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약속, 흔들리는 녹색 전환

10여 년 전서방 국가 정부들은 녹색 전환을 산업 재건과 경제 쇠퇴의 해법으로 내세웠다하지만이 정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우익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유리 작업자(glazier), 단열재 설치자히트 펌프 기술자에 이르기까지녹색 경제는 설치 중심의 경제다이 일들은 노동집약적이긴 하지만제조업보다는 넓은 의미의 서비스 부문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출처: 앤드루 에이치슨(Andrew Aitchison) / 인 픽처스(In Pictures)

영국의 극우 정당 영국개혁당(Reform UK)은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의 지도 아래 1년 만에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패라지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캠페인을 이끈 인물로오랜 시간 동안 정치 전면에 나서온 인물이다영국개혁당은 국가 쇠퇴에 대한 광범위한 불안감을 동력 삼아반이민·반기후 정책을 내세우며 전통적으로 기후 의식이 높았던 영국 사회에서 이질적인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영국개혁당은 집권 시 기후 관련 법률을 되돌리고자신들이 장악한 지역구 내에서는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차단하겠다고 약속했다. 2025년 6월 스코틀랜드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패라지는 도널드 트럼프 식의 언사로 굴착하라스코틀랜드여굴착하라고 유권자들에게 외쳤다그는 같은 연설에서 탄소중립(net-zero)을 브렉시트 이후 정치적 갈등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정치적 반발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보수당 대표 케미 바데노크(Kemi Badenoch)는 탄소중립 목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여당인 노동당은 기후 목표와 녹색 정책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당시에는 기후 운동이 활발했고기후 관련 법안에 대해 정당 간 지지가 존재했으며환경 정책에 대한 정치적 지지도도 높았다.

현재도 영국 내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강하지만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녹색 전환이 자신에게 미치는 경제적 비용을 걱정하고 있다영국인 4분의 3은 기후 정책이 자신을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20%는 기후 정책이 경제에 해롭다고 생각하고 있다비록 탄소중립 부문이 연간 10%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영국 경제 전반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7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음에도유권자의 5명 중 1명만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에너지 전환이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녹색 배신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미국과 마찬가지로영국도 2015년 파리협정 이후 다수의 기후 정책과 재정 지원책을 도입했다이는 대규모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투자 촉진을 목표로 한 포괄적 경제 프레임워크로 이어졌다부유한 국가 전역에서 나왔던 수사는 동일했다탄소중립 추진은 국가 경제를 회복시키고기후변화를 저지하며경제 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최근 출간한 책 『혹은 더 나쁜 미래: 기후 전환을 다시 뒤흔들어야 하는 이유』(Or Something Worse: Why We Need to Disrupt the Climate Transition)에서도 설명했듯기후 정책이 약속한 것은 단지 일자리 창출만이 아니었다그것은 제조업과 산업의 부활이었다.

오늘날 경제 침체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산업과 제조업에서의 성장 여력 고갈이다.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이래세계적 산업 경쟁과 지속적인 자동화는 과잉 산업 생산능력을 만들어냈다이 과잉 생산능력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다이런 이른바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는 현재 패라지와 영국개혁당에 표를 던지고 있는 영국 지역의 산업 기반을 무너뜨린 요인이기도 하다.

기후 정책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제조업을 되살리고 경제 성장도 되살릴 것이라 주장해 왔다녹색 전환은 사실상 국가 주도의 거대한 사업이었다새로운 기계부터 자동차발전소대규모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새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이처럼 녹색’ 생산의 복귀가 쇠락한 산업 도시들을 회복시키고중공업 특유의 높은 파급효과 덕분에 하나의 산업 일자리가 수많은 다른 일자리를 유발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녹색 산업 정책은 유리한 선택이었다.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의 편집자 톰 헤이젤딘(Tom Hazeldine)은 2017년에 브렉시트 찬성 지역 지도가 탈산업화와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들과 겹친다고 지적했다노동당이든 보수당이든 이 유권자들을 잡으려면 점점 심해지는 경제 불안정에 대처해야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새로운 녹색 산업 혁명이라는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바로 이 실패가 패라지와 도널드 트럼프가 환경운동의 약속을 배신이라고 비판할 수 있게 만든 토양이 되었다.

