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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영화협회와 함께하는 온라인독립영화상영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온라인 영화 상영회Ⅰ]
22일간의 고백

: 김태일
: 1998
: 50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부문 출품




96년말 노동법, 안기부법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었다. 국민들은 '날치기'라는 구시대적 정치행태에 경악했고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개악된 노동법에 총파업이라22는 초강경적 대응을 하였다.그러나 안기부법에 대해서는 김형찬 대책위 등 직접적인 피해자들을제외한 일반 국민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들이 반세기를 넘어선 분단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고 또다른 반쪽에 대해 습관화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습관화된 경계심. 이것은 국가안전기획부라는 비밀정보기관의 존재를 당연시하고 그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어떠한 반대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더구나 '간첩'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그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생각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간첩 혐의는 천형보다 무서운 벌인 것이다.

이 작품은 안기부에 대한 어떤 언급도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간첩이란 말 한마디면 사회나 개인의 삶 자체가 정지해버리는 이상한 현상에 대한 의문을 담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의 논리, 즉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와 국민의식에 대해 아주 냉철하게 다시 볼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이 문민정부이든 국민의 정부이든 여전히 안기부라는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으므로 작가는 주로 간첩사건 피해자들의 고백을 통해 정보기관의 공작정치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를 담고 있다.


문민시대에도 간첩사건은 있었다.이 작품은 문민정부 초반에 안기부 개혁을 무력화시켰던 남매 간첩단사건과, 95년 총선을 6개월 정도 앞두고 노태우, 전두환의 정치 비자금 사건으로 뜨거웠던 정국을 반전시켰던 부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남매 사건은 프락치로 의심받던배인오가 베를린에서 양심선언을 하면서 안기부의 정치공작을 분명히 밝힌 사건이었다. 그러나 프락치의 양심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삼석씨는 4년동안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다. 현재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전국연합에서 일하고 있는 여동생 김은주씨와 함께 안기부가 해체되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김동식 간첩사건은 흔히 모래시계세대라고 불리우는 30대 운동가들이 대대적으로 구속되는 상황을 야기했다. 이 작품은 그중의 한 사람인 당시 전국연합 사무차장 박충렬씨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17년 동안 재야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해온 박충렬씨는 안기부에서 간첩혐의로 22일간 수사를 받은 후 창립때부터 일해오던 전국연합에 사직서를 제출한다.고정간첩 혐의를 받은 박충렬, 김태년씨가 안기부에 끌려간 유일한 이유는 무장간첩 김동식의 진술뿐이었다. 이 땅에 애정을 가지고 살아온 박충렬, 김태년씨보다는 간첩의 말을 더 믿는 안기부를 보며 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물증없이 반복되는 수사는 당연히 강요와 폭력을 동반하였고 항변이나 방어의 여지가 없던 수사기간이 끝난 후 박충렬, 김태년씨는 삶의 행로를 바꾸고 만다. 22일간의 수사기간동안 굳건한 재야활동가가 어떠한 심경 변화를 겪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인권이 어떻게 파괴 되어가는지가 이 작품의 핵심인 것이다.


96년 12월, 국회에서 안기부법이 날치기통과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흔한 일이었으나 그래도 문민정부 하에서 일어난 일이라 믿기지 않았다. 한 편의 코미디같은 뉴스를 보며 가졌던 그 씁쓸함. 그러나 더 우울했던 것은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노동법 문제는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라 관심들이 많았지만 안기부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적으로 규정된 중무장한 북한이 있으므로 안기부법은 존속해야 한다는 안보심리가 작용했고 간첩을 잡기 위해서는 안기부가 수가권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길거리의 시민들도 "안기부는 존재해야 한다. 안기부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편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안기부가 잘못한 것이 있다 하더라고 북한이 호시탐탐 전쟁을 일으키려는 상황에서 그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식이었고 간혹 안기부의 개혁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젊은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보가 무기인 세상에서 정보 담당기관은 당연히 필요하다. 세계는 정보의 싸움, 즉 스파이들의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간첩이라는 말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야 하는 것인가? 그런 간첩들이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상해져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도의 훈련과 비밀을 생명으로 하는 공작원이 자신의 신분을 당당히 밝히면서 공작을 하고 그 한편에서 방송은 대담한 신세대 간첩이라면서 우리의 안보의식에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을 접하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진정 이성을 갖고 있는가를 반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문민정부 하에서 일어났던 두개의 간첩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성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그 잔인함이 개인에게 어떻게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제일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안기부 인원이나 예산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기부에 의해 불법연행수사를 받았던 피해자들의 인터뷰 거절이었다. 그들은 모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 더이상 괴롭히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였다.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당신의 인터뷰가 필요하다는 나의 설득에도 그들은 잊고 싶다며 힘들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은 신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더 심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달라, 세상이 바뀌고 안기부가 해체되면 그 때 가서 얘기해주겠다는 식이었다. 공포기관의 대명사 안기부. 아무런 죄가 없어도 안기부에서 간첩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하는 변호사,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에 안기부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수 없다는 의사 등등 쉽게 접근이 가능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막힘은 그렇게 반복되고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다. 긴 시간의 노력 끝에 박충렬, 김태년씨와, 불고지혐의로 구속되었던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어렵게 할 수 있었다.

