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의 관점에서 보면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맞대결은 2026년 월드컵 결승전으로서 실로 흥미로운 의미를 지닌다. 나와 캠(Cam)은 최신 《원스 앤드 투즈(Ones and Tooze)》 에피소드를 준비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를 살펴봤다.
차트 하나가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바로 이번이 그렇다.
<1820~2022년 1인당 GDP> 1인당 GDP는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인구로 나눈 값이다. 이 데이터는 물가상승과 국가 간 생활비 차이를 반영해 조정했다.
이 드라마는 1816년 7월 아르헨티나의 독립에서 시작한다. 이후 라틴아메리카 제국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침체한 스페인과, 19세기 후반 경제가 급성장한 아르헨티나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아르헨티나의 엘리트들은 스페인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추구했지만, 자국 경제의 급성장은 무엇보다 영국(Britain)의 비공식 제국에 편입된 결과였다. 1870년대 이후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철도망 확장으로 나타났으며, 철도는 내륙을 농업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860년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사실상 철도가 없었다. 그러나 1910년에는 철도 총연장이 2만 3,994km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 철도 지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태평양철도회사, 1910~1911년
1937년에는 철도망이 4만km까지 늘어났고, 그 가운데 66%를 영국 자본이 소유했다. 명목상 독립국이었지만 국가의 핵심 기반시설은 외국이 통제했다. 아르헨티나가 '종속이론'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 잡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14년까지 "아르헨티나 고정자산(토지 제외)의 약 절반을 외국인이 소유했고, 그 대부분은 영국인이었다. 또한 1913년 아르헨티나 전체 대외무역(수출입)의 약 28%가 영국과 이루어졌으며, 이는 당시 영국 전체 무역의 5%를 차지했다."
아르헨티나는 종속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지만, 그 결과 1900년대 초에는 1인당 소득 기준으로 세계 10대 경제권에 진입했다. 미국,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와 같은 다른 '정착민 경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반면 스페인은 크게 뒤처져 세계 20위권에 겨우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1910년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10개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역사적 추정치. 물가상승과 국가 간 생활비 차이를 반영해 조정했다.
번영에 대한 기대는 아르헨티나를 대규모 이민 목적지로 만들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많은 사람이 건너왔다. 오늘날까지도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스페인어에는 나폴리 방언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탈리아 이민자와 출신 지역 분포>
물론 영국 중심의 세계체제에 불평등하게 편입되면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집단은 아르헨티나의 매판 엘리트(comprador elite, 콤프라도르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 혜택은 어느 정도 아래로도 흘러내렸다. 대서양을 건너는 대규모 이주를 이끈 것은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스페인 사이의 임금 격차였으며, 상당 기간 그 차이는 100%를 넘었다.
<아르헨티나와 호주, 그리고 주요 이민 송출 지역 사이의 임금격차(1890~1939년)> 출처: 테일러 1992
오늘날 아르헨티나인의 60% 이상이 이탈리아계 혈통을 지니고 있다. 한 풍자가는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쓰는 이탈리아인들의 나라였고, 그 엘리트들은 자신들을 영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한때 세계에서 정신분석가가 가장 많이 활동했던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종종 '라틴아메리카의 파리'라고 불렸다. 또한 아르헨티나 군부는 무엇보다 독일을 본보기로 삼았다.
이런 의미에서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관리한 19세기 '세계적 조건'의 전형적인 산물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비공식 제국'의 대표적 사례였다. 반면 스페인 역시 세계적 조건의 영향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1898년 푸에르토리코, 쿠바, 필리핀을 미국에 빼앗으며 계속 패배하는 위치에 머물렀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모두에서 축구 문화도 바로 이러한 세계적 조건 속에서 형성됐다. 럭비와 크리켓, 축구는 영국인 이주민들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져간 여가 활동이었다. 이후 이 종목들은 각 지역에서 강력한 스포츠 문화를 낳았다. 카리브해와 남아시아에서는 크리켓이, 남아프리카와 오스트랄라시아에서는 럭비와 크리켓이, 그리고 영국의 비공식 제국 전역에서는 축구와 테니스, 골프가 뿌리를 내렸다.
1870년대 후반에는 영국계·독일계 광산기업 리오틴토(Rio Tinto) 직원들이 스페인 땅에서 가장 먼저 축구를 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아래는 스페인에서 축구 경기를 촬영한 가장 오래된 사진 가운데 하나로, 우엘바(Huelva) 대표팀과 리오틴토 FC(Rio Tinto FC)의 경기 장면으로 추정된다.