이를 상징하는 사례가 영국의 제강 노동자들이다지난 1년간 영국의 제철소들은 석탄 기반 용광로를 폐쇄하거나 폐쇄 위협을 가해 왔다모두가 국제 경쟁으로 인해 일일 운영 손실이 크다고 주장했고친환경 전기로 전환을 위한 막대한 정부 자금을 요구했다. 2024년 말웨일스의 포트 탤벗(Port Talbot) 제철소를 소유한 타타 스틸(Tata Steel)은 전기로 전환과 공장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전체 전환 비용의 3분의 1을 지원하겠다고 나섰고그 다음 날 타타 스틸은 남아 있는 공장 인력 중 절반 이상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영국 철강 노동자들은 미래를 직감하고 있다노동조합 활동가들에 따르면많은 노동자들이 조합에서 탈퇴하고 영국개혁당에 가입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로는 다른 녹색 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 공정에 필요한 인력이 적다더 나쁜 점은 신설된 산업 시설들이 대체로 고도로 자동화되어 있어 노동 수요가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녹색 산업은 일반적으로그들이 대체하는 탄소 집약 산업보다 고용 규모가 작다.

이제 막 시작된 녹색 산업 건설 초기 단계에서도경쟁은 가장 효율적이고 저임금 구조를 가진 공장을 제외하고는 유럽과 미국은 물론중국에서도 대부분을 도태시키고 있다녹색 산업 역시 과잉 생산능력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후 정책이 산업을 부활시킨다는 증거도 거의 없다오히려 이러한 정책들은 기존의 과잉 생산 경향을 심화시키며제조업이 국가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더 빠르게 감소시키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 경제

미국에는 약 350만 개의 청정 에너지 관련 일자리가 있으며이 분야는 지속적인 정치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체 경제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성장 속도가 워낙 빨라서 고용주의 약 90%가 채용할 인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 모두 기후 관련 산업이 급성장 중이며경제와 고용 측면에서도 강한 성장세를 보인다그러나 패라지 같은 인물들이 제기하는 녹색 전환에 대한 회의론은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녹색 전환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기는 하지만이들 일자리의 상당수는 녹색 기술을 설치하는 서비스 부문에 속한다.

현장이나 특정 장소에서 각종 설비와 장치를 설치하고 조립하는 일을 설치 노동이라고 한다. 전환 경제 내에서는조립과 설치의 노동이 제조업을 대신해 핵심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으며이는 태양광 산업이 대표적 사례다.

유럽과 미국의 태양광 산업은 현재 고용이 폭증하고 있다유럽에는 현재 60만 명 이상의 태양광 설치 인력이 있으며이 수치는 2025년 말까지 10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미국에서도 설치 노동은 급속히 확장되고 있으며지난 10년 동안 이 분야의 일자리는 250% 증가했다대형 고용주도 일부 있지만산업 전반은 대체로 에이전시(파견기반의 고용 형태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태양광 설치 일자리는 여타 파견 노동과 다르지 않다급여가 제때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노동자들은 종종 공과금이나 식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날을 겪으며부채와 마이너스 통장 수수료가 쌓이곤 한다이 작업은 현장을 옮겨 다니며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지역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유랑하는 노동자가 형성되고 있다노동자들은 호텔 방을 함께 쓰거나 외진 현장 근처에서 텐트나 차 안에서 자는 경우가 흔하고멀리까지 이동한 끝에 현장에 도착했더니 일이 없다는 말을 듣는 사례도 많다병가휴일유급 휴가 같은 기본적인 노동권도 다수의 설치 파견 업체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유리 작업자(glazier), 단열재 설치자히트 펌프 기술자까지녹색 경제는 곧 설치 경제다이 일들이 노동집약적이긴 하지만제조업보다는 넓은 의미의 서비스 부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한다따라서 이 산업이 제조업 중심의 부활을 이끌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실현되기 어렵고과거 산업이 사라지며 무너진 도시들을 되살릴 가능성도 낮다.

바로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패라지는 영국 전역에 퍼진 쇠퇴의 감각을 활용해 기후 전환의 깨진 약속을 지적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성장 회복과 쇠퇴 반전을 내세운 녹색 전환은결국 신자유주의 시대 최악의 경향들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되었다그러나 전환 경제에 대한 우익의 반발은 오히려 위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기후 정책을 되돌리는 것은경제 내에서 몇 안 되는 성장 부문을 위협할 뿐 아니라기후 변화로 인한 실제 피해에 대응하려는 노력마저 훼손하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가 성장하는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산업 일자리가 풍부했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른 정치 지형 위에 서 있다전환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전혀 다른 방식의 전환을 위해 조직하고 싸워야 할 때다.

[출처] The Broken Promises of the Green Transition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닉 뷰렛(Nik Beuret)은 에식스 대학교(University of Essex)에서 환경 정치 및 경제 지리학을 가르치는 강사이며, 『혹은 더 나쁜 미래: 기후 전환을 다시 뒤흔들어야 하는 이유』(Or Something Worse: Why We Need to Disrupt the Climate Transitio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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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국 녹색 전환 파리 협정 청정 에너지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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