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들, “노조법 2·3조 개정 취지 무력화하는 노동부 지침 필요없다”

생을 걸고 싸운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의 힘으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으나, 여전히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실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 이에 맞선 현장 노동자들의 분투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내년 3월 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준비하고 있는 지침과 매뉴얼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가 법 개정의 기본 취지마저 무력화하는 시도에 힘을 쏟고 있다며 저항에 나섰다. 

노조법 2·3조 개정안-고용노동부 지침, 매뉴얼 마련에 관한 비정규직 입장발표 기자회견. 참세상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과 '직장갑질119 노조할 권리특위'는 10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지침과 매뉴얼이 "원청교섭 의제 제한, 교섭 창구 단일화 등"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고용노동부가 대놓고 기업 편에 서서 원청 책임을 묻는 노조법 개정의 취지를 없애는 것”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고 있는 현장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노동시민사회단체 61개 단위가 함께 뜻을 모았다. 이들은 “원청의 교섭 회피 명분만 주는 노동부 지침과 매뉴얼은 필요 없다”고 입장을 밝히고, 고용노동부가 힘을 기울일 것은 “비정규직 진짜 사장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와 직접 교섭에 나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날 기자회견 참여 단위들에 따르면, 현재 고용노동부는 내년 3월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 교섭 절차, 노동쟁의의 범위 등에 대한 구체적 지침과 매뉴얼을 정교하게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그런데 해당 논의를 담당할 노동부 산하 노동정책연구회 분과장을 맡은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외부 강연과 토론회를 통해, “엄격한 실질적 지배력 인정, 원청교섭 단일화 적용, 청소·경비용역은 원청 교섭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하는 등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내용들을 쏟아내고” 있으며, “경총을 비롯한 기업들은 노조법 개정 이후에도 ‘교섭 참여’가 아닌 ‘교섭 회피’를 위한 준비에만 온 힘을 쏟고” 있어 수십 년간에 걸친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통과된 노조법 개정안의 취지가 무너질 위험에 놓여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상규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 참세상

이상규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은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개정된 노조법 2·3조”는 “다소 아쉬움은 남지만 드디어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다면서,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지침은 “교섭의제를 제한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를 다시 행정지침으로 틀어쥐겠다는 시도”로 “법 개정의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상규 지회장은 “교섭 의제와 방식, 창구 단일화 여부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짚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문제는 정부가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교섭과 현장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동부의 역할은 지침으로 노사관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감독하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라며 “원청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하고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과 당당히 교섭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힘 주어 말했다.

김형수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 참세상

김형수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도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수많은 우리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면서, 노동자들은 “손해배상 청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면서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고공에 오르고, 밥을 굶고, 맨몸으로 거리를 헤매었다”고 환기했다. 김 지회장은 “그러나 우리가 힘겹게 투쟁한 만큼의 법은 개정되지 못했다”면서 “노동의 사회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라는 노조법 개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국회는 취지만 살리고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가 제대로 노동법 2·3조를 개정해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했다면, 노동부는 법대로 집행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나 “국회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법 개정의 취지를 몰각시킬 수 있는) 칼자루가 노동부에 쥐어졌다”고 규탄했다.

김형수 지회장은 “노동부는 만들어진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지, “조정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개정된 노조법에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개정의 취지를 잘 살려서 (하청)노동자들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렇지 않으면 정부,국회, 노동부 모두가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판과 규탄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제대로 교섭할 수 있고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밝힐 수 있는 법 개정이 곧이어 다시 진행되어야 할 것 같다”면서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의 과제를 짚었다.

정윤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 부분회장. 참세상

연세대학교에서 경비노동자로 일하는 정윤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 부분회장은 “용역업체 소속인 청소·경비·시설 노동자들은 대학의 여러 노동자들 중 제일 밑바닥에 위치해 있다”면서 “다른 대학 구성원들이 다 쓰는 와이파이도 우리에게는 열어주지 않고 도서관도 들어갈 수 없으며, 제일 더러운 것들을 치워내고 가장 땀을 많이 흘리는 일을 하지만 휴게실도 샤워·세탁 시설도 가장 마지막에 배정되거나 차별 대우를 받고, 임금이나 식대는 말할 것도 없다”고 현장의 참담한 현실을 증언했다.

