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선택제 민간 도입 2년, 버려지는 사람들

박다솔, 윤지연 기자 / 사진 홍진훤


대기업에 입사한 날

2014년 6월. 김호일(가명) 씨는 4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취업했다. 무려 ‘꿈의 직장 ‘이라고 불리는 ‘현대자동차 ‘에, 간접 고용이 아닌 직접 고용으로. 정부에서 열을 올리며 추진 중인 ‘시간선택제 ‘ 일자리에 채용된 것이다. 그즈음 대기업들은 정부의 시간선택제 확대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다. 정부 사업에 발맞춰 대기업들은 각자 수백, 수천 개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해 냈다. 정부는 시간선택제를 ‘질 좋은 일자리 ‘라고 소개했다. 고용 안정과 정규직 처우를 함께 누릴 수 있다며. 그래서 그는 2년짜리 기간제라는 근무 조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현대그룹은 “새로운 고용 형태임을 감안해 일단 2년 계약직 위주로 채용하지만, 향후 직무 적합성과 개인별 업무 평가 등을 고려해 지속 고용 여부를 검토할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대기업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나만 잘하면 될 일이었다. 이제 새로운 삶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2년이 흘렀다

계약 기간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회사에 소문이 돌았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없애고 그 자리에 파견 노동을 쓸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계약 만료 시점까지는 고작 2주. 회사는 그의 고용 지속 여부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2016년 6월. ‘대기업 직장인 ‘의 삶은 김호일 씨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시 불안정한 삶으로 돌아가라며. 고작 2년 만의 이별이다. 그는 ‘정부에 이용을 당했다 ‘며 분노했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를 정책 홍보용으로 이용한 것뿐이었어요. 처음에는 감사하기만 했는데 … . 남들이 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욕할 때도 나는 욕을 못 했는데….”

그의 업무는 상시 지속적 업무였다. 누구든 해야만 하는 일. 하지만 회사는 상시 지속 업무를 시간선택제 정규직 일자리로 채울 생각이 없었다. 늘 그랬듯 파견 노동자가 그 자리를 채우면 그만이었다. 이럴 거면서 왜 대대적으로 채용 잔치를 벌인 것일까.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정부의 전시 행정용. 반짝 주목받고 버려질 전시품 같은 일자리였다.

 

그들이 원한 건 시간 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입사한 시간선택제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이었다. 이혼 후 혼자 손주를 양육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편의 퇴직을 앞두고 일터로 나선 사람도 있었다. 김호일 씨는 두 아이의 아빠였다. 자영업으로 쓴맛을 본 후,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저 쉽게 채용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서류 전형과 실기 테스트, 면접을 통과해야 했고, 수습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경쟁률 또한 엄청났다. 현대자동차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채용되기 위해서는 10 대 1에서 많게는 2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그렇게 입사한 노동자들은 하루 4시간씩 주 5일을 일하거나, 주말 각 8시간씩 16시간을 일했다. 김호일 씨는 주말 근무자였다. 한 달 기본급은 세후 72만 원. 복리후생 차원에서 휴가비와 명절 및 연말 보너스가 나왔다. 주중에는 다른 일을 했다. 정수기 필터를 교체하는 일이었는데, 필터 하나를 교체할 때마다 건당 1만 원을 받았다. 김 씨는 행복했다. 투잡이라고 해도 이전의 삶보다는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휴대 전화에 저장된 자녀들의 문자와 동영상을 보여 주며 자랑했다.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일하는 아빠에게 아이들은 엄청난 응원을 보내 주고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남 탓만 했다

김 씨는 해고당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왔는데 왜 해고를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애초 이런 일자리를 만든 정부에게 대답을 듣고 싶었다. 설마 이렇게 외면해 버릴까, 무슨 대책이라도 만들어 놨겠지.

그는 고용노동부 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 상담원이 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었다. “상담하시는 분도 기간제 근로자라고 하더라고요. 참 나. 그분도 얼마 전에 무기 계약직이 됐대요. 그분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서로의 처지를 공유하는 것밖에는요.“

이번에는 국민 신문고에 질의했다. 고용노동부로부터 답변이 왔다. 노동부는 노동 개혁이 통과되지 못한 탓에 그가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근로 계약 기간 만료 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보다는 계약을 종료하는 경우가 많아, 기간제 근로자 본인이 원할 경우 같은 직장에서 좀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기간제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바 있으나, 현재 국회 사정 등으로 입법 개정 논의가 중단된 상황입니다.’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기간제법>이 통과되지 못해, 김 씨가 오래 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노동부는 지난 4월 7일 <기간제 근로자 고용 안정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상시 지속적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한 바 있지만 법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가 원한 것은 그냥 좋은 일자리

“만약 시간선택제가 아닌 전일제 일자리라면, 일 계속하실 거예요? ” 기자의 질문에 김호일 씨의 눈이 커졌다. “지금 일하는 시간선택제, 사람들 다 한다고 할걸요. 당연히 그러면 좋죠. 임금도 오르고, 무기 계약직이 되는 건데. ”

그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그저 좋은 일자리였다. 알바건 시간선택제건 일을 해야 했고, 나머지 시간에도 투잡을 뛰며 일을 해야 했다. 안 그러면 다시 불안정한 삶 속으로 빠져 버릴 테니까. “제가 인력 사무소 시간제 근로 일자리 40군데 정도에 이력서를 넣은 사람이에요. 안 그러면 다시 자영업을 해야 하니까. (지금의 삶을)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든 버티고 싶은 거고요. ”

그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키고 싶어 하는 일자리가 정말 사라져 버리는 건지 아니면 희망을 품어도 되는지, 어떤 말이라도 해 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계약 해지까지 2주도 남지 않은 시점, 현대차에 고용 의사를 물었다. “이와 관련해 아직 공표한 내용은 없습니다. 매일매일 발생하는 수만 가지 이슈 중 하나일 뿐이라서 주요 이슈가 아니면 파악할 수 없습니다. ” 현대차의 답변이었다.

 

(워커스12호 20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