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N번방 이어 박제방, “말 잘들으면 박제 내려줄게”... 성 착취 여전했다

‘텔레그램 범죄 네트워크’ 실태 고발②

사회운동진영의 후원 계좌가 허위 신고로 잇따라 지급정지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취재 결과, 그 배후에는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범죄 네트워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방식은 통장을 묶는 신종 사기 수법에 그치지 않고, 성 착취와 불법도박 등 다양한 디지털 범죄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참세상은 신종 금융사기 배후의 텔레그램 범죄 네트워크 실태를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는 연재에 앞서 경찰에 일괄 전달했다. 

허위 신고로 인해 ‘통장협박’ 피해를 본 문화활동가 A 씨의 계좌에는 “@DK***7”이라는 텔레그램 아이디가 남았다. 취재 결과, 해당 아이디는 텔레그램에서 여러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닉네임 ‘암행어사’의 계정 중 하나였다.([단독] 사회운동 계좌 누가 묶었나 보니... 박제방부터 불법도박까지 ‘범죄 네트워크’ - ‘텔레그램 범죄 네트워크’ 실태 고발①) ‘암행어사’는 취재 당시 약 8,400명의 참여자를 보유한 대형 ‘박제방’의 운영자이면서, 계좌매입방과 불법도박 채널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박제방’은 피해자들의 얼굴, 이름,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유포하는 채널을 일컫는다. 2025년 채널A와 KBS가 보도했던 신상정보를 유포하는 ‘박제방’은 참여자 1,300명에서 2,000명가량의 규모로 알려졌으나, 참세상 취재 결과 현재 2만 명이 넘는 방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 박제방에서는 개인정보 유포를 넘어, 여성들에 대한 ‘디지털 성 착취’와 같은 각종 범죄 행위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N번방’ 이어 ‘박제방’... 끝나지 않는 디지털 성 착취

기자가 잠입한 ‘암행어사’의 박제방은 주로 10대부터 20대까지의 여성 피해자들을 노렸다. 피해 여성들의 상세한 신상정보와 함께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수준의 성적 모욕과 조롱을 반복했는데, 기자가 확인한 피해 여성들만 수백 명에 달했다. 신상정보는 얼굴 사진, 이름, 휴대전화 번호, 집 주소, SNS 계정, 학교, 가족의 이름과 연락처까지 상세하게 공개됐다. 피해자들은 3명 중 1명꼴로 10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청소년이었다.

‘암행어사 박제방’에 성적 비하와 함께 신상정보가 ‘박제’된 성 착취 피해 여성들.

‘박제’는 참여자들의 제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암행어사’는 제보를 독려하며 별도의 양식과 방법을 안내하기도 했다. 또 게시글을 올린 뒤 “다 자냐? 공감 안누르면 박제 안해”, “공감 하트 50개ㄱㄱ”라며 호응을 유도하고, 중간중간에 불법도박이나 계좌매입과 관련된 자신의 채널을 홍보했다. 텔레그램 내에는 ‘암행어사’의 방과 유사한 수많은 박제방이 존재했는데, 텔레그램의 특정 기능을 이용하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왼)2만 100명 가량의 참여자를 보유한 ‘ㅅ’ 박제방의 공지, (오)피해자의 반성문을 공개한 게시글

사회적 공분을 샀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방의 규모는 약 2만 2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기자가 확인한 가장 큰 규모의 ‘ㅅ’ 박제방은 2만 명이 넘었다. 소유자는 해당 박제방을 자신의 ‘놀이터’라고 부르며, “주제를 알고 분수를 알면 손아귀에서 풀어드립니다”, “제가 빨강을 보고 파랑이라 하면 그건 파랑입니다. 제가 강아지를 보고 고양이라 하면 그건 고양이입니다.”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걸고 있었다. 피해자들에게 자필 반성문을 작성해 오면 게시글을 내려주겠다면서도, 실상 반성문을 작성해도 여러 이유를 대며 게시글을 내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비교적 참여자 수가 적은 다른 방들은 폭력의 양상이 더 심각했다. ‘ㅇ’ 박제방과 ‘ㄱ’ 박제방에는 10대 중반이라고 소개된 피해 여성들의 신체가 그대로 노출된 사진이 개인정보와 함께 게시되었다. 그 중 ‘ㄱ’ 박제방에는 협박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성 착취물도 있었다. 해당 박제방의 운영자들은 신상정보를 내리는 대가로 여성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성 착취물 제작을 강요하거나, 금전을 요구하는 일도 잦았다. 

