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나무에 잎이 나고 있습니다”

빛을 만드는 노동자 故 김충현 1주기 기획연재 ①

[편집자주] 오는 6월 2일은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 1주기가 되는 날이다. 김충현은 발전소의 다단계 하청구조와 외주화된 위험, 고용 대책 없이 추진된 석탄발전소 폐쇄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후에도 발전소 2차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은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투쟁은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114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김충현 대책위를 꾸렸고, 장례투쟁과 65일간의 노숙농성 끝에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를 통한 발전소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합의 이행을 위한 노사전 협의체는 여전히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원청의 책임 있는 후속 조치는 멈춰 서 있다.

김충현 노동자 1주기를 맞아 우리는 다시 묻는다. 노동자의 죽음 이후 사회가 어렵게 만들어낸 약속은 왜 아직도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는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한 합의는 왜 다시 미뤄지고 있는가.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노동안전 현실을 바탕으로, 지난 1년의 투쟁과 변화, 남겨진 과제를 돌아보는 기고 5편을 연재한다.

 지난해 6월 18일, 김충현 노동자의 영결식. 함께 일하던 동료를 영정사진으로 마주하게 된 노동자들은 “다시는 이런 죽음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속에 김충현을 떠나보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안녕하십니까. 형님. 푸른 들판에서 평안히 계셨는지요. 가끔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뛰고 있는 사람들, 지켜봐주시기도 할 거 같네요.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심은 형님의 나무는 이제 잎이 조금씩 나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잎이 조금씩 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투쟁이 한 발 한 발 결실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발전소 현장은 여전히 분주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형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형님이 쓰시던 공작기계들은 여전히 현장에 남아있습니다. 형님의 책상과 책들에도 손때가 그대로 남아있더라고요. 그립습니다. 공작실에서 형님의 일하던 모습을 보고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일을 배우려 했던 때, 웃음과 함께 일을 가르쳐주시던 형님의 모습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기대어 쉬시던 형님의 모습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도와주시던 형님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발전소 현장에서 비정규직을 철폐하자고 피켓을 들었던 형님을 생각하고 그 염원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형님의 장례식에선 한 마디 사과도 없었던 한전KPS의 경영진들이 들이닥쳤었고 우리 식구들이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형님의 장례 앞에 처벌마저 피하려는 경영진의 술수에 어머니도 큰형님도 작은형님도 가족 모두가 크게 분노하셨죠. 형님의 영결식에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꼭 되갚아 주겠노라 다짐했었고 고향 친우분의 편지에 모두가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영결 행렬이 태안화력발전소를 향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말하며 동료를 떠나보냈지만, 동시에 다시 위험한 현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그렇게 형님을 배웅하고 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발전소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고 하청노동자를 지켜줄 법과 제도는 여전히 부실했기에, 그리고 형님을 그렇게 부려먹었던 한전KPS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려 했기에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님의 장례식장에서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 수많은 권력자들이 형님 앞에 절을 올리고 향을 피웠고 약속을 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었습니다. 형님의 영정사진을 들고 대통령실 앞으로 갔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도 나와서 형님 앞에 약속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법원 앞에, 국무총리 앞에, 대통령실 앞에, 청와대까지 65일이 넘는 시간 동안 동료들과 함께 노숙농성을 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지난 형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버텼고 눈이 내리던 날엔 많은 사람들이 농성장을 찾아와 함께 눈을 녹이고 소리높여 연대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지난해 6월 14일, 김충현 노동자 2차 추모문화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영정을 들고 대통령실로 행진하려 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참가자들은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죽음의 외주화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대책기구 구성을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하고자 했지만, 경찰은 끝내 행진을 막아섰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발전소 현장을 바꾸기 위해 정부의 행정이 필요했습니다. 발전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기구가 만들어지기까지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두 달이 걸렸습니다. 때로는 진전이 없는 회의에 답답하기도 하고 회의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발전소에서 또 다른 하청노동자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에 충격과 허망함이 교차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죽음의 속엔 불법이 감추어져 있고 여전히 원청은 하청에, 하청은 원청에 책임을 넘기면서 하청노동자들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김용균 청년 노동자와 형님과 붕괴1)에 묻혔던 사람들의 죽음이 모두 같은 이유였다는 것이 분노스러웠습니다. 우리는 그 분노를 농성 안에 담고서 새해가 지나도록 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게 길고 긴 농성 끝에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낸 합의문, 위험의 외주화를 끝내기 위한 합의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을 한전KPS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법원의 판결에도 고용노동부의 명령과 정부의 지침마저 모두 불복하고 있는 공기업이 한탄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린 아직 지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곁에서 함께 해주고 있는 발전소 현장 곳곳의 동료들이 있고 114개의 시민단체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시민, 학생분들 그리고 형님의 손이 닿았던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모두 우리에게 소중한 기억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만들어내겠습니다. 연대와 투쟁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겠습니다. 반드시 발전소를 안전한 현장으로 바꾸어내겠습니다. 형님의 나무가 꽃이 피고 무성해질 때 우리의 의지 또한 그 안에 깃들 것입니다. 6월 2일, 형님 앞에 술 한잔 들고 인사하러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하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태안화력발전소 동료 

국현웅 동생 올림

1) [편집자주] 2025년 11월 6일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해체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보일러 타워 붕괴사고를 말한다. 당시 협력업체 코리아카코 소속 노동자 9명이 매몰돼 7명이 사망했으며, 재해자 대부분은 단기 계약직 노동자였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를 다단계 하청구조와 ‘위험의 외주화’가 반복된 “예견된 참사”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9월 10일 김충현 노동자 기억식에 함께한 노동자·시민들은 김충현 노동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바람을 작은 쪽지에 적어 추모나무에 달았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고 김충현 노동자 기억식에서 국현웅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추모나무에 쪽지를 달고 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덧붙이는 말

국현웅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로,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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