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 의원 헨리 “칩스” 채넌 경의 검열되지 않은 완전판 일기가 2021년에 출간되었을 때, 20세기 중반 영국 상류층의 삶을 담은 그의 거리낌 없는 기록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일기들은 나치 독일의 유화정책을 옹호한 경력 때문에 정치적 명성을 회복하지 못한, 이름난 사교가이자 우익 속물인 그의 내면을 드러냈다.
채넌은 기네스 가문의 재산과 결혼한 후, 귀족적 부의 전리품을 만끽했다. 그는 에식스의 켈브던 홀이라는 시골 저택을 구입할 때 느낀 전율, 자신이 주최한 화려한 만찬회에서 반짝이는 유리 장식, 수많은 연인들에게 선물한 값비싼 보석, 고급 유럽 휴양지와 운전기사가 딸린 자동차에서의 사치를 즐겼다. 그의 일기 중 한 편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간에 헤르만 괴링 등 나치 지도자들과 함께 파티를 즐긴 일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의 노골적인 부(富)에 대한 사랑과는 대조되는 흥미로운 면모도 있었다. 1930년대 후반 보수당 주도의 연립정부 시절, 영국이 전쟁 준비를 위해 재무장에 나서면서 세금이 인상되기 시작했다. 채넌은 1939년 말 당시 재무장관 존 사이먼 경의 “충격적인” 첫 전쟁 예산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가 소득세를 파운드당 7실링 6펜스(37.5페니)로 올리겠다고 말하자, 하원 전체가 숨을 죽였다. … 추가소득세 인상, 공제 축소, 와인·담배·설탕에 대한 세금 인상, 상속세의 대폭 증가. 상황이 너무 나빠서, 그냥 최선을 다해 적응하며 살아야 할 뿐이다.”
이 세금 인상과 이후의 추가 조치는 채넌의 호화로운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그의 켈브던 영지는 군 병원으로 전환되었고, 이 과정은 시골 영국의 모습을 바꾼 대규모 토지 매각 물결의 일부가 되었다(이런 변화는 이블린 워의 소설 ⟪브라이즈헤드 회상⟫에도 묘사된다). 그러나 채넌은 이러한 불편함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추가로 세금을 내고, 할 수 있는 만큼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1930년대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권위주의 정권의 부상부터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 공공지출 압박까지, 유사점이 뚜렷하다. 그러나 전쟁 전 시기와 달리, 오늘날 고소득층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제안은 사회 일부와 언론의 격렬한 반발—때로는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채넌과 그의 부유한 동시대인들이 보여준 실용적 태도와는 달리, 오늘날 일부 여론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것이 마치 ‘자연 질서’를 거스르는 일인 듯한 인상을 준다. 2024년 가을, 새로 들어선 노동당 정부가 상속세 제도를 개정해 농지 자산을 다른 자산과 동일하게 과세하도록 조정하자, 거리에선 시위가 일어났다.
같은 해, “비거주” 영국 거주자들 — 즉, 영국 외부를 영구 거주지로 신고한 사람들 — 에 대한 세금 면제를 폐지하는 개혁안이 추진되었다. 이 조치는 원래 보수당 재무장관 제러미 헌트가 처음 발표한 것이었지만, 개혁이 본격화되자 국제적 초부유층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영국을 떠날 것”이라는 (대부분 근거 없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경제적·정치적 도전이 심화되는 지금, 사회적 복지를 위해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려 했던 과거 부유층의 냉철함과 인내심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마도 채넌의 시대와 오늘날의 핵심적 차이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영국 내 부의 분포와 규모가 얼마나 극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두 개의 그래프에서 드러난다. 채넌이 일기를 쓰던 시절, 1인당 자산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이는 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재산 손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부터 영국의 개인 자산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오랜 세월 동안, 평균적인 영국인의 자산이 5만 파운드에 도달하는 데에는 수천 년이 걸렸다. 이 수준은 1970년대쯤에야 처음 달성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40년 뒤, 개인 자산 규모는 세 배로 증가했다.
영국의 개인 자산 변화 추이
영국 내 부(富)의 총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동안, 그 부를 소유한 사람들의 구성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채넌이 살던 시절, 상위 1%의 부유층이 영국 전체 자산의 무려 50%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그가 세금 인상에도 담담하게 대응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일부 상류층만이 상당한 부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다수 영국인들은 빠듯한 형편 속에 살아 추가 세금을 낼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상황이 어려워지면, 결국 그와 같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 이후, 상위 1%가 보유한 부의 비중은 절반 이하로 줄어 현재 전체의 약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한 상위 10%의 부유층이 차지하는 부의 비중 역시 채넌 시대의 90%에서 현재 약 60% 미만으로 감소했다.
