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사고 당시 고인이 작업 중이던 공작기계의 위험성이 지적된 가운데, 해당 기계를 포함해 고인이 일하던 공작실 설비 전반에 대한 위험방지 조치를 '지시'할 권한 등 '실질적 지배·관리' 권한이 원청 한국서부발전에 있음이 드러났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6일 오후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가 2024년 12월 체결한 '태안9・10호기 기전설비 경상정비공사 전용공기구(공작기계) 임대차 계약서'를 공개했다. 대책위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해당 계약서에 따르면, 한국서부발전은 한전KPS에 고 김충현 씨가 사고를 당한 기계를 포함해 415종의 공기구 및 공작기계 등 1,047개 물품을 무상으로 임대했다.
한국서부발전은 그동안 “한전KPS에서 발전 정비 설비를 임차해, 발전공기업 내 설비 정비는 한전KPS에서 맡고 있고, (고인이 사고를 당한) 정비동의 시설은 한전KPS가 관리하고 있어 서부발전 소유로 볼 수 없다”며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주장을 거듭해 왔다. 반면 한전KPS는 설비에 대한 관리 권한은 소유 주체인 한국서부발전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두 회사가 책임소재를 두고 공방을 벌여왔다.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가 2024년 12월 체결한 '태안9・10호기 기전설비 경상정비공사 전용공기구(공작기계) 임대차 계약서'. 안호영 의원실 제공
그런데 계약서의 제2조를 살펴보면 "'을'(한전KPS)은 본 전용공기구 및 공작기계(이하 “공기구”라 한다)를 발전설비에 대한 경상보수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만 사용한다"라며 임차 설비의 사용목적과 용도를 '갑'(한국서부발전)제한하고 있다. 제6조에는 "임차 공기구가 멸실 또는 훼손된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항을 '갑'에게 통보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이러한 내용이 "고 김충현 노동자가 일하다 사고를 당한 공작실 설비의 실질적 지배·관리의 권한이 서부발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라고 제시했다.
또한 계약서의 같은 조 3항에는 "'을'은 임차 공기구의 안전관리에 주의하고 '갑'의 지시에 따라 '을'의 비용으로 위험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쓰여있다.
이는 한전KPS에게 임차한 설비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가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위험방지'를 위한 조치의 '지시' 권한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있음을 드러내는 조항으로, 두 회사 모두에게 고인의 죽음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설비의 안전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고 김충현 노동자는 지난 2일 한전KPS가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임차한 공작실 설비 중 '범용 선반'이라는 기계로 발전소 정비에 필요한 부품을 만들다, 공작기계에 몸이 빨려들어가는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대책위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해당 기계의 위험성으로, 고인이 사고 당시 이용하던 기계에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호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해당 선반 기계의 핵심 부품은 고인이 지시받은 공작물을 가공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양인 것으로도 밝혀졌다.
고 김충현 노동자가 작업 중 목숨을 잃은 공작실 범용 선반 기계. 대책위 제공
대책위는 이날 "‘임대’라는 계약 형식을 앞세워 한국서부발전이 책임에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는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설 자리가 없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모두, ‘소유’보다 실질적 ‘지배·관리’와 ‘지시·감독’의 여부를 기준으로 책임 주체를 판단하고, 설비가 누구 명의이든, 누구 계약서에 있든, 안전 책임은 그 현장을 지배하고 관리하며 작업을 지시한 자에게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 모두 철저하게 조사하여 진상을 규명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16일 오전 10시쯤부터 밤늦게까지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 본사, 태안화력발전소 내 한전KPS 사무처와 고인이 소속되었던 2차 하청업체 한국파워O&M 현장 등 5곳에 대한 동시 압수수색을 벌였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과 관련한 원하청의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 중 수사당국은 1차 하청업체이자 원청인 한전KPS와 2차 하청 한국파워O&M 관계자를 입건했다.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의 강동섭 중대재해과장은 "한국서부발전을 포함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하고 있으며, 경영 책임자(서부발전 사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 보호 관리 책임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충남경찰청 형사기동대장은 수사브리핑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한전KPS의) 간접적 또는 실질적인 작업 지시 정황을 확인한 상태”라며, "압수물 분석을 면밀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현재 안전 감독 책임이 있는 원·하청 관계자 여러 명을 입건한 상태"라며 "압수수색 결과 법 위반이 드러날 경우, 김 씨 소속 업체는 물론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 고위 관계자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