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과이윤의 진짜 승자는 누구인가

반도체 성과급 논란이 가린 금융 초과수익과 불평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독점 대기업을 둘러싼 초과이윤 분배 논란에서 정작 빠져 있는 질문이 있다. 초과이윤은 과연 기업 내부에서만 분배되는가. 다시 말해, 기업이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노동자와 경영진, 주주(그리고 국가)가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로만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초과이윤은 기업 안에서 성과급, 임원 보수, 배당, 세금 등으로 1차 분배될 뿐 아니라, 기업 바깥의 금융시장에서 주식과 채권 가격의 급등락을 통해 다시 한 번 분배된다. 이를 일종의 2차 분배라고 부를 수 있다.

반도체 대기업은 독점적 지위, 시장 왜곡, 이상 초과수요, 기술 패권, 하청기업에 대한 비용 전가와 착취 등을 통해 정상 이윤을 넘어서는 초과이윤을 획득한다. 그런데 그 초과이윤은 회계장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초과이윤을 만들어낸 기업의 경영 성과는 주식시장에 반영되고, 주가는 상승하며, 그 결과 대주주와 금융투자자는 막대한 자산가치 상승을 누린다. 기업 내부에서 벌어진 초과이윤이 금융시장에서 초과수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반도체 초과이윤 분배 논란은 성과급을 얼마 줄 것인가의 문제 또는 초과이윤에 대한 과세 문제로만 축소될 수 없다. 노동자들이 1인당 몇억 원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는 사이, 정작 초과이윤의 가장 큰 수혜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훨씬 더 큰 몫을 가져가고 있다. 그들은 기업의 생산 현장에 있지 않고, 금융시장과 지배구조의 꼭대기에 있다.

성과급 논쟁 뒤에서 불어난 대주주의 자산

50조 원 안팎의 초과이윤을 놓고 노동자와 주주가 맞서고,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삼성전자 노동자와 다른 계열사 노동자들이 서로 비교되며 갈등하는 사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주식자산 가치는 단기간에 급등했다. 지난해 8월 약 14조 원이던 주식자산 가치가 약 10개월 만인 올해 5월 11일 50조 원으로 3.5배 증가했다. 이는 단순한 자산 증가가 아니라 초과이윤이 금융시장에서 어떻게 사유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다.

이재용 회장 개인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 일가 전체가 누린 자산가치 상승은 노동자 성과급 논쟁의 규모를 압도한다. 이재용 회장의 50조 원과 세 모녀의 주식자산가치를 포함하면 무려 100조 원이 넘는다. 노동자들이 “성과급 6억 원을 받느냐”, “10억 원이 말이 되느냐”는 식의 도덕적 심판대에 오르는 동안, 대주주의 금융자산 증가는 거의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노동자가 일해서 받은 성과급은 탐욕으로 호명되지만, 대주주가 주식 가치 상승으로 얻은 100조 원의 평가이익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보상처럼 취급된다.

이것이 바로 초과이윤 분배 논쟁의 핵심적인 불균형이다. 노동자의 성과급은 “과도하다”는 말로 공격하고, 하청·협력업체와의 이익공유나 초과이윤세는 “사상 유례 없는 제도”라고 엄포를 놓지만, 대주주의 자산가치 상승은 “주가 상승”이라는 중립적 표현 뒤에 숨겨 놓는다. 그러나 둘 다 동일한 기업의 초과이윤을 기반으로 발생한 소득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의 성과급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이윤의 일부를 임금 형태로 되돌려 받는 것에 가깝지만, 대주주의 자산가치 상승은 소유권을 통해 미래의 이익까지 선취하는 금융적 수익에 가깝다.

이재용의 주식자산 가치는 성과급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매일(!) 1천억 원 이상, 많게는 1,500억 원 안팎씩 불어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초과이윤 분배에서 진정한 승자는 과연 누구인가. 일해서 성과급을 받는 원청 노동자인가, 아니면 이익공유로 작게나마 착취에 대해 보상 받은 하청 노동자인가, 아니면 주식을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천문학적 자산 증가를 누리는 대주주인가.