영국의 부의 불평등 변화 추이

표면적으로 보면, 이 두 그래프는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영국은 다른 많은 부유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훨씬 더 부유해졌고, 그 혜택이 더 널리 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겉보기에는 나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국 재정연구소(Institute for Fiscal Studies)의 영향력 있는 디턴 리뷰(Deaton Review)에 참여한 학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민간 자산의 축적이 오히려 영국에 불안한 조짐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지난 75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한 국가 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투자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개인의 손에 축적되어, 상류층과 중산층의 부를 불균형하게 부풀리고 사회 전체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나는 사회학자로서 오랫동안 영국 사회의 계층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 그리고 계층, 성별, 인종, 지역 간의 격차가 서로를 어떻게 강화시키는가를 연구해왔다
현재 나는 민간 자산의 축적이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결국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한다. 이 문제를 방치한다면, 나는 영국의 ‘부(富)의 시한폭탄’이 사회 내부의 균열을 더욱 확대시켜, 이미 분노한 포퓰리즘 정치 운동의 부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회적 불안을 악화시키며, 미래 세대에게 재앙적인 유산을 남길 것이라고 믿는다.
다가오는 11월 26일 예산 발표를 앞두고,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Rachel Reeves)가 추진할 부유세 및 기타 세금 인상 방안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논의가 단순히 세수를 효율적으로 확보하면서 국가 번영을 해치지 않는 기술적 문제로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부(富)에 관한 훨씬 더 넓은 문화적·정치적 문제가 지금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 특히, 부를 전적으로 사적 재화로 간주하고 사회적 책임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널리 퍼진 인식을 이제는 철저히 검증할 때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부를 소유한 개인이 거의 아무런 세금의 제약도 없이 자산을 축적하고, 소비하며, 상속할 수 있다는 왜곡된 관점으로 이어진다. 칩스 채넌은 여러 면에서 비판받을 만한 인물이었지만, 그조차도 그런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세대의 공동 노력
오늘날 영국을 비롯한 여러 부유한 나라에서 부에 대한 과세를 주저하는 태도는 사실상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역사 속 대부분의 사회는 이러한 형태의 자원 재분배를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왔다.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정복자 윌리엄이 수행한 첫 조치 중 하나는 “둠스데이 북(Domesday Book)”을 편찬하여 새로 정복한 영토의 토지 자산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당시 가난한 사회에서는 부의 축적물, 즉 토지와 자산이 과세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형태의 자원이었다.
영국 역사 전반에 걸쳐, 사적 부를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호혜’와 공정성’이라는 공동체적 규범을 무시할 경우 제재를 받곤 했다. 20세기 초까지 영국 부의 주된 형태였던 귀족의 대지주 영지에서도, 토지 소유자들은 여전히 더 넓은 공익을 위해 영지를 운영해야 한다는 강한 도덕적 압박을 받았다.
또한, 영국처럼 제조업이 강했던 산업사회에서는 공장과 기업에서 비롯된 부를 사회적 산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즉, 그것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된 삶과 노동의 결과로 창출된 이익이었다. 따라서 막대한 부를 소유한 이들은 그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대를 받았다.
19세기에는 몇몇 자선가들이 사적 부의 공공적 가치를 분명히 인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미국의 철강 재벌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였다. 그의 저서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은 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급진적 자유주의 비판을 이끌어냈고, 이 사상은 1905년부터 1915년까지 집권한 영국 자유당 정부가 대규모 사적 부에 대한 과세를 적극 추진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이는 영국 최초의 사회학 교수 라이오넬 홉하우스(Lionel Hobhouse)가 설명했듯, 20세기 초 ‘신자유주의‘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았다.
홉하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번영한 사업가는 자신의 성공이 전적으로 자기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업 발전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질서와 평온, 도로와 철도, 해상 운송의 안전, 숙련된 노동력의 집단적 축적, 그리고 문명이 그에게 제공한 지성의 총합 없이는 성공의 단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는 과학자들과 산업 조직가들의 세대에 걸친 공동 노력으로 축적된 발명과 지식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공동의 부(common wealth)’ 개념은 진보 세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보수당 내 급진파 중에서도 이 생각을 지지한 인물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이다. 그는 1860년에 “생명 외에 부는 없다(There is no wealth but life)”라고 선언하며 이렇게 썼다.
