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21대 대선 기간 녹색당은 기후생태위기와 관련하여 기후정의에 반하는 잘못된 공약 및 주장에 대해서 감시하고 비판하는 "그린워싱 보고서"를 발간했다. 참세상은 이 그린워싱 보고서가 새 정부에서 추진할 ‘기후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5회에 나눠 게재한다. ‘기후’를 명분으로 기후와 환경을 파괴하는 성장 정책이 추진되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에 특혜와 지원이 몰리는 현실에서 실질적이며 정의로운 기후위기 해결을 고민하는 독자들의 판단에 좋은 준거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광주MBC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경제성장의 대동맥, 에너지고속도로”를 핵심적인 기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서해안, 2040년까지 한반도에 U자형 전력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인데, 이를 통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촉진하고 기업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RE100 달성을 지원한다는 취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AI·에너지 3대 강국 도약”을 제시한 2번 공약에서 “AI 산업 필수인프라 전력 안정적 확보”를 위한 방편으로 에너지고속도로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문수 후보는 핵발전소 비중 확대와 한국형 소형원전(SMR) 상용화를 강조하는 반면,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를 강조한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두 후보의 에너지고속도로 공약은 기후위기 대응보다는 대기업 지원을 통한 경제성장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21대 대선 녹색당 그린워싱 감시본부 보고서 3탄은 거대양당의 후보가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에너지고속도로 공약에 대해 살펴보고, 이것이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기후정의 원칙과는 어느 정도나 부합하는지를 분석해봅니다.
보고서 3탄을 통해 드러난 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에너지고속도로, 그리고 이와 연계된 ‘지능형 전력망’ 정책은 기후정의와 무관한 대기업 지원을 위한 정책입니다. 둘째, 에너지고속도로는 수도권 집중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비수도권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셋째, 에너지고속도로는 전국 곳곳에 초고압 송전탑을 비롯한 송전선로 건설을 초래해 생태계 파괴와 지역 주민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사업에 민간 참여를 확대해 에너지의 민영화를 가속화할 우려가 매우 큽니다.
에너지고속도로란?
에너지고속도로는 세로축으로 ‘서해안 HVDC’와 가로축으로는 ‘동해안~수도권 HVDC’를 건설하여 호남과 동해안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끌어와 수도권 전력수요량, 특히 ‘반도체, 바이오 등 신규 첨단산업 신규 투자 전력수요량을 충당’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HVDV(초고압직류송전)는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고압의 교류전력을 전력변환기를 이용해 고압의 직류전력으로 변환시켜 송전한 후 다시 전력변환기를 이용해 교류전력으로 변환하는 공급 방식으로, 송전 거리가 멀수록(지중 600km, 해저 50km) 유리한 기술입니다.
에너지고속도로가 공약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재명 후보는 2022년 대선 때도 ‘지능형 전력망’에 기반해 송배전망을 확충하겠다며 에너지고속도로를 공약화했습니다. 전력망 부족으로 지방의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소, 동해안 신규 민간 석탄발전이 인위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제시된 전력망 확충 계획인 것이었습니다. 같은 문제의식에서 산자부는 2023년 12월, 제30차 에너지위원회를 통해 ‘전력계통 혁신대책’을 발표했고,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시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핵심 공약으로 다시 제시된 에너지고속도로는 이런 맥락을 가집니다.
에너지고속도로는 선관위에 제출한 이재명 후보 10대 공약 중 10 순위 환경·산업 공약,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겠습니다”에 “경제성장의 대동맥,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이라는 정책으로 포함되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2030년까지 서해안, 2040년까지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 건설 추진”을 공약하면서, 이것이 “분산형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효율적으로 연결·운영하는 ‘지능형 전력망’“이자 “‘에너지산업 육성’ 및 공급망 내재화를 통한 차세대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것이라 제시했습니다.