상속된 지분, 편법대출과 배당으로 갚은 상속세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더 필요하다. 이재용 회장의 주식자산 가치 상승의 기반이 된 삼성전자 지분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이건희 전 회장 생전,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미미한 수준을 넘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이재용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상당 부분은 이건희 회장의 사망 이후 상속을 통해 이전된 것이다. 이 상속을 위해 이재용 일가는 약 12조 원 규모의 상속세를 6년에 걸쳐 납부했다. 최근 이 상속세를 모두 완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겉으로만 보면 12조 원 상속세는 대단히 큰 부담처럼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규모의 상속세라는 평가가 붙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상속세가 어떻게 마련되었느냐다. 이재용 일가가 스스로 축적한 현금이나 금쪽같은 계열사 지분 정리로 고통스럽게 납부한 것이 아니라, 보유 주식의 편법 담보 대출, 삼성그룹의 이례적인 고배당 정책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조달했다.

우선 이재용 일가는 주식담보대출과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확보했다. 지배구조 유지에 결정적이지 않은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는 것은 오히려 그룹 지배구조의 효율화라는 명분까지 얻을 수 있었다. 주식담보대출도 활용됐다. 통상 금융기관의 내부 규정상 개별 주식담보대출에는 한도(일반적으로 4천억 원)가 있지만, 초대형 재벌 총수 일가의 경우 금융기관은 예외적이고 우호적인 조건을 제공했다. 불법 대출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당 대출이며, 일종의 편법 대출로 볼 수 있다. 일반 시민이나 중소기업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신용과 유동성이 이렇게 재벌 총수 일가에게는 손쉽게 열렸다.

나머지 상당 부분은 배당금으로 충당됐다. 이재용 회장은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4천억 원에 가까운 배당금을 받았고, 홍라희, 이부진, 이서현 등 다른 상속인들도 매년 2천억원에서 1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배당금을 각각 수령했다. 이 시기에 맞춰 삼성전자와 주요 계열사들은 주주환원 정책을 대폭 강화했고, 통상적인 주주배당 외에 특별배당까지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삼성 계열사들이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가 대주주 일가의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흘러간 셈이다.

법적으로 배당은 주주에게 귀속되는 정당한 권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삼성의 이익은 총수 일가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노동, 하청·협력업체의 납품 구조, 국가의 산업정책, 전력·용수·도로·세제 혜택, 연구개발 지원,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효과가 결합된 결과다. 그런데 그 이익이 배당과 주가 상승을 통해 총수 일가의 상속 비용을 메우고, 다시 그 상속 지분이 금융시장에서 수십조 원의 자산가치 상승을 낳았다면, 이는 단순한 사적 재산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만든 부가 소유권을 매개로 극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의 문제다.

노동자는 과도하고, 대주주는 자연스러운가?

다시 이익 분배 문제로 돌아가보자. 누구는 앉아서 매일 1천억 원 이상의 자산 증가를 누리는 것은 정당하고, 누구는 반도체 생산 현장에서 일하며 6억 원이니 10억 원이니 하는 성과급을 받는 것은 부당한 일인가. 노동자의 성과급에는 “국민 정서”와 “형평성”이라는 잣대가 들이대지면서, 대주주의 금융수익에는 왜 같은 잣대가 적용되지 않는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주식자산 가치 상승에 세금이 거의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가 상승으로 인한 평가이익은 실제로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평가이익은 정말 소득이 아닌가. 주식 부자들은 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 주식을 팔지 않는다. 대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 대출은 부채이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대출을 통해 확보한 현금은 생활비, 투자금, 상속세 납부, 지배구조 유지에 활용될 수 있다. 이후 주가가 더 오르면 담보가치도 상승하고, 대출금을 갚고 이자를 부담해도 여전히 막대한 이익이 남는다.

이것은 명백히 부의 증식이다. 소득세법의 형식만으로 포착하지 않을 뿐, 경제적 실질로 보면 소득이다. 노동자가 임금을 받으면 즉시 과세된다. 자영업자가 매출을 올리면 비용을 제외한 소득에 세금이 붙는다. 그러나 대주주는 주식 가치가 수십조 원 불어나도 “아직 팔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세를 피한다. 심지어 그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현금을 사용해도 세금은 부과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금융자본주의가 만든 가장 노골적인 조세 회피 구조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무너진 과세 원칙

이런 상황에서 금융투자소득세는 계속 유예되다가 결국 폐지 수순을 밟았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전제로 낮춰졌던 증권거래세도 제대로 원상회복되지 못했다. 주식 양도소득세는 일부 대주주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그나마도 특정 종목을 일정 규모(50억 원) 이상 보유한 사람에게만 과세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와 금융투자 수익은 사실상 과세망 바깥에 놓여 있다.