“가장 많은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들을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한 나라이다. 자신의 삶의 기능을 완전하게 발휘하고, 자신의 인격과 재산을 통해 타인의 삶에 가장 넓고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산업력과 군사력의 결합으로 세계적 지위를 누리던 시기였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전기, 가스, 수도, 공공건물 등 각종 생활 기반시설의 지방정부 소유(지방 공영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강력한 정치적 흐름이 함께 일어났다. 특히 버밍엄 시는 이러한 공공정신적 복지 모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혔다.
물론 이러한 공익적 관념은 영국의 식민지들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식민지들은 여전히 “문명화되지 않은 땅”으로 간주되어, 수탈과 약탈,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 본토의 부유층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부가 모든 영국인들이 보다 잘 작동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히 존재했다. 당시 영국인의 대다수는 그러한 부의 혜택을 직접 누리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신념의 배경에는 종교적·도덕적 신념이 자리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칩스 채넌의 사례가 보여주듯, 부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결국 부자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현실적 인식 또한 있었다. 그것은 교육받은 노동력, 질서 있고 안정된 사회, 그리고 존중받는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부유층이 누리는 삶의 질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동의 부’에 대한 집단적 비전은 오늘날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보통 사람의 부’의 등장
21세기 초가 되자, 영국에서 부는 더 이상 소수 특권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1979~1990년 집권한 마거릿 대처 보수당 정부의 정책은, “모든 국민이 자기 집을 소유하는 사회”, 즉 대중적 자산 소유의 가능성을 현실적인 목표로 제시했다.
이러한 변화는 영국뿐 아니라 다른 부유한 국가들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오늘날의 ‘자산 소유 중산층’을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주택과 연금 기금에 묶인 자산소득의 혜택을 누리는 계층이다.
영국의 경우, 자가주택 비율은 1958년 약 38%에서 2003년 70%까지 급상승했다. 이 같은 변화는 대처 정부의 대표 정책이었던 ‘공공임대주택 매각’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제도는 공공임대주택 세입자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다른 계층에게 큰 비용을 초래했다. 싱크탱크 ‘커먼 웰스’(Common Wealth)는 이 제도가 영국 납세자들에게 약 2,000억 파운드의 손실을 안겼다고 추산했다. 이는 지방정부가 해당 주택을 시장가로 판매했거나 보유를 유지했을 경우 확보할 수 있었던 부나 수입의 총액에 해당하며, 커먼 웰스는 이를 “영국 역사상 가장 큰 공공 자산 무상 증여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보통 사람의 부’의 두 번째 주요 형태는 연금 자산이다. 이는 직장 연금이나 개인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이 미래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의 형태로 존재한다. 다만, 이 자산은 55세 이후(2028년부터는 57세 이후)에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가상의 개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리졸루션 재단’(The Resolution Foundation, RF)의 분석에 따르면, 연금 자산은 현재 영국 가계 전체에서 가장 큰 부의 형태를 차지한다.
연금과 부동산의 확산은 사적 부의 문화정치(cultural politics of private wealth)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부는 더 이상 특권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평범한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영국의 ‘공동의 부’는 사유화, 복지 축소, 그리고 국가 부채의 증가로 인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공공 부문 은행을 제외하면, 영국의 국가 부채는 1993년 GDP의 30% 미만에서 현재 약 100%에 근접하게 상승했다.
이로 인해 공공 자산이 사적 자산으로 이전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지출 삭감, 인프라 투자 축소 등으로 공공 서비스가 위축되자, 사람들은 질병, 실직, 돌봄 등의 위험에 대비한 완충 장치로서 개인 자산의 중요성을 더 크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자신의 사적 자산을 지키려는 욕구가 대중적으로 매우 강해졌다.
이러한 사적 부의 매력은 이해할 만하다. 내 집 마련을 위해 계약금을 모으거나 연금에 꾸준히 납입하는 노력은 분명 개인의 근면과 책임감의 결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 소규모 자산을 쌓았거나 그럴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는 본질적으로 사회적·공동체적 산물이다”라는 주장은 낯설고 멀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처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내세운 ‘부의 민주화’ 모델은 지속 가능한 비전이 아니었다. 이 모델은 사회적 상호책임을 유지할 수 있는 장기적 구조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 마거릿 대처의 재임이 끝나기도 전, 상위 1%와 10%의 부 점유율 감소세는 멈췄고, 이후 지금까지 그 비율은 거의 정체 상태이거나 오히려 소폭 상승하고 있다.