박충렬씨는 22일간의 안기부 수사를 통해 17년동안의 운동을 포기했다. 간첩혐의는 벗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발목을 잡을 간첩이라는 천형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남편이 예전처럼 활동하기를 바란다는 부인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박충렬씨는 운동을 접었다. 일생동안 그에게 던져질 사람들의 의혹어린 눈초리와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발언을 했을 때 부닥칠 '간첩혐의를 받았던 사람'이라는 표딱지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 뿐이라는 말과 함께.

또한 김태년씨는 가능한한 자신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바램을 전해왔다. 어떤 식으로든 지난 과거를 생각하는 것 자체를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의 막힘과 진실을 가로막는 사건의 한계를 알면 알수록 힘이 들었다. 또한 이번 작업은 다른 작업에 비해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피해자들의 인터뷰만이 자료의 전부였고 주로 책상에 앉아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피해자들과는 다른 입장인 간첩 김동식과 안기부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사실 힘이 들었다. 긴 시간의 고심 끝에 작업 막바지에 이르러 내가 선택한 것은 김삼석, 김은주 남매를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베를린에서 양심선언을 했던 배인오라는 안기부 프락치가 촬영한 안기부 직원들의 모습, 그리고 양심선언 후 독일에서 안기부의 정치공작에 대해 증언한 배인오의 얘기가 정보기관의 정치공작에 대해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안기부에 갔다 와서도 재야활동과 인권운동을 열심히 하는 김삼석, 김은주 남매가 힘있는 인물로 비춰졌기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구성을 산만하게 하고 박충렬씨로 맞춰진 초점이 흐려질 위험도 있었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또다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대선이 끝나고 터져나온 안기부의 북풍커넥션과 권영해 안기부장의 자해사건까지 현실은 작품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또한 대선기간동안의 안기부 정치공작이 드러나면서 안기부가 과거의 의혹들의 책임을 지면서 새로운 정보비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은 한순간이었고 안기부로 쏟아졌던 여론의 화살은 더많은 일들에 가려 묻혀가고 있다.

작픔이 완성될 쯤 안기부는 명칭도 바꾸고 새로운 정보기구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안기부가 했던 북풍관련 사건들의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지나가고 정보기관의 투명성과 법적 정비가 없이 지나간다면 '국가정보원'이라는 이름하에 똑같은 일들이 반복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작품은 끝났다. 작업기간 내내 나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박충렬씨와 김태년씨의 인터뷰를 수십번 반복해서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등뒤가 서늘해짐을 느꼈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김태년씨처럼 나 또한 늦은 밤이면 문을 잠그는 버릇이 생겼고 하루도 편하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이 정도니 박충렬, 김태년씨는 어떨까?

사람들의 얘기와 그로부터 전이된 나의 공포까지 담아 이 작품을 세상에 내보낸다. 처음에 나는 정보기관에 의해 한 사람의 인간성이 이렇게까지 파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작품이 나온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것은 혹시나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공포와 절망을 전이시키는 것에만 그치면 어떡하나 하는 점이다. 관객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이 작품이 희망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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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잘보고가요.
오늘하루도 보람차게 보내시길....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도록....
방문객
2007.02.03 15:01
참 좋은 일입니다

어제는 지나갔기 때문에 좋고,
내일은 올 것이기 때문에 좋고,
오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나는 어제를 아쉬워하거나
내일을 염려하기보다는
주어진 오늘을 사랑하고 기뻐합니다.

오늘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찾고
받아들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아침이 주어지는 것은
새 기회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라는 뜻입니다.

오늘 안에 있는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루가
좋아지는 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어제는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기뻐하리라는 마음입니다.
방문객
2007.02.0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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