배당소득세 역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근로소득세는 지방세를 포함하면 최고세율이 49.5%에 이르지만, 배당소득은 기본적으로 15.4%의 분리과세 체계 안에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가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대자산가들이 각종 법인, 가족 지분, 신탁, 담보대출, 지분 매각 시점 조절 등을 통해 세 부담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소득과 금융소득의 과세 형평성은 이미 크게 무너져 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도 중요한 문제다. 기업은 이익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인 뒤 소각해 유통 주식 수를 줄인다. 그러면 주당 가치가 상승하고 주가는 인위적으로 부양된다. 표면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라는 말이 붙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이익이 투자, 고용, 임금, 협력업체 단가 개선, 사회적 책임으로 쓰이지 않고 주가 부양을 통해 주주에게 이전되는 과정이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배당처럼 현금이 직접 지급되지 않는 방식의 주주환원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가 상승 이익에는 거의 세금이 붙지 않는다. 기업의 이익이 금융시장을 통해 주주에게 이전되지만, 국가는 이를 제대로 과세하지 못한다.

결국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은 종잇조각이 된 지 오래다. 노동자가 땀 흘려 번 임금에는 촘촘하게 세금이 붙지만, 대주주와 금융자산가가 보유자산 가치 상승으로 얻는 막대한 이익은 과세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조세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적 불평등의 문제다.

초과이윤과 초과수익은 “모두” 사회 환수 돼야

반도체 산업의 초과이윤은 특정 기업의 천재적 경영 판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막대한 전력과 용수, 토지, 교통망, 교육받은 노동력, 국가 연구개발 투자, 세제 혜택, 외교·안보 전략,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결합되어 유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벌어들인 이윤에는 사회 전체의 기여가 들어 있다. 그렇다면 그 초과이윤은 기업 내부의 경영진과 노동자, 하청 노동자나 주주에게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노동자의 성과급 주장은 정당하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은 이미 (시장 지배력과 하청 착취구조로 발생한) 독점이윤에 기초한 “독점 임금”을 받고 있으므로, 독점이윤을 넘어 초과이윤에 기초한 성과급은 제한될 필요가 있다. 초과이윤은 하청·협력업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산업재해 예방, 지역사회 환원, 공공 연구개발 투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 에너지전환 재원으로도 사용되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이 막대한 전력과 물을 소비하고 지역 생태계와 공공 인프라에 매우 큰 부담을 준다면, 그 이윤의 일부는 사회적 비용을 보전하는 데 쓰여야 한다.

더 나아가 초과이윤이 금융시장에서 대주주의 자산가치 상승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주가 상승으로 발생한 금융 초과수익, 배당소득,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 이익, 담보대출을 통한 비과세 현금화 구조에 대해 과세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금융투자소득세를 재도입하고, 주식 양도소득세의 적용 범위를 넓히며, 배당소득과 근로소득의 과세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 자사주 매입·소각에 대해서도 사회적 과세 또는 초과이윤 환수 장치를 검토해야 한다. 물론 이제는 보유세, 부유세도 신중히 검토해야 할 때다.

다시, 금융과세를

초과이윤의 문제는 단순히 누가 얼마를 더 가져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함께 만든 부를 누가 사유화하고, 누가 배제되며, 국가는 누구에게 세금을 물리고 누구에게 면제해 주는가의 문제다. 반도체 성과급 논쟁이 정말 공정성의 문제라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대상은 노동자가 아니라 대주주와 금융시장이다. 매일 1천억 원씩 불어나는 주식자산에는 침묵하면서, 일한 대가로 받는 성과급만 문제 삼는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그것은 금융자본의 불로소득을 정상화하고 노동자의 몫을 도덕적으로 공격하는 사회다.

초과이윤 분배의 진정한 승자는 생산 현장의 노동자가 아니다. 지금의 구조에서 승자는 주식을 소유한 자, 지배구조를 장악한 자, 세금 없는 자산 상승을 누리는 자다. 그러므로 초과이윤 논쟁은 성과급 논쟁을 넘어 금융 초과수익 과세, 대주주 불로소득 환수, 산업 이윤의 사회적 배분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거대한 금융 착취 사회, 금융 불평등 사회에서 최소한의 조세 정의와 분배 정의를 말할 수 있다.

덧붙이는 말

홍석만은 참세상연구소 연구실장, 참세상 발행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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