영국인들은 카탈루냐에도 축구를 전파했다. 1899년에는 스위스 출신 이주민이 FC 바르셀로나를 창단했다. 1900년대 초가 되면 영국 제국의 국제 스포츠 네트워크 안에서 이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팀들은 충분히 경쟁력 있는 상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이들의 경기력은 유럽 팀들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인정받았다.
20세기 초가 되자 축구는 두 나라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이후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붕괴하면서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은 모두 '극단의 시대' 속에서 각자의 독자적인 국가 발전 경로를 만들어 갔다.
1920년대 국제 자본 이동이 급격히 위축되자 아르헨티나는 경제민족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같은 시기 스페인은 오랜 위기가 내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이 들어섰다. 두 나라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고, 그 결과 전후 국제질서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 1950년대에는 잠시나마 두 나라가 비슷한 처지에 놓였는데, 이는 마드리드를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도피한 나치 전범들의 탈출 경로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1960년대 이미 빠르게 성장하던 스페인은 프랑코 체제 이후 유럽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됐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1976년 다시 잔혹한 군사독재 체제로 돌아갔다. 군사정권은 1978년 월드컵을 개최했다. 아르헨티나는 경기에서는 우승했지만, 경제는 이후 해외 자본시장과 국내 정치의 격변에 휘둘리며 끊임없이 위기를 겪었다.
한 아르헨티나인 지인의 표현을 빌리면, "아르헨티나는 점점 라틴아메리카화했고, 스페인은 점점 유럽화했다."
오늘날과 같은 승자독식 구조의 현대 축구에서 재정을 비교하면, 국내총생산(GDP) 수치만으로는 스페인이 아르헨티나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유해진 스페인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 5월 <포브스>(Forbes)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사를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축구 구단으로 선정했다.
2024~2025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12억 7,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 시즌보다 12% 증가한 수치이자 축구 구단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실제로 이 수치는 2024년 NFL 시즌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기록한 12억 3,000만 달러를 넘어, 포브스가 집계한 스포츠 구단 역사상 가장 높은 연간 매출이 됐다(물가상승률 미반영).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하지 않았고, 아스널과 파리 생제르맹이 우승 상금 2,900만 달러를 놓고 경쟁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축구 구단 자리를 지켰다. 또한 포브스의 최근 13차례 연간 순위 가운데 10번째 정상에 올랐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기업 가치는 95억 달러이며, 2위 바르셀로나보다 20억 달러 높다. 바르셀로나는 지난 시즌 선수 이적료를 제외하고 연매출 10억 달러를 넘긴 역사상 두 번째 축구 구단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축구 구단 상위 30개를 보면 프리미어리그, 메이저리그사커(MLS), 그리고 유럽 주요 리그 구단들이 순위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스페인 대표팀은 다른 나라보다 자국 리그 소속 선수 비중이 훨씬 높다. 특히 바르셀로나 출신 선수가 많으며, 이는 팀 조직력과 유기적인 경기 운영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다.
반면 2026년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해외에서 뛰고 있다. 이들은 유럽 여러 명문 구단에 흩어져 활약한다.
<2025년 아르헨티나 주요 축구 구단 가치>
국내 축구만 놓고 보면, 한 세기 전만 해도 지방 수준에 머물던 스페인 축구를 크게 앞섰던 아르헨티나 축구는 이제 한참 뒤처졌다. <포브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가치를 각각 90억 달러와 7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했지만, 2025년 아르헨티나 최고 구단들의 가치는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구단 가운데 1,000만 유로 이상의 가치를 지닌 선수를 보유한 팀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국가대표 스타 선수들은 모두 해외에서 뛴다.
라틴아메리카 축구 구단 가치 상위 10개 순위에서 아르헨티나 최고의 구단 보카 주니어스는 9위에 머물렀고, 이웃 브라질의 거대 구단들에 크게 뒤졌다. 최근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아르헨티나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마이애미를 통해 자금세탁을 했는지 수사하고 있다는 소식도 나왔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개별 선수들의 재능과 가치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2026년 월드컵 결승전은 극도로 불균형한 대결이다.
축구 세계에서는 세계경제보다도 더욱 '수렴'이 아니라 불균등·결합 발전이 지배한다.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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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