영국의 전체 부 규모가 사상 최고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 부의 민주화는 한계에 도달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새로운 벽이 세워진 것이다. 그 이후의 정책들은 이미 자산을 보유하고, 정치적·문화적 영향력도 가진 계층의 이해를 우선시했다. 그리고 그 계층에는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포함되지 않았다.
영국의 ‘부의 시한폭탄’
오늘날 영국의 사적 부는 20세기 초보다 훨씬 더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그 분배는 여전히 극도로 불평등하다 — 소득보다 훨씬 더 심하다. RF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 가구의 절반은 순자산이 전혀 없으며, 40%는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다.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이런 자산이 없는 절반이 부동산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동시에 민간 임대료는 급격히 상승했으며, 영국의 월평균 임대료는 2015년 1월 948파운드에서 2024년 8월 1,286파운드로 상승했다.(실질 가치 기준으로 약 1% 증가)
한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의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시행된 양적완화의 효과는 경제 전반으로 고르게 확산되지 못하고, 이미 부유한 계층에게 집중되었다. 리졸루션 재단은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부의 증가는 주로 고령의 자산 보유 가구와 특정 지역(특히 런던)의 주택 소유자들에게 불균형적으로 흘러갔다. 그 결과, 영국의 부의 지형은 극도로 불평등해졌으며, 그 사다리를 오르기도 한층 더 어려워졌다.”
이러한 부의 확산은 다른 형태의 불평등도 심화시킨다. 내가 ‘런니미드 트러스트’(Runnymede Trust)를 위해 공동 저술한 최근 보고서는 인종별 부의 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흑인 아프리카계 및 방글라데시계 가구는 백인 영국 가구가 가진 부의 10%밖에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성별에 따른 부의 격차도 뚜렷한데, 특히 연금 자산에서 나타난다. 이는 남성이 직업 연금 제도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영국 경제가 광범위하게 침체 상태로 인식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두 현상은 연관이 있을까? 거의 확실하다.
현재 경제학계에는 “자산 경제(asset economies)” 혹은 “임대료형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의 구조적 한계를 강조하는 영향력 있는 연구 흐름이 있다. 이 체제에서는 경제적 수익이 주로 수동적 방식으로 발생한다. 즉, 부유한 사람들은 위험이 큰 신규 창업 프로젝트(자신의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에 투자하기보다는, 이미 가진 자산에서 얻는 위험 없는 “수동적” 수익을 즐기는 것이 더 유리하다.
RF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영국 가계 부 증가의 53%는 적극적 투자(빚을 갚거나 창업 노력으로 이익을 얻는 것)보다는 자산 가격 상승(예: 주택 가격 상승 수혜)과 같은 수동적 효과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수동적 부 편향은 영국 경제가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적 부가 정체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동시에, 이는 세대 간 공정성 문제에도 큰 도전을 야기한다. 젊은 세대의 미래 전망은 점점 더 자신이 태어난 부의 계층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샘 프리드먼(Sam Friedman)의 연구는 노동자 계층 자녀가 전문직 및 관리직 최상위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이 만연한 계급 장벽 때문에 제한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젊은 성인이 부를 확보할 가능성도 점점 더 부모의 부유 여부에 달려 있다.
긴축 정책으로 공공 서비스가 축소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경제적 자원에 다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유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문 걸어잠그기(pulling up the drawbridge,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태도)”식 사고방식이 자리잡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러한 시대에는 포퓰리즘 운동의 매력이 커지며, 불신과 혐오의 정치가 생겨난다.
영국은 이미 대처 전 총리 시절의 “부의 민주화” 정책이 한계에 다다랐다. 부의 망이 더 넓게 퍼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이제는 사유 재산의 이익을 단지 그것을 소유한 사람만이 누려야 한다는, 역사적으로 예외적이고 지속 불가능한 관점을 정면으로 문제 삼는 것이 필수적이며 긴급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구체적인 과세 정책의 실무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부에 더 과세해야 하는 이유
노동당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와 그의 후임들이 그들의 사무실에서 재정을 운용할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세금 변화를 고려할 때, 재무장관들은 먼저 채권 시장과 영국 경제의 광범위한 금융 안정성에 예산 및 다른 정책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금융시장을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부에 더 과세해야 하는 강력한 기술적 이유가 존재한다.