정 부분회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용역업체와 교섭을 하고 있지만 7번, 8번을 교섭을 해도 풀리지가 않는다”면서 용역업체는 “원청인 대학이 결정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입장을 거듭하고, “대학은 책임이 없다고 하며, 총무팀은 결재를 미루고 용역업체는 눈치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이제 노조법도 개정되었으니 진짜 사장인 대학 총장님이 우리 사정을 좀 들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지침이 원청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교섭을 거부할 근거로 작용할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정윤석 부분회장은 또한 고용노동부 지침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원청 교섭 창구 단일화’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이미 “창구 단일화 때문에 애를 먹는 사업장도 많다”면서 “세브란스 병원도 원하청이 청소노동자 노조 탈퇴 공작을 해서 교섭권을 뺏기고 노조가 무너졌고, 이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지만, 유죄 판결이 나오기까지 8년이 걸렸으며, 지금도 9년째 조합원들이 병원 로비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고 환기했다.

정 부분회장은 “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원청인 대학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섭 범위니 절차니 하면서 교섭조차 못하게 막아선다면 그걸 제대로 된 법이라 할 수 없다”면서 “그때는 우리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다시 길을 열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김지수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사무국장. 참세상

김지수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사무국장은 “배달 앱을 켜는 순간부터 배달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의 통제에 종속”되고 “수락률 등급제 미션은 배달 노동자들을 더 빠르고 더 오래 달리도록 위협하며, 기본 배달료 삭감은 생계를 위협하고 주행 중 울리는 알림은 사고 위험을 키운다”면서 이렇게 “노동자로서 명백히 사용자 지휘 통제를 받고 있음에도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 바깥”으로 내몰린 현실을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같이 “노조법 개정안에서 배제된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원청 본사의 책임을 묻는 실질적 지침과 매뉴얼을 마련할 것 △알고리즘이 규정하는 노동조건 전반을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고 행정지침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이런 대책이 뒤따라야만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이 바뀔 수 있다”고 힘 주어 말했다.

직장갑질119 노조할 권리 특위, 박지아 변호사. 참세상

직장갑질119 노조할 권리 특위에서 활동하는 박지아 변호사는 “내년 3월 전까지 고용노동부는 구체적 지침과 매뉴얼을 정교하게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하나, 현재로서는 그 지침과 매뉴얼이 원청 사용자 측에 교섭 거부의 빌미만 제공할 우려가 매우 상당하다”고 지적하고 “원하청 교섭을 촉진시키고자 만든 법 개정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는 “남은 기간 동안 교섭 의제와 절차 제한 등으로 법 개정의 취지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청 교섭의 모범 사례를 구축 △원청의 교섭 해태에 대한 대응 방안 모색 △현장 노동자 의견 직접 수렴 △개정법의 취지에 따라 손해배상 철회에 대한 지원 △언론과 야당, 경총 등의 왜곡되고 과장된 주장과 보도에 대한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정규직 진짜 사장 원청 나와 해결해라!". 참세상

비정규직 당사자 노동자들과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노조법 개정안의 가장 큰 의미는, 저임금과 고용불안, 일하다 죽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 원청에 대한 교섭과 문제해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이번 개정안에서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이 배제’되었고,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한 ‘개인 손해배상청구 금지’를 관철하지 못한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고 환기하고, “진짜 사장 원청이 교섭에 나와 진짜 책임을 지게하고,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쟁취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모았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와 고용노동부에 △교섭 의제와 교섭 대상을 노사 자율에 맡길 것 △원청이 교섭을 거부하고 책임을 회피할 시, 원청의 책임을 물을 대책을 마련할 것 △법 시행 이전, 원청과 교섭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자동차판매연대지회,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코레일네트웍스지부, CJ대한통운 등의 문제 해결에 나설 것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것 △노조 활동을 가로막는 모든 손해배상청구를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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