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

일상의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등에서 활동한다.


 

 

피해자를 공격하며 징징대는 당신에게

 

“그 정도 문제로 굳이 대책위까지 만들어야 돼? 개인적으로 만나서 사과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솔직히 이런 말, 조직 안에서는 못 하겠어. 괜히 말했다가 시끄러워지기 쉬우니까. 속만 상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할 말이 많다. 화난다, 문장 하나하나. 속이 아리다. 몇 시간이고 말을 쏟을 수 있을 것 같다. 1시간 전부터 반복되는 저 레퍼토리. 그리고 그에 이은 어이없는 답변들이 안주가 되어 돌아다닌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술자리 말들은 뻔하다. 각자가 혼잣말하듯 평행선을 달리다가 끊어지고, 흩어지고, 잊힐 게다. 나도 한마디 거들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식은 소주를 붓고, 말을 뱉어 본다.

“글쎄, 그럼 굳이 대책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개인적으로 만나서 사과를 요청했는데 이뤄지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고 잊어버리면 되는 걸까? 그런 일에 대해서 대책위를 만들지 않고 개인적으로 푸는 게 왜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너는 그런 일들에 대해서 사소한 일,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아니야! 다 잘 풀어 보자고 하는 거지.
그런데 문제를 좀 제대로 풀어 보려고 해도 피해 의식이 얼마나 많은지. 사실 피해 의식만 좀 벗어나도 문제 풀기가 훨씬 수월해 보이던데. 피해자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도 따라서 같이 불붙는다니까. 다들 어디서 그렇게 피해 의식을 장전해 오는 건지 몰라. 아무리 피해자라지만 그 피해 의식이 문제라니까.”

“피해자가 피해 의식이 없는 게 문제인 거 아니고? 우리의 운동은 피해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었나?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다른 색과 질감의 피해가 있는지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것 말이야.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자각하고, 더는 피해자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단결하는 데서 운동이 시작하는 거 아니었어?
그 피해를 각성시키고 조직하는 게 너의 역할이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최소한 10년 전 너는 말이야. 진짜 문제는 가해자가 가해 의식이 없는 거 아닐까?”

“소주 다 식겠다, 마시면서 얘기하자. 근데 우리 피해자는 피해자답지가 않아. 들어 보니까 무슨 심각한 성폭력 사건도 아니더만. 그냥 좀 있을 수 있는 성추행 정도야. 그래도 정서적으로 힘들어서 상담까지 받는다고 하니까 힘든가 보다 했지. 그런데 알고 보니까 초반에 다른 피해자들 만나서 같이 가해자에게 문제 제기 하자고, 조직하고 다녔더라고. 피해자가 힘들다고 상담받고, 대리인 세우고, 휴직계 내고 그러면서 다른 피해자 조직하러 다닐 힘은 어디 있었던 거야, 그럼.”

“훌륭한 피해자네, 다른 피해자까지 조직했다면 지지하고 박수 쳐 줄 일 아니야? 그 힘든 와중에 다른 피해자가 침묵하고 혼자 고통을 삼키지 않도록 손 내밀고 다닌 거잖아. 그게 자기 힘을 회복하는 좋은 과정이 됐을 수도 있고. 도대체 네가 생각하는 피해자다운 모습은 뭐야? 어두운 방에서 고개 숙이고 분노와 슬픔을 삼키는 창백한 모습인 건가. 그런데 피해 의식에 빠지거나 감정적이지는 않고 이성적인. 하지만 동시에 문제를 푸는 적극적 힘을 갖지는 못한 무기력한 그런 건가. 내 귀엔 피해자가 무기력해야 피해자답다는 이상한 소리처럼 들려.”

“시원한 소주나 한 병 더 시키자. 사실 모르겠어. 피해자고 뭐고 모르겠는데, 너무 힘들어. 한 번씩 이런 문제 생길 때마다 정말 미치겠어. 대책위원들은 위원대로 담당 사업 못 하고 그 문제에 매달려 있지, 가해자는 동선 분리해야 한다, 징계다 뭐다 해서 활동 못 하지.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활동 못 하지. 그리고 이런 문제 풀다 보면 꼭 누군가는 조직에 실망했다 뭐다 하면서 나가 버리지. 그럼 진짜 활동할 사람이 없어. 특히 요즘은 집행위 바뀌고, 정말 힘든 시기란 말이야.”

식은 술국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린다. 저 답답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제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는 지금보다 덜 힘들었다고 추억하게 될 뿐. 안 그래도 힘든 지금 시기에 하필 ‘이런’ 문제가 제기되고, 우리는 더 힘들어진다. 동력은 추락하고, 조직은 사분오열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저 힘듦과 답답함이 피해자에게 더 투사되지 않기를 바랄 뿐…. 차가운 술국을 소주와 함께 밀어 넘긴다.

“대책위 시작되면서 올해 사업이 다 휘청거리고 있어. 요즘 매달 투쟁 과제가 떨어지는 시기야. 당장 지역 대회도 있고, 정치 학교도 준비해야 돼. 근데 담당 국장이 대책위에 들어가게 됐어. 원래 신입 조합원 교육 진행 시긴데 대책위 활동을 하고 있다고. 1년 차 조합원이 교육을 준비하고 있어. 우리가 지금 이 지경이야. 알겠지만 사람 몇 명 되지도 않잖아. 일상 사업이 다 펑크 나고 있어. 피해자가 사건을 얘기한 뒤로 사업이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어.”

“여기, 시원한 소주 한잔 마시고 정신 좀 차려 봐. 그래 너도 힘들다는 건 알겠어. 근데 잘 봐. 조직은 사건을 들은 뒤로 사업이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고 했지? 피해자는 훨씬 이전부터, 그러니까 그날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 조직 생활은 물론 삶이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을지도 몰라.”

“왜 피해자만 두둔해? 피해자 때문에 나도 힘들어. 대책위 활동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야, 네가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 좀 봐. 네가 힘들고 괴로운 게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했기 때문이야?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너도 알잖아! 잘 생각해 봐. 아까 조직에 사람이 없다고 했지, 사람들이 조직에 실망해서 조직을 떠난다고. 그동안 조직을 떠나거나 활동을 주춤하게 된 수많은 조합원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 거기에 혹시 그 가해자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가해자의 성추행이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지. 모르겠어? 그 용기 있는 피해자 덕분에 곪고 곪았던 문제가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데 너는 시종일관 징징대기만 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결국 피해자에 대한 은근한 공격이잖아. 너의 무력감 그리고 투쟁 성과를 내며 전진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피해자에게 온통 투사하고 있다고!”

“왜 화를 내고 그래?”

“이 변하지 않는 현실이 지긋지긋해! 난 이런 대화를 10년 전에도, 그전에도 했었어. 그리고 너희 조직에서도 10년 전이나 그전에도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겠지. 그리고 너랑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을 거야. 지금처럼 ‘공모’하면서, 문제를 ‘처리’하려고만 하고, ‘달력식 사업’을 반복하지 못해서 초조해하는 사람!”

“야, 뭐라고? 참나!”

 

“손님들! 마감 시간이에요. 2차 가서 계속하세요~!”

 

(워커스10호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