상당한 개인 소득이 자본에서 나오는 수익(임대료, 주식 배당금 등)에 기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세금 측면에서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완전히 논리적이다.
그러나 고소득자는 소득세를 40%(45%까지 상승 가능) 납부하는 반면, 자본이득세(capital gains)는 24~32% 범위에서 과세되며, 일부 자본이득, 특히 개인 주택에서 발생하는 것은 전혀 과세되지 않는다. 이는 명백히 불일치이다.
재산세 제도는 재평가 또는 신규 주택 구입 시 취득세 조정을 통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이 널리 인정된다. 연금세도 마찬가지로 개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가연금을 4월마다 평균임금 상승률, 물가상승률, 2.5% 중 가장 높은 수치로 올리는 ‘트리플 락(triple-lock)’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이 있다.
다행히도, 부의 과세에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고 일반적인 반대 논리를 반박하는 배경 연구가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반대 논리에는 과세 징수의 복잡성, 부유층이 세금 도입 후 나라를 떠날 것이라는 주장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실제 행동 분석 결과, 세금 개혁 도입 이후 많은 부유층이 해외로 이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모든 경우에 대해, 이들 세금에 대한 반대 증거는 빈약하며 쉽게 반박 가능하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가브리엘 주크만(Gabriel Zucman)과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부를 직접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을 점점 더 지지하고 있다. 그는 초고액 자산가에 대한 국제적 표준 과세를 제안하면서, 이 세금을 내야 하는 기준을 자산 10억 달러 이상으로 매우 높게 설정했다.
부유층의 옹호자들은 종종 부 과세를 사회주의적 프로젝트로 묘사하며,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적 분류는 단순히 잘못된 생각이다. 부 과세의 역사는 정치적 주류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그럼에도 현재와 같은 정치적 환경에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려면 순수한 기술적·경제적 논거를 넘어서는 분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 과세 반대론자는 이러한 논거를 다루기를 꺼린다.) 궁극적으로, 부 과세를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려면, 큰 문화적·사회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 특히 대규모 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극단적 부와 일반적 부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놀라운 시기를 살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개인 부의 총량이 영국과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겉보기에는 인간 사회가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개인적 진보를 체감하고 있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채넌 시대 이후의 부의 민주화의 혜택을 간접적으로라도 본 사람들조차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가진 “일반적 부”조차도 실제 생활에 충분한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비싼 주택이나 연금저축에 묶인 부는 다른 생활비를 크게 잠식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부에서 나오는 소득만 과세할 것이 아니라, 부 자체를 과세해야 한다는 중요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부는 단순한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부는 미래에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 즉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와 가족이 번영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특히 자가 소유 주택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생각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영국 내 최고가 지역에 사는 일반 부 소유자들조차도, 극단적 부를 가진 사람들과는 현실적으로 큰 격차가 존재한다.
극단적 부를 대상으로 한 ‘전체 부’ 과세는 매우 큰 사적 부가 일부 공적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직접적으로 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채넌조차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의 제한주의(limitarianism) 주장에 따르면, 일정 기준 이상의 부를 가진 사람만 이 세금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2020년 영국 부 과세 위원회(Wealth Tax Commission)는, 연간 50만 파운드를 기준으로 하면, 1% 세율로 5년간 약 2,600억 파운드를 거둘 수 있다고 계산했다. 기준을 200만 파운드로 높여 약 2%의 영국인만 대상으로 해도, 여전히 800억 파운드를 모을 수 있다.
이 수치들은 (업데이트가 필요하지만) 정치적 갈등 없이 합리적으로 공공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적절한 기준선을 설정하면, 일반적 부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산에서 오는 안전망을 정당하게 유지하도록 배려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부 과세를 통해 사적 부가 사회적 책임을 동반한다는 원칙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 증가의 상당 부분이 자산 가격 상승과 같은 수동적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를 개인의 노력만으로 얻은 성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심지어 기업가적 재능과 노력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도, 노동자와 고객을 교육하고 치료하며 지원하는 사회적 기반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공동체적 부의 문화적 정치를 부활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의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다.
[출처] The UK’s wealth ‘timebomb’ – and how to defuse i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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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새비지(Mike Savage)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국제불평등연구소 교수급 연구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