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희생자에 책임 돌린 2차 가해” 사측 대리인 기소 촉구

아리셀 참사 희생자를 향한 2차 가해 논란이 형사 사건으로 이어진 가운데,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처분되지 않고 있다며 신속한 기소를 촉구했다. 이들은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 개인에게 돌리는 발언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가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겼다며 중대재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와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는 29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아리셀 피해자 2차 가해와 사자명예훼손에 대한 기소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문제 삼은 대상은 아리셀 사측의 유가족 합의를 대리했던 전ㅇㅇ 노무사다.

지난 6월 열린 2주기 추모제. 출처: 민주노총

논란은 지난해 7월 법무법인 율촌과 한국건설기술인협회가 연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세미나에서 나온 발언에서 시작됐다. 전 노무사는 아리셀 화재 당시 장면을 제시하면서 사망자 2명을 관리감독자로 지칭하고, 이들이 대피 지시 등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취지로 말했다. 특히 “사람을 구하지 않고 밧데리를 구하셨습니다. 그래서 37초 만에 23명은 모두 사망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유가족과 법률지원단은 이 발언이 사실관계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전 노무사가 지목한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인 고 김병철 씨는 아리셀 연구개발이사였으며 생산 업무나 현장 노동자를 직접 지휘·감독하는 관리감독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신하나 아리셀 법률지원단장 변호사는 검찰 공소장에도 고인이 관리감독자로 적시되지 않았다며 “법률용어라는 권위를 빌려 희생자를 법적 책임의 주체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유가족 측은 이번 일을 세미나에서 나온 한 차례의 발언에 그치지 않는 ‘2차 가해’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신 변호사는 전 노무사가 참사 직후 유족들에게 기한 안에 합의하면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하는 이른바 ‘신속 합의금’을 제시하고, 희생자의 이름과 국적을 잘못 적은 제안문을 보내거나 유족이 대리인을 선임한 뒤에도 직접 연락해 합의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의 발언이 보도된 뒤에는 관련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고 김병철 씨의 배우자 최현주 씨는 지난해 8월 전 노무사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최 씨는 “죽은 것도 억울하고 미칠 지경인 상황에서 고인에게 왜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하고 죽었냐고 질책하는 것인가”라며 “그 위급한 상황에서 제 남편이 사람보다 배터리를 더 아까워했다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전 노무사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서울중앙지검은 전ㅇㅇ 노무사를 당장 기소하라”고 요구했다.

대책위는 특히 참사의 구조적 책임이 희생자 개인의 행동 문제로 바뀌는 과정 자체가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송성영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참사가 발생한 지 2년여 시간이 흘렀음에도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가해지고 있다”며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기도 전에 희생자 개인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죽음으로 끝났어야 할 고통이 말과 글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2차 가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경찰 수사를 거쳐 올해 1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9개월째 처분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대책위는 밝혔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검찰의 처분 지연 역시 피해자의 고통을 장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이번 사건을 아리셀 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대재해 이후 책임이 기업과 경영책임자에서 희생자 개인에게 옮겨가는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에 희생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2차 가해를 철저히 조사하고, 사망한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가 확인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에도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 개인에게 돌리지 말고 사업주와 관리책임자의 의무 이행 여부 등 구조적 원인을 끝까지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덧붙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