또한 4월 24일에는 페이스북에 “에너지고속도로로 대한민국 경제도약과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포스트를 올려 에너지고속도로를 “경제성장과 기후 대응의 대동맥”이라 표현하면서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분산형 에너지 체계”를 만드는 계획의 일환으로 소개했습니다. 전력 수요가 많은 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된 문제를 거론하며 “분산 에너지 편익 제공과 인센티브 강화로, 이들 기업을 지역에 유치해 지역경제를 살리겠습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대규모 산업지역을 연결해 전국에 ‘RE100 산단’을 조성”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대기업 지원 정책을 기후정책으로 포장한 그린워싱
그러나 이렇게 제시된 이재명 후보의 에너지고속도로는 그린워싱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기후정의에 부합하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구체적 계획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 없이 수도권 중심으로 삼성과 SK가 주도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력망 계획으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1순위 경제·산업 공약(‘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습니다’)에서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한 ‘AI 고속도로’ 구축 및 국가 혁신거점 육성”을 공약하고 있는데, 에너지고속도로가 이와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6GW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서울시 주택 전력소비량(2021년 기준)을 넘어서는 양이며 산업단지까지 포함한 수도권 전력 소비량 40GW의 40%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고속도로의 목적은 재생에너지 확대나 기후위기 대응보다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수도권의 반도체 클러스터나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산업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아직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10% 내외로 OECD 국가 중 꼴찌입니다. 신속하고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에너지고속도로는 재생에너지만이 아니라 호남 핵발전소와 동해안 화석연료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끌어오기 위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런 점에서 핵에너지 중심 무탄소 전원 강화에 기반한 윤석열 정부의 전략망 정책이나 핵발전소 증설을 통해 수도권 산업단지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김문수 후보의 에너지고속도로 정책과 큰 차별성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기후위기 대응이나 ‘균형발전’과 연결시키지만, 이는 삼성과 SK 등 대기업 지원을 통해 ‘경제도약’ ‘경제강국’ 등을 꾀하려는 성장정책을 녹색으로 포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형적인 그린워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산에너지 체계 말하면서 수도권으로 전력 집중
이재명 후보의 기후위기 대응 핵심공약 시리즈 2 “이제부터 진짜 탄소중립”에서도 에너지고속도로를 통해 재생에너지와 전력수요처를 연결해 “분산에너지 편익 제공”하겠다 밝히는 등 에너지고속도로가 ‘분산형 에너지 체계’ 구축을 위한 것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의 구상은 가로축(동해안~수도권), 세로축(호남~수도권)을 연결하는 기존 정부안에 더해 동해안~남해안~서해안을 모두 잇는 U자형 에너지고속도로를 건설해 수도권에 연결되는 ‘에너지 외곽 순환도로’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수도권은 이미 10GW의 전력을 비수도권에서 끌어와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도권에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를 추가로 조성한다면 30GW 가까운 전력을 비수도권에서 끌어와야 합니다. 에너지고속도로는 결국 대기업이 주도하는 첨단산업이 집중된 수도권에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고도의 중앙집중적 전령망이자, 수도권을 위해 지역을 희생시키는 전력망의 그림인 것입니다.
서해안의 송전선로를 가장 우선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것은 재생에너지와 핵에너지가 남아도는 호남 지역을 전력 생산의 1차 타겟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햇빛·바람 연금’을 통해 재생에너지 생산을 통한 이익을 공유하겠다고 말하지만, 감시보고서 2탄에서 밝힌 것처럼 연금을 위한 재원은 민간 발전 사업자의 수익이 아니라 시민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마련되는 것일 뿐입니다. 기업은 수익을 그대로 챙기고 시민이 전기요금을 통해 ‘연금’의 재원을 제공하는 데다, 고압 송전선로와 송전탑 건설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지역 주민들이 감당해야 하는데, 이재명 후보는 이런 점은 은폐하려고 합니다.
전력 생산지에서 전력을 소비하는 분산 에너지 체계를 말할 거라면, 전력 소모가 많은 산업 시설은 전력 생산이 많은 지역에 건설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는 지역에 산업시설을 유치하겠다는 추상적인 이야기 외에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먼 곳에서 수도권까지 초고압 전류를 송전하는 에너지고속도로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분산 에너지’와는 거리가 먼,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오는 거짓말입니다.
