한 지정학적 손실을 안겼다. 첫째, 유럽과의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관계 상실이다. 둘째, 러시아 국경까지 확장된 나토의 존재로 인한 국가 안보의 약화와, 해외에 묶여 있던 국가 자산을 방치함으로써 발생한 막대한 국부 손실이다. 셋째, 그 존재 방식 자체로 오랜 기간 반(反)러시아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우크라이나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 전쟁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정당화되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2004년 발트 3국이 나토에 가입한 이후,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 역시(따라서 나토도) 이미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출처] The long-term political consequences of Mr. Putin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클린룸 안의 사람들: 오퍼레이터 유하나 이야기]① 오빠부대에서 문제사원, 다시 삼성 관리자로](/data/article/2/260114b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