(왼)’ㅇ’ 박제방 운영자가 공개한 신상협박 피해 여성의 ‘반성문’, (오)’ㅇ’ 박제방의 피해 여성들에게 개인정보를 내리는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는 ‘신상협박’에 관련한 게시글

텔레그램, 성 착취에서 금융 범죄까지

10대 20대의 여성뿐 아니라, 계좌를 판매한 대포통장의 명의자들 또한 박제방의 피해자였다. 범죄 조직으로부터 도주하거나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사용되는 것을 막은 명의자들 역시 ‘악질 명의자’라는 낙인 아래 이름, 사진, 주민등록증, 주민등록등본, 집 주소까지 그대로 ‘박제’되었다. 범죄 조직에 통장을 판매하는 이들은 대부분 급전이 필요한 빈곤층 청년들이었다.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를 판매해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불과 30만 원에서 50만 원에 그쳤다.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등본, 가족과 지인의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가 ‘박제’된 대포통장 명의자들.

많은 ‘박제방’은 언제든 개인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협박의 수단이기도 했다. 실제로 ‘암행어사’의 박제방에서는 “말 잘들을 사람 갠텔하셈. 대화해보고 박제 바로 내려줌”, “박제 내려줬더니 그 이후로 인사 한번 없는 XXX들 다시 다 박제함” 등과 같은 게시글이 다수 목격됐다. 대포통장 명의자들이 조직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장악하고, 그렇게 끌어모은 참여자들에게 다른 범죄 사업을 홍보하는 등, 박제방의 운영 규모가 곧바로 텔레그램 범죄 네트워크 내의 권력이 되는 구조였다.

암행어사 박제방에 올라온 게시글들

취재 과정에서는 박제방뿐 아니라 동남아 박제방, 불법촬영물 공유방(‘영상방’), 투자리딩 사기방, 여러 범죄 채널 링크를 공유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방(‘링공방’) 등도 어렵지 않게 확인됐다. ‘동남아 박제방’인 ‘ㅂ’ 박제방은 ‘1번방’과 ‘2번방’을 운영하는 등, N번방의 범죄 형태를 그대로 답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링공방’은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박제방과 불법촬영물 공유방의 링크가 다수 발견되었고, 계좌매입, 불법토토, 대포유심 사업 채널 링크를 홍보하는 등 범죄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했다.

N번방 사건 당시부터 텔레그램 내의 성 착취 방들을 추적해 온 ‘추적단불꽃’의 원은지 대표는 “(링공방, 투자리딩방 등의 방들이)N번방 사건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최근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5~6년 사이에 텔레그램 안에서 서비스 개선들이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면서, 어떻게 보면 범죄의 수익화 구조가 탄탄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활개 치는 텔레그램 범죄, 대책은 없나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지 6년이 넘었지만, 텔레그램 범죄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진화하고 있다. 2020년 ‘N번방 방지법’이 제정됐지만, 이후에도 텔레그램을 통한 딥페이크나 지인능욕 등의 디지털 성 착취는 끊이지 않았다. ‘추적단불꽃’의 원은지 대표는 “(N번방 이후 정부·국회 차원에서)텔레그램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 행위들에 대한 전반적인 로드맵, 즉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혹은 플랫폼에 어떻게 협조를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차분한 대책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제도·정책적으로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는데, 지금도 텔레그램이라는 곳에서 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누구 하나 감시하지 않는 무법지대처럼 보이지 않나”며 텔레그램 범죄 전반에 대한 대책의 공백을 짚었다.

링공방에 올라온 박제방의 링크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텔레그램 범죄 네트워크는 디지털 성 착취를 이어가는 한편, 무고한 시민들의 계좌를 대규모로 지급정지시키는 등 피해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킬 만큼 규모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 대표는 불법 촬영물 공유방이나 박제방들 중 대부분이 “본체가 아니다”라며, “불법도박 사이트 등이 홍보를 위해 불법 촬영물들을 공유하는 방을 곁다리로 같이 운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잠입한 ‘박제방’들 또한 모두 운영진들이 불법도박 사이트 가입이나 계좌매입을 홍보했다. ‘암행어사’ 또한 문화활동가 A 씨의 계좌를 지급정지하고 아이디를 남기는 등, 박제방이 아니라 계좌매입과 통장협박 등이 주 수익원으로 보였다.

원 대표는 “플랫폼의 서비스가 범죄로 이어지는 일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국가에서 이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또한 “사실 지금 있는 법만으로는 플랫폼에 강력하게 제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N번방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플랫폼의 책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보편화됐다. 그럼에도 기술 발전 논리에 밀려 플랫폼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조차 작동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기반 범죄는 지속적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범죄에 피해를 입었다면 가까운 경찰서 혹은 사이버경찰청(ecrm.police.go.kr)에 신고할 수 있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d4u.stop.or.kr)에서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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