전 국토 송전탑으로 인한 생태 파괴와 지역 공동체 피해
이재명 후보가 기후위기 대응책이자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포장하고 있는 에너지고속도로는 수도권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 친자본 성장정책일 뿐만 아니라 반생태적인 정책이기도 합니다. 에너지고속도로가 현실화되면 호남뿐만 아니라 전 국토는 고압 송전탑과 송전선로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밀양에서 수년간 벌어졌던 송전탑 반대 싸움을 통해 우리는 고압 송전선로가 주민과 생태에 어떤 피해를 가져다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당진과 홍천 등 고압 송전탑이 지나는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보상금을 통해 마을을 갈라치기 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된 지역 공동체의 신뢰와 연대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산지에 건설되는 고압 송전탑은 생물생태계 파괴도 가속화합니다. 홍천의 경우 멸종위기종인 산양, 담비 등의 생물종이 확인된 ‘명품산’, 가리산에 송전탑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어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꼭 멸종위기종이 아니더라도 원거리 송전선로와 송전탑 건설은 무시할 수 없는 생태파괴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위협을 가져옵니다. 이재명 후보나 김문수 후보도 에너지고속도로 건설이 지역 주민의 피해와 생태파괴를 가져온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지역소멸 방지’, ‘지역균형 발전 추진 및 지역산업 생태계 안정 도모’(6번 국토균형발전 공약), ‘생물 다양성 복원’(10번 환경·산업 공약) 등의 공약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에너지고속도로는 이런 공약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공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에너지고속도로는 전력의 과잉 생산, 과잉 소비를 가속화하는 반생태적이고, 기후 위기 대응 보다는 삼성이나 SK 등 반도체 대기업을 위한 산업 지원정책의 성격이 훨씬 강합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생산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핵에너지를 수도권에 밀집해있는 첨단산업 시설에게 효율적으로 끌어다 바치기 위한 친자본 기획일 뿐입니다. 마치 일제시대 곡물을 수탈하기 위해 곡창지대에 철로가 놓여진 것처럼, 에너지고속도로는 ‘전력 생산 기지’로서 내부 식민화된 영호남, 동해안 지역을 수탈하기 위한 부정의한 정책이자 생태파괴를 가속화하는 반생태적 정책입니다. 이를 ‘기후정책’으로 포장하는 것은 명백한 그린워싱입니다.
에너지고속도로와 에너지 민영화의 위험
정부나 기업에서 ‘전력계통 혁신’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에너지 민영화에 대한 논란이 지펴집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에너지고속도로를 적극적으로 제시했을 때에도 이것이 전력시장의 재편과 에너지공기업의 민영화 추진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이재명 지사는 에너지고속도로가 "민영화가 아닌 국가주도의 대대적 투자에 따른 민간투자 유치 추진"이라며 에너지 공기업 민영화와는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업계에서는 수십조 원에 이르는 민간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결국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 선행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노동계에서도 에너지고속도로가 한전이 독점한 송배전망의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송배전망 확충은 국가 투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민간투자는 재생에너지 생산설비와 한전의 사업 영역이 아닌 지능형 전력망, ESS(에너지저장장치), V2G(전기차연계망) 등 신사업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라며 민영화 의혹을 부정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에너지고속도로를 공약으로 내걸며 대규모 초고압 송전망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지능형 전력망’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에너지 산업에 대한 대기업의 영향력 강화와 궁극적인 에너지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게 합니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분산전원 정책이 일부 지역에서는 배전망과 전력 판매 부문의 민영화를 허용하는 통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에너지고속도로 건설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이 한전이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고, 부자감세로 인해 정부의 재정 능력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공기업이 맡겠다고 하는 송배전망 확대도 민간 투자를 통해 해결할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이미 한전의 송전망 사업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나오고 있고, 지난 윤석열 정부는 민간 참여 확대를 통해 ‘서해안 해저 전력고속도로’를 건설하려다 비판에 직면해 철회한 적도 있습니다. 정부는 지금도 에너지 민영화는 안 한다고 말하지만, 이미 민간기업이 전체 발전용량의 46%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는 진척된 상황에서, 에너지고속도로는 민영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민간 투자를 통해 송배전망이 건설된다면, 송배전망에 대한 민간자본의 장악력이 커지고 그 영향력은 다른 에너지 산업으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꼭 송배전로 민영화가 아니더라도 민간기업의 투자 참여는 민간기업의 에너지 산업 진출과 이로 인한 산업 장악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민영화와 유사한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경우 돈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대기업으로 흘러 들어가고, 에너지라는 공공재와 공공서비스의 형평성과 공공성은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